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분 / 청소년관람불가>
=== 프로덕션 노트 ===
감독 : 줄리앙 슈나벨
출연 : 제프리 라이트, 베니치오 델 토로, 데이빗 보위, 데니스 호퍼, 게리 올드만, 클레어 포라니
27세에 요절한 미국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전기영화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 미술의 대가이자 바스키아의 생전 동료이기도 했던 줄리앙 슈나벨이 직접 메가폰을 잡고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으로, 호화 배역을 자랑한다. '96년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됐고, 주인공의 친구 베니 역을 맡은 베네치오 텔토로가 '97년 INDI SPRIT 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의 주인공 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 브룩클린에서 아버지 제라르 바스키아와 어머니 마틸드 안드라데스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어머니로부터 예술적 감성을 물려받은 바스키아는 아티스트의 꿈을 품고 가출해, 뉴욕의 거리를 전전하며 벽에 그림을 그리는 낙서 화가로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다.
16세부터 낙서그룹 SAMO를 조직해 스프레이 낙서를 시작한 이후, 뉴욕 현대미술관 앞에 앉아 엽서와 티셔츠 위에 그린 그림을 노상 판매하면서 자신의 회화세계를 구축한 천재 화가. 그는 1980년 뉴욕 타임즈 스퀘어에서 열린 그룹전 '타임스 스퀘어 쇼'를 통해 공식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1981년에는 P.S.1에서 열린 '뉴욕 뉴 웨이브'전에 초대받아 20여점의 드로잉과 회화작품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 그 후 드디어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어서 그는 사상 최연소로 뉴욕 휘트니 미술관 비엔날레와 독일 하노버 미술관의 초청을 받는가 하면 뉴욕 타임즈 매거진의 표지모델이 되는 등 세계적 작가로 성장했으나, 고독감을 이기지 못한 채 2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 줄거리 ===
미술전시회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림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 제프리 라이트 분)는 뉴욕의 거리를 전전하며 벽에 그림을 그리는 낙서 화가로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친구 베니(Benny Dalmau : 베네치오 델 토로 분)의 소개로 화랑의 전기공사 기술자(윌렘 데포 분)를 돕게 되는데, 그곳에서 인기 아티스트 마이로(Albert Milo : 게리 올드만 분)를 만나게 되고 이 자리에서 마이로와 같은 인기 아티스트가 되리라고 마음 먹는다. 또 그날 밤 우연히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아트계의 거물 앤디 워홀(Andy Warhol : 데이빗 보위 분)과 미술계의 대표적 화랑 상인인 브루노 비숍벨거(Bruno Bischofberger : 데니스 호퍼 분)를 만나 자신이 그린 포스트 카드를 파는데 성공한다.
어느날, 한 파티에서 바스키아의 그림을 본 미술평론가 르네(Rene Ricard : 마이클 윈콧)가 그의 그림에서 천재적 자질을 발견하고 그를 유명한 아티스트로 키워줄 것을 약속한다. 그의 약속대로 바스키아는 뉴욕 뉴 웨이브 전시회에 참가하게 되고 아니나 노세이(Annina Nosei : 엘리나 노웬슨), 헨리 게르트잘러(Henry Geldzahler : 폴 바텔)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얻는다. 때마침 바스키아의 그림을 본 화랑업자 브루노 비숍벨거는 바스키아에게 전속계약을 제의하고 바스키아는 자기를 키워준 르네와의 관계로 인해 고민하다가 결국은 부르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워홀과도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바스키아의 독특하고도 예술성있는 작품 세계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게 되고, 아니나 노세이의 소개로 첫 개인전을 갖는다. 안정된 작업 환경을 갖게된 후 예전보다 더 좋은 작품세계를 구축한 바스키아는 앤디 워홀과 마이로 등과 동시에 잡지에 실릴 정도로 유명화가로 성장한다. 그러나 유명세를 타고, 인기가 높아질 수록 바스키아의 마음 한 구석에는 옛 친구들과의 이별로 인한 쓸쓸함이 지워지지 않는다. 성공의 대가로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옛 친구인 베니와의 사이도 멀어진데다 자기를 키워준 르네와도 결별함으로써 그의 쓸쓸함은 극에 달한다.
바스키아의 이러한 아픔을 달래주는 두 동반자는 첫째, 그림이고, 둘째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앤디 워홀이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자신의 세계를 이해해주는 워홀. 그는 바스키아에게는 정신적인 아버지였다. 비록 앤디 워홀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들이 제기되지만 바스키아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를 스승으로 모신다. 1987년 2월 워홀이 죽자 바스키아는 실의에 빠져 자신의 영혼을 잃은 듯 매일 눈물을 흘리며 거리를 방황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거리에서 시작한 열정적인 천재화가 바스키아의 예술세계가 거리에서 시작해 거리에서 끝을 맺은 것이다.
27세의 젊은 나이로.
=== 인물 정보 ===
장-미셸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미국, 1960.12.22 ~ 1988.08.12
1960년 12월 22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 출신의 아버지 제라르 바스키아(Gerard Basquiat)와 푸에르토리코 혈통의 어머니 마틸드 안드라데스(Matilde Andrades) 사이에서 태어났다. 1974년 푸에르토리코로 이사하였고, 1978년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하였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였고, 영재들을 위한 시티애즈스쿨(City-as-School)에서 낙서화가 알 디아즈(Al Diaz)를 만나 낙서그룹 SAMO(Same Old Shit의 약자)를 조직하고 스프레이 낙서를 시작하였다. 그 후 뉴욕 대미술관 앞에서 엽서와 티셔츠 위에 그림을 그려 팔면서 자신의 회화세계를 구축하였다.
1980년 첫 그룹전시회 '타임스 스퀘어쇼(Times Square Show)'에서 재능을 인정받았고, 1981년 '뉴욕 뉴웨이브전(展)'에 참여한 20여 명의 미술가에 포함되었다. 같은 해 5월 유럽을 처음으로 여행하고 이탈리아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82년 애니아노제이(Annia Nosei)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극찬을 받았고, 6월 독일 카셀(Kassel)에서 열린 국제전시 '도큐멘타 7전(展)'에 최연소 화가로 초청받았으며, 11월에는 펀(Fun)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83년에는 휘트니 비엔날레에 최연소 화가로 참가하였고, 1984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에 작품을 전시하고 앤디 워홀(Andy Warhol)·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와 공동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1988년 8월 12일 뉴욕에서 헤로인 중독으로 27세에 요절하였다.
낙서, 인종주의, 해부학, 흑인영웅, 만화, 자전적 이야기, 죽음 등의 주제를 다루어 비극적인 삶 속에서 생존의 본능이 번뜩이는 충격적이고도 충동적인 작품을 남겼다. 팝아트 계열의 천재적 자유구상화가로서 '검은 피카소'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지하철과 거리의 지저분한 낙서를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요 작품으로는 《피렌체》(1983), 《기도하는 사람》(1984), 《천국》(1985), 《흑인》(1986), 《재즈》(1986)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 미셸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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