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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람 2018년 겨울호_FOCUS POET_ 김혜순 시, 작품론 / 박현솔
(요약)
1. 문제의식과 배경
전통적으로 문학은 ‘독자와의 소통’을 중시해 왔음.
현대사회에서는 개인화, 난해성, 상징적 표현의 강화로 독자 소외가 심화.
특히 서정시는 독자의 공감과 위로의 기능을 지녔으나, 군부독재와 검열 등으로 표현 억압을 겪으며 언어 해체와 난해성 심화.
김혜순 시인은 검열과 폭력적 현실을 직접 체험하며 “의도적 비소통”의 시학을 실험.
2. 김혜순 시의 변모와 소통 양상
초기 시집에서는 소통하려는 의지 보임.
3~4집: 고통·죽음·절망 등 감춰진 세계를 드러내며 다성성 실험.
5~12집: 여성적 몸, 환상, 죽음, 초월적 존재들을 통해 ‘몸-언어-사회’ 간 새로운 소통방식 구축.
3. 시집별 소통 전략의 변화
1~2집: 조화와 전달, 의미 중심적 소통.
3~4집: 은폐된 폭력의 폭로와 비정상적 상상력.
5~6집: 여성적 몸과 가족, 분신들을 통해 내면 중심 소통 시도.
7~8집: 화자의 몸에 깃든 다양한 인물들과의 상호침투적 소통.
9~10집: 여성적 고통과 억압을 외부적 존재와 연결, 확장된 연대.
11~12집: 사회적 타자와 죽은 자들과의 근본적 연대 및 집단적 애도.
4. 주요 시편 분석 요약
① 「레시피 동지」
부재한 아버지와의 내적 대화.
"팥죽"은 기억과 환상의 제의적 매개.
과거의 억압자(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소통 욕망의 이중적 태도.
② 「고잉 고잉 곤」
새, 구멍, 몸의 은유를 통한 자아의 상처와 시대적 억압 표현.
“기형아”는 검열된 언어와 자아의 상처를 상징.
③ 「이별부터 먼저 시작했다」
해탈과 이별, 존재의 이중성.
“새”는 몸을 떠날 수 없는 존재, 존재와 부재의 간극 속 소통 가능성 암시.
④ 「좀비 레인」
죽은 자, 귀신, 좀비와의 연대.
죽음의 존재들을 통해 억압된 감정과 사회적 폭력의 기억을 위로.
⑤ 「Korean Zen」
“소녀”는 자아의 일부이자 불화의 대상.
해탈은 ‘나 아닌 자아’의 제거로 얻어지는 듯하나, 결국 소통으로 회귀.
⑥ 「댄싱 클래스」
청춘들의 절망과 고통을 ‘춤’으로 표현.
선생-제자, 죽은 자-산 자의 공존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몸짓 강조.
⑦ 「10센티」
새장 속 ‘새’, ‘천사’, ‘나’의 동일화.
상처와 고립의 공간이 오히려 내면 소통과 자각의 장소로 전환됨.
⑧ 「춤이란 춤」
“5분 안에 인생을 춤으로 표현”은 강요된 사회의 압박.
춤은 절망 속에서도 ‘몸’으로 존재를 표현하는 소통의 행위.
5. 김혜순 시의 소통 방식 특징
외형적으로는 불통의 세계를 그리지만, 내적으로는 타자·죽은 자·자기 존재와의 깊은 소통 시도.
억압된 여성, 소외된 자, 죽음의 존재와 감응하며 감정적 연대 시도.
‘새’, ‘귀신’, ‘소녀’, ‘춤’ 등의 반복되는 모티프는 시적 소통의 통로.
6. 비평적 총괄
김혜순 시는 초기에 개인 내면의 상처로 몰입했으나, 이후 점차 외부 타자와의 교감으로 확대.
그녀의 시는 살아남기 위한 ‘위장된 불통’이었고, 결국 시를 통한 치유와 연대를 추구.
시의 ‘몸-죽음-환상’ 삼각구조 속에서 언어 너머의 깊은 소통의 에너지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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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通의 세계 속에서 모색하는 소통의 전략
-김혜순 시인의 근작시를 중심으로
박한솔
소통을 전제로 대부분의 예술이 꽃을 피우고 대중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예술가의 창작 의도는 수용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도중에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문학은 독자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이를 큰 미덕으로 여겨왔지만 산업화를 거쳐 현대사회로 들어서면서 사회체계가 복잡해지고 창작자의 심리도 복잡하게 구조화되어 공적인 것보다 개인의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문학은 대중으로부터 서서히 외면받기 시작하였고, 시에서 시인과 독자의 거리가 확연히 멀어지게 되었다. 시로부터 삶의 위안을 얻던 독자들은 시가 어려워지면서 소통이 좀 더 용이한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으로 눈길을 돌린다. 이러한 시의 위기는 산업의 구조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시인들이 개인적인 상징과 비유에 몰두하는 경향과 시적 언어의 난해성 때문이다. 소통의 문제를 외면하고 계속 독자를 소외시킬 때 시의 미래는 어둡고 존폐위기의 악성루머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특히 서정시에서는 독자와의 소통이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이것은 서정시가 오래전부터 독자의 마음 속 상처를 어루만지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과거에 한국 전쟁으로 모든 산업이 파괴되고 이데올로기에 의해 인간 생명이 하찮은 것으로 추락할 때 시인들은 존재론적 의문 속에서 잉태한 작품을 형상화했고 독자들도 시인들의 생각에 동조하면서 문학에 기대어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렇지만 죽음이 일상화 되고 이데올로기의 악영향이 개개인에게 미치게 되면서 현대시 또한 암흑기에 들어서게 된다. 그 가운데 한국의 비극적 역사 속에서 약진을 해온 모더니즘 시와 포스트모더니즘 시는 당시에도 나름의 존재 근거를 마련하면서 외국의 문예사조의 흐름을 이어가기도 하며, 실험적이고 해체적인 낯선 상상력으로 인간의 감정보다 언어와 기호로써 다가가는 이들 모더니즘 시와 포스트모더니즘 시는 그렇게 전후세대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리고 산업화를 거쳐 1980년대 군부 독재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문단은 한 번 더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다. 독자들도 독재자 규탄과 민중의 자유를 부르짖는 시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때 모든 문학은 검열의 대상이 되었고 군부의 간섭으로 문인들의 소신 있는 발언이 위축되고 심리적인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지식인들의 글과 문인들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단속되던 그 시기에 서정시를 쓰던 많은 시인들은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고 검열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시의 이미지를 왜곡하거나 언어를 비틀고 해체하는 등의 작업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독자와의 소통을 바란다는 것은 군부의 단속에 걸려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게 되거나 육신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기에도 독자들은 시를 기다려주었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였다.
이 위태로운 시기에 한국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온 시인들 중에 김혜순 시인이 있었다. 그녀는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하였고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검열과 금서가 있었고 그녀에게 시 청탁이 오면 단번에 쓴 시를 보내 검열에 걸릴 일은 하지 않았지만 직업상 출판사의 책들을 들고 시청의 군인들에게 검열을 받으러 가야 했다. 그곳에서 작가들의 개인정보를 대라는 요구와 함께 뺨을 맞기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녀는 현실을 구체적이고 실재적으로 묘사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의 일이 이후에 의미 해석이 어렵고 소통이 쉽지 않은 시를 쓰게 한 것은 아닐까. 김혜순 시인이 등단 후 묶은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서 개인적인 감정이 잘 드러나는 시들이 실려 있지만 세 번째 시집부터 쉽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방법론적 시들이 쓰인 것을 보면 그녀가 의도적으로 이를 실험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김혜순 시인은 환유와 은유의 기법들을 혼합하여 여성의 몸이 남성 중심적 가부장세계에서 폭력과 불안,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음을 폭로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심리적 트라우마는 열두 권의 시집을 내는 동안 조금씩 희석되기는 했지만 무의식 속에 남아서 꿈으로, 환상으로 떠오르며 그녀의 자의식을 괴롭혔다. 결국 시대적 필요에 의해 김혜순 시인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를 쓰게 되었고 방법론적인 측면에 몰두하면서 시뮬라크르와 같은 개념 등을 실현하는 시적 방향성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김혜순 시인에게 소통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을까. 그녀의 시집들을 살펴보면 그것에 대한 해답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첫 시집 또 다른 별에서와 두 번째 시집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에서는 원만한 조화의 이상을 보여주고 의미를 전달하면서 소통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세 번째 시집 어느 별의 지옥에서 은폐되고 가려진 것들을 드러내고 죽음과 고통, 절망을 주시하면서 다성성(多聲性)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네 번째 시집 우리들의 陰畵에서 현대인이 직면한 비인간적 상황을 극적 상황으로 설정하고 카니발리즘으로 본질이 아닌 위선을 비웃으며 새로운 상상력으로 비약한다.
