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일식당은 산채정식으로 꽤 유명해진 집이다. 수십가지의 만찬에 된장찌개가 좋았다. 식당 밖 밭에 하얀 감자꽃이 피었다. 평창은 감자의 고장이다. 알맞게 살이 오른 감자를 쪄서 먹으면 꽤 맛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6월까지 꼭 여섯 번의 걷기를 같이했다. 오늘같이 이른 회귀가 없었다. 평창터널을 지나자 햇살이 비쳤다. 장마철 날씨는 이렇듯 요사스럽다.
세상도 변화무쌍하다. 나라는 늘 시끄럽고 부산하다.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사람들은 무지하고 한심하다. 그래서 무지랭이들은 어지럽다. 며칠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조용환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교섭단체 정당이 돌아가면서 추천하는데 이번에는 민주당에서 추천했다.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견해를 묻자 조용환 후보자는 “북한이 그랬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누가 그랬는지 확신을 요구했다. 이에 조 후보자는 “신뢰한다, 정부를 불신해서가 아니라 확신을 할 수 있는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라고 답했는데 이를 가지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란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몰아붙이고 한나라당 대변인은 헌법재판관이 할 대답이 아니다라고 해며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을 거부해 조용환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안이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확신’을 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정체성과 연결시키는 지 알 수 없다. 확신하면 대한민국을 인정하는 것이고 확신하지 않으면 부정하는 것으로 매도하고 낙인찍었다. 도대체 조용환 후보자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 데 말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절반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이다. 북한 소행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지만 나도 확신할 수 없다. 이런 논리라면 나를 비롯한 절반이상의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1986년 신민당 유성환 의원이 국회에서 ‘반공이 국시가 아니라 통일이 국시여야 한다.’라는 발언을 두고 적화통일도 통일이니 북한 표현과 다른바 없다고, 유성환 의원은 빨갱이로 낙인찍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던 일이 불현듯 생각났다. 소위 보수주의를 표방한 정당 의원들은 그때로부터 조금도 나가지 못했다.
이는 매카시즘보다 더한 빨갱이 낙인찍기이다. 자기들이 생각하지 않는대로 말했다고 자신들의 잣대로 평가하고 매도해 버리는 사회, 너 아니면 나, 적아니면 우군, 붉은 것 아니면 파란 것이란 이분법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오늘의 국회의 풍경이다.
과거 국가는 자유민주주의 이름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탄압했다. 수많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친 자들에게는 감옥과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비자유주의적, 반민주적 정권들의 행위에 대해 요즘 속속 국가의 배상을 명하고 있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인혁당 사건, 납북어부 간첩사건, 재일교표 간첩단 사건 등 수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고 국가의 배상을 기다리고 있다. 뿐만아니라 최근 6.25 한국전쟁시 보도연맹가입자 등 예비검속 등으로 인해 살해당한 사람들에게도 시효적용에 문제가 있다고 대법원은 판결하여 국가배상의 길을 열어 놓았다. 북한군의 남침시 우리군과 경찰은 퇴각하면서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사람들과 보도연맹가입 등 좌익으로 분류되었던 사람들중에 최대 10만명 가까이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군(軍)을 비롯하여 민주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기관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기관에 복종한다. (그런면에서 최근 검찰의 국회에 대한 저항은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이 원리대로 충실하려면 검찰총장이나 검사장들을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시민은 자유롭게 만들고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하고 독자적인 결사와 같이 그들을 표현하고 대표하는 여러 경로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개개인에게 실질적인 신념의 자유, 의견의 자유, 토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청원의 자유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독립된 언론과 같이 정보를 구득할 수 있는 여러 경로가 있어야 한다.
행정권력은 독립된 사법부, 의회, 다른 공적 기관 등에 의하여 견제되어야 한다.
시민의 자유는 독립되고 평등한 법적용을 하는 사법부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사법부의 결정은 존중받고 공권력에 의하여 강제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은 법 앞에 정치적으로 평등하다.
소수자는 억압받지 아니한다.
법의 지배 원리는 시민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우리 헌법이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취하여야 한다고 적시하지는 않았다. 전문에 ‘ -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여,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더욱 공고히 하여 -’란 표현이 있고 제 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되어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ㆍ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체제를 파괴ㆍ변혁시키려는 것”이라고 설시했다.
또 우리 헌법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재판관 후보자에 대해 신념, 양심, 토론, 의견 자유를 억압하고 낙인 찍는 행위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행위인가? 자신의 의견을 양심에 따라 거짓없이 말하는 행위가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행위인가?
조용환은 누구인가? 조용환 변호사는 그야말로 조용한 사람이다. 조용환 후보자는 대한민국의 인권적 가치를 반석에 올려 놓은 사람이다. 인권적 가치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다. 그는 판사나 검사가 될 충분한 실력의 소유자였으면서도 작은 법률사무소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인권적 문제를 법적, 국제적, 사회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해석하고 때로는 참여했다. 덕수합동법률사무소에 인권 대부인 돌아가신 이돈명 변호사가 있고 잘 알려진 김형태 변호사도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조용환 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양심수를 변호했고, 민가협을 후원했고, 한국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인권 법률 제·개정하고 진일보하게 해석하는데 큰 공헌을 세웠다. 국제기준의 인권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국제법을 연구했다. 그는 한국 인권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어 유엔인권위원회 등에 직접 영역해서 보내는 일을 도맡아했다. 국제인권회의에도 참석했을 것이다. 그는 얼마나 신중한 사람인지, 모든 말이 논리적이고 허튼 소리가 단 한마디도 없었다. 이 사람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핵심적 멤버로 노무현 대통령시절 많은 사람들이 공직자가 되었지만 어떤 공직도 맡지 않았다. 그는 법률가로서 자기 직분에 충실하고 다른 곳에 눈돌리지 않았다. 그는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헌법재판관에 대한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법률가로서 마지막 봉사의 길의 선택이었는 지 모르겠다.
