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월간지 신동아는 만주 지역이 조선의 영토였음을 입증하는 유럽 고(古)지도가 대량으로 발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경희대 부설 혜정박물관(관장, 김혜정교수)은 18세기 압록강-두만강 이북 집안, 간도지역이 조선의 세력권이었음을 보여주는 서양 고지도 69점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신동아는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이 한반도 이북 지역에서 형성됐음을 보여주는 서양 지도가 이처럼 대량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습니다.
1749년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리(D’Anville)가 제작한‘et des Rojaumes de COREE ET DE IAPAN’ 지도. 한국 평안도(PINGAN·왼쪽 밑줄)가 압록강 이북의 현 중국 집안지역까지로 돼 있고, 함경도(HIENKING·오른쪽 밑줄)도 두만강 이북 간도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당빌리는 프랑스 왕립과학아카데미 회원이었다.
1801년 영국 지리학자 존 케리가 제작한‘A NEW MAP OF CHINA’.
1745년 키친(T. Kitchin)이 제작한 ‘A Map of QUAN-TONG or LEA-TONGE PROVINCE ; and the KINGDOM of KAU-LI or COREA’ 지도. 동해를‘SEA OF KOREA’라고 표기했다.
1740년 예수회가 선교를 목적으로 프랑스어, 네덜란드어로 제작한‘La CHINE avec la KOREE et les Parties de la TARTARIE’ 지도.
1771년, ‘본 도법’으로 유명한 지리학자 본이 제작한‘CARTE DE LA TARTARIE CHINOISE’ 지도.
1778년 잔비어(Janvier, j. & Santini, F) 등이 제작한 ‘L、ASIE divisee en ses principaux Etats’아시아 지도. 중국과 한국의 국경선이 압록강, 두만강 이북에 형성된 것으로 나온다. 한국을 녹색 테로 둘러 ‘COREE’라고 표기했으며 동해는 ‘MER DE COREE’로 표기했다.
1794년 윌킨슨(R. Wilkinson)이 제작한 ‘CHINA, Drawn from the Latest & Best AUTHORITIES’ 지도.
1920년 로마교황청이 작성한 교구도. 원본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한반도를 서울, 대구, 원산의 3개 교구로 나눴는데, 간도 지역이 ‘원산(Wonsan) 교구’에 포함돼 있어 간도와 한반도가 동일 생활권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1909년 일본 조선통감부 임시 간도파출소 잔무정리소가 제작한‘백두산 정계비 부근 수계 답사도’. 백두산(검정색 원) 정계비는“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을 압록강-토문강으로 한다”고 적고 있는데, 이 지도는 토문강(土門江·갈색 원)과 두만강(豆滿江·청색 원)은 다른 강이며, 두만강 이북에 토문강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220년 전인 1785년 일본의 대표적인 지리학자인 하야시 시혜이(林子平)가 제작한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之圖)'로 빨간선 안에 울릉도와 독도(우산국)가 하나의 큰 섬으로 그려져 있다.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정병준 교수(40)는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영국정부의 자료를 발굴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를 위해 연합국과 패전국일본이 1951년 9월 8일에 조인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준비과정에서 유일하게 작성된 지도이자, 독도를 한국영토로 명백히 규정한 자료다.
1951년 9월에 개최된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 직전인 그해 4월 7일 제작한 연합국 일원인 영국정부의 일본 영토지도에 다케시마로 표기된 독도는 한국 영토에 포함돼 있다. 사진에서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이 다케시마로 표기된 독도이다.
그동안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약에 일본영토를 확실히 하는 지도가 첨부되지 않았다는 빌미로 독도를 포함해 러시아와 북방 4개 섬, 중국과의 조어도 영유권 분쟁을 야기해 왔다. 또 부산외국어대 김문길 교수는 1785년 일본의 대표적 지리학자인 하야시 시혜이가 제작한 '조선팔도지도'를 발견했다며 27일 원본을 공개했다. 한반도 전체를 노란색으로 채색한 이 지도에는 북위 39도에 울릉도와 독도(우산국)가 하나의 큰 섬으로 그려져 있고, 울릉도 우측 바다가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표기돼 있다.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地圖) 18세기 말, 채색필사본, 169.0 * 93.0cm,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18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도. 조선 후기 지도 발달에 큰 획을 그었던 정상기의 <동국지도>의 수정본 계열에 속하는 전조(全圖)이다. 각 도의 군현을 원으로 나타내고 바탕색을 구별함으로써 팔도의 경계를 구분하였다. 감영(監營), 병영(兵營), 수영(水營)은 사각형으로, 진보(鎭堡), 역(驛)은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우측 주기(註記:지리정보)에는 서울에서 각지에 이르는 거리를 수록하였다. 다른 전도와 달리 도로망을 그리지 않아 미완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18 ~ 19세기로 이어지는 조선전도의 발달과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지도이다.
