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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기쁨3:22~30
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 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내가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위로부터 오신 분의 정체성3:31~36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 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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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제자들이 요한에게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 가서 세례를 받는다고 전합니다. 이에 요한 자신은 그리스도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부를 취하는 신랑의 음성을 듣고 기뻐할 뿐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진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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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기쁨3:22~30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마 3:13~15).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았습니다(막 1:5). 예수님이 성령을 통한 세례를 언급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자(1:33; 3:5),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간다.”라며 제자들이 푸념하자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밝히며, 자기 역할을 신랑 친구 역할에 비유합니다. 그는 신랑 친구로서의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라는 자기 부인의 고백은 사명의 길에 필수입니다.
더 깊은 묵상
● 세례 요한은 자신이 어떤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고백했나요?
사사로운 경쟁심을 버리고 내가 자기 부인을 실천할 영역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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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오신 분의 정체성3:31~36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려 줍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예수님은 위(하늘)로부터 오셨습니다(31절, 신성).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시고(31절, 선재), 만물을 손에 갖고 계십니다(35절, 통치). 예수님은 친히 보고 들은 하나님 말씀을 증언하십니다(32, 34절, 진리).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의 참되심을 인정한 것입니다(33절, 변증).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셨습니다(34절, 사도).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성령을 늘 소유하고 계십니다(34절, 거룩함). 예수님은 아들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십니다(35절,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주어지나,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진노가 임합니다(36절, 심판). 이렇듯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할 하나님 아들이십니다.
● 더 깊은 묵상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증언했나요?
인간 이해를 넘어서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나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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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선을 그리스도께로
목회자는 갈등이 일어났을 때 모든 회중이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문제만 바라보면 문제가 더 커지고, 풀리기는커녕 꼬입니다. 갈등이 일어났을 때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푸실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교회들은 문제가 생기면 회의를 엽니다. 제직회로 모여 갑론을박을 일삼다가, 문제를 모르던 사람까지 알게 되고 문제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갑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는 불문율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아뢰고 기도하기’입니다. 갈등 구조에서 리더십의 역할은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말씀을 더 가까이하게 하는 것입니다. 문제에서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그리스도께 묻고, 문제를 푸시는 그리스도의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질문의 답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중심적 목회를 하면 갈등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면 살길이 열립니다. 오늘날 가장 큰 위기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사든 장로든 집사든 그 누구도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 지체 모두에게 그리스도만이 왕이 되신다면 갈등은 자연히 해결됩니다. 삶과 목회 현장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그리스도의 존귀한 이름이어야 합니다. 그분이 높임받는 것으로 결론이 나야 합니다.
목회를 말하다 / 이규현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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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요한복음 3장 28절
자기 위치를 알고 자기 역할을 감당하는 이가 충성된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린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그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는 예수님이시며,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세례는 예수님의 세례임을 깨우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사역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경쟁이 아닌 겸손한 섬김으로 확장됩니다.
주님만이 궁극의 리더시니 어떤 이도 자신이 유일한 리 더라고 고집하거나 교만해서는 안 된다. - 존 맥스웰
오늘의 기도
주님, 제 삶 속에서 드러나시며 영광받으실 분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주님을 이용하려 하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는 증인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아들을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영생과 구원을 매일 일상에서 누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2-30절 가장 위대하고 가장 신뢰할 만한 사람이 증언하는 진짜 그리스도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이 ‘혹시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존경받았고(눅 3:15), 예수님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실 정도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눅 7:28). 그런 요한이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백성의 신랑’은 예수님이라고 증언하고, 자신은 하나님이 임명하여 보내신 ‘그리스도의 전령’이자 ‘신랑의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고백하며,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고 천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그 어떤 사람과도 감히 비할 수 없는,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의 증언을 통해, 다시 한번 예수님의 뛰어나심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다잡읍시다.
