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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은 이후락과 그 심복 이상열의 작품이다 국유본 일기
2013/10/08 23:13
http://blog.naver.com/neocode/50180868409
육영수 여사 와 박정희 대통령 암살 모두 이후락과 이상열의 작품입니다. 이들을 부관참수해야 합니다.
김석기를 등용한 이씨 이정현 수석도 잘라야 됩니다. 이후락 이상열의 징조가 보이는 인물입니다.
1972.10 유신선포
1972.11 이후락 평양방문
1973.3 윤필용 사건
1973.4 이상열의 도움으로 김형욱 대만으로 탈출
1973 8.8 김대중 납치극 모두 이상열의 계획입니다.
1973.12 이후락 퇴임
1974.9 김재규 중정차장 퇴임
이후락의 심복은 이상열과 사위인 정화섭이 대표적인데요. 신직수 중정부장이 들어서자마자 이들을 내치고 이상열은 사우디대사로 쫓겨났습니다. 이후락의 외동딸 사위인 정화섭은 해외공작담당국장인데요. 미국공작업무는 사위에 특별히 맡겼습니다. 이후락이 얼마나 미국빽을 중시했는지 알수있는 대목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기 얼마전에 미국중정의 스위스계좌를 관리하던 정화섭이 발각되어 쫓겨나는데요. 이후락이 김형욱의 탈출을 도와준 이상열을 이용해 박정희 정권을 가지고 놀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미국에 파견된 중정요원들의 자금줄을 쥐고 퇴임후에도 미국중정을 가지고 놀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10.26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김형욱 암살과 부마사태는 각각 이상열과 현홍주가 맡았습니다. 현홍주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김재규의 눈치를 보랴 전두환 노태우에게 중정의 분위기를 알려주랴 분주하게 움직였는데요. 결과적으론 부마사태를 계기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정체제를 물갈이하도록 비젼을 제시해 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이때 공화당의원으로 있던 이후락은 김치열에게 국정전반을 쇄신하는 비젼을 박정희에게 보고토록하고 차기 중정부장으로 낙점을 받게 만듭니다. 이후락은 야당인사들에게 박정희가 김치열을 독대했다고 말하며 차기 중정부장은 김치열이라고 소문을 내고 다녔습니다. 물론 10월 22일 김재규도 이런 소문을 듣고 격분하고 있었지요. 박정희를 죽이고 쿠데타를 실행하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고 판단하고 10.26을 일으킨 것입니다.
같은 고향출신이라고 들이대는 것 하나로 권력의 중심부까지 진출한 김재규인데요. 잊혀질뻔 했던 김재규가 갑자기 중정부장에 발탁된 것은 순전히 미국에 가서 박정희를 괴롭히던 김형욱 때문이었습니다. 김형욱과 김재규를 동시에 연결하는 인물은 이상열인데요. 김형욱의 대만탈출을 도와준것이 이상열이고 김재규의 부관출신도 이상열입니다. 김형욱이 미국에서 깽판좀 쳐주고 김재규가 들이대서 중정부장이 된 것이지요. 그러다가 미국이 박정희를 죽여서라도 끌어내리라고 명령하자 김형국 암살과 부마사태를 동시에 일으키며 김재규 스스로 박정희를 죽이도록 한 것입니다.
당시 미국이 박정희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이유는 1979년초 이란 팔레비왕이 쿠데타로 정권이 바뀐일 때문입니다. 이와동시에 2차 석유파동도 있었지요. 국제사회의 권력투쟁이 한창일때 였습니다. 이란 팔레비정권 붕괴와 석유파동으로 빌더버그의 저항이 엄청났을 텐데요. 영미제국은 빌더버그를 위해 핵개발을 시도한 파키스탄 부토총리도 1월에 사형시켰습니다. 핵개발을 중단한 박정희는 죽지않을 수도 있었는데요. 카터대통령에 굴종안하는 자세가 명을 재촉했습니다. 게다가 국제적인 영향력이 급추락한 빌더버그는 당시 모사드와 인연을 맺고 있었던 차지철을 동원해 무너진 위세를 회복하려했고 이에 미국이 평소 말안듣고 빌더버그의 재기의욕을 꺾기위해 박정희,차지철 암살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상열은 김형욱을 대만으로 탈출하게끔 전화를 찔러준 생명의 은인인데요. 이후락밑에서 중정기획실장을 맡은 브레인중에 브레인입니다. 이후락의 평양방문도 이상열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현홍주가 김재규에게 부름은 받은 것은 1978년인데요. 부마사태 담당자 3명중 하나가 현홍주였고 박정희에게 부마사태가 국민들의 저항이라고 보고서를 올렸다고 합니다. 물론 차지철이 김영삼을 배후로 지목하자 박정희는 부마사태가 김영삼의 소행이라고 간파했으나 이상열과 이후락이 김재규를 이용해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이상열이 김형욱을 죽일때 작전명이 오작교 작전인데요. 원래는 1967년 베트남전에서 까마귀떼처럼 많은 헬기를 타고 적진 깊숙히 기습공격하면서 남과북 양쪽에서 백마부대와 맹호부대가 협공을 펼치는 작전이라고 합니다. 반체제인사에 대한 중정의 작전도 오작교작전이라고 하는데요. 김형욱에게 여배우를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게 해준다고 꼬셨으니 오작교작전이라고 부를만 합니다.