아국총도(我國摠圖, 여지도) 18세기 말, 채색필사본, 152.2 * 82.0cm,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정조대에 제작된 지도첩인 <여지도(輿地圖)>에 수록된 전국지도. 전체적인 윤곽은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따르고 있다. 이 지도는 무엇보다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데, 산줄기를 녹색으로 하천을 청색, 그리고 팔도의 군현을 색채를 다르게 하여 구분하였다. 또한 해안의 섬들이 아주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 시기 도서 지방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던 사회적인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지금의 독도가 울릉도 동쪽 동해에 우산도(于山島)라는 명칭으로 표시되어 있고 대마도도 그려져 있다. 지도의 여백에는 국토의 좌향(坐向), 동서와 남북의 길이, 사방(四方)의 끝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그리고 각 도의 군현 수가 기재되어 있다.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18세기 후반, 채색필사본, 252.5 * 139.5cm, 개인소장
조선 후기 지도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는 정상기(鄭尙驥, 1678 ~ 1752)의 <동국지도>이다.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지도>는 대전도와 팔도분도가 있는데 현존하는 것은 대부분 팔도분도이고 대전도는 매우 드물다. 이 지도는 제척(梯尺)의 형태인 백리척을 사용하여 그린 대전도로서, 당시로서는 대축척지도인 약 1 : 42만 지도이다. 한반도 북부지방의 왜곡된 윤곽이 정상기의 지도에서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지도는 대전도를 후대에 전사한 것으로 초기의 지도에 비해 정교함이 다소 떨어지지만 원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지도는 1757년(영조 33)에 영조의 명으로 정상기의 <동국대전도>를 모사하여 홍문관과 비변사에 보관하도록 한 모사지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과 강, 섬 등 자연 지명과 군현 이름, 창고, 진보(진보), 찰방, 산성 등 인문 지명 및 중국과 일본 등 모두 2,580여 개의 주기(주기)를 담고 있다. 산맥의 표현은 백두산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뻗어내린 백두대간을 크게 강조하고, 여기서 뻗어나간 주요 산맥들을 강조함으로써 국토를 인체(人體)로 인식하는 전통적 지리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병영, 수영, 읍성, 진보, 찰방, 봉수 등을 기호화하고, 산성, 고갯길, 관문 등을 그림으로 표현한 진일보한 방식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19세기 김정호에 의해 한 층 더 발전했다. 한편 지도에 육로, 해로, 고갯길을 나타내어 군사적, 경제적, 행정적 필요를 모두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해좌전도(海左全圖) 1850년대, 목판본, 97.8 * 55.4cm, 개인소장
19세기 중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표적인 목판본 조선전도. 지도의 윤곽과 내용은 정상기의 <동국지도>와 유사하며 산계(山系)와 수계(水系), 자세한 교통로 등이 동일한 수법으로 그려져 있다. 지동의 여백에는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 등 10여 개의 명산의 위치와 산수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섬 정계비, 초량왜관(草梁倭館) 등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 그리고 고조선(古朝鮮), 한사군(漢四郡), 신라구주(新羅九州), 고려팔도(高麗八道)의 고을 수를 좌측상부의 여백에 기록하여 우리나라의 현재와 과거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 지도로서, 목판 인쇄술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보이고 있다.