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낮잠을 청하는 날
살짝 깊은 잠이 들었으려나
베란다 하수구 쪽에서 물소리 들려
일어나 보니 빗소리 거세다
아침까지 말짱하던 하늘이라
웬 비가
곧이어 하늘이 갈라지는 듯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
잠깐의 낮잠으로 맑아진 눈을 들어
비 내리는 밖을 응시한다.
늦여름 비 내리는 저녁이라
그땐 가끔
비 오는 저녁이면 마당 귀퉁이 밭에 자라는
정구지 뜯어 밀가루에 치대어 수제비 끓여서
양념간장 훌훌 끼얹어 먹곤 했지
빗줄기에 섞여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면서 말이지
울 아부지
잔소리 발동걸리게 하는 수제비에 관한,
그 귀한 밀가루 조선 땅덩어리 반만큼 늘리고 늘려
손국수나 밀어 먹어야지 수제비가 당키나 하냐고
감자 호박 한 바가지 썰어 넣고
물 반, 국수 반 해서 배터지게 먹는게 낫지 암,
잔소리 말미쯤 가면
수제비는 별미 중에도 별미라
혹 귀한 손님 오실 때 외는 하는 거 아이라고
(하얀 밀가루가 귀한 시절이라 )
나는 아직 소녀티도 안 나는 열서너 살
홍두깨 방망이가 딱 내 키만 한데
그걸 작은 손 두 손으로 양쪽을 꽉 잡고
무릎을 꿇고 앉아
원수같이 흐르는 땀으로 목욕한 채
국수 반죽을 밀고 있을라치면
집 앞을 지나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아이고 자야 니는 우예 국수를 다 밀고 있노
”얼라같은기 국수 밀어 놓은 거 봐라,
“우예 이리 얇고 넓게 잘 밀어 놓고 ”야
니 겉은 아가 어디 있겠노
여름 저녁 국수 밀기 싫어 요리조리 피해 봐도
밥을 하면 치도곤을 맞으니까 이틀에 한 번은
마당 가마니 위에서 국수를 밀던 그 여름
이렇게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마당에 가마니도 못 깔고 됫박 같은 방에서
흘리는 땀과 밀가루와 범벅이 되어서 힘들다고
시키지 않으니 좋았지
대신 집 앞 미나리꽝 부근에 나가
지멋대로 자란 정구지 베어다 반죽에 치대어
수제비 끓이는 건 너무도 편하고 쉽고 좋아서
폴짝폴짝 튀어 오르는 수제비 국물에
팔과 손이 데어도 멈추거나 놀라 뒷걸음
치는 일 없이 찰떡같은 반죽을 늘여 수제비를
뜨곤했지.
비 내리는 저녁에 먹는 수제비
향긋해서 맛있고 쫄깃거려 맛있고
조선간장 위에 동동 뜬 참기름
쫑쫑 썰어 넣은 파, 고추 건덕지,
한 술 건져 휘~ 섞으면 알콤 매콤
꼬솝하고 쫄깃한 수제비의 맛
시원한 여름 소나기의 맛
며칠째
질금거리며 내리는 비에 넌더리가 나는
늦여름 저녁 무렵이면
여름내 식구들의 등짝에 밴 땀으로 절은
댓 자리도 축축하고 선 듯하여 불결하여
싫고
저녁을 하러 정짓간 아궁이 앞에 서서
위를 쳐다보면
그을음에 잘 훈제된 정짓간 선반이나
시렁 위로
신발 몇십 켤레는 족히 신을 것 같은
지네와 노린내 나는 돈벌레가
느릿느릿 마른 곳을 찾아
기어 다니는 보기 싫은 광경도 아, 싫었다
비가 오래 머물면 축축하고 불결한 것이
와르르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지 늘,.. 언제나
그리고...
