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그 아찔한 시간들-1
사진- 심양 북역 瀋陽 北站 (인터넷 자료)
(중국 발음으로는 선양이 맞지만 편의상 심양으로 표기)
중국 심양(瀋陽)시 동관교회 사진 한 장으로 인해 한때
연변(延边)으로 심부름 다닐 때 경험했던 일들이 꼬리를 물고
회상되어 기억나는 대로 다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심부름 다니던 8년간 농협선교회와 우리 교회
비전트립 팀 등을 10회 정도 안내하고 다녔다.
중국어도 신통치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용기로 그랬던지 참 겁도 없었다.
이미 15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으니
지금쯤은 이야기해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연길延吉市 로 갈 때 인천에서 직행하는 항공편이 있지만
심양으로 들어가 열차로 가는 것과 여비 차이가 커서
심양까지 항공편으로 들어가 다시 심양북역에서
야간열차로 가는 교통수단을 주로 이용했다.
어느 해인가, 우리 교회 2차 비전트립팀을 안내해서
심양 북역에서 완행열차로 연길로 들어갈 때의 일이다.
심양북역은 넓은 대합실에 비해 이용자들이 많아
언제 가더라도 우리의 설날이나 추석 명절 때처럼
항상 대만원으로 여간 붐비지 않았다.
이럴 때 미리 개찰해서 입장시켜 주면 좋은 데
이용자들이야 밀리건 말건 직원들은
열차 출발 5분 전에야 개찰구 문은 열어준다.
그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밀려드니
혼잡스러운 것은 당연지사다.
중국인들은 큰 짐보따리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사람들을 밀치며 막무가내 들어간다.
우리 일행도 모두 가볍지 않은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대합실에서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높은 육교를 건너려고
오르내려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간은 급박한데 중국인들의 완력에 밀린 우리 일행은
맨 뒤에서 열차를 향해 열심히 뛰었다.
마치 장애물 경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때는 누가 따라오는지 돌아볼 마음의 여유도 없이
오직 열차를 타느냐 못 타느냐 그것만이 문제였다.
연결된 객차 차량이 아주 많아서 만약 객차가
개찰구에서 가까이 있기만 해도 큰 다행이었다.
저 멀리 앞에 있으니 열차에 탑승하려고 달릴 때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지...
또 객차마다 승무원이 탑승구를 지키면서
해당 객차 차표를 소지한 사람만 탑승시켜 주었다.
숨을 헐떡이며 열차를 타고 자리를 찾아가서
우리 일행의 탑승 여부를 확인하는데
K 여집사와 P 청년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열차는 이미 출발해 달리기 시작했다.
기가 막혔다.
마음만 초조했지 달리 대책이 없었다.
이럴 때 기도하려는 마음도 사라지고 어쩌나
그냥 걱정만 태산이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연결되지도 않을 때였다.
비전트립 출발 첫날부터 이런 사단이 나다니....
그러고 있을 때 객차 뒷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들어왔다.
이때 이들보다 누가 더 반가울 수 있을까.
사연인즉 열차에 탑승하지 못했는데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하니 다른 객차에 태워주더라고.
그렇게 첫날부터 도우시는 은혜를 입고
야간열차 3층 침대칸에 몸을 누웠다.
비좁아 머리를 들 수 없는 칠제침대였지만 그저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