여기서 10.26의 주인공 이상열이 김형욱 암살작전을 오작교작전이라고 부른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오작교작전의 원래의미는 협공인데요. 박정희 암살을 계획하고 있던 이상열이 해외밖에서 안으로 치고 들어가고 안에있던 이후락이 호응하는 협공개념으로 볼수 있습니다. 이상열은 김형욱을 암살하고 이후락은 김영삼에게 부마사태를 일으키게하는 한편 김치열에게 차기중정부장이 되는 방법을 일러주어 김재규가 제손으로 박정희를 죽이도록 협공했다고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번에 아사아나추락도 7월7일에 일어났는데요. 칠월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즉 오작교입니다. 숫자 7이 영미제국(록펠러)을 찬양하는 숫자이기 이전에 국내적으론 이상열과 이후락의 박정희 암살을 우상화하는 숫자인 것입니다. 앞으로 10.26 박정희 암살을 기념,찬양할때는 오작교를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상열은 군인출신이었기 때문에 베트남전 최고의 전쟁역사로 평가받는 오작교 작전을 박정희 암살에 덧씌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10.26의 '정'은 이상열이고 '부'는 이후락인 것입니다.
1973년12월경 이후락을 내사하러 먼저 중정차장을 맡은 김재규는 신직수가 상관인 중정부장에 정식취임하자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이런 이후락의 인물됨을 눈여겨본 김재규를 이용하면 박정희를 죽이고 대통령이 될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후락이 중정속에 만들어놓은 인맥을 걱정한 신직수는 이상열을 해외로 쫓아내는데요. 신직수 중정부장이 얼마나 이상열을 경계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10.26은 김재규가 화를 참지못하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처럼 되어 있지만 오래전부터 대통령을 시해할 가장 유력한 후보였습니다. 이를 이상열과 이후락이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지요. 김형욱을 먼저죽이고 막바로 부마사태를 일으켜 김치열을 차기중정부장으로 소문내자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지않고서는 못베기게 조작한 것입니다. 부마사태이후에도 김형욱이 살아있었다면 김형욱 제거를 위해서라도 박정희가 김재규를 자를수 없었을 것입니다. 잘릴일 없다면 김재규는 박정희를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정희 암살에 가담한 사람중에 박흥주,박선호등 박씨들이 많고 신씨 신재순까지 등장하는데요. 이상열과 이후락이 박정희와 신직수를 얼마나 저주했는지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박선호는 김재규의 제자이면서 해병대 사령부 폐지에 불만이 있었고 박흥주는 김재규 부관출신으로 청렴결백함에도 불구하고 달동네 단칸방에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들이 궁정동에 여자를 데려다주는 채홍사역할을 했으니 같은 박씨임에도 박정희를 죽이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차지철을 죽이는 줄로만 알고 단순가담했는데요. 김계원이 박정희의 시체를 치우는 바람에 나머지 가담자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김계원도 김재규와 한패인 것입니다.