해는 지고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라던가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 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만 둘이서 눈물 흘린다~~
이렇게 청승스레
노래 부르던 그런 날도 있었던 시절
저녁 무렵 쏟아지는 비를 보며
사라진,
잊혀진다 해도 좋을 뻔한
내 소녀 시절 풍경 한 자락
눈에 훤히 보이는그모습
정구지 뜯어 수제비
너무 먹어보고싶은
그옛날의 수제비
어디가도 맛볼수없지요
가끔 궂은날
무지 더운날
신촌의 신촌수제비 먹으러 나갑니다^^
그러세요 추억으로 먹는 맛은 과거요
지금 맞는 입맛으로 먹는 것은 또 새로운 맛입니다
사실 다 아는 맛이라서 그렇지
맛으로 따지면 요즘 화려한 양념 들어간 음식이
훨 맛있지 않겠어요? 그치요 ㅎㅎ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철 칼국수 한다고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땀뻘뻘 흘리며 밀던때가
떠오릅니다.
칼국수던 수제비던 제
기억으론 그냥 멸치 육수
에다 정구지 넣구 끓이고
양념장 으로 간 맞추고
먹었는데 억수로 맞나게
먹었어요.
그냥 별미 특별한 날에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간단한 래시피 였지만
사먹어도 그 맛 근방에도
가지 않는건 선명하게 새겨진
정겹고 구수한 추억 때문에
그런거 아닌가 싶어요.
요새 입맛이 없을때 수제비
집을 찿아보지마는 그런
추억에 맛 근방에도 가지
않는듯 합니다.
속상하다 집이 근처면 얼마나 좋으랴
그깟 음식 많이 먹지도 못하는 거 못해줄게 뭐람
내가 다 속상하다 자네 수제비 먹고 싶다 하니 어야꼬
에궁
금박사님
서울 신촌에 현대백화점뒤 신촌수제비집 있어요 40년정도
오래한집이고요
그냥 담백한맛인데 맛괜찮습니다 한번가보세요
@오브엠 어이구 감사합니다.
서울가서 한번쭈욱
둘러보아야 겠군요.
이지방에선 이상하게
제입맛에 매칭되는곳이
없더군요.
제가 배워서 해야하나
고민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8.20 22:43
수제비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운선님의 유년 시절은
늘 애틋해요.
엄마가 하는 일을 어린 소녀가
다 했으니~
덕분에 좋은 음식 솜씨로
남매 훌륭하게 잘 키우셨으니
이젠 그저 한자락 추억일 뿐이겠지요.
운선님 글 너무 좋습니다.
어째요 요새 자주 보여주셔서 저는 좋습니다
이렇게 보는 구나 싶어서요
제라님 댓글 덕을 많이 봤는데 신세도 못 갚고 ㅎㅎ
하긴 저는 댓글 다시는 분들께 늘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제라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수제비~~옛 생각이 나요.
생각나지요 ㅎㅎ 오늘 함 끓여 드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예 저희들도 정지라고 부르지요 가끔 정짓간이라는 억센 악센트를 쓰곤했지만요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음식이지만 그 담백한 맛의 서민들 음식이라 이렇게
기억해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반지름님 ~
수제비, 칼국수 잘 하는 단골집이 주인이 바뀌더니 그 맛이 나질않아 안가네요.
강릉 운선남댁으로 가야하나… ㅋㅋㅋ
밀가루 자체 식감이라곤 끈기 뿐이니 반죽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렸고 그리곤 육수와 양념 등속에서 맛이 어우러지죠
요즘은 반죽 뭉쳐 하루쯤 냉장고 넣었다 하니 찰기가 좋더군요 어쩌다 먹어야 ㅎㅎ별미지 자주 먹으면 악식 소리나 듣는 밀가루 먹거리 얘기 깨비님 감사합니당~
저는 어릴때 하도 먹어서 지금도 않먹어요 매운탕집에가면 수제비 넣지 말라고해요
저도 국수는 먹어도 수제비는 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