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온다."
깊은 밤,한 무리의 남자들이 숲길 양옆의 수풀속에 숨어있다.
그들은 검은 망토로 몸을 감고 있었는데 그중 한남자가 길 저편에서 조용히 달려오는 마차를 가리키며 작게 속삭였다.
마차는 작고 초라해 보였으며 느리지만 상당히 조심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들은 마차가 자신들이 숨어있는 곳을 지나치자 그제서야 천천히 수풀을 헤치며 마차의 뒤를 쫓았다.
한 30분쯤 흘렀을까? 길이 숲 바깥쪽의 커다란성당을 둘러싼 호수에서 멈췄다.
"워,워."
마부가 말을 멈추자 마차 안에서 한 남자가 작은 상자를 들고 내렸다.
그들의 뒤를 쫓아온 한 무리의 남자들은 여전히 수풀속에 몸을 숨기고 그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상자를 든 남자가 다리앞에서 뭐라고 외치자 한 수도승이 성당 안쪽에서 나왔다.
상자를 든 남자가 그 성당안으로 들어가고 다시 몇분의 시간이 지나자 그 남자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남자를 다시 태운 마차가 왔던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하자 드디어 한무리의 남자들은 수풀을 빠져나와 그 커다란 성당으로 향했다.
그들은 성당의 뒤쪽에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수도승들은 이미 그들의 기숙사에서 잠들어 있는듯했다.
그들은 능숙한 솜씨로 몇개의 문의 잠금쇠를 열어보고 방안을 기웃거렸다.
"찾았습니다."
한명이 작게 외치자 다른 이들이 몰려들었다. 과연 그 남자는 방금전에 마차에 타있던 사람이 가지고 있던 상자를 들고 있었다.
"철수한다."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시하자 그들이 재빠르게 자신들이 열었던 잠금쇠와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통로가 ㄱ자로 꺽이는 곳에서 불빛이 어른거리더니 기침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재빨리 작업을 끝내고 자신들이 들어왔던 문을 열고 나갔다.
횃불을 든 수도승이 통로의 꺽인 부분을 들어섬과 동시에 문이 닫겼다.
횃불을 든 수도승은 뒷문을 보고 갸웃거리더니 방문들과 잠금쇠들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수도승은 다시 머리를 갸웃거리고는 통로를 되돌아갔다.
***
"휴. 성공했군."
망토를 뒤집어쓴 이들이 저마다 망토를 벗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길 도대체 이게 뭐길래 이고생이지? 그냥 마차에 있을때 탈취하면 될것 가지고."
"의뢰인이 그랬잖나. 이 상자가 여기에 도착하는 걸 확인한뒤에 가져가라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있는 데 상자를 들고 있던 남자는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동료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봐. 이게 뭔지 궁금하지 않나? 한번 열어보는게 어때?"
"이봐,그건..."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리려고 했으나 이미 상자를 들고 있던 사람은 만능열쇠를 열쇠구멍에 강제로 끼워넣고 돌려보고 있었다.
'찰칵'
맑은 소리와 함께 상자의 자물쇠가 풀렸다.
상자를 들고 있던 사람은 기대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보았다.
"허억!"
대단한 보물이라도 들어 있어서 나온 탄성이 아니었다. 상자않에 들어있는 것은 달랑 종이 한장이었다. 그걸보고 너무나도 놀란지라 나온 소리였다.
"제기랄! 이게 도대체 뭐야?!"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 종이 때문에 우리가 이고생한거야? 내참 더러워서."
저마다 한마디씩 분노가 가득담긴 불평을 쏟아붇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상해지자 대장은 그에게서 종이를 뺏아들었다.
그러나 워낙 어두운 밤인지라 종이에 뭔가 글자가 써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읽어볼수 없었다.
그는 그 종이를 들어 올려보았다. 달빛에 의해 글씨의 윤곽을 흐릿하게나마 읽을 수 있었다.
"허억!"
이번엔 대장의 입에서 잔뜩 놀란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엔 진짜였다. 대장은 벌어진 입을 다물줄 몰랐다.
"왜 그래 대장?"
상자를 열어봤던 남자가 영문을 몰라 대장에게서 종이를 뺏아들고 달빛에 비춰보았다.
그는 경악했다. 종이에는 각국의 왕들과 추기경,그리고 교황의 친필사인이 담겨 있었다.
바로 7년 간격으로 갱신되는 라이란 전쟁 휴전조약의 조약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