현홍주는 전두환이 들어선후 유일하게 안잘린 국장인데요. 10.26의 내막을 잘알고 있으므로 안자른 것입니다. 게다가 김재규와 중정의 동태를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일러주어 점수를 많이땁니다. 원래 김기춘과 함께 중정에 들어왔는데요. 이상열이 김재규를 조정하는 위치에 서자, 과거 이상열을 심문한 담당검사 인연을 바탕으로 기획정보실장, 그것도 부마사태를 관장하는 담당자가 됩니다. 막판에 이후락과 이상열의 계획에 가담했는지 안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이용당한 것 만큼은 확실합니다. 부마사태이후 국정쇄신 방안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크게 칭찬받았다고 합니다. 이를 가지고 김치열이 그대로 앵무새처럼 말해 차기 중정부장으로 내정되게 만들고 김재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학생데모가 아니라 시민일부가 가담한 폭동에 가까운 소요였다. 시민들이 가세한 이유는 각 계층별로 차이는 있으나 조세저항, 일선 경찰관 등 행정기관의 부조리에 대한 불만,빈부격차에 따른 위화감,변화에 대한 기대감 등이다. 민심수습을 위한 각종 대책과 함께 현 정부가 안정되어 있으나 정체함이 없이 항상 쇄신하는 정부하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정부 각 부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수 있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항상 새로운 면모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는 부산,마산 사건 수사결과를 빨리 발표할 것, 지방도시의 소요진압 능력을 강화할 것, 관계기관의 예방정보활동을 강화할 것,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세울 것 등이다.> <현홍주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
이후락 밑에서 이상열이 중정기획실장을 맡았고 현홍주는 김재규 밑에서 중정기획실장을 맡았습니다. 현홍주는 후일 노태우의 최측근이 되는데요. 이후락을 박정희 후계자로 지지한 윤필용이 노태우와 막역한 사이였고 이후락 연줄인 현홍주가 노태우에 붙은 것입니다.
요즘 전두환은 깨지는데 노태우가 깔끔한 것도 현홍주라는 대한민국 실세가 뒤를 봐주기 때문이지요. 모르긴 몰라도 남재준 다음은 반드시 현씨 국정원장이 임명될 것입니다.
이후락이 비서실장에서 물러난후 주일대사로 간적이 있는데요. 그곳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중정부장으로 승진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김형욱 회고록이 출판되는데도 일본에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1979년 10월 7일 이상열이 미인계로 김형욱 암살
1979년 10월 13일 김재규에게 보고
1979년 10월 16일 김영삼의 부마사태
1979년 10월 18일 이상열 귀국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암살
이상열이 10.26을 위해 10월 18일에 귀국한 것 같습니다.
신직수(ㅅㅈㅅ)와 신재순(ㅅㅈㅅ)은 글자가 비슷합니다. 신직수때문에 사우디로 좌천당한 이상열의 원한을 엿볼수 있습니다. 박정희의 술시중을 신재순으로 고르고 신재순도 죽이려 한 이유는 박정희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신직수를 중정부장으로 발탁했기때문에 신직수를 박정희의 시녀로 보았던 것입니다. 해서 박정희에게 술시중 드는 신재순이 신직수를 상징합니다.
김형욱 말고도 이후락이 박정희를 협박할수 있었는데요. 이후락이 탈출할 당시는 닉슨정부가 이후락을 버리면서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닉슨정부는 빌더버그와 영미제국쪽 어느편도 아니었습니다. 카터정권이 들어서고 1978년 록펠러3세의 죽음에 분노한 데이빗 록펠러가 빌더버그에 대한 보복에 혈안이 되었고 부토총리,이란 팔레비국왕, 그리고 박정희까지 희생되었던 것입니다.
이후락의 심복 이상열은 김형욱을 대신 이용하게 되는데요. 김형욱은 그전부터 보복을 원하고 있었고 이상열에게 목숨을 빚지고 있었으므로 김형욱 때문에 똥줄이타고 있던 박정희를 쥐락펴락 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중에 무능하고 욕심많은 패륜아 김재규가 들이대며 중정부장에 오를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상열은 2006년 사망하는데요. 한반도는 이씨의 나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이명박을 서울시장시켜준 것이고 2009년 이후락이 죽음이 다가오자 이후락의 친척인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뇌물정치로 유신체제를 만드는데 자금을 담당한 당시 재무부장관이 남덕우 총리인데요. 안봐도 이후락 심복일 것입니다. 남덕우 총리가 얼마전에 죽었는데요. 살날 얼마남지 않은 남덕우 총리를 위해 남재준 원장을 임명한 것입니다. 국방부와의 협력이 중요해 육사출신 남씨를 임명했는데요. 요즘 국방부가 전투기도 안사고 전작권 이양도 안하고 국익을 내세워 친미파 실세들과 삐딱선을 타고 있습니다. 남덕우 총리도 죽고 국방부도 눈밖에 났으니 남재준 원장이 잘릴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은 상황입니다.