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 1557년, 채색필사본, 국보 제248호, 132.0 * 61.0cm,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국보 제 248호로 지정된 조선전기의 전도. 이 지도는 전국에서 올라오는 진상품을 관할하던 제용감(濟用監)에서 제작한 지도로 대마도(對馬島) 종가(宗家)에 보관해 오던 것을 1930년대에 조선사편수회에서 종가문서를 인수하면서 한국으로 되돌아 왔다. 조선 전반 세종대의 과학적인 지도제작 사업은 세조 때 정척과 양성지의 <동국지도>에서 결실을 맺었는데, 이 지도는 <동국지도>의 사본으로 추정된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제외하면 하계망이 비교적 정확하다. 산줄기는 풍수적 지리인식에 기초한 연맥으로 표현하였다.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海東八道烽火山岳地圖), 17세기 후기, 채색사본, 218.0 * 149.0cm, 고려대 도서관 소장
이 지도는 이전의 어느 지도보다도 색감을 중시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지도이다. 많은 산봉우리에 봉화가 촛불처럼 그려져 있는데, 특히 압록강, 두만강의 국경 지대에 밀집되어 있다. 주현읍치(州縣邑治) ·도로, 산천과 대소 산맥 ·준령(峻嶺) ·성곽 ·역참(驛站) ·봉수대 등을 그려 넣어 봉수의 직간선(直間線)을 한 번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서해쪽의 네모 안에는 목멱산(木覓山:서울의 남산)을 중심으로 한 함경강원도래양주아차산봉수(咸鏡江原道來楊州峨嵯山烽燧) ·경상도래광주천림산봉수(慶尙道來廣州天臨山烽燧) ·평안도육로래모악동봉봉수(平安道陸路來母岳東峯烽燧) ·평안황해도수로래모악서봉봉수(平安黃海道水路來母岳西峯烽燧) ·충청전라도래양천개화산봉수(忠淸全羅道來陽川開花山烽燧) 등 5대 봉수로와 동서 및 남북의 길이, 서울에서 동서남북 주요지점까지의 거리 등이 표기되어 있다.
<채색필사본, 19세기 전기, 96 x 65.5cm,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정상기가 만든 <동국지도> 유형의 조선 전도이다. 조선전도는 팔도를 모아 전국을 한눈에조망하고 휴대하기 간편하게 만든 것이다. 전도인 이 지도에 정상기의 발문과 축척인 백리척이포함되어 있어 지도상에서 거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군현의 이름을 오방색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경기는 순황색, 충청은 홍백생, 호남은 순홍색, 영남은 청홍색, 강원은 순청색, 해서는순백색, 관서는 백흑색, 관북은 순흑색으로 표현하였다. 지고에 산, 천, 지, 나루, 봉수, 창, 진, 산성, 창고, 절 등이 표시되어 있으나 도로망은 그려져 있지 않다.
조선의 건국 후 수도를 옮김에 따라 전국 지도, 세계지도, 각 도별 지도 등이 제작되었다. 특히 세종, 세도 시기의 과학기술의 발달과 지도제작에 대한 큰 관심은 유명한 지리학자였던 정척과 양성지가 <동국지도>를 완성 제작함으로써 큰 결실을 맺은 바 있다. 한 때 조선 초기에는 대체로 국가가 주관하여 지도를 편찬하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지도로서는 많은 국가의 고관들이 참가하여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1402)가 있다. 이 지도는 <천하도>로서 상상적 세계관을 나타 낸 원형 세계지도로서 조선조의 특징적인 지도로 중요하다.
<목판본, 18세기 후반, 28.5 x 34cm, 영남대학교 소장>
팔도 전도와 도별지도를 포함한 동람도 형식의 지도책 속에 실린 세계지도. 천하도는 조선에서 특히 유행하였던 원형의 지도이다. 지도의 중앙에는 중국, 조선이 포함된 중심대륙이 자리잡고 있다. 그 대륙을 바다가 둘러 싸고, 그 둘레에 다시 고리 모양의 대륙이 있으며, 그 바깥에는 대양이 둘러 싸고 있다. 천하도에는 실제 존재하는 지명 보다 대인국, 소인국, 여인국, 등 <산해경>에 나오는 상상의 지명이 많이 나타 난다. 이 지도는 서양에서 도입된 정사도법의 경위선을 추가하여 서양식 지도 기법을 가미하고 있다.
