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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 살수지왕(殺手之王) - 03
10대 살객 중 한 명인 음수검 비천은 자신의 감각을 모두 끌어
모았다. 그리고 살객들이 복면을 벗는 바로 그 순간, 하나의 그림
자가 바람처럼 날아 올라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살객을 향해 주
먹을 날리는 것을 보았다.
'걸렸다.'
10대 살객의 옆에는 언제나 바람막이와 같은 살수 하나가 쫓아
다닌다. 그는 비록 10대 살객 보다는 못하지만 능히 최절정의 살
수라 할 수 있었다. 아주 중요한 순간에 10대 살객의 역할을 하며
상대의 시선을 끌어준다.
이 바람막이 살수는 상대를 끌어당기는 미끼이기도 했다. 10대
살객이 완벽하게 자신의 무공을 숨기고 일반 살객들 틈에 끼어
있을 때, 이 살객은 자신의 위치를 살짝 노출하여 상대가 달려들
게 만든다. 그리고 그 근처엔 어김없이 진짜 10대 살객이 살기를
감추고 숨어 있다.
비천은 자신의 내공을 죽였다. 살기는 내 뿜되 일반 살객보다
더도 덜도 아니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십대 살객의 한 명임을 알
아보지 못하리라.
살객들의 머리를 한번에 단축하며 날아온 그림자의 주먹이, 바
람막이 살객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자, 바람막이 살객은 허리를 뒤
로 젖히고 철판교의 신법으로 권격을 피하며, 자신의 검을 들어
반격의 자세를 취했다.
비천은 자신의 검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두 세명의 살객과
협공을 하며, 날아온 그림자를 향해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제 자신을 평범한 살객의 하나로 오인하고 상대가 행동을 취
하는 순간, 그의 진짜 실력이 발휘 대며 단 일격에 적을 죽일 참
이었다. 그러나 그는 검을 들은 채 두어 발작을 앞으로 내 밀기도
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부터 전해온 충격으로 눈과 귀
사이에서부터 머리가 부서져 나갔다.
동시에 습격해온 그림자의 양손이 사방을 향해 풍차처럼 휘둘
려졌다. 그러자 그림자를 향해 습격했던 서너 명의 살객이 영문을
모르고 그 자리에서 절명하였으며, 막 몸의 중심을 일으켜 세우던
바람막이 살객은 그림자의 발길질에 턱이 부서진 채 즉사해 버렸
다.
몰론 급습을 한 그림자는 사공운이었다. 그가 처음 내친 권은
삼절유령신권(三絶幽靈神拳)의 유령선회(幽靈旋回)란 초식이었다.
이 권법은 주먹에서 뻗어나간 암경이 제멋대로 휘어지거나 심지
어는 앞으로 나갔다가 다시 거꾸로 돌아오기까지 하는 특징이 있
었다. 또한 그 내가의 권경은, 흔적도 소리도 기세도 없는 무형,
무음의 힘이었다.
사공운이 내친 권의 힘은 바람막이 살객이 감각적으로 몸을 뒤
로 눞히는 순간 옆으로 휘며 비천을 공격한 것이다. 물론 사공운
은 처음부터 그것을 노리고 권경을 내 뿜었다.
비천이 아무리 자신을 숨기려 해도, 사공운은 살수의 조종인 유
령대제의 전인이었다.
10대 살객 중 비천은 주먹의 각도만 보고 방심했다가 반격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사공운이 양손을 풍차처럼 휘두른 초식은 칠절유령살수
(七絶幽靈殺手)중의 팔황유령참(八方幽靈慘)이었고, 마지막에 바람
막이 살수를 죽인 각법은 유령연환각(幽靈連環脚)이었다.
나름대로 회심의 미소를 짓던 오누치의 얼굴이 검게 변해 버렸
다.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옆에 있던 묵
가차는 기가 찬 듯이 중얼거렸다.
"공격도 안 당했는데, 어떻게 죽은 거지?"
오누치도 멀리서 보다 보니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
다. 아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살문이 자랑하던 10대 살객 중 한 명이 너무 맥없이 죽어 버린
것 자체도 의문이었지만, 공격도 당하지 않았는데 왜 머리가 깨져
죽었단 말인가? 그들이 보았을 땐 사공운의 공격을 바람막이 살
객이 피하는 순간 비천은 스스로 머리가 터져 죽은 꼴이었다.
오누치는 혹시 또 다른 암습자가 있는가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절대 아닌 것 같았다.
"권법에 회자결이 있는 듯 합니다."
묵가차가 대충 눈치를 챈 듯 경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누치는 묵가차의 의견엔 동조를 하면서도, 대답 속엔 의문이
어려 있었다.
"회자결이라니?"
권법이나 장법에서 회자결이 얼마나 어려운 공격법인지 고수일
수록 그것을 잘 안다.
검에서의 비검술을 이용한 회선결과 장과 권에서 내기를 이용
한 회자결은 엄연히 달랐다.
