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출기의 말씀입니다.16,2-4.12-15
그 무렵 2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3 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나는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겠다.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3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14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15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4,17.20-24
형제 여러분, 17 나는 주님 안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헛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른 민족들처럼 살아가지 마십시오.
20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21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 관하여 듣고 또 가르침을 받았을 줄 압니다.
22 곧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23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24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24-35
그때에 24 군중은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30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묵상
이집트의 고기 냄비는 ‘옛 인간’의 생활 방식입니다. 그런데 옛 인간의 삶은 충만하지 않습니다. 광야 길에 지친 이스라엘이 이미 잊은 듯하지만, 이집트는 설령 먹을 것이 있었다 하여도 종살이하던 집이었습니다. 그 땅에서 이스라엘이 억눌려 부르짖었기에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는데, 이스라엘은 그 해방을 잊고 음식이 주는 쾌락을 찾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람을 속이는 욕망”(에페 4,22)이라는 표현이 특별히 눈에 들어옵니다. 욕망, 어떤 것을 좋다고 여겨 그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사람을 속인다고 말하는 것은 그 대상이 참으로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호수 건너편까지 애써 예수님을 따라간 이들은 무엇을 찾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빵을 청하지만, 막상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바로 생명의 빵이시라고 말씀하실 때는 그분을 떠나갈 것입니다.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이 옛 인간에게 속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음식을 구하려고 수고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지금 찾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찾지 말라고, 그 빵이 생명을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옛 인간을 벗어 버리지 못합니다. 마치 이집트의 음식을 그리워하여 종살이에서 해방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처럼, 내 손으로 붙잡을 수 있어 보이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더 큰 선물을 받지 못합니다.
이들은 배까지 마련하여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옛 인간을 만족시키는 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지난 7월 9일에 휴가를 떠난 부주임 신부님이 이번 주 목요일에 돌아옵니다. 건강하게 잘 돌아 올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제가 보좌신부로 있을 때도 휴가를 갔습니다. 당시에는 월요일에 가서 금요일에 오는 일정이었습니다. 주일을 껴서 휴가를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여름 행사를 마치면 주로 바닷가로 가서 스쿠버 다이빙을 했습니다. 겨울 행사를 마치면 산으로 가서 스키를 타거나, 산행을 했습니다. 시간도 흐르고, 세상도 바뀌어서 요즘은 주일을 포함한 휴가를 가곤합니다. 휴가를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건강입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휴가를 즐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휴가는 몸이 떨릴 때 보다는 마음이 떨릴 때 가라고 합니다. 둘째는 시간입니다. 지나치게 바쁘면 시간을 낼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휴가를 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 이런 광고도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 휴가를 떠나라!’ 셋째는 여유입니다. 휴가를 가려면 비용이 필요합니다. 휴가 중에도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에게 휴가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넷째는 친구입니다. 혼자서 휴가를 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친구와 함께 휴가를 떠납니다. 저도 피정은 혼자서 간 적이 있지만, 휴가는 늘 친구와 함께 다녔습니다. 바쁜 일상을 떠나서 몸과 마음을 여유롭게 재충전하는 휴가를 떠날 수 있는 것도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휴가는 주차장이 아닙니다. 휴가는 주유소와 같습니다. 주유를 마치면 차는 다시 목적지로 떠나기 마련입니다. 휴가라는 주유를 마치면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은 주차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당에 와서 영적인 말씀을 듣습니다. 성당에 와서 기도합니다. 그렇게 영적인 주유를 마치면 가정으로, 직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영적인 충만함을 가족과 이웃에게 나누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인도의 간디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존경하지 않습니다. 간디의 눈에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수레바퀴를 굴리면서 살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먹을 양식이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없다면 삶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만나’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의 문제가 해결되어도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늙게 되고, 뜻하지 않지만 병이라는 친구가 불쑥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삶의 시계가 멈추고 우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운명입니다. 이런 삶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참된 신앙인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이런 삶의 수레바퀴를 벗어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삶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야만 비로소 영원한 생명에로 나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우리 신앙인들은 ‘인생’이라는 짧은 휴가를 보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인생이라는 휴가에서 영적인 주유를 잘 마치고 우리의 본향인 영원한 생명에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배움이 많아도, 신앙이 깊어도, 오랜 수도생활을 했어도 우리는 이 짧은 휴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야 할 곳을 모르고 방황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무엇입니까?.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 양식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새 인간을 입는다면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한다. 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인을 존경한다.”(조재형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