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6일 장준하 씨 유골 再감식 결과를 발표한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再감식을 “혼자서 했다”고 밝히는 등 일부 감식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빈 명예교수는 4월1일 보도된 <조선일보> 崔普植(최보식)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再감식 과정을 소개했다. 李 명예교수는 정밀감식에서 컴퓨터 단층촬영과 3D(3차원) 동영상을 활용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것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감식에는 별다른 공정이 없다.
1975년 사망 당시의 검안 사진들과 내 눈으로 유골을 보면서 정리가 됐다”고 주장했다.
“사실 혼자서 했다”
‘통상적인 유골 檢案(검안)과 다를 게 없지 않는가’란 질문에 “그런 셈이다. 골절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감식팀 구성에 대해서도 “팀이라고 할 것도 없다. 사실 혼자서 했다”고 했다.
그는, 2012년 8월 張 씨의 유골을 검안했던 이윤성 서울대 교수의 ‘加擊(가격)에 의한 것인지, 넘어지거나 추락하면서 부딪혀 생긴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임상 의사라면 그렇게 해야 할지 몰라도, 법의학자는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재구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냥 ‘칼로 찔렀다’는 사실에 그치는게 아니고, 어떤 칼로 어떻게 찔렀는지를 그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초 ‘망치 加擊’을 주장했다가 ‘큰 돌이나 아령’으로 번복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어깨뼈에 골절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신문의 일문일답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를 갖고 추정해야 하지 않나? 처음에는 “망치로 가격했을 것”이라고 했다가, 이번에는 “큰 돌이나 아령”으로 바꿨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망치’라고 했다. 유골을 직접 안 보고서 말한 거라 좀 찜찜했다. 실제로 보니 함몰된 모습이 달랐다. 훨씬 더 큰 힘이 작용했다. 그래서 ‘큰 돌이나 아령’으로 바꿨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추락해서 우측 머리와 엉덩이가 동시에 깨졌다면, 왜 그 중간에 튀어나와 있는 어깨뼈는 안 깨졌을까. 이게 포인트다.”
―그게 추락 전 머리를 가격당했다는 논리적 근거인가?
“양쪽 골절이 있었다면 그 중간의 어깨뼈도 깨졌어야 한다. 그런데 왜 어깨뼈는 안 깨졌느냐? 이는 머리와 엉덩이가 동시에 깨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추락 전에 머리를 먼저 가격당했고, 나중에 떨어져서 엉덩이가 깨졌던 것이다.”
―머리와 골반뼈가 깨지면 반드시 어깨뼈가 부러져야 하나?
“반드시는 아니다.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 말을 믿지 않는다”
李 명예교수는 ‘(張 씨가) 머리를 加擊 당해 즉사했고, 이후 누군가 벼랑 밑으로 내던진 것으로 판단된다’는 입장에 대해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또 ‘머리 加擊만으로 즉사하기 힘들다’는 질문에는 “예외적으로 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목격자 김용환 씨의 진술에 대해 “나는 그런 사람 말을 믿지 않는다”며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이에 대해 이윤성 서울대 교수는 “그 분(이정빈 교수)은 유골을 보기도 전에 언론에 ‘타살 가능성’을 말했다. 이는 학자적 태도가 아니었다”고 同 신문은 전했다. 또 “후배 법의학자들 사이에서 말들이 많았다”며 “나는 직접 그 분에게 재차 확인했다.
그분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고도 했다. 이윤성 교수는 “그런 선입견을 갖고 감식을 한다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두개골 골절은 추락에 의한 결과라고 보는게 합리적’
대한법의학회(이하 학회)가 올해 초 <대한법의학회지>에 내놓은 ‘감정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골절線(선) 일부가 봉합선을 포함할 정도이고, 일부의 골절선은 두개골의 基底部(기저부)까지 이어졌음을 시사하며, 이러한 점들은 충격 당시 가해진 외력의 힘이 상당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직접적인 가격으로는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기 쉽지 않고,
두개골에 外力(외력)이 한 번 가해졌을 것으로 보이며,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추락이라는 상황이 있었다고 판단되며, 손상의 판단에 있어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함을 생각할 때 두개골 골절의 손상은 추락에 의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들이었다.>
학회 역시 두개골에 생긴 함몰(손상)은 한 번의 外力에 의해 생긴 것이며, 이 또한 추락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다만 “확실성 차원에서 가격에 의한 결과의 가능성을 적극 배제할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하여서는 다소 보수적인 의견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고 덧붙였다.
감정보고서는 또 “여러 가지의 불확실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정하여 혹은 잘못된 판단에 근거하여 사실을 誤導(오도)할 수 있는 의견 제시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한법의학회, 잘못된 언론보도 是正 촉구
그럼에도 다수의 언론은 ‘張 씨가 頭部(두부)를 加擊당한 뒤 누군가에 의해 추락사했다’는 식의 추측성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
추측성 보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학회는 지난 달 27일 성명을 발표, 장준하 사건과 관련한 일부 언론보도 내용의 是正을 촉구했다.
‘정밀감식에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대한법의학회에 참여를 요청했지만 참여가 어렵다는 회신을 받아 이 교수(注: 이정빈)에게 의뢰한 것’이라는 일부 언론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학회는 ‘장준하선생사인진상조사공동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유골에 대한 검사 요청 당시 공정하고 객관적인 검사를 위해 두 가지 기준을 위원회 측에 제안했다고 한다.
▲자유로우면서 실제 검사에 참여할 수 있는 적절한 검사 진행 체계의 구성
▲검사를 특정 시간에 맞추지 않고, 다양한 검사를 할 수 있는 시간 보장 등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학회는 위원회 측이 이를 보장하지 않았고, 참여 자체가 특정 목적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참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즉, 학회가 유골 검안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위원회 측이 검사 기준의 공정성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정빈 교수의 주장만 소개하고 반대 의견을 묵살, 결과적으로 합리성이 없는 타살설을 선전해준 모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