검에서의 비검술은 검이라는 매개체에 내기를 담아 조정하기에
그래도 좀 쉬운 편이었다. 암기를 사용한 무공에서도 역시 암기라
는 매개체가 있다. 그러나 장과 권에서는 그런 매개체가 전혀 없
다. 우선 권력과 장력에 내기를 뿜어내어 적을 격상시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뿜어진 권의 내기를 뜻대로 휘
게 만든다는 것은 어지간한 고수는 흉내도 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묵가차와 오누치는 살객들을 상대하며 싸우는 사공운을 보았다.
이는 마치 200여 마리의 늑대 무리 속에 맹호 한 마리가 날 뛰는
격이었다.
사공운이나 그를 협공하는 살객들이나 일체의 파공성도 없고,
서로 기척조차 내지 않고 싸우는데, 마치 형체 없는 귀신들이 사
방을 날아다니는 것 같고, 200여 개의 낙엽이 소리 없이 낙하하는
것도 같다.
사공운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맨 몸으로 살객들을 상대하는
데, 그의 손과 발은 춤을 추는 듯 했고, 몸은 벨 수 없는 안개 같
았다. 분명히 살객의 검이 가르고 지나가는 것 같은데 그는 이미
다른 쪽에 나타나 다른 살객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의 동작은 짧
고 빠르며 효과적이었다.
정확하게 상대의 사혈만 노리고 공격하는 사공운의 동작엔 전
혀 살기가 내포되어 있지 않아, 살객들은 정말 자신을 죽이려 하
는 적과 싸우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또한 교묘하게 10대
살객들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10대 살객들은 살수로서 자신의 장기를 배제하고, 정면 대결로
나설 수도 없어 기회만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벌써 30여 명의 무음살객들이 죽어갔다. 이미 너무 많은 살수가
죽어, 사망쇄금진(死亡碎金陣)의 위력이 반감 된데다가 사공운은 이미
사망쇄금진(死亡碎金陣)의 파해법을 알고 있는 듯, 진의 약점을 정확하
게 찾아서 공격을 해 왔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소."
묵가차가 말을 하며 한발을 앞으로 내 디뎠을 때, 갑자기 사공
운의 신형이 숲의 한쪽으로 숨어들었다.
한참 협공을 하던 살객들은 지체하지 않고 두 무리로 나뉘어,
한 무리는 그 자리에 남고 한 무리는 사공운의 뒤를 쫓았다. 그들
의 움직이는 모습은 이미 이런 일에 대비해서 철저하게 준비를
한 듯 남는 자와 쫓는 자가 정확하게 갈라졌다.
묵가차는 자신이 나서기도 전에 사공운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놀라움보다는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도 전혀 지체함 없이 사공운
의 뒤를 쫓는 살객들에게 더 놀랐다.
'나무가 가득한 숲으로 쫓아 들어가면, 기습당하기 쉬울 텐데,
정말 무서운 자들이다.'
묵가차는 가슴 한켠에 찬바람이 스치는 느낌이었다.
숲에서 살객 하나가 기습을 당한다면, 다른 동료 살객들에게 공
격의 기회가 될 것이다. 지금 숲으로 쫓아 들어가는 살객들의 대
형을 보면 한 눈에 그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지체함이 없다면 무음살객들의 지독
함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사라지는 사공운의 뒷모습을 보던 오누치가 가볍게 한숨을 쉬
면서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묵형, 누구인지 알 것 같소이다."
묵가차는 큰 눈으로 오누치를 보았다.
"저자는 사혼유령검이 확실한 듯 합니다. 살수들이 살수지왕을
만났으니... ..."
묵가차의 눈이 조금 더 커진다. 조금만 생각해도 상대가 사혼유
령검이란 사실을 깨우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가 아니면 누가 살
문의 무음살객들을 저렇게 유린할 수 있겠는가? 또한 사공운의
무공은 유령대제의 무공이 확실했다.
유령신공은 그 무공의 개성이 너무도 뚜렷한 무공이었다.
묵가차는 자신도 모르게 투덜거렸다.
"제길... ... 똥 밟았군."
오누치는 자신의 곰방대를 한번 휘둘러보고 묵가차에게 시선을
주었다.
"묵형,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소."
"상대가 유령마제의 전인이고, 10대 고수 중에 한 명인데 당연
합니다. 이제 우리도 천천히 준비를 해야되지 않겠소?"
오누치는 눈으로 긍정의 표정을 내 비치고, 조그만 푹죽을 꺼내
하늘에 대고 쏘아 올렸다.
묵가차가 하늘에 수놓아진 붉은 색의 불꽃을 보며 물었다.
"응원군을 부른 겁니까?"
"지금은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
오누치는 슬쩍 말끝을 흐렸다. 묵가차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스스로 해결을 못하고 응원군을 부른다는 것에 조금 자존심이 상
한 듯해 보였다.
살수인 오누치와 무인인 묵가차의 차이라 하겠다.
