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18,1-6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2 “일어나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가거라. 거기에서 너에게 내 말을 들려주겠다.”
3 그래서 내가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갔더니,
옹기장이가 물레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4 옹기장이는 진흙을 손으로 빚어 옹기그릇을 만드는데,
옹기그릇에 흠집이 생기면 자기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되풀이하였다.
5 그때에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6 “이스라엘 집안아,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옹기장이처럼 너희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냐?
이스라엘 집안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47-53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7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서 13장에는 하늘 나라에 관한 여러 비유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늘 나라의 모습과, 마지막 날 하느님 나라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시작된 하늘 나라는 씨앗이며 새싹입니다. 그 하늘 나라에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습니다. 누룩처럼 이 세상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늘 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때로 이 나라가 너무 미약하다고, 하늘 나라가 과연 우리 가운데 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답답해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하늘 나라의 그 무력함은 하느님 자비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하늘 나라가 완성되는 날에 가라지는 불태워지고, 나쁜 물고기는 밖으로 던져집니다. “온갖 종류의 고기”(마태 13,47)가 모여 있는 그물은 아직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하늘 나라입니다. 하느님께서 아직 기회를 주시는 때이고, 하느님께 돌아가도록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합니다.
예레미야서의 말씀도 같은 내용을 말합니다. 예레미야서 18장에서는 옹기장이가 그릇을 빚으면서 잘못된 그릇을 다시 고쳐 빚지만, 19장에서 이미 그릇을 구운 다음에는 잘못된 그릇을 깨뜨립니다. 구워진 그릇은 다시 고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도 18장은 아직 하느님께 돌아갈 여지가 있는 상태를 나타내고, 19장은 인간이 하느님을 거부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를 나타냅니다.
선과 악이 함께 있는 시간, 하늘 나라가 이미 와 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입니다.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도록 두시는 하느님께서는 가라지를 불태우시는 하느님이시고, 온갖 고기를 모아들이시는 하느님 또한 나쁜 물고기를 버리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하느님께 돌아갑시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낯선 모임에 가면 사람들이 서로 교환하는 것이 있습니다. ‘명함’입니다. 명함에는 이름, 직장, 메일, 전화번호가 있습니다. 저는 이름을 소개할 때 주로 세례명인 ‘가브리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브리엘은 성모님께 예수님의 잉태를 알려준 천사입니다. 저는 가브리엘 천사처럼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쉽게 저를 기억합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이름과 세례명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내 이름과 세례명의 뜻과 의미를 떠올리고, 그 의미에 맞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성당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지역의 이름을 따라서 성당 이름을 정합니다. 제가 있는 성당의 이름은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입니다. 댈러스는 지역 명칭이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주보성인의 이름입니다. 미주 지역의 성당은 대부분 한국의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하려는 마음이 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개신교회는 이름을 정하는 방식이 가톨릭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개척교회의 목사님과 공동체가 교회의 이름을 정하는데 지역의 명칭이나 주보성인으로 정하지 않습니다. 성인이라는 교리가 없고, 가톨릭처럼 속지주의 원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이름을 보면 ‘반석교회, 빛과 소금 교회, 광명교회, 온 누리 교회, 사랑의 교회, 방주교회’와 같이 성경에서 교회의 이름을 찾습니다. 한 목사님이 공동체와 함께 교회의 이름을 정했는데 ‘주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너는 반석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 목사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교회의 이름을 주님의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님도 아니고, 교회의 주인은 장로님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바로 주님이기에 ‘주님의 교회’라고 정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그 원칙에 따라서 10년만 목회하고 떠났습니다. 장로들도 임기를 정하고 모두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런 교회와 목회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공동체를 이루는 신자들이기에 큰돈을 들여서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 큰 강당을 지어주고, 그 강당의 일부를 교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셨고, 같은 마음과 정성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교회 재정의 50%는 교회를 위해서 사용하고, 50%는 이웃을 위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헌금 봉투에 이름도 적지 않았고, 주보에 헌금 낸 교우의 이름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두 알고 계시니 이름을 굳이 적을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했어도 교우들은 기쁘게 헌금했다고 합니다. 1년 예산을 정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지출했다고 합니다. 다만 모든 지출의 원장을 공개했다고 합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지출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예산을 정하면 그 예산에 부족한 금액을 확보하기 위해서 헌금 설교를 해야 하는데, 예산을 정하지 않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모든 걸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니, 35년이 지났어도 공동체는 사랑과 기쁨이 넘쳐났다고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옹기장이와 진흙’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옹기장이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입니다. 진흙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만물과 사람입니다. 세상 만물은 옹기장이이신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오직 사람만이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서 진흙인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다고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실행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고, 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할 수 있는 겸손함을 주십시오. 더불어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내가 이 옹기장이처럼 너희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냐? 이스라엘 집안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인간은 너희를 구원하지 못한다. 숨 한 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고, 그날로 모든 계획도 사라져 버린다. 행복하여라,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 (조재형신부)
첫댓글 교회는 공동체를 이루는 신자들이기에 큰돈을 들여서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 큰 강당을 지어주고, 그 강당의 일부를 교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셨고, 같은 마음과 정성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교회 재정의 50%는 교회를 위해서 사용하고, 50%는 이웃을 위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헌금 봉투에 이름도 적지 않았고, 주보에 헌금 낸 교우의 이름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두 알고 계시니 이름을 굳이 적을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했어도 교우들은 기쁘게 헌금했다고 합니다. 1년 예산을 정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지출했다고 합니다. 다만 모든 지출의 원장을 공개했다고 합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지출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예산을 정하면 그 예산에 부족한 금액을 확보하기 위해서 헌금 설교를 해야 하는데, 예산을 정하지 않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모든 걸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니, 35년이 지났어도 공동체는 사랑과 기쁨이 넘쳐났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