31-34절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셔서 하늘에서 직접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셨고, 하나님에게서 성령을 한없이 받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은 참되시다” 하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을 묵상하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주의 깊게 들을 뿐만 아니라 깨닫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31~34절 ‘위로부터’ 오시고 만물 위에 계신 분이기에, 예수님의 증언은 그 기원과 권위에서 땅에 속한 자들보다 우월하십니다. 또 하나님에게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이기에 그 말씀이 참됩니다. 세상이 듣기에 좋은 증언이 아니라 세상을 살리는 증언이요, 성령의 감동으로 전하는 증언입니다. 그러니 땅(육)에 속한 자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영으로 거듭난 사람들만 그 말을 알아듣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35,36절 하나님께 만물을 다스릴 전권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 곧 영생을 얻지만, 예수님을 부정하는 사람은 이미 임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기에 영생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믿고 순종하는 순간, 영생이 시작됩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2~27절 예수님과 요한이 각각 멀지 않은 곳에서 세례를 베풀 때 사람들이 다 예수께로 몰려갑니다. 요한은 그 이유를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습니다. 예수님의 흥함도, 자신의 쇠함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쇠퇴해가는 사역에 대한 자기 합리화나 변명이 아니라, 쇠함마저 하나님의 뜻임을 아는 사역자의 정직한 고백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때를 알고, 받은 것에 자만하지 않고 받지 못한 것에 낙담하지 않는 요한의 그 마음과 삶을 우리도 구합시다.
28~30절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신부로 맞을 신랑이고, 요한은 신랑과 신부의 만남을 돕는 들러리입니다. 혼인날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입니다. 신랑의 친구인 들러리의 역할은 오로지 신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것이 들러리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이 기뻐하고 신랑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이제껏 요한이 살아온 이유이고 사역의 목표였습니다. 어떤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삶이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명에 충성하여 소명을 잘 감당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깁니까?
29,30절 예수님의 신실한 증인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가고 예수님이 주목받으시는 것을 기쁨으로 삼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사람들을 자기에게 이끌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면 증인이 주인의 자리를 탐하게 됩니다. 나는 신실한 증인입니까? 예수님이 흥하신다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간다면, 내가 쇠하더라도 기뻐할 수 있습니까?
35,36절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영생의 길입니다.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물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통치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불신과 불순종은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반역이며 그 보응은 진노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사는 방식은 그분의 주권(통치)에 어울립니까?
기도
믿음이 자기 성공과 성취를 위한 수단이 되지 않게 하소서.
공동체-예수님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믿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요한복음3:22-36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는 것을 떠나
예수님에게 세례를 받을때 세례요한의 자신의 정체성과 겸손을 볼수 있습니다.
니고데모와의 만남이후 예수님은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동일한 시간에 세례요한도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받는 사람들중 요한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너의 선생에게 세례받기 보다
예수님에게 세례를 받는다고 전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이 사실을 세례요한에게 전했습니다
세례요한의 반응입니다 세례요한은 28절에 나느 그리스도가 아니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29절에 자신은 신랑의 (=예수님) 의 친구로서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신랑의 친구로서 기쁨이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1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고했습니다
이 상의 사실에서 세례요한의 자기 정체성과 겸손을 봅니다
자기 정체성이라고 하는것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고
겸손은 친구로서 기쁘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도 좋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만 알면 된다는 마음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세례요한은 온전히 주님의 길을 준비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례요한과 같이
예수님께 집중하면 모든 것이 기쁨이요 은혜라 생각합니다
세례요한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바램은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소개합니다
31절에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위에 계시고
... 하늘로 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위에 계시나니"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으면 35절에 영생을 얻고
그러나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주실 영생에 집중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신랑의 친구로서 기쁨이 충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도 그런 모습으로 살기 원합니다
요한복음의 주제 중 하나는 영생입니다 사실 모든 생물은 생존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영생을 갈망해 왔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18:18)
그때 주님의 가르침은 살기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는 자기를 부인하고,
결국 자기부인의 절정인 십자가 죽음에 자기를 넘기고, 주만 시인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그래서 주님께서 먼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기부인의 도를 보이시고,
끝까지 아버지만 시인하시더니, 정말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영생의 도를 여셨습니다
요한도 같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사람은 늘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으려 합니다 그래서 영웅을 찾고, 자기가 선택한 그 사람이 불세출의 구원자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다가 아닌 것이 드러나고 실망하게 되면, 다른 자를 찾거나, 또는 확증편향에 치우쳐 용비어천가를 지어 그의 문제를 덮으며 그를 우상화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런 모든 것을 단호히 배격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의 정통성에 대해 논쟁하다가 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요3:26)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조처해달라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대답은 자기는 부인하고 주는 시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27~30)
또한 주를 시인하여, 자신은 땅에 속한 자이나, 주는 하늘로부터 오신 이로서 말물 위에 계시고, 참되시다 인정되셨고, 성령을 한량 없이 주셨으니, 그가 영생도 주시고 심판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22~36)
그러므로 우리도 주는 흥하시고 나는 쇠하여서,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갈 운명을 가진 땅에 속한 우리의 자아는 부인하여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영생의 주이신 예수님만 시인하여,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십자가의 도, 영생의 도만 따르기 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22~30
하나님의 이름은 이미 높여져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견고하게 하는 일은 교인들의 수가 많고, 얼마나 많은 헌금을 내고, 열심히 봉사하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7장 7-10절에 무익한 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너희 중 누가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우리가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것은 우리가 성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유익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런 유익이 없다면 왜 여러분은 교회에 오십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나라에 아무런 유익이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았기 때문에 주인을 위해서 감사함으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흥하여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부활하셔서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무익한 종처럼 순종하며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흥하게 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나를 희생해서, 나를 낮추어 하나님을 높여 드리려고 합니다.