<목판본, 16세기 후반, 26x 34.6cm,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책 <동람도>제 1면에 수록된 우리나라 지도 전도. 동람도에는 우리나라 전도인 팔도총도와 도별지도 8매가 포함되어 있으며 판심에 '동람도'라 적혀 있다. 현존하는 동람도는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에 비하여 이지도는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사료상의 가치가 매우 높다. '팔도 총도'는 지도의 길이가 동서가 남북의 길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넓어 한반도 전체와 특히 북부지방이 남북으로 압축된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 전체를 대산으로 하여 그린 조선저도는 우리 국토를 상징하는 지도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지도이다. 조선전도에는 선조들의 국토인식과 자연관이 반영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지도의 완성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지식의 수준, 지도제작의 기술, 예술적 표현능력 등이 반영되어 있다.
조선전도는 조선 초기부터 국가적 사업으로 제작되었는데,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국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에 새로 개척된 북방지역에 대한 인식이 고양될 수 있었다. 그 결과 15세기 중엽에 정척과 양성지의 <동국지도(東國地圖)>가 탄생되었으나, 실물이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국보 248호)가 남아 그 흔적을 전해준다. 또한 조선 전기 지리지의 집성편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동람도(東覽圖)>는 간략한 지도이나 민간에서 널리 애용한 점에 의의가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 민간의 뛰어난 지도학자들이 지도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18세기 중엽 정상기(鄭尙驥)는 한반도의 윤곽을 거의 실제와 가깝게 그려내, 조선전도의 분수령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정교하고 사실적인 지도와는 달리 <동람도>와 같은 소략한 형태의 지도가 민간에서 제작 유포되었는데, 역사부도 및 여행용 지도로서 폭넓게 이용되었다.
1861년에는 당시까지 축적된 지도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탄생되었다. <대동여지도>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조선저도의 완성편으로, 독창적인 지도학적 기법과 표현방식, 목판 인쇄를 통한 지도의 대중화, 예술적 감각과 정확하고 풍부한 내용의 지도의 전도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자료>
『한국의 지도- 과거, 현재, 미래』 (국립지리원, 대한지리학회. 2000)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한영우 외, 효형출판, 1999) 한국의 옛지도』-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영남대학교 박물관. 1998)
시사 월간지 신동아는 만주 지역이 조선의 영토였음을 입증하는 유럽 고(古)지도가 대량으로 발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경희대 부설 혜정박물관(관장, 김혜정교수)은 18세기 압록강-두만강 이북 집안, 간도지역이 조선의 세력권이었음을 보여주는 서양 고지도 69점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신동아는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이 한반도 이북 지역에서 형성됐음을 보여주는 서양 지도가 이처럼 대량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습니다.
1749년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리(D’Anville)가 제작한‘et des Rojaumes de COREE ET DE IAPAN’ 지도. 한국 평안도(PINGAN·왼쪽 밑줄)가 압록강 이북의 현 중국 집안지역까지로 돼 있고, 함경도(HIENKING·오른쪽 밑줄)도 두만강 이북 간도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당빌리는 프랑스 왕립과학아카데미 회원이었다.
1801년 영국 지리학자 존 케리가 제작한‘A NEW MAP OF CHINA’.
1745년 키친(T. Kitchin)이 제작한 ‘A Map of QUAN-TONG or LEA-TONGE PROVINCE ; and the KINGDOM of KAU-LI or COREA’ 지도. 동해를‘SEA OF KOREA’라고 표기했다.
1740년 예수회가 선교를 목적으로 프랑스어, 네덜란드어로 제작한‘La CHINE avec la KOREE et les Parties de la TARTARIE’ 지도.
1771년, ‘본 도법’으로 유명한 지리학자 본이 제작한‘CARTE DE LA TARTARIE CHINOISE’ 지도.
1778년 잔비어(Janvier, j. & Santini, F) 등이 제작한 ‘L、ASIE divisee en ses principaux Etats’아시아 지도. 중국과 한국의 국경선이 압록강, 두만강 이북에 형성된 것으로 나온다. 한국을 녹색 테로 둘러 ‘COREE’라고 표기했으며 동해는 ‘MER DE COREE’로 표기했다.
1794년 윌킨슨(R. Wilkinson)이 제작한 ‘CHINA, Drawn from the Latest & Best AUTHORITIES’ 지도.
