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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내버려 두심 (롬1:24–32)
1. 서론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설명하면서 놀라운 표현을 반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사” (24절, 26절, 28절)
우리는 보통 하나님의 진노를 번개처럼 내리치는 심판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의 진노의 본질이 ‘방치’와 ‘내어줌’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으실 때
✔ 하나님이 붙들지 않으실 때
✔ 하나님이 그대로 두실 때
하나님의 진노는 ‘폭발’이 아니라 ‘내버려 두심’입니다
그것이 가장 두려운 심판입니다.
2. 본론
1: 죄의 근본 .—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택함 (25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구속사적으로 인간의 타락은 단순한 행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영화롭게 하지 않음,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섬김,
진리를 의도적으로 바꿈.
이것은 창세기 3장의 반복입니다.
✔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
✔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착각”
창3:5-6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올립니다.
2. 하나님의 심판 — ‘내버려 두심’의 3단계 (24, 26, 28절)
본문은 매우 구조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① 첫 번째 내버려 두심 (24절) / 몸의 타락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심
몸이 욕망의 도구가 됨,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짐
24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그러므로 ”입니다.
왜 내버려 두셨습니까?
25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마땅히 섬겨야할 조물주보다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으로 나타나는 죄악
즉, 진리를 바꾸었기 때문에 삶이 무너진 것이다.
여기 24절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즉 인간의 성적 타락의 원인이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겼기 때문임을 밝힌다.
사람은 믿는 대로 살아갑니다. 잘못 믿으면 반드시 잘못 삽니다.
예화 1: 방향을 잃은 내비게이션
한 사람이 내비게이션을 끄고 “내 감으로 가겠다”고 운전합니다.
처음에는 잘 가는 것 같지만 결국 엉뚱한 곳에 도착합니다.
문제는 운전 실력이 아닙니다. 기준이 사라진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말합니다: 네 욕망을 따르라” “네가 기준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욕망은 기준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절대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② 두 번째 내버려 두심 (26절,27) / 관계의 타락
26-27절“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심
/ 성적 질서의 붕괴
/ 창조 질서의 왜곡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이 부분은 단순한 도덕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창조 질서 붕괴”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인간관계의 구조 자체가 무너진다.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하나님은 불경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정욕에 넘겨주셨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정욕을 가리켜 "부끄러운 정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정욕을 좆으면 수치스러운 행동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정욕을 좆는 사람은 누구든지 수치스러운 삶을 살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버림받고 정욕을 좆아 사는 사람들은 이성간에 서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은 하나님이 세운 자연적인 원칙을 거스려 성적으로 부패한 행동을 했습니다.
바울이 특히 여자의 죄를 먼저 언급한 것은 바울 당시 여인들의 성적 문란이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여성들의 성적 문란은 가정과 사회에 여러 가지 중대한 혼선을 가져왔습니다.
(27)."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그러나 성적인 범죄는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들 때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하나님을 떠나 정욕을 좆은 결과 이러한 질서를 뒤바꾸고 말았습니다.
남자들은 여자가 아니라 같은 남자를 보고 성욕이 불처럼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동성연애는 바울 당시 로마에 만연되어 있었으며,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에게 돌린 사람들은 그 형벌로 이성의 위치를 뒤섞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이 한 불경한 행동에 대해 내린 합당한 보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합당한 경배를 돌리는 사람은 진리로 인도해 주시지만, 하나님대신 피조물을 섬기는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버려두시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 동성연애는 이성을 비정상적으로 사용한 대표적인 탈선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러한 비정상적인 일을 하도록 방임하심으로 그들의 행한 불경함에 대해 합당한 보응을 하셨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정욕에 넘겨져서 가공할만한 방탕한 행동을 하며 살게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18절에서 말한 "하늘로부터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정체였습니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온갖 부정한 윤리적 타락 현상은 인간이 하나님께 대해 반역한 결과로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③ 세 번째 내버려 두심 (28절) / 마음의 붕괴 (마음의 타락)
28절“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상실한 마음(버림받은 정신)에 내버려 두심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함, 양심이 마비됨
그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매…”
여기서 가장 무서운 일이 일어남:
하나님이 그들을 “상실한 마음”에 내버려 두심.
옳고 그름이 흐려짐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함
진리를 거부하는 상태
더 무서운 것은 “틀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실한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지식)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습니다. "싫어했다"는 말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일이 아무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알거나 섬기는 일을 거부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경제나 실제 삶에 관한 일에는 민감한 반응과 관심을 보였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거부하고 만물은 옛날부터 저절로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 인격적인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사람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그냥 버려두셨습니다.