하늘을 가린 큰 나무가 빽빽한 숲은 어두웠다. 살아 남은 10대
살객 둘은, 100여 명의 무음살객들을 거느리고 숲으로 들어서며
암습에 철저한 대비를 하였다.
그들은 무음살객들의 중간에 끼어 안으로 들어갔으며, 살객들로
하여금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누군가가 기습을 당하면 바로 협공
할 수 있는 형태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굳이 그렇게 힘들일 필요가 없었다. 채 50여 장
을 전진하기도 전에, 큰 나무 아래 검을 들고 우뚝 서 있는 사공
운을 볼 수 있었다.
"모두 소혼살진을 펼쳐라!"
10대 살객 중 한 명인 한적은 무음 살객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앞으로 나섰다. 또 다른 10대 살객 중 한 명인 유기와 두 명의 바
람막이 살수도 앞으로 나섰다.
한적과 유기는 자신들이 앞장서서 사공운을 상대하기로 결심
한 듯 했다. 어차피 자신들 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 살수의 능력을
지닌 자임을 알았으니, 기습보다는 일대 다수의 우위와 정면 대결
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100여 명의 무음살객들은 사공운을 사방에서 포위하며 살문의
공격 진법 중 하나인, 소혼살진을 펼칠 준비를 하였다.
사공운은 그들의 그런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
다. 한적은 사공운을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넌 대체, 누구냐?"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면, 넌 바보다."
한적은 차가운 눈으로 사공운을 쏘아보았다.
"넌, 사혼유령검이냐?"
사공운은 대답대신 가볍게 웃어 보였다. 이젠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적과 유기의 눈이 약간 무거워졌다. 설마 했지만, 정말 사령
유혼검이라고 밝혀지자 상대가 부담스러워졌다. 10대 고수란 아무
렇게나 정해지는 순번이 아니었다. 그들은 강호의 수많은 고수들
중에서도 가리고 가려 뽑힌 인물들이었고, 눈앞에 있는 청년은 바
로 그들 중 하나였다.
"다행이다. 너라면 죽은 동료들도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이다. 그리고 너도 그들의 뒤를 쫓아가라."
"능력이 되면 해보아라."
사공운의 담담한 말에 한적은 코웃음을 쳤다.
"네가 아무리 10대 고수 중 하나라지만, 소혼살진을 얕보지 말
아라!"
"살수치곤 말이 많군, 무음살객들은 모두 벙어리라던데, 네가
그들이 할 말을 다 하는구나."
한적의 왼쪽 눈썹이 위로 곤두섰다.
"죽여라!"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한적과 두 명의 바람막이 살수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유기가 그들의 뒤를 바싹 쫓았고, 무음살객들
도 동시에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맨 앞에서 뛰쳐나가던 한적과 두 명의 바람막이 살수는,
사공운과의 거리가 약 1장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두 세 쪽으로
갈라지며 바닥에 시체로 뒹굴었다.
사공운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공격을
해가던 세 명의 대살수들이 허공에서 몸이 몇 조각으로 갈라지며
죽었다.
바로 뒤를 쫓던 유기가 대경질색해서 자신의 신형을 급하게 정
지시키며, 고함을 질렀다.
"멈춰라!"
그러나 그의 고함이 있기도 전에 이미 앞으로 나섰던 10여 명
의 살수가 미쳐 신법을 멈추지 못하고, 공중에서 몸이 갈라지며
바닥에 무너졌다.
"유령사(幽靈絲)!"
유기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실, 유령대제의 무기 중 하나로 보검보다
예리하고 천잠사만큼 질기다고 했다. 사공운은 미리 쳐 놓았던 유
령사의 그물 속에 서 있었고, 멋모르고 덤벼든 한적과 살수들은
그 유령사에 걸려 조각이 난 것이다.
사공운이 진 앞을 떠나기 전, 숲에 장치한 것이 바로 이 유령사
였다. 유령사는 유령신공을 터득한 자의 유령안으로만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유기가 놀라는 바로 그 순간 사공운의 몸이 나무 뒤로 날아가
며 숲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디에 유령사가 있는지 모르는 살수들은 앞으로 쫓아가지 못
하고 엉거주춤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피를 머금은 유령사 일부
가 허공에 실체를 나타내고 있었지만, 어디에 또 다른 유령사가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유기가 빠르게 죽은 자의 몸을 들고 휘둘러 그 피를 사방에 뿌
렸다. 다행히 사공운의 주위에 있던 유령사가 전부인 듯 했다.
"쫓아라."
유기가 고함을 치며 앞장섰고, 무음살객들은 그 뒤를 쫓아 사공
운이 사라진 쪽으로 몰려갔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자 사공운이 서
있던 바로 뒤의 나무껍질이 허물처럼 벗겨지며 사공운이 나타났
다. 그는 능숙하게 유령사를 거두고 묵가차와 오누치가 있는 곳으
로 신형을 날렸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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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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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유령사혼
ㅈㄷㄱ~~~~~~`````````````````
감사해요~~~^~
ㅈㄷㄳ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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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