런데 이런 일은 마치 나의 열심으로, 나의 노력으로, 나의 능력으로 나를 높이려는 것과 똑같습니다.
오늘 하루의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무익한 종으로서 신실하게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십시오.
31~36
오늘 본문은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온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하늘로부터 오는 영생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것은 복입니다. 이제 이 진리를 알고 있다면 하늘의 원리대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성공의 잣대를 두는 자들은 36절이 지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바리새인처럼 순종을 빙자해서 또 다른 율법을 만듭니다.
인간 중심적으로, 세상 중심적으로 사는 것이 땅에 속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 중심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원리로 삶을 살아가는 자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서 그가 원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루어낸 일에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이 일을 이루게 하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이 무엇입니까?
시편전자는 시편 73:28에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말합니다.
이 땅의 복을 찾아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구원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복을 경험해야 합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마다 신령한 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참여하게 만들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내는 삶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어떠한 상황 속에 있던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타내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요3:22-36)
세례 요한은 자신의 존재와 사역의 근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온전히 하늘로부터 주어진 일이란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확신이 흥하고, 쇠하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미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됩니다.
심지어 자신의 곁에 모인 제자들과 사람들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조차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당연한 할 일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자신은 쇠하여야 하고, 예수는 흥하는 것이 오히려 기쁨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와 사역을 이런 마음 중심으로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나와 우리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만 높이기 위해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쇠하는 것이 당연하고도 만족하고도 기쁜 일인지 다시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주님만 높이며 살게 하소서!
1.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가진 불만이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 사례를 들어 말해봅시다.
2. 제자들의 불만에 대한 요한의 답을 묵상해봅시다.
나는 나의 삶 속에 그런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지,
혹은 그렇게 살아왔는지 돌아봅시다.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요한복음 3: 22~36 조연의 기쁨을 아십니까?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예수님이 칭찬했던 인물 세례요한
어쩌면 이렇게도 분명한 소명의식을 같고 살수 있었을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자신에 대해서 분명한 정체성을 발견했던자.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던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오직 예수님이 잘 되시는 일에
예수님만이 영광 받으시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던 한 사람 세례요한.
나도 그 소명을 깨닫고 싶다.
세례요한 정도면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도 누릴수 있었을 텐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한분
위로부터 오시는 이
하늘로서 오시는 이
하나님이 보내신 이
에만 관심과 영광과 존귀를 돌렸던 분
신랑이 신부를 취하는 것으로
크게 기뻐하는 친구 들러리들 처럼
기쁨이 충만한 세례요한
나도 이런 요한을 닮고 싶다.
세례 요한을 통해 복음 사역자의 자세를 살펴보도록 한다.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요한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그때 세례 요한은 자기의 역할에 대해 분명히 밝힌다.
자신은 신랑이 아니라 신랑 친구이며 결혼식의 들러리로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한다.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섬길 때 우리의 역할은 거기까지이다.
예수님의 기쁨과 예수님을 만난 성도의 기쁨에 참여하는 들러리의 기쁨에 만족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가 만나도록 연결해주는 중매장이에 불과하다.
중매장이는 신랑과 신부가 만날 수 있도록 자리만 마련해주고 눈치껏 빠져야지 계속 눌러 있으면 주책일 수밖에 없다.
세례 요한은 그것을 두고 나는 쇠해야 되고 그는 흥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나는 십자가 뒤에 숨겨지고 예수님은 더 많이 드러나야 올바른 신앙생활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돋보이게 돕는 엑스트라일 뿐이다.
그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은 욕심이요 교만이다.
