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02 폭력의 도시 시 31:9-16; 사 50:4-9a; 빌 2:5-11; 마 21:1-11
성선설과 성악설 가운데 언제나 자신 있게 사람은 선하게 태어났다는 성선설을 한 치의 망설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후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오, 선한 아기, 에이, 악한 아기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태어나든 후천적 영향, 즉 주변 환경에 따른 경우일 것입니다. 최근 학교폭력(학폭)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국가 수사 본부장에 낙마한 정순신은 아들의 학폭문제가 원인입니다. 학폭 자체도 문제지만, 검찰이라는 고위직을 이용해서 덮으려 했다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가해자는 떳떳하게 서울대를 다니고 있지만, 피해자는 여러 번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을 것입니다. 더 최근에는 전두환의 손자 전 모 씨가 큰 화제입니다. 할아버지를 5.18 학살자라고 하며 고인을 대신해서 진심으로 보이는 사과를 합니다. 당사자는 끝끝내 당당하게 살았기에 유족들은 한에 한을 멈출 수 없었는데, 어쩐 일인지 대를 건너 이런 일이 일어나니 의아하면서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드러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주, 4.3, 4.16 세월호, 광주 5.18, 최근 10.29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학폭은 국가 폭력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자비하게 학폭을 행한 것도 고위직 아버지 힘이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고위직에 이르기까지 폭력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처럼, 힘이 있으면 무죄, 힘이 없으면 없는 죄도 있게 만드는 시대, 그래서 오늘의 도시를 폭력의 도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성선설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아름다운 세계를 폭력의 도시라 할 수 있습니까? 폭력은 누구의 것일까요? 어제 소성리 벚꽃 장터를 잠시 다녀왔습니다.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맛난 음식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전체 분위기였습니다. 흩날리는 벚꽃잎이 함박눈처럼 내리는 평화의 장소, 평화의 도시였습니다. 그 이면에는 사드라는 무시무시한 괴물, 폭력, 죽음이 울부짖는 사자처럼 으르릉거리지만, 그 순간만큼은 평화 그 자체입니다. 폭력은 누구의 것입니까? 가진 자의 것입니다. 힘 있는 자의 것입니다. 그들끼리 어울려 힘겨루기를 합니다. 약자는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있을 뿐입니다. 강자가 그들끼리 어울린다면, 약자도 약자끼리 어울려 서로 힘을 모을 뿐입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만이 무자비한 폭력을 막을 방법입니다. 그래서 전국적 연대가 얼마나 큰 힘인지 모릅니다. 그 연대의 시작은 내가 먼저입니다. 나는 무관심하면서 누군가 관심 가져 주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른 시간부터 음식이 부족해서 걱정하는 주최 측의 마음이 왠지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은 사순절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종려 주일로 지킵니다. 시편 본문과 이사야 본문은 예수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한에 사무쳐서, 내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내 혼과 몸도 기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나는 극심한 고통으로 생명이 끝장났으며,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나를 비난합니다. 이웃 사람들도 나를 혐오하고, 친구들마저도 나를 끔찍한 것 보듯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 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시편)”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겼다.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사)”
종려 주일은 복음서 본문을 배경으로 합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합니다. 사람들은 겉옷을 길에다 펴고, 종려나무가지를 꺾어다 길에다 깔면서 환영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 복되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사람들은 예수를 구원자로 부르며 환영합니다. 드디어 억눌림을 회복시켜 주실 구원자, 드디어 소외를 회복시킬 구원자! 드디어 폭력에서의 해방과 자유의 구원자! 라면서 환영합니다. 예수는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있습니다. 세상의 구원자가 너무나 초라한 모습입니다. 환영하는 사람들마저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절대다수 약자입니다. 오죽하면 겉옷에, 나뭇가지로 구원자를 맞이할까요? 그럼에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이미 예수와의 연대로 신뢰가 두텁다는 방증입니다. 그들을 변호하였고, 편이 되어주었습니다. 억압과 차별과 혐오와 폭력이 난무한 예루살렘을 새롭게 할 예수, 비록 그 모습이 초라하지만, 볼품없지만,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미 겪었습니다. 전적으로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희망, 소외와 억압과 차별과 혐오와 폭력에 내몰린 이들의 정의, 평화, 생명. 지금 구원자 예수가 입성하고 있습니다. 호산나!
새로운 세상이 열릴 줄만 알았는데, 희망의 나라, 생명, 정의, 평화의 세상이 될 줄 알았는데, 환영과 달리 수난이 시작됩니다. 그것을 시편과 이사야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폭력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등을 때리고, 수염을 뽑고, 한에 사무쳐 시력을 잃고, 혼과 몸도 기력을 잃고, 근력이 고통 속에 마르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비난과 혐오와 협박과 음모로 가득한 도시 폭력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환영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대변해주던, 보호해주던, 편이 되어주던 예수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무자비한 폭력에 무방비로 당하는 구원자의 모습에 충격에 충격입니다. 하나둘 돌아섭니다. 모른척합니다. 같은 편이라고 할까 봐 도망갑니다. 찾아올까 봐 숨어버립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차라리 힘의 편에 서기로 합니다. 예수를 저주하는 것이 오히려 살길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를 십자가에... 저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어느 순간 강자의 편에 서서 폭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선한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입니까? 침묵합니다.
230402 시 31:9-16; 사 50:4-9a; 빌 2:5-11; 마 21:1-11
시 31:9-16
9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한에 사무쳐서, 내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내 혼과 몸도 기력을 잃고 말았습니다.10나는 극심한 고통으로 생명이 끝장 났으며,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11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나를 비난합니다. 이웃 사람들도 나를 혐오하고, 친구들마저도 나를 끔찍한 것 보듯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12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습니다.13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14누가 뭐라고 해도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기에, 나는 주님만 의지합니다.15내 앞날은 주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16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로 돌리시고, 빛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사 50:4-9a
4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5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셨으므로, 나는 주께 거역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6나는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겼다.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니, 그들이 나를 모욕하여도 마음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각오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냈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을 내가 아는 까닭은,8나를 의롭다 하신 분이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나와 다투겠는가! 함께 법정에 나서 보자. 나를 고소할 자가 누구냐? 나를 고발할 자가 있으면 하게 하여라.9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니, 그 누가 나에게 죄가 있다 하겠느냐?
빌 2:5-11
51)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그리스도예수께서 보여 주신 태도입니다.6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7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8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9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102)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이들 모두가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11모두가예수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마 21:1-11
1그들이예루살렘가까이에 이르러,올리브산이 있는벳바게마을에 들어섰을 때에,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가서 보면,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고, 그 곁에 새끼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나에게로 끌고 오너라.3누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거든1)'주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러면 곧 내줄 것이다."4이것은, 예언자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52)"시온의 딸에게 말하여라. 보아라, 네 임금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온유하시어 나귀를 타셨으니, 어린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다."6제자들이 가서,예수께서 지시하신 대로,7나귀와 새끼 나귀를 끌어다가, 그 위에 겉옷을 얹으니,예수께서 올라 타셨다.8큰 무리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가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다 깔았다.9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무리와 뒤따르는 무리가 외쳤다.3)"4)호산나,다윗의 자손께! 복되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가장 높은 곳에서호산나!"10예수께서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에, 온 도시가 들떠서 "이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11사람들은 그가갈릴리의나사렛에서 나신 예언자,예수라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