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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봄비가 제법 내리는 토요일에 ‘문화도시 울산 포럼’ 회원들이 돋질 산을 탐방했다. 남구 삼산동 한가운데 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해 많은 사람이 이 산을 그냥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 보니 이름 자체가 생소하게 들릴 정도다.
돋질 산은 태화강역 뒤쪽에 보이는 아담한 동산이다. 해가 솟는 방향을 뜻하는 ‘돋다’에서 유래한 이 산은 예부터 동이 트는 방향, 기운이 솟는 명당으로 전해 내려왔다. 때문에 돋질 산 정상에서 소원을 빌면 장사가 잘된다고 해, 한때 상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산업화의 급류 속에 이 작은 산은 점차 잊혀져 갔다. 산업도시가 위로, 밖으로 확장되면서 산은 그저 태화강역 쪽에서 석유화학 공단으로 스쳐 ‘지나가는 산’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도심 속 한 가운데 자리하고도 외면당한 체 변변한 관리와 정비 한번 없이 앞으로는 공단의 매연을 막아내고, 뒤로는 삼산 쓰레기 매립장의 오수와 악취를 삼켜내며 수십 년을 버텨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이 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라는 국제적인 대형 행사가 울산의 삼산 쓰레기매립장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돋질 산은 이 박람회장과 지리적으로 맞닿아 있으며 바로 턱밑에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은 이제 단순한 뒷산이 아니라, 울산의 산업과 자연, 그리고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점(展望點)이요,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환골탈퇴할 수 있는 울산의 명당으로 떠 오르고 있다.
돋질산 정상에 오르면 현대자동차 공장, 석유화학단지, 삼산 시가지, 태화강 국가정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울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겹겹이 보이는 셈이다. 이 산은 그 자체로 울산 산 역사의 상징적 축소판임을 깨닫게 한다. 이런 공간이 무심하게 외면돼 도심 한복판에 방치돼 있다는 것 자체가 울산의 문화 수준과 역사의식을 헤아리게 한다. 따라서 이제부터 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단순히 기능적으로 이용하자는 부정의 뜻을 넘어, 창의적으로 응용, 활용하자는 긍정의 의미에서다.
우선 산을 도심 속 복합 힐링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현재 일부 등산로만 존재하는 이 산에 트레킹 코스, 야외 체력단련장, 산책 데크, 무장애 탐방길 등을 설치하면 시민 누구나 쉽게 오르기 좋은 건강 공간이 된다. 또 정상에는 소규모 북카페형 전망대나 야외 소극장과 전시장, 숲속 명상 공간을 조성해 문화·복지 기능을 입힐 수 있다. 특히 은퇴 세대나 아이를 둔 가족 층이 많이 사는 남구권에서는 이런 생활밀착형 휴식 공간이 너무도 절실하다.
국제정원박람회 개최에 대비해 지금부터 국제정원박람회와 연계될 아이디어 찾기에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돋질 산과 박람회장을 잇는 생태 연결축을 만들고, 박람회 기간에는 정원형 전망대나 숲속 정원 체험장으로 활용하면 도시 전체가 하나의 테마정원처럼 연결될 수 있다. 단순히 행사를 치르는 것을 넘어, 도시의 미래와 생활환경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는 셈이다. 과거의 쓰레기매립장과 잊혀진 돋질 산이, 울산의 새로운 생태 정원도시 상징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시는 사람의 흔적이 세월과 함께 쌓이는 공간이다. 돋질 산은 오랫동안 그런 흔적을 잃어버린 채 홀로 남아 있었다. 국제정원박람회 개최라는 호재를 허망하게 떠 내려보내지 말고 다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숲속 정원의 생태기능을 입힌다면, 울산은 국가 산업도시에서 생태도시로, 나아가 숲속 정원도시로, 다시 과거처럼 ‘기운이 솟는’ 명소로 재탄생할 수 있다.
명심할 일은 산을 사람의 욕심으로 이용할 생각은 아에 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산의 입장에서 ‘가장 알맞게’ 쓰여져야 한다. 돋질 산, 늦게 찾아가서 미안했고 거기 있어 줘 고마운 산이다. 멀리서 바라본 옆모습보다 가만히 들여다본 앞모습이 더 좋은 산이다.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간절곶과 더불어 해가 먼저 뜨는 산 돋질 산이, 이제 그 이름처럼 다시 떠올라 울산의 중심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솟아오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