1920년 로마교황청이 작성한 교구도. 원본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한반도를 서울, 대구, 원산의 3개 교구로 나눴는데, 간도 지역이 ‘원산(Wonsan) 교구’에 포함돼 있어 간도와 한반도가 동일 생활권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1909년 일본 조선통감부 임시 간도파출소 잔무정리소가 제작한‘백두산 정계비 부근 수계 답사도’. 백두산(검정색 원) 정계비는“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을 압록강-토문강으로 한다”고 적고 있는데, 이 지도는 토문강(土門江·갈색 원)과 두만강(豆滿江·청색 원)은 다른 강이며, 두만강 이북에 토문강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220년 전인 1785년 일본의 대표적인 지리학자인 하야시 시혜이(林子平)가 제작한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之圖)'로 빨간선 안에 울릉도와 독도(우산국)가 하나의 큰 섬으로 그려져 있다.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정병준 교수(40)는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영국정부의 자료를 발굴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를 위해 연합국과 패전국일본이 1951년 9월 8일에 조인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준비과정에서 유일하게 작성된 지도이자, 독도를 한국영토로 명백히 규정한 자료다.
1951년 9월에 개최된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 직전인 그해 4월 7일 제작한 연합국 일원인 영국정부의 일본 영토지도에 다케시마로 표기된 독도는 한국 영토에 포함돼 있다. 사진에서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이 다케시마로 표기된 독도이다.
그동안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약에 일본영토를 확실히 하는 지도가 첨부되지 않았다는 빌미로 독도를 포함해 러시아와 북방 4개 섬, 중국과의 조어도 영유권 분쟁을 야기해 왔다. 또 부산외국어대 김문길 교수는 1785년 일본의 대표적 지리학자인 하야시 시혜이가 제작한 '조선팔도지도'를 발견했다며 27일 원본을 공개했다. 한반도 전체를 노란색으로 채색한 이 지도에는 북위 39도에 울릉도와 독도(우산국)가 하나의 큰 섬으로 그려져 있고, 울릉도 우측 바다가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표기돼 있다.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地圖) 18세기 말, 채색필사본, 169.0 * 93.0cm,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18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도. 조선 후기 지도 발달에 큰 획을 그었던 정상기의 <동국지도>의 수정본 계열에 속하는 전조(全圖)이다. 각 도의 군현을 원으로 나타내고 바탕색을 구별함으로써 팔도의 경계를 구분하였다. 감영(監營), 병영(兵營), 수영(水營)은 사각형으로, 진보(鎭堡), 역(驛)은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우측 주기(註記:지리정보)에는 서울에서 각지에 이르는 거리를 수록하였다. 다른 전도와 달리 도로망을 그리지 않아 미완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18 ~ 19세기로 이어지는 조선전도의 발달과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지도이다.
아국총도(我國摠圖, 여지도) 18세기 말, 채색필사본, 152.2 * 82.0cm,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정조대에 제작된 지도첩인 <여지도(輿地圖)>에 수록된 전국지도. 전체적인 윤곽은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따르고 있다. 이 지도는 무엇보다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데, 산줄기를 녹색으로 하천을 청색, 그리고 팔도의 군현을 색채를 다르게 하여 구분하였다. 또한 해안의 섬들이 아주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 시기 도서 지방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던 사회적인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지금의 독도가 울릉도 동쪽 동해에 우산도(于山島)라는 명칭으로 표시되어 있고 대마도도 그려져 있다. 지도의 여백에는 국토의 좌향(坐向), 동서와 남북의 길이, 사방(四方)의 끝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그리고 각 도의 군현 수가 기재되어 있다.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18세기 후반, 채색필사본, 252.5 * 139.5cm, 개인소장
