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9-14 말씀을 보자..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
우리는 아주 쉽게..."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중 누가...“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라는 말씀과...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다” 라는 말씀을 충분히 묵상하는가?
우리는 말로는..."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아들 예수님을 희생하셨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죄에 대한 값을 치르셨다" 라고 쉽게 고백하지만...
그것이...잃어버린 거액의 돈을 찾았을 때나...
꿈에 그리던 직장에 입사했을 때 처럼 기뻤는가?
아닐것이다...아니라고 필자가 질책하는 것이 아니다...필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신앙"이란 그런 것이다.
신앙이란...어제까지 몰랐던 일을 오늘 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이다...어제까지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보니...사실은 전혀 몰랐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은..."예습"이 아니고 "복습"이다.
하나님의 사랑...하나님의 은혜...누가 모르는가...말로는 다 안다.
그런데...오늘 보니까...내가 이제껏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말은 질책이 아니다...오히려 축복이다!
이러한 현상은...우리가 가장 기초적인 복음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깊어지는 초석이다.
위의 갈라디아서 말씀에서의 주제는 보시다시피..."십자가" 이다.
13절을 보면...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던 이유가 나온다.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것”이고...
왜... 굳이... "십자가" 인가?
답은...“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기 때문!
우리의 죄 때문에...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죄를 향하여 쏟으시는 진노를 몸소 받으셨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신명기 21장 5절을 보자.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한 불평.....
어찌보면...불평은 누구나 할 수 있고...필자도 때로는 불평을 한다.
그러나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은...단순한 불평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부부 싸움을 할 때...꼭지가 돌면...무슨 말인들 한다.
상대의 약점을 건드리거나...상대가 가장 싫어하는 말을 일부러...^^
그런데...절대로 하지 말아야하는 말이 있다..넘지 말아야하는 선이 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로...신자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하나님 따위는 없어”...“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이러한 말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불평이나 화를 내는 일...그런 것은 신자의 삶이라 해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제아무리 크고 중한 감정적인 격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면전에다 놓고 욕하거나 비난하는 일은...신자라면 할 수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 동안 그들을 먹여 살려 주셨는데...이스라엘의 말을 보라.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
No!
광야이긴 했지만...분명히 항상 식물도 있고 물도 있었다.
이들의 불평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가짜 뉴스"이다..^^
핵심은... "식물과 물"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이 싫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말도 들어보자...“우리가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박하다”라는 말...사전을 찾아보니..."가벼운..하찮은..보잘 것 없는..경멸할 만한..."
이 "박한 식물”은 무엇을 두고 한 말?...예~바로..."만나"이다.
만나..."하늘의 것을 땅에서 맛보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음식...
황량한 광야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맛보라고 특별한 고려로 주신 음식...
하지만 그들은 이것을 비하한다...“하나님이 나를 보살핀다고? 택도 없지!"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보살폈나? 우리가 무슨 떵떵거리는 대궐 같은 집에서 살았나?"
"우리는 그냥 황량한 광야 한켠에서 겨우 죽이나 먹고 살고 있잖아! 이게 보살핌이야?"
이것은...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언약의 핵심"을 깨뜨리는 심각한 말이다.
다시말해..."반역죄" 이었다.
결국...이 일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내신 불뱀"에게 물리게 되는데...
그리고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들이 모세에게 자신들이 범죄하였다고 실토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치료법"을 알려주시는데...치료법은 그 유명한..."놋뱀"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
여기서...또 까탈스런 에센스의 질문...
왜 하필 "뱀"일까?
이 놋뱀이 정말로 "바라보면 산다"는 의미의 "예수님"을 상징한다면...
"뱀" 보다는 예수님의 상징인..."양"이 적합하지 않았을까?
뱀은 부적합한 짐승 정도가 아니라...성경에서 뱀은 사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놋뱀을 만들어 달라고 하셨던 의중이 궁금하지 않은가?
뱀이 무엇인가?...그들을 물어 죽게 만든 원인이고...사탄..즉.."죄악의 상징"이다.
자...이스라엘의 죄악은 무엇이라고?..."하나님의 은혜를 폄하한 반역죄"...
그래서..."불뱀"을 내려 죽게 되었고...그 뱀은 "죄악"을 상징한다.
그리고...그들을 죽음으로 내몬...바로 그 "뱀"을 매어 달라 하신다.
그리고...그것을 바라보아야 산다고 말씀하신다...이게 무슨 말인가?
장대에 달린 뱀은..."나무에 달려 죄를 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장대에 달린 뱀"과..."장대에 달린 예수"를 동시에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을 물어 죽게 만든 바로 그 실체인 뱀을 쳐다보아야만이...
나무에 달리신 자(예수)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나무에 달린 자를 볼 때...무엇을 볼 수 있어야 하나?
우리를 물어 죽게 만든 바로 그 뱀...바로 그 죄악...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불평하고 미워했던 반역죄...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를 볼 때...
이러한 우리 자신의 끔찍한 죄악을 보라는 것이다.
왜...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셔야만 했는지...의 그 "실체" 말이다.
우리의 죄악...특별히 "반역죄"...이것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 그 분이 "뱀의 형상"으로 겹쳐 보이게함으로써...
우리들의 그 "죄악의 형상"을 반드시 보라는 것이다.
교회의 상징인 십자가...모형물의 십자가로 부터...우리 마음 속의 십자가도 있고...
귀걸이...목걸이...책갈피로도...컴퓨터 배경화면에도...
그런데 그 십자가가...처절하고 아프게 나의 죄를 지적하고 있다.
십자가 목걸이를 하기전에...우리는 이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나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
특별히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베푸신 그 은혜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은총을 하나도 안 베푸시고 계신 것처럼...
그래서 만나를 향하여 “이 박한 식물”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들처럼...
그렇게 고약하게 불뱀에 물려서 죽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이것을 직시해야만..."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 목걸이를 목에 걸 때...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은혜...자비...용서...평화...와 같은 우리에게 좋은 것만을 생각한다면...
십자가의 목적이 만약 그것이 전부였다면...뱀보다는 양을 선택하셨을 것이다.
십자가 목걸이 할 때...이 말씀도 기억하라...“나무에 달린 자가 저주를 받았다”
집에 인테리어 장식으로 십자가를 걸 때에도...기억해야 한다.
십자가는 매우 아프게 우리의 패역과 반역을 지적하고 있고...
그 패역과 반역으로 그리스도는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렸다고...
카페 게시글
♡ 。믿음글| 신앙글
왜 하나님은 사탄의 상징인 뱀을 장대에 달아 바라보게 했나? [1]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