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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사사기10장1~18절
제목 : 이스라엘의 배도와 하나님의 근심
이스라엘은 45년 동안 안정을 누립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배도의 길을 걷다가 18년 동안 이방의 학정 아래에 놓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심어린 회개를 하고 하나님을 섬기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곤고함에 근심하십니다.
1. 소사사 : 돌라와 야일(1~5절)
1) 부아의 아들 돌라(1절)
“[1]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부아의 아들 돌라 - '부아'는 '입', '말'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돌라'는 '곤충','벌레'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소사사(小士師)인 '돌라'(tola)와 그의 아비 '부아'(Puah)의 행적에 대하여서는 성경에 달리 언급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알 수 있는 사항은 '부아'와 '돌라'라는 이름은 '잇사갈'이 낳은 두 아들의 이름과 같다는 점입니다(창46:13).
이와 같은 현상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자식들의 이름을 이미족보에 실려 있는 선조의 이름을 따라 지어 주던 풍습에서 기인된 것입니다(묵1:61).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 돌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어떤 대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는지 본절에는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아마 아비멜렉으로 인한 종족끼리의 분쟁이든지(Hervey) 아니면 사소한 국지전(局地戰)이었을 것입니다(Goslinga).
에브라임 산지 사밀. - 돌라는 잇사갈 지파에 속해 있으면서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살았습니다.
돌라가 왜 자기의 기업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혹자는미디안인들의 압제로 인해 그와 그의 가족들이 에브라임 산지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하지만(Goslinga) 확실치 않은 주장입니다.
한편 '사밀'이 '사마레이아'로 변역되어 잇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후대의 '사마리아'(Samaria)와 동일 지역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아무튼 본절에서 저자가 '에브라임 산지'란 말을 덧붙인 것은 '유다 산지 사밀'(수 15:48)과 구별하기 위함이며, 돌라가 자기 기업의 땅을 떠나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우거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2) 돌라가 사사가 된지 이십삼년 만에 죽어 사밀에 장사되었습니다(2절)
“[2]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이처럼 돌라의 업적이 지극히 간략하게 소개된 후 곧바로 그의 죽음이 언급되고 잇는 까닭은 본서 기자가 구속사(救速史)의 흐름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 사건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3절).
“[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길르앗 사람 야일. - '길르앗'(Gilead)은 요단 동편 지역의 영토, 혹은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시혼과의 전투에서 승리 한 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습니다(수 32:33-42). 5:17 주석 참조.
그러나 성경에서 '길르앗 가족'(민 26:29)의 후손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돌라를 이은 사사 '야일'은 길르앗 원주민이 아니라 므낫세 지파 출신입니다.
한편 야일(Jair) 역시 돌라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소사사'로 그의 행적에 대한 별다른 성경적 기록이없습니다.
다만 그의 이름의 뜻은 '비추는 자', 깨우치는 자'입니다.
4) 야일은 왕 처럼 군입합니다(4절).
“[4]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그에게 아들 삼심명, 나귀 삼십, 성읍 삼십을 가졌습니다.
그는 다스리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왕 처럼 살았습니다.
어린 나귀 삼십. - 고대 근동 지방에서 어떤 사람이 나귀를 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지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암시합니다(5:10; 12:14).
따라서 야일의 아들 30명이 각기 자기 소유의 어린 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은 당시 야일이 사사로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부와 명예를 얻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성읍 삼십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더욱 입증됩니다.
하봇야일 - '야일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곧 과거 모세 당시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길르앗의 촌락들을 점령한 뒤 그곳 성읍들에 붙인 새로운 이름입니다(민32:41; 신 3:14).
따라서 사사 야일은 자기 선조 '야일'이 취하여 '하봇야일'이라 부른 그 성들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 결코 '하봇야일'이라는 이름이 사사 야일 당시에
붙여진 새로운 지명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5)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습니다(5절).
“[5]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가몬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phus)의 주장에 따르면 '가몬'(Camon)은 길르앗의 한 성읍일 것입니다(Hervey).
뿐만 아니라 이성읍은 야일이 소유하고 있는 30성읍(4절)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Lange, Keil & Delitzsch). 그러나 이는 분명치 않습니다.
2. 이스라엘의 타락과 하나님의 징계(6~9절)
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합니다(6절).
“[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 '다시'에 해당하는 '야사프'는 '증가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이 죄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점점 더 패역해져 갔음을 의미합니다.