내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실무간사시 보았던 조용환 후보자의 모습이고 인상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침을 뱉을 것인가? 누가 정치적 편향을 가졌는가? 인권적 가치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는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국민들은 생각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이 정치적 편향아닌가?
보이지 않게 묵묵히 노력한 그에게 나는 활동성과나 내용면에서 대법원장도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이런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고 훈장을 주어야 하는 것이 도리이다.
무슨 액운이 끼었는 지 그에게 망신살이 뻗쳤다. 그는 돈에 눈 먼 사람이 아니다. 위장전입을 투기를 위해 할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의 실력으로 살만큼 벌었을 것이고 그 이상 욕심낼 사람도 아니다. 똥묻은 개가 겨 묻은 개 욕한다고 자기네들은 다 투기용으로 위장전입을 일삼아 놓고 전혀 다른 형편의 조용환 후보자를 난도질한다.
만약 조용환 후보자 동의안이 부결된다면 우리나라 정치는 정치도 아니다. 부결시킨 정당은 정당도 아니다. 민주당이 이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야당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그런 나라가 아니길 빌어본다.
나라에 대한 화두로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 나라의 문제로 끝내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
국가가 폭력의 주체로 개인을 탄압하고 억압하고, 개인이 말살되던 시대와 현재의 우리 모습만이 나라의 형상이 아닐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한마디로 개인과 국가와의 대립·투쟁과 관계의 설정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보편적 민주주의 국가가 성립되었다. 보편적 가치를 실천하는 나라의 범위가 너무 넓어 어떤 나라가 가장 모범적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 전형적인 나라와 모범적인 나라를 칭하는 순간 보편적 가치가 이미 훼손되어 버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민주주의는 그만큼 광범위하며 다양한 가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특정계급이나 집단의 소유물이거나 이익을 대변하던 시절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상존한다. 민주적 권력이 아니라 전근대적, 비민주적, 권위적 권력을 말한다. 민주공화국의 짧은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편향은 두드러진다. 전통적인 남성우월주의나 유교적 위계주의는 물론이거니와 급속한 성장과정에서 자본을 축적한 일부 재벌들은 정치권력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시민적 영향력이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독점화되고 기득권화된 검찰은 선거에 의한 대표자들조차 협박한다. 정치권력은 본연의 국가적, 사회적 역할보다 잿밥에 눈이 멀었다.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었고 우리는 이들을 주류, 또는 기득권자라고 부르고 국민, 백성, 시민이라고 불리어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이너리그 소속으로 소위 ‘루저’가 되었다. 유전적 다양성을 가지지 못한 동식물은 멸종하거나 소멸된다.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만이 사회를 구성할 수 없다. 재벌과 노동자만으로 사회를 구성할 수 없다. 그런 사회를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다. 부자 공화국, 재벌공화국이라 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1조 1항의 선언이다. 어떤 나라로 갈 것인가? 답은 나와 있다. 공화국은 한자로 풀면 함께 화합해서 함께 사는 나라이다. 모두가 함께 잘 살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나쁜 그들만의 공화국을 만들 것인지 좋은 우리들의 공화국을 만들 것인지 선택은 자명하지 않은가? 나쁜 권력은 한사람과 몇사람도 죽이고 이길 수 있다. 그러나 모두를 이기지 못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실현한 나라이다. 최소한 형식적이라도.....
인천에 와서 예외없이 오늘도 술을 먹는다. 맛있어서 먹고, 답답해서 먹고, 비온다고 먹는다. 술 먹는 것이 나라를 위한 길인가? 지금까지 먹은 술의 양이 얼마나 될까? 하루에 보통 1.5L정도 물을 먹는다고 하니 그만큼 술을 먹었고 해도 일년이면 500L 30년이면 15,000L이다. 무게로 환산하면 15,000kg 15톤이다. 많이도 먹었다. 세금액수는 얼마나 될까? 주세는 거의 술 값에 절반이상이다. 소주만 먹은 것도 아니다. 온갖 술집들을 다 다녔으니 그들이 낸 세금 소득세도 내가 상당부분 기여했다. 술을 먹지 않고 저축했다면 집을 몇채를 샀을 양이다. 그것을 국가에 바쳤다. 고로 나는 애국자이다. 논리전개가 어디서 많이 본 전개방식이다. 글을 쓰면서 벌써 그들의 논리에 물든 모양이다.
- 끝 -
첫댓글 대충 끝마쳐야 하겠네요. 무거운 주제에 힘겹거나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개인사는 속살을 보여준 듯 부끄럽습니다. 그 과정에 대해 나 자신도 가치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그랫서 어떤 형식이든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혹, 편향을 느끼셨다면 그 부분은 제가 감당할 몫입니다.
그림-형상 없이 오로지 글만 읽으니 오히려 상상력이 배가 됩니다.
한때 오대산을...그리고 노인봉을... 율곡이이선생이 공부하던곳...등등 싸돌아 다녔는데..
귀하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숲도 걷고 바다도 걷고 세월도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