현홍주와 같은 현씨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도 록펠러의 삼변위원회 회원인데요. 미국을 협박하기 위해 대한민국 친미파의 대부인 이후락과 그 실세들을 탄압하는 쇼를 하고 있는데요. 쇼로만 그칠지 아니면 실질적인 물갈이가 될지 지켜보겠습니다. 박대통령이 귀국하고나서 10.26에 이후락이 깊히 관여한 것을 알면 친미파에 대한 대대적 보복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리되면 1978년처럼 국정원이 한국국정원과 미국국정원으로 분리 될 것 같습니다. 한국정부에 대한 미국정부의 압박과 비리 폭로도 잇따를 것입니다.
http://88jangsu.blog.me/138097316
진짜 군인이었던 박흥주 대령
박흥주가 행당동 달동네에 살았다고 하는데요. 10.26의 정당성부여를 위해 이상열과 김재규가 특별히 선택한 것 같습니다. 당시는 김재규가 박정희에게 아부하려고 박씨 부관을 두었는데요. 박정희의 궁정동 얘기등 비리등을 들으면서 세뇌당한 것 같습니다.
http://blog.naver.com/bf101?Redirect=Log&logNo=10122032800
김재규와 박선호
해병대 사령부 폐지후 17개의 대령자리가 없어지고 군사정권에 불만을 가진 해병들을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에 자리를 만들어 데려왔다고 합니다. 게다가 김재규가 김천중학교 교사시절 제자였다고 하니 측근중의 측근입니다. 시키는데로 하는 건 당연하지요. 10.26에 해병대 부하도 참가시켰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4&aid=0000229113
미재계 FTA 지원방안 논의…20일부터 이틀간 모임(2006년 6월)
한·미재계회의(위원장 조석래 효성 회장)
남덕우 산학협동재단 이사장
현홍주 김&장 고문
윌리엄 로즈 씨티은행장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2112010504997800&outlink=1
현홍주 김앤장 대표, 한미우호상 수상(2012년 11월)
역대 수상자로는 원일한 박사와 제임스 릴리 전 주한미국대사, 남덕우 전 국무총리,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 사령관
1969.10~1974.09 제24대 재무부 장관
1974.09~1978.12 제12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1979.01~1979.12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
1980~1980 국무총리 서리
1980.09~1982.01 제14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1984~1994 세계무역센터협회(WTCA) 이사
2001~ 삼변위원회 위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02318&cid=505&categoryId=505
세계무역센터협회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2726
세계무역센터협회 이희돈 수석부총재 “유학 시절 생활비 90%를 선교 후원”(2012년 1월)
http://www.etnews.com/news/economy/economy/2753314_1493.html
안현호 무협 상근부회장, 세계무역센터협회(WTCA) 연차총회 참가(2013년 4월)
http://www.interview365.com/news/1860
24년 전 백두산 필름 TV로 처음 공개한 원일한 박사 (2008년 11월)
대한민국의 진짜 실세를 뒷조사하니 관련인물이 줄줄이 엮여나오는 군요. 원세훈은 고종의 미국인 주치의 원일한때문에 국정원장이 된 것이고 남재준은 같은 남씨 남덕우 총리때문에 국정원장이 된 것입니다. 남덕우는 이후락의 뇌물정치를 뒷받침해준 인물입니다. 박정희를 죽인 다음 데이빗 록펠러와 짝짜꿍으로 놀아나며 그야말로 살아있는 신 같습니다.
남재준 원장 옷 벗고 김병관이 국정원장이 되야겠습니다. 물론 현씨 현오석 총리도 잘라야 됩니다. 1970년부터 무려 43년동안 한국을 통치하고 있는데요.
이상열과 현홍주의 인생역전을 조사하다보니 박정희 신화는 저리 가라군요.
