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운칠기삼(運七技三)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옛날옛날에 한 선비가 있었다. 과거시험에 합격해 출사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 학문을 갈고닦았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늙어 죽게 됐다. 저승에 간 선비는 자신보다 못한 이들은 모두 과거에 급제했는데 자신만이 낙방을 거듭한 것이 너무나도 억울하고 원통해 그 이유를 따져 물었다.
선비의 이야기를 듣게 된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을 불렀다. 옥황상제는 두 신에게 술 내기를 시키며 “정의의 신이 이긴다면 너의 분노가 옳지만 운명의 신이 이긴다면 세상의 이치가 다 그런 것이니 그만 단념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내기의 결과는 일곱 잔의 술을 마신 운명의 신의 승리. 정의의 신은 석 잔의 술을 마시는 데 그쳤다. 이를 두고 옥황상제는 “이처럼 세상의 일은 3할의 이치와 7할의 운명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했고 실제로 있었을 리 만무한 이 술 내기 사건이 바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라고 한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은 이야기 속의 선비와 같이 주로 원하는 결과를 이루지 못한 이들에게 “네 노력이나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운이 나빴던 것뿐”이라며 위로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정말 그게 운칠기삼의 진정한 의미일까?
기자가 생각하는 운칠기삼의 의미를 이야기하기 위해 최근 재미있게 읽었던 웹툰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법률저널의 주요 독자인 수험생들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말일 ‘합격시켜 주세용’이라는 제목의 웹툰은 천 년의 수련을 하고 용이 되어 승천하는 중에 추락한 이무기들이 다시 한번 용이 되기 위한 시험을 치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산에서 천 년을 수련한 뱀은 승천해 용이 되고 강을 다스리게 되는데 승천하는 중에 이를 목격한 인간이 “뱀이다!”라고 말을 하면 여의주가 깨지고 용이 되지 못한다. 그 억울함이 얼마나 크겠는가.
이무기는 그 원한을 담아 승천을 방해한 인간의 대대손손 이어지는 저주를 내리는데 불명예스러운 삶과 죽음, 단 한 명의 친구도 없는 외로운 인생, 평생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불운, 부모 자식 간의 애정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단명하는 비극 등 그 유형도 매우 다양하다.
주인공은 이무기 바리와 다방면에 걸친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조상의 업보로 인해 목표로 하는 시험(정황상 5급 공채로 추정)에 합격하지 못하고 과외로 연명하는 지지리도 운 없는 남자 유찬영이다.
합격이 절실한 것은 용이 되려는 바리뿐 아니라 유찬영도 마찬가지다. 연좌제의 고리를 끊으려면 저주를 내린 이무기가 용이 되어야 하니 서로의 인생을 망친 철천지원수라고 할 수 있는 관계임에도 반드시 협력해야만 하는 상황.
승천에 실패한 운 없는 이무기가 어찌나 많았는지 인원수를 줄이기 위해 중간시험을 거치고 서해, 동해, 남해 용왕이 주관하는 세 번의 시험까지 통과해야 단 한 자리뿐인 낙동강 용이 될 수 있다.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바리는 권모술수를 부릴 줄도 몰랐고 다른 이무기들과 달리 폭풍을 일으키거나 구름을 만들거나 불을 뿜어내는 능력도 없었다. 다행히 유능한 조력자인 유찬영의 도움을 받았고 때로는 그야말로 천운이 따라 살아남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바리는 자신의 부족한 능력으로는 용이 될 자격이 없는 것 같다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믿었던 벗들에게 배신당한 상처에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그 시련들을 극복하며 성장해나갔다. 아무리 운이 따랐더라도 시련을 만났을 때 시험을 포기했다면 용이 되기는커녕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잃었을 것이다.
많은 수험생들이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합격할 수 있을까 불안해하며 운(運)을 걱정하곤 한다. 하지만 수험생은 오직 역량을 키우는 일, 석 잔 분량의 기(技)를 채우는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운을 생각하는 것은 시험이 끝난 후의 일이다.
스스로 할 몫을 다했음에도 떨어졌다면 운이 따르지 않았음을 아쉬워할 뿐 자책하지 말고 다시 도전을 하거나 자신의 역량을 활용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합격을 했다면 자만하지 말고 일곱 잔의 운에 감사하며 그동안 쌓아 올린 기를 널리 이롭게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수험생에게 있어서 운칠기삼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