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학년만 남았는데... 구지 그래야겠니?”
김 자영 교수의 안타까운 질문이었다.
“... 죄송해요..”
맥없이 말하는 한 혜연의 말소리는 김 교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너 같이 재능 있는 발레리나가 될 재목은 많이 없단다.. 널 탐하는 발레단은 참 많은데..
안타깝구나... 내가 도우면 안 되겠니?“
“............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를 위해서 한 평생 고생하신 엄마를 위해서는
이럴 수밖에 없어요.. 교수님.. 저를 그토록 아껴주셨는데..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저를 이해해 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아끼는 제자의 얼굴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김 교수였다.
벌써 여러 번 상을 받아서 학교의 자랑이기도 한 제자였다.
그것보다도 발레의 불모지와 다름없는 한국에서 정말 촉망받는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될 수 있는 인재이기도 한 제자이다.
어렵사리 간 영국의 국립 발레단의 워크 샵에서도 빛나는 존재였던 터라 벌써부터
입단제의가 들어온 자랑스러운 제자인데...
주위에서 도와 줄 스폰서는 얼마든지 있을 텐데.. 깔끔한 혜연의 성격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김 교수였다.
혜연이가 어려운 환경인데도 발레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혜연모의 헌신적인
뒷받침 때문이었는데..
얼마 전에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 위태하게 느껴졌었는데...
“...흠... 그래.. 엄마는 어떠시니...”
한 숨을 쉬며 엄마의 안부를 묻는 김 교수를 죄송하게 바라보며 혜연은 얼굴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 수술하셔야 한다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김 교수의 얼굴은 복잡했다.
“그랬구나...”
책상 서랍에서 무엇이 쓰여 진 종이를 꺼내 혜연에게 건넸다.
의아해하며 종이를 받아 든 혜연에게 김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스트레칭 하는 것... 잊지 말도록 해라. 언젠가는 다시 돌아 와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거기 쓰여 진 곳으로 가서 김 영우를 찾도록 해라. 넌 똑똑하고
재능이 있으니까... 굳이 걱정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엄마가 회복하시면
돌아오도록 해라.”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 이 녀석! 난 지금... 정말 가슴 아프다. 너 같이 재능 있는 인재를 이렇게 놔둬도
되는 건지..”
“저는 죽을 때까지 발레리나인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나가는 혜연을 보며 김 교수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재능 있는 인재가 험난한 사회에 나가서 고생을 하면서 그 재능이 바래 질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혜연은 정말 학교까지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학비라든가... 그런 거라면 장학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
생활비라면.. 힘들겠지만.. 알바라도 해서 어찌 해결할 수 있지만..
병원에 입원한 엄마의 병원비는 휴학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
정말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당장 수술을 해야만 하는... 그것도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환자였기 때문이다.
미혼모로 어렵사리 혜연을 키우며 발레에 재능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 비싼 학원비와
뒷바라지를 해주며 언제나 웃어주던 엄마였다.
혜연은 그런 엄마를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내몰라 라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없으면 자기는 천애고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어려서부터 너무 외롭게
자라왔기 때문에 엄마는 그냥 엄마가 아니 였던 것이다.
또 한 자기를 뒷바라지 하느라 그 큰 병이 생긴 줄도 모르고 그냥 아파했을 엄마에게
너무 죄스러웠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이런 사정을 아시고는 정말 안타까워하시며 일자리를 알아보셨고..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춤 밖에 모르는 혜연이를 위해 김 교수는 어느 가수의 신곡을 위한 안무를 해주고 또한
빽 댄서들의 안무를 봐주는 자리를 알아 봐 줬던 것이다.
발레를 하면서 틈틈이 현대무용과 재즈댄스를 했는데.. 그것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현대적이면서도 어딘지 몽환적인 하얀 건물을 바라보며 혜연은 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YW엔터테인먼트.
살면서 이런 곳에 출입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혜연이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들어가야만 한다.
천천히 안내데스크로 다가갔다.
연예기획사라 그런가.. 하얀 얼굴에 예쁘게 웃는 모습이 정말 잘 어울리는 여자가 있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약간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예쁘게 물었다.
“저... 김 영우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약간 경계 하는듯한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약속하고 오셨나요?”
“약속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김 자영교수님이 보냈다고 하시면 아실 겁니다.”
의심 적은 눈초리를 풀지는 않았지만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기다리세요. 김 영우씨가 나오실 겁니다.”
혜연은 잠시 긴장했다.
처음으로 공부가 아닌 또한 발레가 아닌 일로 누군가를 찾아 왔다는 것에 말할 수 없이
막막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좋아하는 발레만 할 줄 알았다.
엄마가 그렇게 병이 생기시지만 않았다면 이런 세상은 알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로비에 비치되어 있는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상기 된 표정으로 안내 데스크에 김 영우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나를 찾아 온 손님이 어떤 분이죠?”
웃는 김영우를 본 안내 도우미는 얼굴이 빨개지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의자에 앉아 있는 혜연을 쳐다봤다.