다섯 번째 시집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에서는 수많은 여자들과 아버지가 등장하고, 화자가 바라는 대상과는 소통할 수 없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이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인간 군상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문명의 최후와 인간 탐욕을 직시하게 하는 지옥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아버지로 표상되는 상징과 화자의 소통의지가 불씨로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섯 번째 시집 불쌍한 사랑기계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나의 분신들(아기, 엄마, 할머니 등)로서 내면으로의 침잠을 통해 수평으로 확대되는 소통을 꿈꾼다. 그리고 나의 몸이 삶과 죽음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나타나게 된다. 일곱 번째 시집 달력공장 공장장님 보세요에서 시인은 다양한 인물들을(얼음아씨, 백설어머니, 달어머니 등) 등장시키고 그들의 모성성을 드러낸다. 그들은 화자의 몸속에 살고 있거나 몸속으로 들어오려는 존재들로 여성의 몸을 통해서 소통을 이어나간다. 여덟 번째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에서는 그동안 친숙하게 불러냈던 할머니와 엄마와 딸을 부르면서 또한 다른 여성적 인물들을(요나, 유화부인, 벙어리 여자, 늙은 여자, 애인 광자)를 불러낸다. 그리고 만봉스님과 문익점을 불러내는 것이 특이한데 이들은 여성의 몸과 정신을 위로하고 감싸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이때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위압적이고 대결해야 할 존재로 등장한다.
아홉 번째 시집 당신의 첫에서도 시인이 만든 무수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엄마, 할머니, 딸 외에도 다양한 여자들(모래여자, 붉은 가위여자, 나이든 여자, 젊은 여자, 욕조속의 여자, 얼음공주, 여배우, 인어, 신데렐라 등)이 등장한다. 그 외도 초월적 존재 혹은 죽음의 존재들(천사, 하나님, 귀신, 시체 등)이 등장하거나 하나님에게 여성성을 부여하고, 사랑에 굶주린 존재로 귀신을 등장시킨다. 반면에 아버지는 기운이 빠져서 힘의 주도권을 뺏긴 상태로 나타난다. 대신에 남동생과 삼촌이 등장하면서 남성 인물들에 대한 시인의 변화하는 인식을 볼 수가 있다. 열 번째 시집 슬픔치약 거울크림에서는 고립되거나 비극적인 생을 살아가는 여성들(구멍 속에 고립된 여자라든가,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홀로 있는 부인, 저 세상을 임신한 여자, 책 속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여자, 아들의 유해를 기다리는 수백 명의 어머니 등)이 등장한다. 이전의 시집들에서도 지속적으로 등장했던 아기와 소녀, 엄마, 할머니, 하나님이 계속 등장한다. 그 외에도 유령과 귀신이 등장하거나, 날지 못하는 새들(오리, 거위), 화자의 몸 안에 살면서 날지 못하는 새에 대한 사유도 펼쳐진다. 그리고 아버지는 더 이상 화자의 내면을 괴롭히지 않는 존재로 나타난다.
열한 번째 시집 피어라 돼지에서는 가족(소녀, 엄마, 할머니, 여자 조상) 외에도 다수의 여성들(마릴린 먼로, 여자 화가, 바다의 표면을 벗겨내는 여자, 줄무늬 옷을 입은 여자, 쏟아진 여자, 키 큰 여자, 티베트 전설할머니, 선생님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천사와 좀비가 등장하고 버림받은 존재들(낙태아들, 입양아들, 아이들)과 일하는 소년들(광산 소년, 청년 광부 등)이 등장한다. 또한 죽음의 위기에 놓인 돼지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들은 인간의 죄악과 잘못된 판단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버려지고 외면당한 존재들로 그 상처와 아픔을 시인이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소통 의지가 나타난다. 자신의 몸과 무의식, 환상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창조해낸 시인이 자신의 몸이 아닌 타자들과 다른 대상들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의미가 크다. 그동안 화자에게 억압적 태도를 보였던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는 대신 과거에 폭력과 폭언을 행사했던 남성들(형사와 불특정 아저씨)에 대한 화자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마지막으로 열두 번째 시집 죽음의 자서전에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등장했던 가족들(어린 언니, 엄마, 오빠)과 어린 존재들(막 태어난 아기, 아이들) 외에도 죽음의 존재들(임신한 채로 죽은 여자, 죽은 아이의 엄마, 망자들, 귀신, 죽은 기린, 죽은 용, 죽은 암탉, 죽은 토끼)이 다수 등장한다. 그밖에도 인형, 허전한 사람, 외할머니 노루, 새끼노루 등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화자를 괴롭혔던 존재들에서 아버지가 빠지고 군인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열두 권의 시집을 살펴볼 때 김혜순 시인이 의도적으로 은폐해온 세계를 푸는 열쇠가 등장인물에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시인의 경험 속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제 역할을 수행하며 내부적으로 소통을 하는 한편 그것이 외부를 향하면서 사회적 죽음을 애도하고 세계의 부조리를 폭로하며 죽음의 존재들과 연대하여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번에 시인이 보내 온 8편의 작품들은 그동안의 시집들에서 보았던 주제와 인물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에 그치지 않고 절망의 극복 의지를 보이고 희망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인생을 춤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화자의 몸과 죽은 자들의 영혼이 함께 소통하고 공동체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온갖 죽음의 제물이 된 대상들(돼지, 오리, 닭 등)과 죽은 자들에 대한 소통, 거기에서 나아가 소외와 편견, 폭력과 고통에 놓인 타자들과 더 긴밀하게 소통하길 바라게 되는 것, 그것이 김혜순 시인의 시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1. 오지 않은 날들이여, 오지 말고 돌아가라
눈이 와
흰 벌판 한 가운데
물로 만든 척추처럼
개울이 흘렀다
나는 팥죽을 쑤었다
오른쪽 폐에서 피떡처럼
검붉은 기침이 펄떡거리고
집을 떠나 이곳에 오면서
이름도 적지 않고
초대장을 보냈는데
꼭 올 것 만 같았다
공중에서 내려온
흰 시트를 헤치자
아빠, 너가 서 있었다
팥이 다 익었을 때
두 눈에 맺힌 아빠를 닦으며
흰 설탕을 넣었다
눈이 더 와
물로 만든 척추를 가진 새가
거대한 날개를 털며
일어나는 게 보였다
작은 물고기들이
폭설처럼 쏟아졌다
쏟아지고 나니 다 은빛 티스푼인
물고기들이었다
1. 오지 않은 날들이여
2. 오지 말고 돌아가라
풍경에서 소리란 소리가 다 말랐다
나는 포스트잇에
아빠 잘 가 라고 써야할지
아빠 가지마 라고 써야할지
동지의 레시피를 적었다
하얀 동그라미를 빚어
뜨거운 팥죽 속에 0 0 0 자꾸 밀어 넣었다
나의 일부를 밀어 넣는 느낌
죽은 사람과 뭘 하며 밤을 보내지? 생각했다
살을 만지고 싶은데
흰 뼈의 풍경이었다
왠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날들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한 국자 한 국자
눈밭에 팥죽을 던졌다
- 「레시피 동지」 전문
김혜순 시인의 시에서 “아버지”는 두 가지 의미로 읽히는데 하나는 육신의 아버지이고 하나는 종교적인 아버지이다. 이 육신의 아버지는 가부장적 사회체계 속에서 억압적인 세계를 강요하며 화자를 내내 힘들게 한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길렀다/당연히 잡아먹으려고/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그건 내 아이들의 통통한 뺨”(「Delicatessen」)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너 심겨진 밭에 약을 치고 돌아온 아버지/네 팔을 잘라 나뭇단을 만드는 아버지/네 밑동을 잘라 제재소에 보내는 아버지/양손이 사나운 칼날인 아버지”(「어쩌면 좋아, 이 무거운 아버지를」)이다. 이 무섭고 억압적인 아버지는 열한 번째 시집 피어라 돼지에서부터 등장하지 않으며, 이 시에서는 돌아가신 상황이다. 화자는 눈 내리는 “동지”에 “이름도 적지 않고/초대장을 보냈는데” 아버지가 “꼭 올 것 만 같”은 예감이 든다. 팥죽을 쑤는 도중에 흰 눈발 속에 서 있는 아버지를 보자 화자의 몸속에 사는 “물로 만든 척추를 가진 새”와 “작은 물고기들”이 조건반사 반응을 보인다. 특히 새는 화자의 “내장 속에 꿈틀꿈틀 만져지는 새./꺼내도 꺼내도 꺼내지지 않는 새./그러나 온몸을 휘저으며, 밤이면/밤마다 두 겨드랑이를 쳐올리는 새, 유령의/새, 울화통의 새”(「相思」)로 화자의 무의식을 장악하기도 하고, “새 한 마리 떨면서 쇠침대에 사지가 묶입니다/꿈속에서 꿈밖으로 수북하게 쏟아지는 깃털들//발목에 이름표를 감고 고개를 옆으로 놓은 저것!/침대로 끌어올려놓고 보니 젖은 날개가 구만리인 저것!”(「날아가는 새의 가녀린 겨드랑이」)처럼 상처 받은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화자는 아버지가 불행을 몰고 오는 존재라고 생각하여 “오지 않은 날들이여” “오지 말고 돌아가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빠 가지마 라고 써야할지” 망설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화자가 뜨거운 팥죽 속에 밀어넣는 “0 0 0”는 새알심이기도 하고 새알심이 아니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마주 앉으면/우리는 0가 되어요/당신은 (가 되고/나는)가 되어요”(「0」)에서처럼 화자와 아버지의 관계를 의미하고 그것 때문에 “나의 일부를 밀어 넣는 느낌”이 들게 된다. 그러나 육신의 아버지는 이제 “죽은 사람”이고 팥죽이 놓인 제사상을 받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화자가 아무리 “살을 만지고 싶”어도 형체가 없이 기억과 환상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이다. 이제 화자가 보기에도 아버지가 동지의 흰 눈을 뚫고 서 있다는 환상은 비현실적인 “흰 뼈”의 풍경인 것이다.
