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사일을 7개나 발사한 비상사태 속에서도 한나라당은 당대표를 뽑는 경선잔치를 이어갔다. 대표 경선에 출마한 강재섭, 이재오, 정형근 등 여덟 명의 후보들은 전국 대도시를 휩쓸고 다녔다. 부산에서는 합동연설회가 끝나자 가칭 ‘칭찬릴레이 TV토론회’를 여는 등 텃밭에서의 여유를 한껏 누렸다.
휴전선에서 총소리만 들려도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처럼 국민에게 겁을 주며 호들갑을 떨던 한나라당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동해상에 떨어졌다는 보도가 있었으니 합동연설을 연기하더라도 국회나 중앙당사에 모여 비상대책회의를 열었어야 했다.
노무현이야 좌파 대통령이고 북한과 친하니까, 대책회의를 일본과 미국보다 3시간 늦게 했어도 그러려니 하겠다. 하지만 ‘북한=주적’으로 개념이 정리된 한나라당 리더들이고, 대통령과 정부의 정체성이 의심스럽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국익을 외치던 사람들이라서 하는 얘기다.
7일 밤의 KBS합동 토론회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훤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자 코미디였다. 특히, "나는 질문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며 알량한 운동권시절의 너스레로 질문을 대신하는 이규택 후보의 황당한 시추에이션은 방청객들조차 웃음을 참느라 혼쭐이 날정도로 압권이었다.
광주에서 열린 합동연설회 뉴스를 보면서는,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정당이 출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후보들의 연설 내용이 호남출신 정치인이 무색할 정도로 광주를 사랑하고 호남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갓집이 익산이고 처가 전주에서 태어났다. 여러분이 저의 매형이고 매제이다. 나는 호남의 대변인으로 최고위원이 나올 때까지 역할을 다하겠다.”(정형근) “쌍둥이 여동생 둘 모두가 호남 남성과 결혼했다. 그러니 우리는 한 가족이다.”(전여옥). “제 핏 속에는 전주 李씨 시조의 피가 아직 흐르는 진짜 호남사람이다.”(이규택). “22살 때 광주포병학교에서 훈련을 받았고, 26살 때 첫 직장을 광주에서 시작했고, 광주에서 낳은 맏아들은 지금도 해태(기아) 타이거즈 야구단을 응원한다.”(강제섭).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서 3년을 살았다.”(이재오). “이순신 장군이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고 했지만, 이제는 호남이 없으면 정권이 없다.”(이방호). “소외된 호남 원외위원장들을 배려하겠다.”(강창희)
소장·중도파 대표로 나온 권영세 후보만 “5·18 묘지를 참배하고 빌고 또 빌었다. 참배 몇 번과 관직, 예산으로 호남인의 한을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호남인들이 자긍심을 가지도록 잘못된 과거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전대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호남과의 개인적 인연을 내세우지 않았다. 후보들의 출마의 변이 불쌍해서, 걱정이 앞서는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한나라당 당권에 도전한 8인에게 몇 마디 충고하고자 한다.
첫째, 당권에 도전한 후보의 연설은 그 지역의 주민과 당원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낙후된 지역발전을 위한 비전과 합당한 정책을 제시해야지 혈연이나 인연을 들먹이는 것은 일종의 네거티브 전략으로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날 대구 연설에서 “사위가 대구 본토박이다”라고 했던 정형근 의원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둘째, 과거 잘못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뒤따라야 할 것이고, 말과 행동에는 최소한의 양심과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선거 때마다 호남 버리기 작전을 해왔다는 것쯤은 후보들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기에 하는 얘기다.
참고가 될 것 같아 2004년 4월 총선 때 있었던 사건을 하나 소개한다.
17대 총선에 출마한 호남출신 한나라당 후보들이 투표일 보름도 남겨두지 않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것도 한 둘이 아니라 전북에서 6명 광주에서 6명이 공천장을 반납했고 아예 출마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지역도 있었다.
특히 광주지역 후보들은 호남 몫 비례대표 순번이 당선권내로 재조정되지 않는다면 불출마는 물론 4·15 총선에서 정당득표 운동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이 배포한 성명서에는 "당초 호남 배려차원에서 약속한 비례 3석이 안정권 약속마저 묵살된 상황에서 원칙 없는 비례대표 공천을 강력히 항의한다"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항의는 조중동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었고, 지난 5월의 지방선거에서도 개선된 게 하나도 없었다.
그토록 아픈 상처가 지금까지 아물지 않고 있는데도, 호남을 위해 예산을 특별히 배려하겠다든가 호남인사를 특별히 할당하겠다는 말장난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후보가 있다면 호남에서의 두 자릿수 지지율확보는 차라리 포기하는 게 편할 것이다.
한나라당 당권 주자 8인은, 호남지역의 낙후된 경제와 주민들의 차별대우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구 후보들조차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중앙당으로부터 철저한 외면과 고통을 한꺼번에 당한 것에 대해 진솔한 반성과 사과를 먼저 해야 할 것이다.
11일에 열리는 전당대회가 대표와 최고위원만 선출하는 게 아니라 정책정당, 전국정당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첫댓글 7일밤에 mbc가 아니고kbs였었네요.저도 방금 다시보기로 봤습니다.대략 난감!이재오 엄청공격 받더군여.역시 전여옥.이재오 아픈부분을 콕콕 잘도 찍어대더군여.ㅎㅎ 박사모 애들은 이재오가 대표되면 근혜가 대선후보 되지못한다고 생각하고 발악을 합니다.
지영님 감사합니다...KBS로 수정했습니다...시청을 하고도 착각을 하다니..ㅠ 기억력이 자꾸 감퇴되는 요즘은 글쓰기도 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