"상실한 마음"(아도키몬 눈)은 "무가치한 마음", "버림받은 마음", "합당하지 못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무가치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들을 가치 없는 삶을 살도록 방임해 두셨습니다.
상실한 마음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무가치한 것을 좆는 부적절한 마음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방임하신 결과 그들은 "사람의 본분에 벗어나는 일들"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버려두는 사람들은 인간의 본분을 벗어나서 하나님과 자신에게 미움과 증오를 받을 만한 일들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죄를 죄라 하지 않음/ 진리를 공격함/ 상대주의가 지배함
이것은 단순한 문화 문제가 아닙니다.
영적 심판 상태입니다
죄 → 더 큰 죄 → 완전한 타락
하나님은 즉시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죄의 길을 계속가게 허락하심으로 심판하십니다.
3. 유기(타락)의 결과 — 삶 전체의 붕괴(전인격적 붕괴) (29–31절)
본문은 21가지 죄를 나열합니다.
29-32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것을 자세히 보면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큰 죄”라고 생각하는 것뿐 아니라 “일상적 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기, 분쟁, 부모 거역, 무정함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삶은 이미 무너진 상태이다”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문제는 정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것은 단순한 “몇 가지 죄 목록”이 아닙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인간 전체가 타락했다 (전적 타락)
관계가 무너졌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결과 행하고 있는 "합당치 못한 일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당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 행위 중에 합당하지 못한 예들을 찾아 열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목록이 그 당시의 모든 죄를 다 제시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자기 시대와 그 이전 시대 사람들이 행했던 각종 불합리한 행동들에 대해 기억이 나는 일들을 차례로 열거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열거한 죄의 목록과 의미를 다음과 같습니다.
* 윤리적인 악함(29절)
바울은 하나님의 버려두심 받은 결과 사람들이
"불의"(아디키아: 잘못되고 거짓된 일, 부정이나 비행, 하나님 기준을 무시하고 "내 방식이 옳다"고 우기는 고집입니다.)
"추악"(포르네이아: 윤리적으로 더럽고 깨끗하지 못한 일, 겉은 멀쩡해도 속은 남을 해칠 궁리로 가득한 악마적인 상태입니다.),
"탐욕"(플레오넥시아: 분에 넘치는 욕심과 탐심, "더 많이!"를 외치며 돈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소유욕입니다.)
"악의"(카키아: 악한 뜻(의지), 상대방이 안 되기를 바라고 골탕 먹이려는 심보입니다.) 이런 것들이 가득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사람들을 무가치한 마음에 방임한 결과로 사람들은 그릇되며 윤리적으로 부정한 일로 가득 찬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분수에 넘치는 것을 소유하려는 탐심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되었고, 악을 행하려는 의지로 가득 찬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 다툼과 분쟁 (29절)
바울은 하나님의 버려두심 받은 사람들은
"시기"(프쏘노스: 질투,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고 배 아파하는 병든 마음입니다.)와
"살인"(포노스: 다른 인격을 해치는 것, 실제로 손에 피를 묻히는 것뿐 아니라, 마음으로 저주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과
"분쟁"(에리도스: 다투기를 좋아하는 성품, 내 이익을 위해 편을 가르고 공동체를 싸움터로 만드는 것입니다)을 일삼으며,
"사기"(돌로스: 거짓으로 남에게 해를 입혀 이익을 취하는 것, 거짓말로 남을 속여 배신감을 주는 행위입니다.)와
"악독"(코코에쎄이아: 남을 해치려는 마음, 성질이 간악해서 남에게 독한 상처를 주는 태도입니다.)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람들은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질투하며, 죽이고, 싸우며, 남을 속이고, 해치려는 마음이 가득하여 살아가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 언어의 타락 (29절)
바울은 하나님이 버려두심 결과 사람들이
"수군수군하며(핍시쑤리테스: 은밀히 남을 모해하고 중상하는, 뒤에서 남 흉을 보며 '카더라' 통신을 퍼뜨리는 사람입니다.),
남을 "비방하는(카타라로스: 중상 모략하는 ,대놓고 남을 헐뜯고 악담을 퍼붓는 자입니다) 존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정욕에 방임한 결과 사람들은 혀와 언어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말을 해여 할 입으로 남을 중상모략하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말 대신 상처를 입히는 말을 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 신성모독과 교만 (30절)
또한 하나님의 버려두심 결과 사람들은
"하나님을 미워하며"(쎄오스투레스: 하나님을 조롱하고 거역하며 반대하는 자, 하나님을 대적하고 무시하는 교만의 극치입니다)와, "능욕하는 자"(휘브리스테스: 거만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자, 남을 깔보고 인권을 유린하는 무례함입니다.)가 되었으며,
"교만하고"(휘페레화노스: 오만하고, "내가 누군데!" 하며 자신을 높이는 태도입니다.),
"자랑하며"(알락쏜타스: 헛된 것을 추구하며 잘난 체 하며, 자기 업적을 늘어놓으며 하나님 영광을 가로채는 자입니다.),
"악한 일을 계획하는"(에퓨레테스 카콘: 악을 창작하여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어떻게 하면 더 정교하게 악한 짓을 할까 연구하는 자입니다.)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부모와 권위를 거역하였습니다"(고뉴시 아페이쎄이스: 권위를 거역함, 기초 질서인 효도를 무너뜨리는 불효입니다.).