반면에 김혜순 시인의 시에서 종교적인 아버지는 화자의 기억에 남은 상처에 위로와 생의 깨달음을 전해주는 존재로 제시된다. “시디신 전갈이 한 마리 목구멍 속에서 올라와/입술 밖으로 쏟아지고/밤보다 까맣게 반짝이는 전갈을 따라/아버지 계시는 집으로 언젠간 돌아가야 하겠지?//잠깐 허공 중에 머물다/이 세상에 날 던져준 그 손바닥 위로/돌아가야 할 부메랑처럼/이미 돌아가는 길에 들어선 이 몸이지만/오늘밤 웬일인지/저 별자리들 몸 속에서/몸 밖으로/두 근 거 리 네”(「두근거리네」)에서 인간의 시간이 하늘에 있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정해지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십자수와 레이스 강박증 환자/커튼처럼 창틀에 걸터앉아 안팎의 비밀을 다 엿듣고는 펄럭펄럭하기만 하죠//나의 신경망이 엉킨 낚싯줄처럼 뭉쳐져선/난파선같이 출렁이는 바닥에 팽개쳐지는 날(…)웅크리고 누운 죽음의 애벌레 속에서/희디흰 실을 물고 나비들 뿜어 나오듯//낡은 패턴북을 뚫고 점점이 날아오는 속눈썹과/속눈썹의 입맞춤 같은 흰 눈송이들”(「하나님의 십자수와 레이스에 대한 강박. 1」)에서 우주의 만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한편 김혜순 시인은 여러 시들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존재를 말해왔다. 그 아기는 “실핏줄 당기지 마/ 내 이마의 글씨를 읽으려고 마/얼른 문을 닫아/빛을 들여보내지 마/숨막혀/생명이 다 날아가//다시 살아나기 싫다면서/엄마를 큰 파도 속에/텀벙 던지는 태중의 아이”(「다시 태어나기 싫은 아기」)로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던 아기였다. “밤마다 잠들려 하면/나는 아이 하나 껴안는다/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얼굴도 이름도 지어지기 전의 나(…)나는 그 아이에게 들어간다/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발자국도 크지 않은 아이/새파란 아이/아직도 ‘내’가 아닌 아이(…)아직도 젊은 별, 푸른 불꽃 그 자체인 아이/우리 엄마 뱃속에서 아직도 눈 못 뜬 아이/나 죽어도 살아 있을 그 아이”(「내가 모든 등장인물인 그런 소설 3」)에서 또 다른 자아를 만난다. 나 이전의 나이면서 아직도 과거의 시간을 살고 있는 나는 현재로 오지 않은 순수한 존재이다. 그래서 “왠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날들”을 사는 아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게 된다. 더구나 “눈밭에 팥죽을 던”지며 육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행위는 곧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오지 않은 날들이여/오지 말고 돌아가라”는 아버지를 향한 말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내 몸의 근원인 아버지에 대한 부정과 돌아갈 수 없는 날들에 대한 연민은 “팥죽”이라는 음식을 통해서 소통을 나누고 있다.
2. 내가 없는 곳으로 한 걸음
새가 나를 오린다
햇빛이 그림자를 오리듯
오려낸 자리로
구멍이 들어온다
내가 나간다
새가 나를 오린다
시간이 나를 오리듯
오려낸 자리로
벌어진 입이 들어온다
내가 그 입밖으로 나갔다가
기형아로 돌아온다
다시 나간다
내가 없는 곳으로 한 걸음
내가 없는 곳으로 한 걸음
새가 나를 오리지 않는다
벽 뒤에서 내가 무한히 대기한다
- 「고잉 고잉 곤」 전문
김혜순 시인의 시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새’와 ‘구멍’과 ‘나’의 관계를 가장 간결하게 보여주는 이 시는 대상들 간의 관계로 인해 불통의 세계에 유폐된 자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새”는 화자의 몸에 살면서 화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나간다. “새”는 나의 분신이면서 내가 되고 싶은 존재이고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아서 새장 속에 갇힌 운명을 살고 있다. “그런데 참 꿈속에서 새가 된 적 있었나요/눈알이 쏟아질 듯 불거지고/쪼그려 앉은 무릎이 펴지지 않던 적 있었나요/무엇보다 날개가 돋으려는지/휘젓는 팔이 한없이 펄럭거린 적 있었나요//아무래도 내가 새가 되려는가 봐요”(「새가 되려는 여자」)에서 새가 되는 꿈을 꾸는 여자는 내면에 새를 키우며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그리고 “슬픔이란 이름의 새를 아시는지/그 새의 보이지 않는 갈퀴에 대해 들어보셨는지/그 새의 투명한, 그러나 절대로 녹지 않는/갈퀴에 머리채가 콱 잡혀서/나는 문설주에 고개를 기대고 서서 말하네/잘 가거라 항구를 떠난 잠수함아/여기 절벽 위에 서 있는 나를 잊지는 말아라”(「날마다의 장례」)에서 여자와 새는 상처를 공유한 존재이면서 죽음까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햇빛이 그림자를 오리듯” “새가 나를 오”리는 것은 햇빛으로 인해 그림자가 생기듯이 새로 인해서 내가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오려낸 자리로/ 구멍이 들어”오는 것은 내 몸이 구멍으로 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알까, 구멍도 화장을 한다는 거/번개에 감전되면 울기도 한다는 거/구멍의 입속엔 구멍을 못 견디는 빨간 혀가 숨어서/오오오 소리 반죽을 만들 줄도 안다는 거/침대에 오래 누워 있으면 구멍은 더 악화된다/다시 말하면 한없이 한없이 구멍이 깊어진다/아침에 일어나면 구멍이 흘린 눈물인지/베개 위에 얼룩이 조금 번져 있다”(「구멍」)에서 “구멍”이라는 이름의 내가 “화장”을 하고 울고 소리를 내고 아프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세상의 모든 구멍이란 구멍 비집고 이파리 돋아나는데 어쩌나. 나 엎드려 기어가서 이 초록 벌판 다 짓이겨버리려네. 이 환한 초록 바다. 깊은 구멍 다 메꿔버리려네.(…)내 입으로 내 구멍으로 이 풀밭 이 산천 이 넓은 초록 바다 다 짓이겨버리려네. 온몸에 깜깜한 눈 번쩍 뜨려네.”(「꽃잎이 피고 질 때면」)에서 “내 구멍”으로 “세상의 모든 구멍”을 짓이기고 메꿔버리겠다는 상처받은 존재의 파괴의 의지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내 몸이 구멍으로 되어 있듯이 세상도 하나의 구멍으로 되어있다는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구멍”이 만들어졌을 때와 “벌어진 입”이 만들어졌을 때 “나”는 똑같이 밖으로 나가지만 후자에서만 “기형아”라는 오명과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그 상황에도 멈추지 못하고 “내가 없는 곳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어서 외부로 “다시 나간다” 이처럼 외부에서 상처를 입어도 멈출 수가 없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김혜순 시인은 어느 별의 지옥 <시인의 말>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출판사 직원이었던 나는 책의 3교 다음 OK를 놓고, 가제본을 끝낸 책을 들고 시청의 군인들에게 검열받으러 갔다. 어느 땐 그들이 지운 잉크로 본문이 다 지워진 책이 숯 덩어리가 된 적도 있었다.” 이때 온전하지 못한 책의 상태는 “기형아”를 연상케 한다. 만약 그런 상황을 의미하는 거라면 “내가 없는 곳으로 한 걸음”은 내 주관을 펼칠 수 없는 억압적 세계를 피해서 “벽 뒤에” 숨고 “무한히 대기”하는 위축된 자아다. 그리고 화자의 또 자른 자아라고 보았던 새가 사실은 화자의 시이기도 하기에 “새가 나를 오리지 않”는 것은 자유롭게 시를 쓰거나 책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즉 시대적 상황으로 독자와 소통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소통을 위해 도전하고 다시 기회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잠재적 소통의 에너지를 느낄 수가 있다.