아무튼 현홍주 대표가 유일하게 살아있으므로 현씨에 대한 우상화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부코드는 좀더 조사를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이상열은 원충연 반란사건에서 배신을 때려 쿠데타를 물거품으로 만드는데요. 이때 김형욱에게 도움을 주어 김형욱 연줄로 크게 출세합니다. 그러다가 같은 이씨인 이후락의 세상이되자 이후락에게 충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81317586585491002
오로라’ 오창석, 누나들 화해 위해 파격장난 ‘머리카락 묶기’
오작교작전이 박정희 암살 아부코드라고 말하자 다음뉴스편집장이 올린 것인지 국정원이 프로그램을 돌린 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오로라공주 오씨 오창석이 까마귀처럼 검은머리를 연결한 점에 착안해서 오씨가 연결다리를 만들었다고 해석하면 오작교가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거대한 성공신화의 첫발을 내디딘 사건이 이현란과의 운명적 만남인데요. 이현란을 박정희 대통령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도망갔지요. 하지만 이일을 계기로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사필귀정 결자해지라고 파란만장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생애도 이상열,현홍주 두사람의 난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으니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상열,현홍주의 란을 합치면 이현란이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현란때문에 죽고살것이란 하늘의 계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현홍주에 대해서 조사중인데요. 현홍주와 이상열의 인연은 원충연 반란사건에서 담당검사가 현홍주였습니다. 이후로 서울지검에 근무하다가 1978년 2월이후부터 김재규밑에서 대북정책국장으로 일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이상열은 10.26이후에도 해외공사로 떠도는데요. 안기부차장이 되는 현홍주와는 대비됩니다. 아마도 현홍주와는 달리 김형욱 암살에 깊히 관여한데다 하나회와 가깝지 않아 출세로 연결되지않은 것 같습니다. 하기야 대통령암살의 공로를 들어내놓고 자랑하며 출세할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1974년4월 김재규에게 민주주의 말장난을 세뇌시킨 인물은 이상열과 가까운 제3의 인물같습니다. 이미 이때부터 김재규가 민주주의 헛소리를 지껄인 것으로보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박정희를 죽이고 대통령이 되려는 계획을 이상열 측근으로부터 줏어듣고 야망을 불태운 것 같습니다.
<1979년 10월 28일 그가 합수부 수사관앞에서 자필로 쓴 1차 진술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1차 진술 조서는 그가 대통령을 쏴 죽인 뒤 이틀만에 쓴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개발하기 전의 비교적 순수한 상태의 고백이란 장점이 있는 반면, 가혹한 고문이 가해질 경우 수사관의 의지가 반영된다는 단점이 있다. 김재규는 이 1차 진술서에서 범행의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국이 시끄러워지고 야당의 활동이 적극화됨에 따른 본인의 수습안이 실패를
반복함에 따라서 사실상 무능력한 것이 노출되었습니다. 본인 및 형제등의
이권 개입으로 인하여 각하로부터 직접적인 경고 내지는 친서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호실장 차지철은 사사건건 업무에 관하여 월권 행위를
자행하고 있었으며, 군 후배이고 연하자인 그로부터 오만불손한, 개인적인 수모를
수차에 걸쳐 당하였습니다. 또한 각하가 차 실장을 편애하는 데 대하여도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최근 중요 보직자의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었는데
거기에 본인이 포함될 것이라는 데 대하여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본인도 정권을
잡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으며, 현재 정계 인물 중 최적의
대통령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부산,마산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태는 학생들의 소요라기 보다는 민간인 소요로서 민란이라 판단하여 지금이
각하를 제거할 적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본인은 중앙정보부의 막강한 권한과 조직을
갖고 있었으므로 사후 수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직에 있는 중요
인사들과 군 지휘관들도 본인의 영향력을 받고 동조할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
김재규가 보직해임된 해병대 대령들을 중정에 심어놓는등 박정희를 죽이고 대통령이 되려는 야심이 있었음을 알수있습니다. 김재규의 특징이 능력에 비해 욕심이 굉장히 높은데요. 군사정권 자체가 개천에서 용난 인생들이고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염치없이 들이대는 것을봐도 김재규의 인성을 알수있습니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욕심은 많고 대통령도 죽이겠다는 말도 서슴치않는 위인이므로 이상열과 이후락이 자신들의 거사를 도모하기엔 더없이 좋은 인물이었습니다. 박정희를 죽이고 대통령이 될수 있다고 꼬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는 끝장이라고 느끼게 하면서 박정희를 죽이고 대통령이 될수도 있다고 꼬셨으니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김재규가 넘어간 것입니다.