조선 후기 지도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는 정상기(鄭尙驥, 1678 ~ 1752)의 <동국지도>이다.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지도>는 대전도와 팔도분도가 있는데 현존하는 것은 대부분 팔도분도이고 대전도는 매우 드물다. 이 지도는 제척(梯尺)의 형태인 백리척을 사용하여 그린 대전도로서, 당시로서는 대축척지도인 약 1 : 42만 지도이다. 한반도 북부지방의 왜곡된 윤곽이 정상기의 지도에서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지도는 대전도를 후대에 전사한 것으로 초기의 지도에 비해 정교함이 다소 떨어지지만 원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지도는 1757년(영조 33)에 영조의 명으로 정상기의 <동국대전도>를 모사하여 홍문관과 비변사에 보관하도록 한 모사지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과 강, 섬 등 자연 지명과 군현 이름, 창고, 진보(진보), 찰방, 산성 등 인문 지명 및 중국과 일본 등 모두 2,580여 개의 주기(주기)를 담고 있다. 산맥의 표현은 백두산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뻗어내린 백두대간을 크게 강조하고, 여기서 뻗어나간 주요 산맥들을 강조함으로써 국토를 인체(人體)로 인식하는 전통적 지리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병영, 수영, 읍성, 진보, 찰방, 봉수 등을 기호화하고, 산성, 고갯길, 관문 등을 그림으로 표현한 진일보한 방식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19세기 김정호에 의해 한 층 더 발전했다. 한편 지도에 육로, 해로, 고갯길을 나타내어 군사적, 경제적, 행정적 필요를 모두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해좌전도(海左全圖) 1850년대, 목판본, 97.8 * 55.4cm, 개인소장
19세기 중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표적인 목판본 조선전도. 지도의 윤곽과 내용은 정상기의 <동국지도>와 유사하며 산계(山系)와 수계(水系), 자세한 교통로 등이 동일한 수법으로 그려져 있다. 지동의 여백에는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 등 10여 개의 명산의 위치와 산수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섬 정계비, 초량왜관(草梁倭館) 등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 그리고 고조선(古朝鮮), 한사군(漢四郡), 신라구주(新羅九州), 고려팔도(高麗八道)의 고을 수를 좌측상부의 여백에 기록하여 우리나라의 현재와 과거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 지도로서, 목판 인쇄술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보이고 있다.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 1557년, 채색필사본, 국보 제248호, 132.0 * 61.0cm,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국보 제 248호로 지정된 조선전기의 전도. 이 지도는 전국에서 올라오는 진상품을 관할하던 제용감(濟用監)에서 제작한 지도로 대마도(對馬島) 종가(宗家)에 보관해 오던 것을 1930년대에 조선사편수회에서 종가문서를 인수하면서 한국으로 되돌아 왔다. 조선 전반 세종대의 과학적인 지도제작 사업은 세조 때 정척과 양성지의 <동국지도>에서 결실을 맺었는데, 이 지도는 <동국지도>의 사본으로 추정된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제외하면 하계망이 비교적 정확하다. 산줄기는 풍수적 지리인식에 기초한 연맥으로 표현하였다.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海東八道烽火山岳地圖), 17세기 후기, 채색사본, 218.0 * 149.0cm, 고려대 도서관 소장
이 지도는 이전의 어느 지도보다도 색감을 중시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지도이다. 많은 산봉우리에 봉화가 촛불처럼 그려져 있는데, 특히 압록강, 두만강의 국경 지대에 밀집되어 있다. 주현읍치(州縣邑治) ·도로, 산천과 대소 산맥 ·준령(峻嶺) ·성곽 ·역참(驛站) ·봉수대 등을 그려 넣어 봉수의 직간선(直間線)을 한 번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서해쪽의 네모 안에는 목멱산(木覓山:서울의 남산)을 중심으로 한 함경강원도래양주아차산봉수(咸鏡江原道來楊州峨嵯山烽燧) ·경상도래광주천림산봉수(慶尙道來廣州天臨山烽燧) ·평안도육로래모악동봉봉수(平安道陸路來母岳東峯烽燧) ·평안황해도수로래모악서봉봉수(平安黃海道水路來母岳西峯烽燧) ·충청전라도래양천개화산봉수(忠淸全羅道來陽川開花山烽燧) 등 5대 봉수로와 동서 및 남북의 길이, 서울에서 동서남북 주요지점까지의 거리 등이 표기되어 있다.
<채색필사본, 19세기 전기, 96 x 65.5cm,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정상기가 만든 <동국지도> 유형의 조선 전도이다. 조선전도는 팔도를 모아 전국을 한눈에조망하고 휴대하기 간편하게 만든 것이다. 전도인 이 지도에 정상기의 발문과 축척인 백리척이포함되어 있어 지도상에서 거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군현의 이름을 오방색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경기는 순황색, 충청은 홍백생, 호남은 순홍색, 영남은 청홍색, 강원은 순청색, 해서는순백색, 관서는 백흑색, 관북은 순흑색으로 표현하였다. 지고에 산, 천, 지, 나루, 봉수, 창, 진, 산성, 창고, 절 등이 표시되어 있으나 도로망은 그려져 있지 않다.