아무튼 본절은 사사 시대의 시대적 정황(情況)이 어떠하였는지를 여실히 증거해 줍니다.
그리고 사사 야일이 죽은 후 그의 뒤를 잇는 사사가 나오지 않으므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다시 종교적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음도 보여 준다(2:18,19). 여호와를 제외하고 모든 신들을 섬김니다.
여호와의 마음이 어떠했을 까요?
바알들과 아스다롯. - 가나안 지방의 대표적인 신들입니다.
즉 '바알'들은 가나안 당의 남성 신을 가르키며,
'아스다롯'은 여성 신을 대표적으로 가리킵니다.
혹자는 '아스다롯'을 '아세라'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구분됩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3과 3:7 주석을 참조하라.
아람의 신들. - '아람'(Aram)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영토 전역에 결쳐 살고 있었던 셈족의 한 부류인 아람족과 그들의 영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대개는 좁은 의미로 시리아 지역과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가리키는 바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이를 '시리아'(Syria)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아람 사람들은 대체로 가나안의 헷족속이 섬기던 신들을 섬기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신들로는 폭풍신 '아닷'과 '테슛, 그리고 태양여신 '아린나' 등이 있습니다.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 참조.
시돈의 신들 - '시돈'(Zidon)dms enfh(Tyre) 북쪽 36km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아스다롯'과 '에쉬문'(Eshmun)을 섬겼었습니다.
그런데 이중 '에쉬문'은 두로의 '멜카르트'(Melqart)와 더불어 근동 지방에서 많이 숭배되던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모압의 신들 - 모압의 신으로는 전쟁의 신인 '그모스'가 유명합니다(민 21:29; 왕상11:7; 렘 48:7).
암몬 자손의 신들 - 암몬의 국가 신은 '몰록'(Moloch)으로, 일명 '말감'(Malcam)또는'밀곰'(Milcom)으로도 불리웠습니다(왕상11:5,7,33;습1:5;렘 49:1).
블레셋 사람의 신들 - 블레셋의 국가신으로 성경에 언급된 것은
'다곤'(Dagon)입니다(16:23; 삼상 5:2-7).
이상과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을 참조하라.
2)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십니다(7절)
“[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 - 여기에서 '손에 팔다'는 말은 '손에 붙이다'는 표현과 더불어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통한 '심판의 형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2:14 주석 참조.
한편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들어 쓰신 열국은 주로 팔레스틴 북방 지역의 민족이었습니다.
때문에 지금까지는 주로 이스라엘 백성 중 북쪽 지역 사람들이, 곧 납달리, 아셀, 스불론, 잇사갈, 므낫세 지파가 고통을 당했었습니다(3:8; 4:2; 6:33).
그러나 이제는 블레셋과 암몬 같은 팔레스틴 남방지역의 민족들을 들어 쓰고 계시는데, 이로 인해 이제는 주로 남쪽 지역에 사는 지파 곧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에브라임 자파가 압제를 당하게 되었습니다(9절).
특히 암몬 사람들은 이전에 모압 왕 에글론 및 아말렉 사람들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압제한 적이 있었습니다(3:13).
그리고 블레셋은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나라로 등장합니다(13:1).
3)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습니다(8절).
“[8] 그 해에 그들이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 - 이는 요단 강 동편에서 르우벤, 갓, 므낫세반 지파가 그 곳 거민을 쫓아내고 기업으로 취한 땅을 가리킵니다. 3절 주석 참조.
한편 여기서 '아모리 사람'은 가나안 족속들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창 15:16).
학대를 당하였고 - 이 말에 해당하는 원문의 표현은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을)흩어 압제했다' 라는 의미입니다.
즉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혹독한 압제를 가하였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제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4)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벤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습니다(9절).
“[9]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암몬 자손이 또...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 이처럼 암몬족이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하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졈령 한 후 다시금 요단 강을 건너와 팔레스틴 남부를 점령한 것은 당시 저들의 세력이 한참 흥왕하던 때였음을 시사해 줍니다.
한편 본래 이들 암몬족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자손들로서(창 19:38) 이스라엘과는 서로 화평할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나라는 역사상 계속적으로 심한 반목(反目)과 적대 관계를 이루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 서편에서는 블레셋에 의해, 동편에서는 암몬 자손에 의해 공격받아 압제를 당했으므로 더욱 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곤고가 심하였더라'에 해당하는 '야차르'는 '짓누르다', '쥐어 짜다'라는 의미로 적들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학대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곧 과거 한일 합방 이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압제한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3. 이스라엘의 호소와 하나님의 책망(10~16절)
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주께 범죄하였다고 회개합니다(10절).