박정희를 죽여놓고도 할말이 없으면 안되니까 부마항쟁을 가지고 민주주의라며 명분을 쌓는 쪽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김형욱 암살과 부마사태는 이상열과 이후락이 김재규의 손을 빌려 박정희를 제거하고 친미정권인 전두환 정권을 출범시키고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의 기득권을 인정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김재규는 박정희를 죽일수는 있었지만 구조적으로 쿠데타에 성공할수는 없었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그리허술한 사람들이 아니지요. 사람은 총한방이면 끝나는 존재인데요. 대통령 주변에 경호원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총을 들고 있습니다. 보통사람들보다 총맞고 비명횡사로 죽을 확률이 수백배는 될 것입니다. 도망갈 기회도 없습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매국노들이 득실대는 곳이 서울이고 청와대입니다. 언제 어떤놈이 사주를 받고 미친짓을 할지 알수없는 것이지요. 일단은 국제정세를 지켜보면 대통령이 위험한지 안한지 알수 있습니다.
http://chimuchyo.egloos.com/3934078
남산의 부장들 주석 및 설명 (정보부 관계자 중심) (2013년 2월)
초대 8국/7국장으로 임명된 김기완은 국방부 정훈감 출신으로 군에서 심리전을 담당한 바 있다. 그 후 그는 나중에 주일공사로써 DJ 납치 사건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그 아들이 현 주한 미국 대사인 성 김이다. 이후락 라인.
김기완은 국방부 정훈감 출신으로 군에서 심리전을 담당한 바 있다.
1967년 대통령선거주역.
원충연 사건을 밀고한 이 모 소령은 이상열이다. 그는 당시 1군 보안부대장으로 사건 모의에 가담하여 이를 녹음한 후 제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후 중정에 들어가서 나중에 파리 주재 공사가 되었다.국정원 과거사 조사에 따르면 그는 김형욱 사건 김형욱 유인 살해를 지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후 귀국하여 전주지부장과 해외공작국장을 역임하였다. 정보 일선에서 물러난 후 주 미얀마, 리비아, 이란대사를 지내면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군법무관 신직수는 젊고 명석한 검사 김기춘, 현홍주를 거느리고 남산에
현홍주는 대공수사 부국장을 거쳐 나중에는 기획정보정책국장(판단기획국의 후신)으로 국내 정보 판단,정책 기획을 담당했고 특히 유신 말기 긴급조치를 입안.작성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 그는 1980년 정보부 개편 이후 2국장(정책정보국)을 거쳐 안기부 1차장을 역임하였다.
HR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 이용은 그의 사위 정화섭이...
정화섭은 이후락이 부장으로 부임한 후 70년 12월 2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일설에는 72년 12월도 있다). 미 하원 조사위원회 보고서(프레이저 보고서)에서 그가 이후락의 해외 비자금 특히 스위스 비밀 계좌의 자금을 관리했던 것이 밝혀졌다.
"스위츨란드 유니언 은행은 徐廷貴씨 명의의 구좌 명세서(Statements for the account)를 정화섭(Wha Sup Chung)이란 사람에게 보낸 것이다. 이 명세서는 69년9월2일자로서 은행이 입금 사퓽?통지하는 내용이다. 왜 徐씨나 李厚洛씨가 아니라 정화섭이란 인물에게 연락이 갔는가? 정화섭이란 누구인가....소위원회는 이 정화섭이 누구인지는 쉽게 밝혀냈다. 그는 李厚洛씨의 외동딸(38)의 남편이다. 정씨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장인인 李씨는 70년12일에 정보 무경험자인 鄭씨를 국제문제담당 국장으로 앉혔다. 재임말기엔 朴대통령으로부터 지적을 당해 사위를 물러나게 했다. "
육영수는 신직수 이용택(이후락 저격수) 중정안전국장 작품.
박정희 대통령의 여비서 이름이 이혜란입니다. 이현란과 이름이 비슷합니다. 1979년에도 박정희 대통령의 뇌리에 이현란이 깊히 박혀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퇴임할 시기를 놓친 것은 한참 경제발전이 가속도가 붙어가는 시기여서 대통령 할맛 나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극심한 국제 권력투쟁 속에서 대통령의 지휘력이 가장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노인성 당뇨를 앓고 있던 62세의 박정희 대통령이 최악의 경우 1990년 빅터황제가 죽을때까지 독재정치를 이어갈수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박정희 대통령이 죽지않고서는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올수 없는 상황임은 윤필용사건으로 인해 김영삼,이후락,차지철,김재규 모두 잘알게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에 살던 이북출신들의 추대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후락같은 울산,경상도를 끌여들였는데요. 남북분단이 만든 단절로 인해 이북출신들이 서울에 모여 지들끼리 뭉치는 힘이 있었고 박정희 정권이 수립되었다가 이북연줄에 놀란 경상도,전라도들이 미국과 일본을 들먹이며 뭉쳐서 연줄을 만들게 되는데요. 그 분수령이 된 사건이 10.26사건입니다. 지금현재의 실세들이 당시에 모두 박정희의 죽음을 원했던 자들이고 한몫들 했습니다.