조선의 건국 후 수도를 옮김에 따라 전국 지도, 세계지도, 각 도별 지도 등이 제작되었다. 특히 세종, 세도 시기의 과학기술의 발달과 지도제작에 대한 큰 관심은 유명한 지리학자였던 정척과 양성지가 <동국지도>를 완성 제작함으로써 큰 결실을 맺은 바 있다. 한 때 조선 초기에는 대체로 국가가 주관하여 지도를 편찬하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지도로서는 많은 국가의 고관들이 참가하여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1402)가 있다. 이 지도는 <천하도>로서 상상적 세계관을 나타 낸 원형 세계지도로서 조선조의 특징적인 지도로 중요하다.
<목판본, 18세기 후반, 28.5 x 34cm, 영남대학교 소장>
팔도 전도와 도별지도를 포함한 동람도 형식의 지도책 속에 실린 세계지도. 천하도는 조선에서 특히 유행하였던 원형의 지도이다. 지도의 중앙에는 중국, 조선이 포함된 중심대륙이 자리잡고 있다. 그 대륙을 바다가 둘러 싸고, 그 둘레에 다시 고리 모양의 대륙이 있으며, 그 바깥에는 대양이 둘러 싸고 있다. 천하도에는 실제 존재하는 지명 보다 대인국, 소인국, 여인국, 등 <산해경>에 나오는 상상의 지명이 많이 나타 난다. 이 지도는 서양에서 도입된 정사도법의 경위선을 추가하여 서양식 지도 기법을 가미하고 있다.
<목판본, 16세기 후반, 26x 34.6cm,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책 <동람도>제 1면에 수록된 우리나라 지도 전도. 동람도에는 우리나라 전도인 팔도총도와 도별지도 8매가 포함되어 있으며 판심에 '동람도'라 적혀 있다. 현존하는 동람도는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에 비하여 이지도는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사료상의 가치가 매우 높다. '팔도 총도'는 지도의 길이가 동서가 남북의 길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넓어 한반도 전체와 특히 북부지방이 남북으로 압축된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 전체를 대산으로 하여 그린 조선저도는 우리 국토를 상징하는 지도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지도이다. 조선전도에는 선조들의 국토인식과 자연관이 반영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지도의 완성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지식의 수준, 지도제작의 기술, 예술적 표현능력 등이 반영되어 있다.
조선전도는 조선 초기부터 국가적 사업으로 제작되었는데,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국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에 새로 개척된 북방지역에 대한 인식이 고양될 수 있었다. 그 결과 15세기 중엽에 정척과 양성지의 <동국지도(東國地圖)>가 탄생되었으나, 실물이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국보 248호)가 남아 그 흔적을 전해준다. 또한 조선 전기 지리지의 집성편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동람도(東覽圖)>는 간략한 지도이나 민간에서 널리 애용한 점에 의의가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 민간의 뛰어난 지도학자들이 지도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18세기 중엽 정상기(鄭尙驥)는 한반도의 윤곽을 거의 실제와 가깝게 그려내, 조선전도의 분수령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정교하고 사실적인 지도와는 달리 <동람도>와 같은 소략한 형태의 지도가 민간에서 제작 유포되었는데, 역사부도 및 여행용 지도로서 폭넓게 이용되었다.
1861년에는 당시까지 축적된 지도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탄생되었다. <대동여지도>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조선저도의 완성편으로, 독창적인 지도학적 기법과 표현방식, 목판 인쇄를 통한 지도의 대중화, 예술적 감각과 정확하고 풍부한 내용의 지도의 전도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자료>
『한국의 지도- 과거, 현재, 미래』 (국립지리원, 대한지리학회. 2000)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한영우 외, 효형출판, 1999) 한국의 옛지도』-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영남대학교 박물관. 1998)
첫댓글 18세기에 중국이라는 나라있었나요? 그때 대륙은 명,청이 없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