“[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 여기서 '바알들'은 단순히 가나안의 남성 신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이미 언급된 여러 나라의 신들을 모두 의미합니다(6절).
한편 이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호소할 때 단순히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라는 표현만이 사용되었으나(3:9; 4:3; 6:6), 본절에서는 이와 관련 그들의 죄목이 상세히 언급되어 있는 점이 독특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다른 때보다 더 간절했음을 시사해 줍니다.
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11절).
애굽 사람. - 여기서 '애굽 사람'이 언급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사건(출1-14장)을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아모리 사람 - 이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노정 가운데 정복한 족속 중하나입니다(민 21:21-26).
그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노정(路程)을 방해하였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이스라엘에 의해 격멸당했었습니다.
암몬 자손 - 모압 왕 에글론과 동맹을 하여이스라엘을 압제했던 사람들입니다(3:13).
그러나 이때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에홋을 보내사 그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3:15-30).
블레셋 사람 - 이들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아마 에훗의 뒤이은 사사 삼갈이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던 사건과 관런된 듯합니다(3:31).
3)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다(12절).
“[12]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시돈 사람 - 이들은 사사 시대까지의 역사에 있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적도, 이스라엘에 의해 공격당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기서 이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리적으로 아셀과 납달리 북쪽에 거주했던 이들은 아마 하솔 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압제할 때(4:1-3) 그를 도왔던 것 같습니다(Keil, goslinga, Hervey).
장차 이스라엘을 압제할 열국 가운데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까닭도 아마 이 때문인 듯합니다(3:3).
아말렉 사람 -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그들을 대적했던 족속으로(출17:8-13) 사사 시대에도 미디안 족속과 함께 이스라엘을 압제한 적이 있습니다(6:3).
마온 사람 - 70인역(LXX)에는 '마디암', 즉 '미디안' 사람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1.2,p.376).
그런데 수 15:55에서 '마온'은 유다 지파의 기업에 속해 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삼상 23:24에서도 그와 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하 26:7에서는 이곳이 사해 남쪽과 페트라 동쪽 지역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본절의 '마온' 역시 유다 지경에 속한 '마온'이 아니라 요단 동편 사해 남쪽에 있는 '마온' 곧 미디안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대부분의 학자들도 '마온'과 '미디안'을 동일시합니다(Keil,Goslinga, Hervey, Cundall).
물론 혹자는 이 '마온'을 미디안이 아니라 아말렉 족속과 같은 유목민 중 한 부족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Cassel) 그 근거는 회박합니다.
4)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13절)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매우 컸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자 다시금 사사 입다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11장).
따라서 본절의 말씀은 우상 숭배에 젖을 대로 젖은 당신의 백성들에 대한 강한 경고(히 6:4-6)로 이해될 수 있는데, 궁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극진하신 간섭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5)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14절).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은 우상 숭배를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즉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던 우상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환란 가운데서 구원할 수 없는 헛된 것들임을 강조합니다(Wycliffe).
모세도 우상들은 헛되며, 인생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것들이라고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신 32:37,38).
6)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며 구하여 달라고 요청합니다(15절).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 이러한 고백은
(1)이스라엘백성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깊이 깨닫고 있음과
(2) 자기들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싶을 깊이 인지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즉 이제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려 한 자세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이 진정한 회개의 마음을 갖게 되었음을 증거해 줍니다.
오늘날 우리를 건져 내옵소서 - 지금 막 하나님의 어떠한 처벌이든지 달게 받겠다고 고백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적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조금 모순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선민(選民)인 자신들이 이방인들에게 압제를 당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본절을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달
라는 간구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대신 이는 자신들을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시어 자신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이 다시 영광받게 해달라는 간구인 것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마음에 근심하시니라(16절).
“[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 지금까지의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그들은 하나님께 자기들의 죄를 고백합니다(10절).
그것도 죄를 고백하되 아주 구체적으로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15절).
-“우리가 범죄하였아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3) 그리고 죄의 고백과 더불어 한 걸음 더나아가 자신들이 고백한 그 죄로부터 떠났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그들의 회개는 진정한 회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마음에 근심하시니라 - 이는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원수의 압제를 당하는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시고서 그들을 구원하시려 마음먹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근심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카차르'는 '견디지 못하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시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Matthew Henry).
하나님은 다시 구원자를 준비하십니다.