지금도 10.26의 주역들이 한미동맹을 외치며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데요. 김대중,노무현때 세력이 약화되었다가 이명박 정권때 급속 부활했습니다. 그러다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 위세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 같은데요. 요즘 미국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한미동맹이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일단은 친미파들을 족치는 시늉을 하면서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데요.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지않고서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날수 없었듯이 지금의 남북상황을 보면 북한을 기습폭격하고 북진통일을 실시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남북통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북진통일하려면 백인들의 권력투쟁이 거의 막장수준에 이르러야 하는데요. 왔다리갔다리 하는 비둘기파들이 문제입니다. 미국 군산복합체와 이들의 수장인 데이빗 록펠러가 그동안 가장 강력한 실세였는데요. 요즘은 조카인 제이 록펠러가 힐러리대통령에 올인하며 미국정치를 이끌고 있습니다. 남북통일을 하려면 록펠러왕국과 오일달러 시스템을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불가능 할 것입니다. 하루빨리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원전을 세우고 전기자동차로 싹다바꿔야 됩니다. 백인들의 사회에 지각변동이 있지않고서는 남북통일이 달성되기 어렵습니다. 그리되면 못사는 동남아들이 금새 한국,일본, 중국을 따라잡고 떵떵거리며 살것입니다. 한중일 삼국은 백인들과 다수의 가난한 빈곤국들 중간에서 마름역할을 하는 국가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국가입니다. 원전과 전기자동차 시스템으로 간다면 백인들의 횡포가 눈에띄게 줄고 중동전쟁도 종식될 것입니다. 빌더버그의 권력도 강해지겠지요. 언제까지 CIA의 공작정치에 의존해야합니까. 돈버는 기술로 제이 록펠러가 내세우는 문화통치(소프트파워) 시대로 접어들어야 겠습니다. 하지만 이리되면 기존의 미국가문들의 몰락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중국이 가장 큰 수혜를 보겠군요. 미국에 줄선 일본도 피해가 극심할 것입니다. 동남아는 중국을 따라잡을 기회를 얻겠군요. 최악의 시나리오는 백인들과 동남아가 연합해 중국과 한국을 멸망시키고 일본은 백인들에 끼어 쏙빠지는 경우입니다. 대통령 암살과 쿠데타가 특기인 미국CIA가 가만히 앉아서 몰락할 것 같진 않구요. 박정희 대통령처럼 죽어서야 권좌를 내려놓을 것 같습니다.
백인들은 지하자원을 독점하고 있는데요. 석유를 가진 록펠러가 주인이냐 우라늄 광산을 가진 로스차일드가 주인이냐만 달라질 뿐입니다. 한중일 삼국은 기술과 공장을 가지고 있어서 누가 주인이 되든 별상관이 없는데요.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황족인 백인들이 쌈박질한다면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한중일 삼국입니다. 지난 시기 빌더버그 빅터황제의 싸움과 부시정권때 가장 이득을 본 것도 한중일입니다. 다만 이미 경제성장을 꼭대기까지 완수한 일본은 한국 중국과 달리 백인들의 권력투쟁에서 이득볼 것이 적기때문에 중국,한국 보다는 백인들편에 더 가깝습니다. 일본은 백인이라고 생각하는게 옳습니다. 실제로 엔저라고 엔화를 찍어내며 미국흉내를 내고 있지않습니까. 미국연준의 달러장난질의 보조엔진이 일본 엔화입니다.
박대통령이 북한돈퍼주기에 관한한 일은 중국과 보조를 맞추기로 했기 때문에 중국의 경제성장이 꼭대기까지 이를때 까지 남북통일 안될 것이고 백인들을 협박하는 북핵쇼는 계속될 것입니다. 중국 국민들이 이제막 도시로 올라와 새아파트 짓고 TV보고 연예질하는데 맛들이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10년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난 10년간 베이징과 상해는 즐겼지만 제가 본바 아직도 족히 10년은 더 걸립니다. 10년후에는 중국정부도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백인들이 마련해 놓은 라이프스타일이 슬슬 지겨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때쯤이면 백인들의 발명품인 민주주의 매국노시스템도 수명을 다하고 중국이 개발한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국제권력이 어떤식으로 펼쳐질지는 알수 없는 일이고요. 10.26으로 갑자기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듯이 우리도 아무생각없이 10년 살다보면 또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제 예상으로는 10년내내 정치쇼가 판을 칠 것이므로 TV끄고 생업에 종사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집사려고 10년 모은 재산 날리는 함정은 계속될 것이고 20살까지 학교열심히 다니다가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인생 첫발을 내딛는 함정도 계속될 것입니다. TV를 꺼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누군가는 매국노들의 아침밥이 되어야 하므로 주변 이웃들이 먹잇감이 되는 것을 지켜본 연후에 신중하게 처신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믿었던 '프리리빙제'도 아파트가격이 다시 떨어지면 대출은행에 수천만원을 입금해서 부족해진 담보를 보충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2년뒤에 건설사가 망하지않고 다시 사줄때까지 말입니다.