3. 이별과 이별은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눌까
새와 새가 대화를 나누었다. 나무 위에서 지붕 끝에서 피뢰침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었다. 너무 추운 날이었고 몸은 따뜻한 방안에서 왠지 울고 있었다. 새의 대화 속엔 몸이 없었다. 그래서 새는 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했다. 몸에서 떨어진 두 손처럼 새 두 마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새는 이별부터 먼저 시작한다는데, 이별과 이별은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눌까. 몸속에서 몹시 떨었던 적이 있다. 새가 파닥거린 적이 있었다고나 할까. 새들은 이미 이별부터 시작했으므로 미래가 없다고 했다. 새는 미래를 콕 찍어먹고, 미래를 콕 찍어먹고 정겹게 대화를 나누었다.
해탈한 스님은 늘 같은 나무 아래, 새는 늘 같은 스님 머리 위에 있었다.
새와 몸은 서로가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했다. 나는 몸이 너무 아픈 날 새 한 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몸은 새가 다녀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 오늘은 새가 몸을 데리고 제일 어두운 골짜기로 갔다. 몸이 비명을 지르고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번쩍 떴다. 새는 가버렸다.
금요일 저녁에 길이 막히고 한강대교 중 어느 하나, 자동차 안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엄마가 눈 수술을 끝내고, 두 눈에 붕대를 감은 채, 홀로 누워 있었다. 새가 먼저 날아가 엄마의 두 눈을 쓰다듬었다.
그 때 엄마가 내 이름을 불렀다 했다.
- 「이별부터 먼저 시작했다」 전문
김혜순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식민지에 사는 사람은 절대 해탈이 불가능하다. 여성은 식민지 상황에서 살고 있다. 사회학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식민지성이 있다. 이때의 여성은 인식론적 여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성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화자들과 대상들은 해탈을 하지 못하면서도 꾸준히 해탈을 시도한다.
이 시에서도 “해탈한 스님”과 “스님 머리 위에 있”던 “새”가 ‘해탈’이라는 같은 지향성을 갖고 있다. 해탈의 다른 이름인 “이별”은 그래서 “새”와 “새”의 공통적인 화제가 된다. 그러기에 “새들은 이미 이별부터 시작했으므로 미래가 없다”는 것이 성립된다. 이 ‘해탈’과 ‘이별’에 관한 시인의 다른 시들을 살펴보면 “나의 내용물, 슬픔과 불안, 일평생 꿀꿀거리며 퍼먹은 것으로 만든 것(…)그런데 돼지더러 마음속 돼지를 끌어내고 돼지우리를 청소하라 하다니/명상하다가 조는 돼지를 때려주려고 죽봉을 든 스님이 지나간다(…)왜 내가 벽 보고 나를 버려야 돼요?/내가 어디 있어서 나를 버려야 돼요?(…)/덤벼봐! 사면 벽아! 해봤자 소용없다는 건 나도 알아요./죽봉을 든 스님이 이기 뭐꼬? 하면서 내 어깨를 세 번 치네요.(…)몸 버리고 가라는데 몸 데리고 간다/돼지 버리고 가라는데 돼지 데리고 간다//꿈속에서 나가/이제 그만 새나 되라는데/몸속에서 새가 운다//이제 그만 안녕 너 없이도 살 수 있어”(「돼지라서 괜찮아」)에서 돼지가 몸을 버리기 위해 자신과 이별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쉽지 않고 마음속으로 불평이 생길 때마다 죽봉을 든 스님이 나타나서 화자를 꾸짖는다. 돼지가 몸을 버리고 해탈에 이르는 것이 어렵듯이 “새” 역시 몸을 버리는 과정이 쉽지가 않다. 이 시에서 “몸속에서 몹시 떨었던 적”이 있고 “새가 파닥거린 적이 있었다”는 새에게 찾아오는 번민의 순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는 해탈(이별)을 지향하지만 몸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상태인데 이것은 “새가 먼저 날아가 엄마의 두 눈을 쓰다듬”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몸이 너무 아픈 날 새 한 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거나 “몸은 새가 다녀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고 하는 것에서 새가 몸을 해탈(이별)하지 못하고 아직 희미하게나마 그 기억과 감각에 붙들려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새는 태어나서 어느 정도의 몸집이 되면 어미새가 나는 연습부터 시키는데 그것을 화자는 “새는 이별부터 먼저 시작한다”라고 보고 있다. 이별에 관한 시인의 다른 시로 “계속해서 계속해서 달이 떠오르는 곳/두꺼운 이불로 내리눌러도/이빨이 삐죽삐죽 새어나오는 곳/가느다란 지평선에 거무튀튀한 사자들 걸터앉아/빠져나오는 야광 눈빛 자꾸만 자꾸만 감기는 곳/그곳의 그림자들과 다 이별하면/이곳의 내 몸무게와도 다 이별하겠네”(「토성의 수면제」)에서 화자는 꿈이거나 환상 속에서 이 수많은 그림자들과 이별하지 못하면 현실에서도 자신의 몸과 이별할 수 없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 시에서 해탈은 이별이고 이별은 불통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고 했을 때 새와 새가, 혹은 새와 영혼이 해탈할 수 없고 이별할 수 없다면 결국 이 둘은 서로 소통의 관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4. 처마 아래 좀비 내려서
좀비 내리는 날
다른 세상이 오는 날
내 마음이 죽었으므로
앞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과
고양이 울음과
톱 바이올린의 울음소리를
마음 대신 간직하기로 한다
(파란 하늘과 환한 꽃나무 아래
깎지 낀 두 손 같은
끈적거리는 뇌를 가진 적도 있었지만)
좀비 자욱히 내리는 날
좀비는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닌다
그리하여 나는 다리를 질질 끌고 나간다
그러나 나는 밤의 칠판에 추적추적 편지를 쓰는 선생
(선생은 머물고 학생은 떠난다)
나는 아마 달력 위에 영원히 빗금을 그으며 내릴 것만 같아
젖은 행주 같은 머리칼로 칠판을 지운다 무서워서 또 쓴다
어둠 속에 가만히 숨어 있겠다고 약속해줄게
어둠 속에 이빨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줄게
그렇지만 죽음을 전파하러 무덤에서 일어납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지만 제발 안아주세요
추적추적 처마 아래 좀비 내려서
나는 물속에서 뭉개지는 흐린 안경을 쓰고
대학본부의 중앙계단 아래서 피 흐르는 것들의 소리를 듣는다
좀비는 눈알이 빨개져도 괜찮아 그리하여 눈알이 빨개진다
좀비는 깡통을 걷어차도 괜찮아 그리하여 깡통을 걷어찬다
그리하여 밥을 안먹어도 괜찮아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아
젖어도 괜찮아 구겨져도 괜찮아 하염없이 축축한 편지를 쓴다
좀비 자욱히 내리고 또 내려 무덤에 손톱만한 창들이 꽂히는 날
살아 있는 척 하는 거 쉬워, 그리하여 괜찮아
내 그림자를 뜯어먹고 배불러도 괜찮아
사방에 내린다
- 「좀비 레인」 전문
시체나 귀신, 유령 등과 같은 죽음의 존재들이 김혜순의 시에 등장하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화자의 몸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물들과 소통하고 난 뒤에 죽은 영혼들도 그녀의 주변을 맴돌면서 말을 걸기도 하고 꿈이나 환상 속에 다녀가기도 한다. 그때마다 화자는 그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유와 왜 그들에게 마음이 쏠리는지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폭력을 당하거나 외부적 요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 존재들, 정신적인 상처를 받은 존재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화자 역시 과거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그것이 무의식에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있다. “나는 나의 그림자 속에 심겨진 한 그루 나무/어딜 가든 내 그림자의 영양분을 받고/내 몸 위로 뻗쳐올라간 줄기들이/내 손아귀를 가득 움켜쥐고 있다/내 두개골을 가득 감싸고 있다/나의 붉은 피는 그 길로만 흐른다”(「나는 나의 그림자 속에 심겨진 한 그루 나무」)에서 화자는 무의식의 저편에 억압되거나 상처받은 그림자로부터 강력하게 영향을 받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림자가 자신의 몸을 지배하고 생각을 지배하는 근원이라는 것을 일찍이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리고 “잘 자라 검은 이파리들아/내 비명으로 자라는 내 검은 물결, 그림자들아”(「칼의 입술」)에서 시인의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나고 있다. 비록 빛의 영역 너머 어둡고 음습한 곳에 존재하지만 그림자 역시 화자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비도 오지 않는 점등의 시간/환한 유리 열매들 매단 빌딩 숲속에 비나무 한 그루 서 있었는데/젖은 그림자 떨어지지 않아/눈물 끌어올린 비나무 한 그루 오도 가도 못 하는데/폭 꼬꾸라질 듯 쳐들어온 비나무 한 그루/내 몸 속에서 떠나지 않았는데”(「비나무 한 그루」)에서 비나무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젖은 그림자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이 시에서도 “살아 있는 척 하는 거 쉬워, 그리하여 괜찮아/내 그림자를 뜯어먹고 배불러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주체가 그림자임을 알 수가 있다.