요한은 앞에서부터 예수님이 말씀해 오신 것을 요약한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분의 말씀은 권위가 있고,
둘째,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하나님이 부어주신 성령으로 말씀하기 때문이며,
셋째, 말씀에 순종하는 여부에 따라 영생과 진노의 삶이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세상은 다른 사람보다 높아져야 성공한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신뢰함으로 겸손하게 소명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칭찬한다.
하나님은 겸손한 태도로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며 맡은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찾으시고 계신다.
오늘의 말씀요약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서 세례를 받는다고 말하자,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부를 취하는 신랑의 음성을 듣고 기뻐할 뿐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진노가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세례 요한의 기쁨(3:22~30)
사명을 맡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입니다(고전 4:2).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에
충성하며 사역하고 있을 때, 자신이 세례를 주고 증언했던 예수님의 소식이 제자들을 통해 전해집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비하면 자신의 사역은 보잘것없었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의 반응은 보통 사람과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을 시기하거나
깎아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역자는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만 높아지는 것을 기뻐한 세례 요한의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보고받은 세례 요한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 적용 질문: 세례 요한이 보여 준 태도에서 내가 사명을 감당할 때 적용할 점은 무엇인가요?
성자를 믿어야 주어지는 영생(3:31~36)
요한복음은 삼위일체 하나님, 그중에서도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위로부터 오시는 이’,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로 지칭하며,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또 예수님이 하늘에 관한 것을 증언하기 위해 오셨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란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그 뜻을 행하시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아버지께서 만물을 아들의 손에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세상을 구원하는 일과
심판하는 권세를 완전히 위임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예수님을 보내신
성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 묵상 질문: 본문에서 예수님을 가리키는 여러 명칭을 찾아보고 그것이 무엇을 강조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 적용 질문: 내게는 영생이 있나요, 없나요? 어떻게 하면 지금 이곳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사람들의 인정에 목말라하고, 다른 사람의 잘됨에 시기하고 분노했던 완악함을 회개합니다.
모든 일에 ‘주님은 높임받으시고 나는 낮아져야 하는 진리’를 적용하며,
세례 요한과 같이 겸손한 종이 되게 하소서.
그분이 흥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는 그 말은 곧 그가 감옥에 갇혀 죽음에 이르는 사건을 예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가 여자에게서 난 자 중 가장 큰 자라는 칭찬을 받게 된 것은,
이처럼 메시아를 직접 보았고 그분을 알아보고 인정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 전 그 문을 닫은 사람이었음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삶 가운데 역사하시고, 우리의 인생 가운데 주인이 되시는 그분을 인정하고 그 음성에 따라 순종하는 자로 살아가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여전히 우리 가운데 꿈틀대는 죄의 모습을 주님 앞에서 가릴 수 있다고 여기고, 입술을 열어 주님의 역사를 하나님의 뜻으로 증거하는데 머뭇거린다면,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것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위치를 돌아보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 엎드리고 배우는 거룩한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위에서 오시는 그분(31절), 하나님이 참되신 분임을 인정(33절)”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어머니 모태로 다시 들어가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며 시간적 개념을 사용하여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위에서 오시고, 만물 위에 계신다는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수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 증거를 받는 자가 될 때 거듭남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성령님의 인치심이며, 우리 삶 가운데 맺히는 성령의 열매가 될 것입니다.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전쟁에서 얻는 전리품으로 우리에게 이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공급하시는 것입니다. 그 최종적 전쟁의 승리는 오직 주님만이 ‘보고 들으신 것(32절)’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이미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주시는 영생과 성령을 믿고 순종하는 삶 만이 남아 있습니다. 하늘의 승전가를 부르며 남은 이 땅 가운데 전쟁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믿음의 인생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 3:1~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마11:11)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눅 9:7-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2~1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 4:7-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57-58
어둠 가운데, 무지로 가득한 인생을 찾아오셔서 밝혀주시고 깨우쳐주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소망과 확신 가운데로 초청해 주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높여드립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그 반석 위에 굳게 서서 주님의 행하신 일들을 찬양하며
고백하는 담대한 증인의 삶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전히 그 빛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있지만,
소금과 빛으로 우리를 부르셨으니 우리를 사용하셔서
그 구원의 감격을 거하는 곳에서 선포하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발걸음 위에 기름 부어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질병의 고통으로, 자녀의 아픔으로 신음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자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그들을 만지시고 일으켜 주시옵소서. 온갖 분열과 정쟁으로,
보이지 않는 피로 물든 이 땅을 고치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뤄가는데 부족함이 없는
제사장의 옷으로 덧입혀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