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보시기에 소경과 귀머거리 뿐인 교회 교인들.
성경을 집에서 읽거나 교회에서 설교해 주는 지식만으로는 천만년이 지나가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그 알고 있는 지식(성경말씀)을 생활 속에 적용시켜 행하는 신앙인들에게만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일꾼이 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은 성경학자나 설교자들보다 일반 평신도, 곧 세상 속에서 깨달아 알고 있는 말씀을 순종해 지키며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여건이 주어졌습니다. 축구 실력은 교실에서 공을 어떤 자세로 어떻게 차야 한다하는 탁상 이론을 천만년 배우고 익히는 것보다 실제 운동장에서 상대팀(대적자)과 겨루어 보는 행동으로만 축구 실력이 익혀 집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인정받아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은, 성경학자나 선생(목사)들보다 실생활 속에서 성경말씀을 적용해 일하는 신앙인들에게 더욱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적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불신자들이나 그들과 다툼 없이 어깨동무하며 생활하는 타락한 교인들의 무리 속에 뛰어들어가 성경말씀을 실지 생활에 적용해 살아가는 믿음의 용사들에게만 하나님의 능력이 펼쳐집니다. 모든 운동 선수들에게는 실전경험보다 더 중요한 선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백전노장이라는 닉네임을 갖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사실상 실전 경험을 할 수 있는 상대도 없거니와 기회도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문만 벗어나면 적지(敵地)와 같은 불신세계의 사람들과 맞부딪혀 일하게 되니 엄청난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실전경험은 남여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쌓을 수 있으며, 또 국가급 대표선수(유명신학자)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세상에 유명한 학·박사들과 겨루어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마련해 두었습니다. 성경지식이 적으면 적은대로 불신자들과 만나 싸워 이기게 하시고, 성경지식이 많으면 많은대로 안티기독인(핍박자)들과 겨룰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아이면 아이대로, 어른이면 어른대로, 성경학자면 학자대로, 설교자면 설교자대로 교회 바깥만 나서기만 하면 다양한 형태의 대적자(핍박자)들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어느 아이가 교회 선생님으로부터 "얘들아! 어르신들이 조상님들의 차례상 앞에다 절하라고 하면, 너희들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결코 절해서는 안된다"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불신의 부모와 친인척들이 제사상 앞에서 아이에게 절하라고 호통을 칩니다. 이런 때에 그 아이는 "안되요! 그건 우상에게 절하는 짓이에요, 이런 짓은 하나님이 하지 말랬어요."라고 하며 완강히 거부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아이가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실지 생활 속에서 적용해 지키는 일입니다. 이런 때에 그 아이는 자기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게 되며 또 친인척들로부터 별종 취급당하여 미움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런 매질과 모욕 속에서 예수님처럼 그들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합니다.
이런 일로 말미암아 잠시 그 집안이 살벌한 전쟁터로 변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아이의 억울한 희생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집안의 죄악을 사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믿음이 삯이 터 자라나도록 축복해 주시며 또 모든 재앙으로부터도 그 집을 은밀히 구원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런 일로 그 아이의 믿음은 다윗처럼 승진(승급, 승단)할 수 있게 되며, 하나님은 또 그 아이의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에게 매질한 것이 하나님께 주먹질한 가슴아픈 일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여 하나님께 참회할 수 있는 믿음까지도 주십니다. 이래저래 모든 방면으로 그 집안과 식구들에게 하나님께 복받을 일들만 쌓게 합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아이들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실제생활에 적용시키지 않고, 다만 성경시험을 치를 때에 정답을 기록할 지식으로만 기억해 둡니다. 그리고는 교회 바깥, 곧 사회생활 속에서는 도무지 그 말씀대로 생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대로 행하게 되면 부닥칠 환난과 핍박과 왕따를 두려워하여,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교회 바깥에서는 적용하지 않게 되어 불신자들로부터는 칭찬듣고 또 교회에서 성경시험을 치를 때에 정답으로 기재할 한낱 지식으로만 기억해 둡니다. 그러나 들은 말씀을 실제 생활에 적용치 않아 하나님으로부터 자신과 집안 식구들에게 불시에 불어닥치는 흉악한 재앙으로부터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어느 믿음의 어머니가 다세대 주택에서 전기 요금을 분할하여 내는 종이 쪽지에 예상 외로 자기 집 전기요금이 많이 책정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순간 그 요금을 책정한 이웃 집에 달려가 따져보려 하였으나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성경말씀이 생각나서 즉각 그 말씀을 이 사건에 대입시켜 "그래, 우리가 조금 더 많이 내는 것이 복이 되는 거야, 그깐 일로 이웃과 시비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덕이 되질 않아" 하면서 그 손해를 복받은 값으로 환산 처리하고 이웃 사람과 여전히 친구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실생활에 적용해 복을 받으라는 말씀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받을 말씀들을 그리스도인들이 생활 속에서 순종해 지키지 않고, 다만 교회 안에서 직분(직책)을 얻기 위한 지식적 자료나 무슨 성경퀴즈 대회 같은 때에 정답을 알아 맞추어 상급이나 받기 위해 기억해 두고 있으니, 이보다 더 앞날을 내다 못보는 소경들과 귀머거리들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이사야42:19) 하심 같이, 대부분의 교회에는 이런 소경들과 귀머리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실세자 예수'에는 소경이 눈을 뜰 수 있고 귀머거리가 들을 수 있는 능력들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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