김혜순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죽음의 존재들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귀신이다. “수도꼭지귀신 화분관음죽귀신 가스불푸른머리귀신 냉장고얼음귀신 이름없는귀신이름있는귀신 우리엄마날낳은날귀신 나엄마된날귀신 나할머니되었던먼옛날귀신 귀신들의 한숨이 낮잠 든 나를 갉아먹어”(「노래주스」)에서 다양한 귀신들이 나타나고 있다. 귀신과 혼령들은 화자와 무관한 존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에는 화자의 혼령이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그것은 자신의 그림자에서 죽음의 기운을 느낀 화자가 이를 표면적으로 끌어내어 소통하고 그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한 것이다. “무당이 구천을 헤매는 내 혼령을 가위로 오려내어 소지한다/(멀리멀리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나는 꿈속에서도 끙끙거린다”(「숟가락」)에서도 화자의 혼령이 꿈속에 등장하여 스스로도 힘들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것이 시체인데 “방에 시체가 있다/내가 누군가를 죽였다/시체를 두고 나 여기 술 마시러 왔다(…)두렵다/그럼에도 지금 이 자리/웃고 떠드는 나를 견딜 수 없다/아무래도 불꽃 머리칼 다시 길러야겠다/아무래도 나는 나를 다시 죽이러 가야겠다”(「lady phantom」)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유령이다. “시간공장 제조 망원경이나 현미경 착용법 유체이탈법/잊혀진 영혼이 되거나 메아리가 돌아오지 않아도 서러워하지 않는 법/불을 확 질러버렸으면 하고 생각만 하는 법”(「유령학교」)을 배우는 것이 유령이다. 네 번째로 자주 나타나는 것은 전염병자이고 “겨드랑이에서 열은 꽃처럼 피고/두 손목에서 맥박이 천둥처럼 울릴 때(…)문득 문이 열리고/내가 떠난 침상 위로/두 발을 올려놓고/산소마스크를 쓰며/앓기 시작하는/다음 세대여, 전염병자들이여”(「전염병자들아 2」)에서 화자는 그들을 당당히 호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주 가끔씩만 나타나는 것이 마녀, 그리고 미라이다. “눈을 감고 있을까/머리는 으깨졌을 거야 아마/골반도 으깨졌겠지/웬만큼 높은 곳이어야지/그들이 나를 또 쓸어 담겠지/담아 들고 가서 쾅 처넣을 거야/그럴 거야”(「마녀 승천」)와 “나는 죽어서도 늙는다/나는 죽어서도 얼굴이 탄다/만약 한 사람의 일생을 지구 한바퀴 도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면/나는 지금 사하라에 있다”(「미라」)에서 그들이 육체적으로 황폐해진 상태임을 알게 된다. 이 죽음의 존재들은 화자를 위협하거나 두려움을 갖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처받고 허물어지고 깨지고 때로 웃기기까지 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화자는 그들이 그림자에 속한 존재들이며 이생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야할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다. “내 몸이 지상에서 잠깐씩 빌려 쓰는 부동산/내 그림자 오천 장이 배달 온다”(「그림자 청소부」).
결국 이 시에서 화자가 좀비와 죽은 존재들을 현실 속으로 불러내는 까닭은 그들과 싸움을 하거나 쫓아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받은 상처들을 위로하고 억울한 것을 들어주면서 소통을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5. 소녀를 죽이고 내가 해탈에 이르는 것
눈을 감지 않아도 속눈썹은
내 얼굴에 글씨를 쓴다
(하지만 나는 속눈썹이 없다)
어느 땐 정수리의 몇 가닥 머리카락을 일으켜 허공에 글씨를 쓰며
이 시간을 견딘다
(하지만 나는 머리를 밀었다)
인간은 얼마만큼 침묵을 견딜 수 있나
하지만 나는 골반 위의 괴물이
치고 있는 타이프라이터 소리를 듣고 있다
인간은 시 안에서 얼마 동안 견딜 수 있나
새는 나를 데리고 높이 떠올랐다가
저 혼자 가버린다
나는 시를 못 견디듯
하늘도 못 견딘다
자아(自我)라는 이름의 뚱뚱한 소녀를 생각한다
그녀를 오늘 밤 굶겨 죽여야 한다
그 소녀를 죽이고 내가 해탈에 이르는 것은
과거보다 미래를 먼저 죽이는 짓인가 아닌가
하지만 누가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내 가슴에 달린 와이퍼를 부러뜨리나
나는 아까부터 진동으로 울고 있는
뼈 주머니속
빨간 전화기의 수화기를 든다
그 소녀다
- 「Korean Zen」 전문
원래 “Korean Zen”은 무아적정의 경지에 도달하는 정신집중의 수행방법을 의미한다. 화자는 몸과 영혼을 분리시키거나 환상을 보면서 번민으로부터 해탈하기 위한 수행을 하고 있다. “침묵”을 견디거나 “타이프라이터 소리”를 들으면서 “시”와 “하늘”을 견디고 있다. 여기에서 화자가 수행의 대상으로 꼽은 가장 중요한 대상은 바로 “소녀”인데 김혜순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서 가장 정체가 모호한 존재가 이 “소녀”이다. 소녀는 “지나가던” 행인 중 한 명으로 등장하여 화자에게 “침을 탁 뱉”거나(「돼지라서 괜찮아」) “난간에서 떨어”지거나(「저녁의 방화」) “성냥팔이 소녀”를 연상시키는 배경 속에서 “소녀를 임신시키러 다가오는 나이 든 아저씨”(「석류알 성냥알」)에게 많이 시달리고, “뚱뚱한 소녀”를 닮은 “코끼리 공주”가 “내가 기르던 여자가 저기 떠내려 간다고”(「공주여 공주여 잠자는 코끼리 공주여」) 말하기도 하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이다. 그래서 주의할 점은 이들 가운데 한 명만 화자의 분신(자아)일 수도 있고, 이들 모두가 평범한 등장인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왜 이 소녀를 “오늘 밤 굶겨 죽여야 한다”고 하고 “소녀를 죽이”는 것이 “내가 해탈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시인이 만든 등장인물이 화자와 정서적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고 감정의 괴리를 느끼기 때문이다. “만약 내 인생의 실 감기를/멈추게만 할 수 있다면/더 이상 감기지 않게만 할 수 있다면/넘어진 나를 다시 일으키지 않아도 된다면/부끄러워 우는 날 보고/깔깔 웃는 저 여학생의 희디흰/이빨도 벌려진 채/멈춰서게 되겠지”(「깔깔 웃는 저 여학생을 바라보며」)에서 고통스러워 울고 있는 화자를 보면서 크게 웃고 있는 소녀를 화자는 제거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 그러나 소녀가 이를 눈치라도 챘는지 “뼈 주머니속”에서 “빨간 전화기”가 울린다. 그 이후에 소녀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다른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제, 마셔버린 물처럼 그렇게/너를 지워버릴래/내 몸에서 솟아오른 붉은 저녁의/아픈 바위에 걸터앉아 혼자서/혼자서만 입술에 붙은 그 노래를 부를래/모든 기억이 사라져도 세상에서/제일 가벼운 노래만은 남는 법/불러도 불러도 핏줄기에 땀방울이 맺히도록/그렇게 슬프거들랑/그만, 이 붉은 벼랑에서 뛰어내릴래”(「저 붉은 구름」)에서 소녀와 화자는 이별의 수순을 밟게 된다.