/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모독하며 교만하고 오만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악을 창작하여 갈수록 세상을 더 어둡게 만들었고, 자기를 낳아 준 부모와 권위를 거역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 저질스런 행동 (31절)
사람들은 하나님의 버려 두심의 결과
"우매하고"(아쓰네투스: 미련하며 도덕적으로 저질적인, 영적으로 캄캄해서 하나님의 은혜도, 사리 분별도 못 하는 자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아쑨쎄투스: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신용 없는, 자기 이익을 위해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자입니다.),
"정이 없는"(아스토르구스: 본능적인 감정마저 말라 버린, 사랑이 메마르고 타인의 아픔에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냉혈한입니다.)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우둔하고 저질스러운 행동을 하게 되었고, 약속을 쉽게 파기하는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되었으며, 인간에게 있는 기본적인 감정마저 사라진 무정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행동들이 바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결과 나타난 현상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행동을 자주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떠나 자기 정욕을 따라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영적 질병의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버려두심의 결과의 마지막 단계: 죄를 즐기는 상태 (32절)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것이 가장 심각한 단계입니다. 여기서 죄는 완성됩니다.
죄를 짓는다, ▶ 죄인 줄 안다, ▶ 계속한다, ▶더 나아가 동의한다.
죄의 최종 단계는 죄를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21가지 목록을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나는 살인이나 사기는 안 쳤으니까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 계실까요?
우리 중에 뒷담화 한 번 안 하고, 시기 질투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이 지독한 목록을 쫙 펼쳐놓은 이유는 우리를 겁주려는 게 아닙니다.
"너희는 다 사형감이다, 너희 힘으로는 절대로 여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 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완전 타락의 증거입니다.
/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회개할 기회조차 없이 그대로 멸망으로 달려가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 그것이 가장 무서운 심판입니다. 내 버려두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참된 행복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이 처참한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이 21가지 독초를 십자가에서 다 뽑아내 주셨습니다.
4. 구속사적 전환:
여기서 복음이 왜 필요한가 ?
이 본문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의 필요성을 폭발적으로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1) 인간은 스스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
이미 “내버려 두심” 상태이기 때문
2) 외부에서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
하나님이 다시 개입하셔야 합니다.
5.. 복음 : 하나님은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고 선언합니다.
로마서 1장의 어두움은 로마서 3장에서 빛으로 바뀝니다.
롬 3:21절 “이제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그리고 그 절정은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 가운데 내버려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붙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내버려 두심”의 반대입니다.
8. 결론:
이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 점점 타락/ 결국 파괴/ 하나님께 버려짐
하나님께 붙들린 삶/ 은혜로 회복/ 성령으로 새 마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적용 질문
나는 하나님 없이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내 삶 속에 “내버려 두심”의 징후는 없는가?
나는 죄를 미워하는가, 아니면 즐거워하는가?
나는 진정으로 복음이 필요한 사람인가?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마음에서 밀어내고
우리 욕망과 생각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죄를 가볍게 여기고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는 자리까지 나아갔던 연약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고 감사하지 않았던 우리의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를 내버려 두지 마옵소서. 우리의 완고한 마음대로 살도록 그냥 두지 마옵소서.
오히려 우리를 붙드시고 깨뜨리시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주님, 상실한 마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무뎌진 양심을 다시 살려 주옵소서.
죄를 죄로 아는 거룩한 감각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덮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결단합니다. 하나님을 다시 우리의 중심에 모시겠습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을 말씀 위에 세우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