영우는 의자로 천천히 다가가면서 혜연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용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부드러운 옆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얗고 깨끗한 얼굴에 오똑한 콧날에 긴 속눈썹이 살짝 내려뜨는 모습은 로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이곳은 많은 연예인들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라 웬 만큼의 미모는 눈길을
끌지도 못하는 장소인데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큼의 매력을 혜연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의 눈길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혜연의 모습에 영우는 갑자기 불안함을 느꼈다.
혜연은 자신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
그리 크지는 않은 것 같지만 체격은 단단해 보이고 준수해 보이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김 영우입니다. 저를 찾아오신 분이시죠?”
시원하게 웃는 영우를 보고 혜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 편 의자에 영우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혜연은 어딘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김 자영 교수님이 보내셨다고요?”
혜연은 다시금 긴장했다.
그때 또 다른 도우미가 다가왔다.
“난 커피. 무얼 드시겠어요?”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도우미가 가고 잠시 어색함이 흘렀다.
“사실은 김 자영 교수님이 우리 누나예요.”
웃으며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만지는 영우를 혜연은 잠시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곤 그런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낯이 익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맡고 있는 가수의 신곡 발표를 위해 안무가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누나에게
부탁을 했었거든요.”
“네...”
혜연은 또다시 막막해졌다.
대중음악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인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지 생각되었다.
“혹시 강 영웅이라고 아세요?”
“.......... 잘 모르겠는데요.”
영우는 혜연의 대답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강 영웅이 완전 신인이 아니고 벌써 3집까지 낸 적어도 한국에서는 최고의 가수고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경이롭다는 눈으로 혜연을 쳐다보았다.
“네.... 3집까지 낸 최고의 가수죠. 제가 그 강 영웅의 매니저입니다.”
가만히 쳐다보는 혜연의 눈동자는 아무런 반향도 없이 영우를 보고 있었다.
“이번에 4집을 내는데 지금까지의 노래와는 다른 장르의 곡을 선보일 생각인데.. 안무가
전통 발레 내지는 재즈 발레가 필요해서 누나에게 부탁을 하게 되었죠.”
"........"
“다른 곳에 가서 일 하는 것 보다 보수는 괜찮을 겁니다.”
혜연은 영우라는 이 사람이 자신의 사정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언제부터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될 수 있으면 빨리 시작했으면 합니다만...”
“내일부터 시작 하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이 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2층으로 가시면 연습실이 있을 겁니다.
1번 연습실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혜연을 도우미가 가져다 준 커피를 마시며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직 나이는 어린 것 같은데.. 주위에 전혀 흔들림이 없는 단단한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차라리 연예인을 하라고 하면 더 나을 것 같은 분위기와 외모였다.
하지만 누나로부터 들은 당부를 잊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괜찮으신가요?”
혜연은 영우로부터 느닷없이 엄마를 묻는 말을 듣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얼굴이 굳어지는 혜연을 보고는 영우는 아차 했다.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잘 모르겠어요.. 단지 엄마한테는 내가 필요하다는 것 밖에는 요.”
다시 말 없이 커피를 마시고 혜연이 일어섰다.
따라 일어난 영우에게 인사를 하고..
“내일 8시까지 오면 되나요?”
“조금 빠른듯하지만 좋으실 대로 하세요. 그리고 자세한 것은 내일 와서 이야기 하죠.”
춤추듯 걸어서 로비를 나가는 혜연을 쳐다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형! 뭘 그렇게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어?”
뒤에서 갑작스럽게 들리는 소리에 쳐다보니 영웅이 언제보아도 멋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영웅이구나.. 지금 왔다 갔다.”
“누가?”
“니 곡 땜에 우리 누나한테 부탁한다고 했잖아.”
“아~”
“내일부터 시작할거야. 너도 준비하도록 해.”
“어때~? 곡이랑 맞을 것 같아?”
“......... 아마도 더 이상 맞을 사람이 없을 거다.”
영우의 말을 듣고는 자기 맘에 들 댄서는 없다고 생각한 영웅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영웅을 보며 영우는 왠지 모를 불안함이 들었다.
낯 설은 불안함이었다.
강 영웅의 매니저로 활동한 지 벌써 7년.
준비 기간이었던 3년을 포함한다면 벌써 10년이다.
영웅은 준비 된 스타이다.
외모는 말할 것 없이 최고라고 해도 다 들 인정한다.
그리고 보통사람이라면 지쳐서 쓰러질 정도로 훈련이 혹독했는데도
스스로를 독려하면서 그것을 이겨냈고.. 하나를 가르치면 다섯을 응용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특출한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부심이 높았다.
또한 웬 만해서는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버릇없음도 있다.
영우는 영웅을 동생으로 또한 매니저가 관리하는 스타로 애정을 쏟고 있었다.
그런데 혜연을 본 순간부터 이상스럽게 불안해졌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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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2.
[ 시작 ]
사랑은 미친 짓이다. - 1 -
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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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1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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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피키님 돌아오신거 너무 환영해여...알랴뷰~~~~^3^...울 하연이가 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넘 반갑고 기쁘네여...^^*
행성님.. 저도 무지 기쁘네요. 그리고 가슴이 답답하네요. 참.. 행성님 건강하게 잘 있는지 궁금하네요. 글은 잘 읽고 있어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6.07 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