4. 이스라엘과 암몬의 대치(17~18절)
1) 암몬 자손이 길르앗에, 이스라엘 자손은 미스바에 진을 쳤습니다(17절).
“[17]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쳤으므로. - 이처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와서 전쟁 준비를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18년 동안 암몬 사람들에게 복종하며 그들을 섬기다가(8,9절) 이제 반역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상으로도 피정복민들이 정복 군주에게 조공 바치기를 거부하면 그 군주는 군사를 이끌고 와서 피정복민들을 재차 공격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나타납니다(왕하 17:3-6; 24:1-3).
미스바 - 성경에는 지명은 동일하나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는 '미스바'가 대여섯군데나 있습니다(수 11:3,8; 15:38; 18:26; 삼상 22:3).
*수11:3,8 가나안 북방“[3]동쪽과 서쪽의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산지의 여부스 족속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족속에게 사람을 보내매[8]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추격하고 동쪽으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추격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수15:38 유다자손의 기업“딜르안과 미스베와 욕드엘과”
*수18:26 베야민 자손의 기업 “미스베와 그비라와 모사와”
*삼상22: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미스바'는 사사 입다가 거주하던 곳입니다(11:34).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 얍복 강북쪽에 있었던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과거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과의 언약을 기념하여 '증거비'를 세웠던 곳인 '미스바'와 동일지일 가능성이 큽니다(창 31:49).
*창31:49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2) 길르앗을 우두머리로 삼고 암몬과 싸우려 합니다(18절)
“[18]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 암몬 사람들과 대치 상태에 들어갔으나 길르앗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막상 선두에 나서서 그들과 싸울 만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고대 전쟁에서는 선두에서 백성들에게 싸울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장군이 반드시 요청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군이 전쟁 중 죽게 되면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져 도망하게 됩니다(삼상 17:50-52).
이러한 이유로 길르앗 백성들은 암몬 사람과 제일 먼저 나가서 싸움을 시작할 만한 인물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나아가 암몬 사람과 싸워 이기는 사람을 길르앗 땅의 우두머리로 삼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입니까?
1) 하나님은 밀어내고 이방의 헛된 우상들(신7:4)을 섬기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더욱 가중됩니다(6~9, 17,18절).
하나님은 가나안의 물질적인 풍요와 쾌락의 달콤함 때문에,
자신들의 구원자도, 성민이라는 신분도, 제사장 나라의 사명도,
모두 망각한 그들을 향해 분노하십니다.
하지만 그 불타는 분노가 질투하시는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전부를 드리지 않으면 합당하지 않은 것이 주를 향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2) “다시”악을 행한 이스라엘을 향해 “다시는”구원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시지만 자기 백성이 처한 곤경을 외면하지 못하십니다(10~16절).
번번이 잘못을 뉘우쳤다가 또 다시 죄를 범하는 백성이지만 못난 자식을 둔 아비처럼 또 받아주시고 들어주십니다.
하지만 용서하신건 아닙니다.
진심으로 돌아와 관계를 회복하기 전에는 용서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더 빠른 구원을 바랐지만 하나님은 더 진실한 회개를 바라셨습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사사 돌라와 야일은 아비멜렉의 폭정이 가져온 위기와 혼란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45년 동안 안정 된 통치를 이룹니다(1~5절).
하지만 다른 사사들과 달리, 3대에 걸쳐 돌아의 가문이 소개되고,
야일의 아들들이 어린 나귀를 타며 성읍을 소유하는 모습은 기드온 가문에서 대두된 ‘통치세습’의 문제가 끝나지 않았고 그들이 “부와 권력”을 지향하는 지도자임을 암시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조건에서도 자발적인 가난과 그로 이한 불편함을 자청하여 물질이 우상이 된 이 세상 방식대로 살지 않아도 하나님이 건사해주신다는 것을 증명해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2) 하나님을 버리고 섬기지 않는 것이“하나님 보시기에”악입니다(6~9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더 많은 우상들을 섬기면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로울 줄 알았는데 도리어 더 비참한 이방의 노예가 되어 곤고함만 더할 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회개가 무기인 인간들과 긍휼이 약점인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번번히 잘못하는 아들을 다시 품으십니다.
못난 아들을 둔 아들 처럼, 또 받아 주십니다.
아버지는 진심어린 회개와 함께 아빠와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죄를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를 반복하지 않음이 진정한 회개임을 알고 진정한 회개의 삶을 살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른 관계가 되는 하루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