1978년 총선에서 부가세때문에 31% 대 30% 로 고작 1%차이로 박정희가 김영삼한테 지는데요. 물가와 세금으로 최악의 민심속에서도 이정도 표밖에 못얻는 것이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매국노들의 한계입니다. 당시 유신정권이 국민들의 지지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박정희가 안내려오는 것이 민심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1분이면 해결되는 말장난입니다. 당장 대통령이 월급올리고 일자리 늘리라하고 싱글들 모두 결혼시키라고 하면 됩니다. 안되는 이유는 지구상의 모든 자원을 독점하는 백인들때문이지요. 말장난하면서 백인들대신 욕을 쳐먹는 것이 정치인들의 직업인데요. 겁도 없이 백인들을 협박하면 박정희처럼 총살형입니다.
북핵개발에 돈퍼주든 말든 백인들을 협박해서 국민들 배불리려 했던 박정희가 영웅이고 미국과 결탁해 박정희를 총살시킨 이후락 일당이 희대의 매국노들입니다.
여하튼 누가 경제를 살리느냐가 관건입니다. 백인들의 압제속에서 돈벌어오기가 가장 힘든일이고 전자공업을 일으키겠다고 혼자서 공부하는 대통령 뒤에서 김재규,김형욱을 앞세워 죽일 계략이나 꾸미는 미국앞잡이 이후락 같은 인간이 다시는 나와선 안됩니다. 물론 박정희를 죽이고 지금현재 호의호식하는 종자들도 모두 처단해서 국기를 바로세워야 할것입니다.
아직도 민주주의 타령하는 앞잡이들의 선전에 넘어가는 순진한 국민이 없기를 바랍니다.
http://ko.wikipedia.org/wiki/YH_%EC%82%AC%EA%B1%B4
YH 사건
배후조종자로 도시산업선교회 소속 인명진(印明鎭) 목사 등 7명도 구속하였다.
김영삼이 미국카터정권의 사주를 받고 정권탈취에 여념이 없었군요. 벌써부터 조작한 냄새가 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공들이 괜히 신민당 당사에 갔겠습니까. 인권유린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공들을 선택했습니다. YH사건에서도 김재규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는데요. 박정희가 직접명령한데다 박정희가 제무덤을 파는 것은 자신에게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http://ko.wikipedia.org/wiki/YH_%EC%82%AC%EA%B1%B4
YH 사건
1979년 3월 폐업을 공고했다.
회사측과 정부 당국이 시종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자 4월 13일부터 장기농성에 들어갔다.
배후조종자로 도시산업선교회 소속 인명진(印明鎭) 목사 등 7명도 구속하였다
여기서 주목할점은 YH무역 사장이 미국에 호텔을 사서 돈이 없다고 회사를 폐쇄한 시기가 김형욱이 일본에 회고록을 기습출판한 시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이 1979년을 넘기기전에 박정희를 총살시킬려고 김영삼과 이후락을 경쟁시켰음을 알수 있습니다. 경쟁을 통한 시너지효과야 말로 최고의 효율성을 보여줍니다. 이상열만 협공작전을 펼친것이 아니라 미국또한 김영삼과 이후락을 협공시키는 오작교작전을 펼친 것입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newsview?newsid=20131009033506656
박근혜 대통령, 미국, 중국 사이 균형외교 득될까 덫될까
http://media.daum.net/entertain/star/newsview?newsid=20131009073307585
'심장이 뛴다' 죽음 앞에 ★ 진심 통했다
http://media.daum.net/issue/438/newsview?issueId=438&newsid=20131009031820537
"국내 수사파트 대폭 보강".. 야당과 격돌 불가피
[출처] 10.26은 이후락과 그 심복 이상열의 작품이다|작성자 인천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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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나간 일 두번다시 거론하지 마세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만고역적들의 행적을 국민은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