해탈에 대한 화자의 의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견디기가 힘들고 사념이 끊임없이 일어나서 마치 면벽수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러다가 문득 화자는 해탈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어째서 나한테는 떠난 사람의 그림자만 남았을까요(…)벽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벽이 열리나요?(…)벽 너머에서 나를 꿰뚫고 계시나요?/나의 자백을 듣고 계시나요?”(「돼지라서 괜찮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자가 시를 견딜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뜻밖이다. “비참하게 들러붙다 팽개쳐지는 것/줄기에선 진액이 간질 환자의 침처럼 쏟아지고/이파리들은 백 사람의 가래를 받은/머리칼처럼 구둣발 아래 처박힌다/바다 속에서 나왔다가 썰물 때를 놓친”(「시 같은 거」)에서 웃음거리가 된 자신의 시에 대한 부끄러움과 연민을 느끼고 있다. “배고픈 죽음이/또다시 뒷발 들고/우뚝 서서 포효하고 있어요/내 입까지 차올라와요//머리가 뒤로 젖혀지고/세상이 빙글빙글 돌다/검은 머리채를 파헤치고/정수리 한가운데/한꺼번에 침몰해요”(「내 詩를 드세요」)에서 자신의 시가 죽음의 망상이 만들어낸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여기에서 화자는 자신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비웃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한 “소녀”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을 눈치 챈 소녀가 재빨리 전화를 걸어옴으로써 둘 사이에는 화해의 가능성이 생기고 소통의 길이 열리게 된다.
6. 우리는 각자 떨어지는 길밖엔 없단다
1번은 식초
2번은 꽁초
3번은 산초
잠시 망루 위로 날아올랐다가 내려앉는 순서
4번이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문자를 찍고 있다
5번이 화성으로 떠나는 우주선 예약을 하고 싶습니다 징징거린다
6번이 운다 때리지도 맞지도 않았는데 막간에 운다
7번이 유산을 해야겠다고 새벽에 전화를 걸었다
8번이 여자와 헤어졌다며 미쳐갔다 밥에다 시를 썼다
9번이 남친 생일이라고 돈을 꿔 달라며 징징거렸다
10번 자기 뱃속에 아버지가 앉아 있다고 총을 사왔다
11번 가슴을 에는 손길이라는 게 정말 있어요, 선생님! 선생은 먼저 죽을 사람이라는 뜻이다
12번 뱀의 뱃속에 12번 쥐가 앉아 있다 내가 봤다
13번 지가 누군지 알고 싶다고 운다 이런 건 너무 상투적이라 옮기기도 싫다 그러나 매번 나타난다
식초 꽁초 산초 말린 고추 빻은 후추 다진 마늘 다진 파 다진 생강
공포는 식초 냄새 두통은 꽁초 냄새
불쌍해라 끈질긴 폭행에 시달린 불안은 산초 냄새
생리통은 다진 파뿌리 냄새 그리고 기타 둥둥 기타 둥둥 춤추는 냄새
전원 출석했는데 아직 선생은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선생은 선생이 싫다
이제 날개를 펴고 발끝으로 서야 할 시간이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얼굴을 다친 백조 무용수들처럼 의자에 묶여 있다
얼굴을 다치면 장애 등급을 받을 수 있나요?
스텝을 다 밟고 여기서 나가면 날아오르게 되나요?
불 탄 옥상에선 불의 날개!
강철 망루에선 강철 날개!
우리는 각자 떨어지는 길밖엔 없단다
내가 칠판으로 만든 옷을 입고 캑캑거리고 있다
지금은 언제나 지금이 아닌 우리는 무서운 이야기 속에 있단다
이 방의 우리는 모두 다 죽음에 너무 어울리는 얼굴을 갖고 있단다
14번의 손에는 죽을 때 쥐었던 핏자국이 묻어 있다
15번의 얼굴은 냉동실 서랍이 열릴 때 보았던 그 표정이 얹혀 있다
16번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피어오르다 꺼져가던 그 표정을 하고 있다
17번은 계속 결석하고 있다 바지 속에 몽둥이를 감춘 아버지가 교문 앞에 서 있다
18번이 알이 깨질 때 묻은 껍질을 아직도 이마에 붙이고 있다
19번이 전생의 짐승을 다 떼어내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다
20번이 대망막을 뒤집어 쓴 채 태반이 흘리는 피를 핥고 있다 아직 태어나기 전이다
정원은 15명인데 다시 인원을 점검해봐야겠다
- 「댄싱 클래스」 전문
이 시는 꿈을 향해 비상하려는 청춘들의 고민에 대한 것으로 극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 지문과 대사를 통해서 등장인물의 성격과 특징이 드러나고 있는데 1번에서 13번 학생까지는 동작과 행동으로 그들의 심리적인 상태를 드러내고, 14번에서 20번 학생은 표정으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들려주고 있다. 특이한 점은 등장인물이 살아있는 자들만이 아니라 죽은 자와 전생을 살았던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까지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초” “꽁초” “산초”를 출석부의 “1번” “2번” “3번”에 지정해 놓았는데 이들은 화자의 “공포”와 “두통”, “불안”이라는 감정들이다. 이 출석부의 순번 배치는 화자가 자신의 심리적, 정신적 상태가 위급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청춘들은 각자의 고민거리를 안고 “댄싱 클래스”에 모여든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미래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알려주고 “불의 날개” 혹은 “강철 날개”를 가지고 “각자 떨어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스승과 제자들의 관계가 특이한데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무조건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감정적으로 밀착되지 못하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이것은 자신을 “먼저 죽을 사람”이라고 하거나 “선생이 싫다”고 표현하는 것에서 드러나고 있다. 스승은 제자들이 현실의 “무서운 이야기”에 속해 있으면서 “죽음에 너무 어울리는 얼굴을 갖고 있”는 점이 염려스럽다. 이는 평소에 죽음의 환영을 느끼며 살고 있는 화자의 입장에선 너무 불안한 것이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서 더 두렵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화자는 춤을 통해 제자들의 절망과 고통이 조금이라도 승화되기를 원한다. “슬픔이란 말할 수는 없어도 몸에서 흘러내리는 것/가슴과 가슴 사이엔 물 넘치는 지구라도/품어져 있는 걸까 시큼한 본드라도 붙여놓은 걸까/춤 냄새 한번 고약했었지/지독한 슬픔을 견디는 건 저 거친 들숨 날숨 따라서 찍는 발자국뿐/다리를 얽으며 쓰러질 듯 다시 돌아오는 질긴 싱커페이션./그대는 나, 나는 그대라고 노래하지만 정녕 너는 내가 아니라는/다만 허공에 주형을 뜨듯 찍어보는 육체의 얽힌 형식이 있을 뿐/통곡이 올라오는 몸은 앞뒤로 흔들어줘야 하는 법”(「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신의 존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춤이고 나의 고통을 내가 어루만지는 행위라고 본다. 그러므로 청춘들의 춤은 험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다시 그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 위해 “날개를 펴고 발끝으로 서”는 예행연습 같은 것이다. 이러한 춤은 세상과 청춘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아름다운 몸짓인 것이다.
