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묵(黥墨 죄인의 얼굴이나 팔에 먹물로 죄명을 새겨넣는 형벌)하는 제도나 영둔(營屯)하는 거처는 없고, 오직 공적인 일에 사역되면 의복으로 구별할 뿐이다. 투구와 갑옷[鎧甲]은 아래위가 붙어 있는데 그 제도는 봉액(逢掖)과 같아서형상이 궤이(詭異)하다.
봉액(逢掖) : 옛날 선비가 입는 옆이 넓게 트이고 소매가 큰 도포(道袍)의 한 가지. 봉의(逢衣).
헤이안 시기 일본 문관이 입은 봉액의 포縫腋の袍 의 구조


목을 중심으로 옆이 트인 옷. 앞뒤가 망토처럼 늘어진 구조.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몽고습래회사

많은 병졸들이 옆구리가 트이고 앞 뒤가 늘어진 갑주를 입고 있음
'푸른 베로 만든 소매 좁은 저고리[靑布窄衣]와 흰 모시로 만든 좁은 바지[白苧窮袴]를 입고, 다시 투구와 갑옷을 덧입었는데,
오직 부박(覆膊 어깨를 가리는 것)만이 없다.' (고려도경 제 11권 용호중맹군(龍虎中猛軍)) 고 하였는데



소매 좁은 저고리, 소매 좁은 바지 위에 덧입은 형태라는게 어렵잖게 보임.
또 대다수의 병사가 이 형태의 갑옷을 입고 있는데 고려사절요를 보면
○ 도병마사가 아뢰기를, “병서(兵書)에 이르기를, '급히 행군할 때에 박락(縛絡)을 입는다.' 하였사온데, 지금 봉의(縫衣)가 그것입니다.
대영고(大盈庫)의 좀먹는 필목(疋木)을 정포도감(征袍都監 군복을 만드는 도감)에게 맡겨 3, 4천 벌을 지어서 동북(東北) 양계(兩界)에
나눠 보내어 병영창고에 저장하였다가 급한 사변이 있거든 착용하기를 윤허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 말을 따랐다.
-고려사절요 제 6권, 계유 10년(1093), 송 원우 8년ㆍ요 대안 9년
라 하였으니 대다수의 보병이 입었다는 묘사와도 일치함.

부박(어깨보호대)이 없었다는 묘사를 중국 갑옷에서 볼 수 있는 추가적인 부속물이 없었다는 내용으로 보면
얼추 맞는 것 같기도 함요. 방패 묘사가 다르긴 한대 모든 병사가 방패 위를 다섯개 칼날과 꿩 꼬리로 치장했을거같진 않구요.
중국인인 서긍이 말한 것 고려사절요에서 칭하는 명칭이 같은 것, 또 몽고습래회사에서 보이는 모습과 같은걸로 볼때
고려시대 일반병의 갑옷이라고 보기에 틀림이 없어 보이는데, 토탈워 분들 생각은 어떠신지 묻고 싶습니다.
첫댓글 현재 남아있는 고려시대 갑주유물은 정지장군의 경번갑외에 약간의 찰갑과 투구가 몇점 존재하며, 그리고 쇄자갑과 지갑(지찰갑, 지포엄심갑 두종 모두)들도 존재했을 겁니다
사극제작진들의 갑주자료가 없다는 변명에 대한 비판글 http://kyb0417.egloos.com/4104715
평안북도 동창군 학성리 병실터 출토 고려시대 찰갑편 http://kyb0417.egloos.com/4793573
만월대 찰갑편,투구 http://kyb0417.egloos.com/4801534
7~19세기의 찰갑1 http://kyb0417.egloos.com/5144139
그리고 주변국들과 비교했을때 갑찰의 형태가 약간 다른 것들도 존재합니다.
7~19세기의 주변국들의 찰갑 http://kyb0417.egloos.com/51479
그리고 지갑에 대한 부분은 유문기님의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조선시대 자료는 본 적이 있는데 고려사는 아직 다 보질 못해 확실히 대답해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삼국시대~남북국시대 당나라와의 교류가 매우 활발했던 시기임을 감안해 본다면 도입 가능성은 충분하다 여겨집니다.
http://cafe.naver.com/historygall/25461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특히 정지장군의 경번갑 같은 경우엔 유명하죠. 다만 찰갑편과 장군의 경번갑만으로 보편적인 병졸의 무장을 추정하기에 무리가 따른다는 점을 볼때 몽고습래회사의 그림도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고려도경의 묘사가(의장대 위주긴 해도) 몇 안되는 갑주 묘사인만큼 짚고 넘어가야 될 듯 싶구요. 갑옷이 가죽과 철갑으로 구성된다는 말, 끈으로 갑주를 연결한다는 묘사는 찰갑의 존재를 증명하는 구절이라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확실한건 서긍의 묘사와 몽고습래회사의 묘사가 일치하는걸 볼때 봉액형 갑옷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아래 대규모로 갑주를 생산하는 부분이 특히 그렇구요.
몽고군과 고려군을 착각하지 마세요
그림에서 고려군은 최전방에서 화살 쏘고 있는 병사,창으로 조준하는 병사 뿐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몽고군
따로 무슨 근거가 있으신가요? 애초에 전 저 그림에 몽고 보병이 존재는 하는걸까 의심스러워서..
몽고군: 다수 고려군: 소수 , 저도 들은 이야기인데, 목가리개 있는 투구를 쓰는건 몽고 복식이라더군요. 복식이 완전히 다름니다. 투구모양이 확실히 달라요
투구 양식으로 구분 가능할만큼 고려시대 투구 자료가 많은가요? 그나마도 후기 고려 투구는 몽고 영향 많이 받아서 몽고 투구와 큰
차이 없습니다. 일본침공 당시 병력이 거의 송과 고려에서 동원된걸 봐도 몽고군을 보고 그렸다기엔 무리수죠. 서긍의 기술에서 투구와 갑옷의 아래위가 붙어있다는 기술도 주목해야 합니다.
두 복식이 서로 다른데, 같은 고려 군이란 말씀이신가요? 그렇수도 있겠죠, 하지만 '몽고 복식을 한 사람들은 몽고인, 다른 복식을 한 사람들은 고려인'이라 보는게 더 맞을 듯
사실 자세히 보면 투구때문에 느낌이 달라서 그렇지 투구하고 군화 빼면 두 복식에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위의 육전도 말고 해전도도 있는데 해전도를 보면 날개달린 투구를 쓴 병사들이 투구를 벗은 모습이 변발을 해서 몽골군임을 알 수 있어요. 일본에서는 날개달린 투구의 병사를 몽골군 경장병, 뒤쪽의 목가리개한 병사를 몽골군 중장병으로 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