이즈음에서 김혜순 시인이 스스로의 고통을 위로하고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모색을 해왔는지 궁금해진다. “여기는 분명히 엄마의 잠 속인가 봐/출렁거리며 주름지는 파도/바다에서 바다를 낳으려고 몸 풀고 있는 파도/내 몸을 밀물처럼 낳았다가 썰물처럼 끌어안고/다시 또 밀물처럼 끌어안는 엄마의 잠 속/아침이면 햇님 떠올라 붉은 양수로 가득 감쌀 내 몸/한밤 내 어루만지는 엄마와 엄마와 엄마들의 물결/그 위에 내 푹신한 베개를 걸쳐놓고 드러누우면”(「꿈속에 꿈속에 꿈속에」)에서 화자와 이어진 엄마와 할머니, 증조할머니 등의 존재가 화자를 포근하고 편안하게 한다. “땅속에서 싱싱한 영양을 퍼올려/굵은 가지들 작은 줄기들 속으로 젖물을 퍼붓는/여자들 가득 품고 서 있는 저 나무/아래 누워 그 여자들 가랑이 만지고 싶다/짓이겨진 초록 비린내 후욱 풍긴다”(「환한 걸레」)에서 대지에 뿌리박은 나무를 통해 여성의 풍요로운 생명력을 만날 때 화자는 위안을 얻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시에서 “웃음이 그쳐지지 않는다./웃을 때마다/옷이 사라지고/지붕이 사라진다/여덟 활개가 늘어난다./시린 햇빛이/웃음을 참지 못하는/당신과 나를/흔들기 시작한다./사철나무 잎사귀들을 온 몸에 가득 달고/당신과 내가 흔들린다.”(「사랑에 관하여」)에서 당신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사랑으로 진정한 삶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
7. 겨우 지상에서 10센티 떠오른 채
간혹 천사는 갇힌다
미쳐서
나는 남의 알을 품었었다고 쓴다
사전의 글자들 위에 까맣게 쓴다
새장에 앉아 쓴다
손을 잡아보면 알아요
당신은 새가 아니군요
당신은 더러운 손을 내미는군요
간수가 오면 나는 내 혀를 두꺼운 책 속에 감추어 둔다
어느 아침은 높이 날았고
어느 아침은 깊이 떨어졌다고
쓴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게요 라고
쓴다
동터올 때 부리로 쓴다
가다가 서고
가다가 울고
나는 내가 만든 세상에서는 멀리 갈 수 있답니다
노래도 아니고
메아리도 아니고
아주 멀지만 자유만 있는 장소에서
나는 그곳을 나는 새입니다
겨우 지상에서 10센티 떠오른 채
새장엔 미친 새
어느 밤하늘 날아가는데
너희의 화살이 심장을 꿰뚫어
푸르르 푸르르 불안 장애로 새가 된 새
어느새
새가 된 새
그 칼 울음소리 미친 게 분명한 새
그 새의 신발끈은 풀어져 땅에 끌리고
그 새의 머리끈은 풀어져 측백나무를 칭칭 감고
하지만 나는 나는 것이 좋아
먼 길 떠나는 것이 좋아
모국어 사전에 혀가 물린 천사는
입속이 뜨거울 정도로 상냥하답니다 라고
쓴다
- 「10센티」 전문
일반적으로 “천사”는 하늘에 속한 존재이고 “새”는 하늘과 지상에 모두 속한 존재이며, “나”는 지상에 속한 존재이다. 이들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자유”인데 어느 한 존재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아이러니를 유발한다. 그러나 “새”는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는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새장”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 즉 “아주 멀지만 자유만 있는 장소”가 “겨우 지상에서 10센티 떠오른 채” 매달려있다는 점이 또한 아이러닉하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동일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천사는 갇”히고 “새”는 “새장엔 미”쳐 있고 “나”는 “새장에 앉아” 있다면 이들은 모두 같은 존재일 가능성이 있다. “이 몸의 스크린만 찢고 나면/내 몸에서 홀로그램이 터져나온다/그리고 나는 너에게 갈 수 있다/내가 직접 가지 않아도/나는 여기 있고, 또 거기 있을 수 있다”(「타락천사」)에서도 존재가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김혜순 시인의 시에서 “천사”는 지상에 내려왔다가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인간 세상에 예속되는 처지가 되어버린다. “바람 속에서 천사들이 붐빈다. 무릎이 깨진 천사, 싸우는 천사, 엉겨 붙은 천사, 소리 지르는 천사, 따귀를 갈기는 천사, 오토바이 천사, 가방을 낚아채는 천사, 전염병 창궐 천사, 회오리바람 분다(「메리 크리스마스」)에서 천사들은 본래의 성스러운 이미지와 달리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시에서 “천사들이 발가벗고 구름 속에서 거품 목욕을 했어(…)천사들을 녹여서 빵에다 발라 먹으면 제일 맛있다고 오늘 아침 광고에 나왔어//목욕을 끝낸 천사가 길게 5분짜리 비명을 지르곤 돌아갔어”(「성탄절 아침의 트럼펫」)에서도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린 물질문명과 소비 위주의 광고에 깜짝 놀라는 천사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다음으로 천상과 지상에 모두 속한 존재인 “새”에게 있어 날개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혜순 시인의 시에서 새는 화자의 몸속에 사는 자아를 의미하는데 이때 날개는 자아의 영혼을 의미한다. “어둠 속으로만 날으는 새(…)빛의 반죽인 알을 낳지 않고/그림자로 새끼를 빚으며/소리란 소리는 모두 빨아들이는 새./그 영혼은 그 검은 날개와 같고”(「相思」)에서도 새의 날개가 새의 영혼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지상에 발이 묶인 “인간”에게 있어 날개는 어떤 의미일까. “모두 불었어 정말이야 너만/남았어//그래도 나는 연기를 피워 본다/실내 가득히 냄새를 피워 본다/음험한 구름기둥 불기둥을/사라지며 부서지는 지난날의/날개 그림자를 가슴에 품어 보려/연기를 피워 본다”(「연기의 알리바이」)에서 날개는 시인이 지켜내고자 애쓰는 어떤 진실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새장이 놓여있는 위치가 “지상에서 10센티 떠오른” 곳이라는 것은 “천사”와 “새”와 “나”에게 비극적인 상황이면서 긍정적인 상황이 된다. 왜냐하면 새장에 미친 “천사”는 새장이 좋아서 스스로 갇힌 것인데 비공식적으로는 상냥하여 소통이 가능하다. 그리고 불안장애가 있는 “새”는 인간들에게 화살을 맞아서 피신처로 새장을 선택했지만 칼 울음소리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 “나”는 간수가 올 때만 혀를 숨기는데 실은 글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세 존재는 새장 안에서는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한 상태이다. 만약 그들이 소통의 화제를 선택한다면 아마도 “자유”에 대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8. 세상을 허리에 묶어서 끌고 가는 춤
당신의 인생을 5분 안에 몸으로 표현해 보세요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춤이란 그런 것
내 인생의 테이프를 전속력으로 돌리자
정신박약아의 파안 미소와 눈물어린 정적이 남았습니다
눈 깜빡하는 순간에 나를 깜빡 잊어버리고
눈 깜빡하는 순간에 당신을 깜빡 잊어버리고
얼음거실이 천천히 녹고 있어요
다 녹기 전에 당신의 인생을
5분으로 줄여보세요
그 춤을 다 추면 집은 녹고요
그리고 당신은 죽어요
문은 열려 있는데 밖은 환한데
바람 가고 가을 가고 눈보라!
나무들이 머리에 인 보따리 떨구고 이사를 가는데
이 세상에 ‘잊었다’는 말이 있다는 걸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잊고 나서 어떻게 잊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내가 이 세상을 허리에 묶어서 끌고 가는 춤을 추는 중이에요
당신의 인생을 비커에 넣고 흔들어 보세요
숟가락을 삼켰다 뱉었다
배를 항구에 붙였다 뗐다
손가락을 얽었다 풀었다
이건 스토리가 아니에요
이건 마비에요
이건 응결 중인 꿈이에요
비이커엔 빨간 물이 찰랑거리네요
흘러내리는 화산도 솟아오르는 피도 붉은 색
살아 있다면 저런 색이죠
빨강을 처음 본 사람의 표정을 지어 보세요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찾아 헤매는 여자에게
눕자고 눕자고 눕자고
달라고 달라고 달라고
무엇이 갖고 싶은 줄도 모르면서
있잖아요! 있잖아요! 있잖아요!
손을 힘껏 뻗치는 여자에게
핵발전소 터지고 30년 후 태어난 아이들의 수용소에 온 것 같아요
눈뜨고는 못 볼 자위에 빠진 헛 손짓 헛 발짓의 무대
혀가 껌처럼 이빨에 눌러 붙은 것처럼
땅에 찰싹 눌러 붙어서는
당신의 인생을 몇 개의 동작으로 분류해 보세요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허공을 움켜잡고 매달려 있는 박쥐처럼
명령을 내리시는 선생님
턱이 가슴에 붙들린 사람처럼
박쥐의 작은 몸에 들어간 그녀가
갈 곳 잃은 마지막 눈빛으로 그녀가
개처럼 묶여서 대문처럼 삐걱거리는 그녀가
싱싱한 장미가 주먹 속에서 숨을 거두는 것처럼
태양이 그만 놓아버린 행성의 꼬리처럼
춤!
몸에 들어 있는 새를 꺼내 보세요
새에게 원금을 갚으세요 자꾸 갚으세요
몸속의 물고기를 꺼내 보세요
물고기에게 원금을 갚으세요 자꾸 갚으세요
우리의 멀고 먼 조상들께 빚을 갚아보세요 자꾸 갚아 보세요
땅에 떨어진 새처럼
결국 땅속에 묻히는 새처럼
그 발걸음으로 쏟아지는 눈발들의 레이스를 짜 보세요
두 팔로 공중에 흰 박쥐의 집을 지어보세요
저런 저런 당신의 지붕이 쏟아지네요
인생을 5분 안에 몸으로 표현해 보세요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바다를 끄는 초승달처럼
당신의 심장이 끌어당기는 해변처럼
네 개의 달이 내 팔다리를 끌어가는데
정신병자들이 헤매는 정신의 그곳을 뒤쫓아 들어가는 것처럼
일어났다 누웠다 일어났다 누웠다
딱딱한 꿈들이 끄는 인력에 버둥거리면서
이 춤을 다 추면 얼음이 녹고요 그리고 당신은 죽어요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 「춤이란 춤」 전문
「댄싱 클래스」의 춤이 긍정적인 소통의 의지라면 여기에서는 비극적인 세계관이 펼쳐지는 춤이다. 극적인 상황 속에 놓인 화자는 자신의 인생을 “몸으로 표현”하고 “비커에 넣어서 흔들어”보거나 “빨강을 처음 본 사람의 표정을 지어”야 할 의무를 갖는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명령”이니까. 선생님은 “인생을/5분으로 줄여”보라고 권유하는데 이 시간은 “춤을 다 추”는 시간으로 “집”이 녹고 “얼음”이 녹는 시간이다. 화자는 자신의 춤이 끝나면 죽게 되는 시한부 인생을 강요받는다. 그러니까 이 “5분”이라는 시간은 현실의 시간이 아니라 “꿈” 속의 시간이고 이 모든 상황은 화자의 꿈 속 풍경이다. 이 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대상들과 사물들은 김혜순 시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것들이다. 즉 박쥐, 장미, 새, 물고기, 조상, 눈발, 죽음 등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등장한다. 이들 대상들과 사물들이 나오는 시를 살펴보면 “어둠 속에 뭉클뭉클 끓어오르며/소리내지 않고 내장을 먹어 들어와/곰팡이 하나 피우지 않고/온몸을 다 먹어 버리는 새.”(「相思」)에서 “새”가 나타나고 “나는 창문을 닫고/돌아누워/썩어가는 자들의 몸은 보지 않지/나만 몰래 알을 키우고/싱싱한 상치를 먹고/나만 몰래 송사리를 키우지”(「기쁨」)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화자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두 개의 무덤 아래/죽은 자들이 모여/망망대해를 펼치고 오므리는/달을 올리고 끌어당기는/여자의 깊은 몸 구중궁궐”(「어느 별의 지옥」)에서 죽은 자들과 여자의 연관성이 드러나고 “제삿밥 먹고 있는 망자들이 보이니/우르르 달려와서/피 된통 칠하고 또 한 번 죽어/넘어지는 게 보이니/큰일 났다 된통 났다”(「제삿밥 먹으러 온 망자들이 보이니」)에서 죽은 자들을 보게 된 화자의 고충이 표현된다. 그리고 “우리 祖上들의 서러운 노래 소리는/한 가닥 희디흰 실처럼 풀려서/노래하면 풀어지던 내 가슴/한 오리와 즐거이 섞였다.”(「봉선화」)에서 화자가 마음속으로 연대하고 있는 존재들이 여성임을 알 수가 있다.
김혜순 시인의 시는 일상적 상황이 아닌 극적인 상황이 자주 제시되는데 이것은 그녀의 시가 현실보다 꿈과 무의식, 환상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이를 다른 시에서 확인해보면 “나는 꿈을 꿉니다(…)아이인 나와 노인인 내가/어른인 내 얼굴을 공놀이하듯/던지고 되치는 광경”(「어른의 꿈」)과 “돌아와 돌아와/외치던 내 아가리 찢어지고/목구멍이 뻥 뚫리고/이윽고 누군가/터진 내 목구멍 속으로/호수를 기울여/ 한없이/동이물을 들어! 붓고!”(「어느 날의 꿈」)에서 극적인 상황이 제시되면서 비일상적인 일들이 빠른 흐름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장미가 길에서 소리를 지른다/나는 이제 장미 때문에 밥도 못 먹는다/사람도 못 만난다 선 채로 꿈을 꾼다” (「올해도 장미가」)에서도 주어진 상황이 꿈 속 풍경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시에서 냉혹하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화자가 세상의 희망을 포기할 수 없어서 아무도 구하려 하지 않는 “이 세상을 허리에 묶어서 끌고 가는” 중이다. 시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화자의 열정과 노력은 긍정적인 “춤”으로 표현되고 이 춤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시인의 다른 시 “딱딱한 꿈들이 끄는 인력에 버둥거리”기만 할 때에는 “밤이 낮을 끌고 간다(…)등뒤엔 언제나 검은 파이프를 문 밤(…)밤이 나를 끌고 간다//날마다 낮이 짧아진다/살아볼수록 낮이 짦아진다”(「밤이 낮을 끌고 간다」)에서 낮이 밤에게 끌려가고 화자도 밤에게 끌려가느라 어떤 것도 시도할 수 없지만 화자는 모든 상황의 열악함을 이겨내고 자신의 내부로부터 변화와 소통의 의지를 일으켜 세운다.
이번에 김혜순 시인이 보내온 근작시들은 그녀가 낸 열두 권의 시집에서 선보였던 시의 특징들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들이다. 서두에 밝혔던 것처럼 화자의 몸과 죽은 자들의 영혼이 함께 소통하고 공동체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온갖 죽음의 제물이 된 대상들과 죽은 자들에 대한 소통, 거기에서 나아가 소외와 편견, 폭력과 고통에 놓인 타자들과 더 긴밀하게 소통하길 바라게 되는 것 등이 김혜순 시인의 시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먼저 「레시피 동지」에서 몸의 근원인 아버지에 대한 부정과 돌아갈 수 없는 날들에 대한 연민으로 끓인 “팥죽”으로 아련한 소통을 나누고 있고, 두 번째 시 「고잉 고잉 곤」에서는 시대적 상황으로 독자와 소통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소통을 위해 도전하고 다시 기회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잠재적인 소통의 에너지를 느낄 수가 있다. 세 번째 시 「이별부터 먼저 시작했다」에서 새와 새가, 혹은 새와 영혼이 해탈할 수 없고 이별할 수 없다면 결국 이 둘은 서로 소통의 관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네 번째 시 「좀비 레인」에서 화자가 좀비와 죽은 존재들을 현실 속으로 불러내는 까닭은 그들과 싸우거나 쫓아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억울한 것을 들어주면서 소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섯 번째 시 「Korean Zen」에서 비웃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한 “소녀”의 행동이 못마땅하지만 소녀가 그것을 재빨리 눈치채고 화자에게 전화를 걸어옴으로써 둘 사이에 화해와 소통의 길이 열리게 된다. 여섯 번째 시 「댄싱 클래스」에서 청춘들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날개를 펴서 비상하는 것이고 이는 춤으로 표현된다. 춤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끝으로 서”는 예행연습 같은 것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아름다운 몸짓이다. 일곱 번째 시 「10센티」에서 새장에 미친 “천사”는 상냥하여 소통이 가능하고 불안장애가 있는 “새”도 화살을 맞아 새장을 선택했지만 울음소리로 자신을 표현할 줄 안다. 그리고 “나” 역시 간수가 올 때엔 혀를 숨기지만 글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 존재들은 새장 안에서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한 상태이다. 여덟 번째 시 「춤이란 춤」에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화자가 희망을 포기할 수 없어서 “이 세상을 허리에 묶어서 끌고 가는” 중이다. 이러한 화자의 열정과 노력은 긍정적인 “춤”으로 표현되고, 춤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김혜순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할 때 그로데스크한 이미지와 스토리, 빠른 전개를 이끄는 속도감, 극적인 요소 등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다양한 화자들이 내는 목소리 때문에 하나의 흐름이나 주제를 파악하기 어렵게 되면 시인이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오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녀의 시가 지나온 역사를 생각해보면 왜 그녀의 시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위장을 해야 했는지 알게 되고 그 이후부터 그녀의 시가 다르게 보인다. 사실 김혜순 시인은 몸속의 수많은 화자들과 소통하느라 외부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바깥세상과 타자들, 대상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러한 시인의 노력이 우리 시대의 부조리와 폭력성으로 인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존재들과 타자들에 대해 깊이 애도하는 시를 쓰게 했다. 원래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타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조금 늦은 시인이 앞으로 어떤 소통의 패러다임을 이끌어나갈지 다시 또 기대가 된다.
박현솔
제주 출생. 아주대 대학원 졸업(국문학 박사). 199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와 2001년 《현대시》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의 영토>, <해바라기 신화>, <번개와 벼락이 춤을 보았다>와 시론집 <한국 현대시의 극적 특성>이 있음. 2005년과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본지 <문학과 사람>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