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목요일
여섯 사람이 만났는데 그 중에 원래 대구살던 사람이 서울서 학교 한다고 오래 서울에서 살다 온 사람이 말했다. 서울사람들이 말하기를 대구사람은 일년 중 꼭 챙겨 먹는 세가지 음식 중 한가지가 봉화송이라는데 금년에 송이맛을 보았느냐고.
봉화송이가 얼마나 비싼 것인데 대구사람이라고 아무나 먹느냐고 하였더니 그는 남들 다 먹는다는데 우리도 한번 먹어보자며 몰아세우므로 당장 내일 봉화로 나들이를 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송이축제 기간이어서 값이 껑충 뛰었다며 봉화에 있는 친지가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이왕 내친 걸음이라 무리를 해서라도 맛보자고 의견을 모우고는 택배로 부치게 한 다음, 이처럼 귀한 걸 먹는 차제에 함께 먹을 쇠고기도 골라 먹어보자고 한다. 여섯 사람이 설왕설래 하다가 지보 고기를 먹어본 사람의 주장에 따라 결국 화송이를 들고 예천군 지보면사무소 소재지까지 찾아가는 객기를 부렸다
좀 호사스런 걸음을 한 지라 송이불고기 사진은 못 찍었다. 그 대신 마침 지보 장날이어서 시골장 구경을 하였는데 서민들의 일용품이 여기라고 다를 것이야 없지만 새로 나온 빗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내 어릴 적에 저런 빗자루로 방바닥을 슬었는데 전동청소기가 나온 뒤로는 마당 청소용으로 밀려났는데 거기다가 나이론 제품이 나오고 나서는 얼마나 더 명맥을 유지할지 모른단다
점심을 먹은 후 나들이를 계속하기로 하여 풍기에 갔는데 인삼축제가 한창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가는 곳 마다 장날이다. 인삼축제장이지만 어찌 인삼만이 있을 것인가
축제장 한쪽에서는 장승을 만들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전동톱 하나로 금방 작품 하나를 완성한다
예전에는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자귀와 끌과 망치로 땀을 뻘뻘 흘리며 만들던데 .........
인삼 축제장이니 수삼일 망정 인삼사진 한 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축제장 뒷 모습, 아마도 인삼 동남동녀 뒷 모습이겠지
다음날 토요일!
어제 하루 잘 놀았는데다 하늘을 보니 옅은 구름이 끼어 외출할 생각이 별로 없어 tv앞에서 건강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집사람이 친구가 밤 줏으로 가자는데 자동차를 운전해 달란다. 어디냐고 하니 합천 부근의 산인데 약 40분을 올라가면 栗天地가 있단다. 늙어서 마누라 말 안 들으면 찬밥도 못 얻어먹을 것 같아서 40분 정도야 뭐......라고 생각하며 따라 나섰는데 막상 현장에서 올라보니 1시간은 족히 됨직했다
산행을 시작할 때 시계를 보았지만 가는 도중에 밤이 아니라 지천으로 널린 도토리를 줍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였기 때문에 율천지까지의 시간은 대출 가늠하였을 뿐이다.
율천지로 오르는 산길은 물봉선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는데 율천지는 이로부터 약 10여분 거리에 있었다
율천지를 들어서는데 입을 벌리고 있는 밤년이 꼭 나를 데리고 가 달라고 하는 것 같지만 붙안고 있는 모습이 형제들과 해어지기는 싫은 모양이다
얼른 주으려 하니 안내하는 분이 저 처럼 작은 것까지 다 줏으면 한도 끝도 없다며 큰것만 골라 줏으란다. 그래서 사진만 한장..........
나무에 매달린 년은 님 기다리다 못해 이미 터져 버렷다
이 년은 땅에 내리기도 전에 엉덩이부터 내리까고 있다
디~기 급한 모양이다.
주먹만한 밤알을 약 한 시간 동안 주은 것이 배낭 하나 가득하고도 반 자루 였는데 자루에 담은 것은 손에 들고 가기 위해서였으므로 한 자루를 다 채우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산을 내려오는 도중에 손에 든 것이 너무 무거워서 버리고 올뻔 하였다.
원래 나의 일기장에는 여기까지였다.
줏어온 밤이 많아 자랑삼아 이웃에 나누어 주며 한 주를 여독을 풀며 쉬고 있는데 또 주말이 닦아왔다.
10월 9일
하늘이 너무 좋아 핸들을 잡으니 차머리가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안동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실 때까지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였는데 9일부터 10일까지 "무섬외나무다리축제"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오늘이 첫째 날이니 조용해서 좋을 듯하다
찾아가보니 대충 이렇다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전통마을인데 무섬마을이란 물섬리 즉 水島里(물 속의 섬마을이란 뜻)의 우리말 이름이다. 3면이 내성천이 감싸돌아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와 지형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이 마을은 원래 영주지역의 명문가인 반남박씨(潘南朴氏) 입향조 박수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뒤,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김씨(예안김씨) 대(臺)가 무섬에 들어와 살게 된 이후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함께 세거해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마치 손씨 마을에 이씨가 장가들어 살게된 이후 두 집안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는 경주 양동마을 이야기와 같았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이 마을의 김난희씨와 결혼하였는데 만약 그가 이 곳에 눌러 살았다면(물론 영양 부자집 아들이 여기에 눌러 살리가 없지만 말이다) 3성 집성촌이 되지 않았을까? 그는 아내를 위하여 <별리>라는 시를 썻다고 한다
김규진 가옥(金圭鎭 家屋), 김위진 가옥(金渭鎭 家屋), 해우당 고택(海遇堂 古宅), 만죽재 고택(晩竹齋 古宅) 등 9점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와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고, 해우당 고택은 고종때 의금부도사를 지낸 감낙풍이 중수한 집인데 해우당은 감낙풍의 호이고 그는 대원군과 친밀하게 지냈다 하며 해우당 당호글씨는 대원군의 친필이다
축제행사는 2007년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의 한곳으로 선정된 외나무다리 건너기 체험행사 외에 마을 대항 씨름대회, 농악한마당, 사또행차, 과객 맞이하기, 쟁기지고 소몰고 건너기, 소풀지고 장분이 지고 건너기, 소 갈비짐 지고 건너기, 말타고 장가가기, 전통혼례식, 장례행렬(상여메기), 참석자 전원 다리 건너기 체험 등으로 다채롭게 거행 된다.
위의 행사들은 모두 내일 행해지는 것이어서 재방 위에 서서 마을을 보노라니 나이 80은 좋이 넘었을 듯한 귀티나는 부인 한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자기는 김가인데 선성김씨는 곧 예안김씨이며 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은 서울에서 살지만 축제가 있다해서 구경하러 왔단다.
어릴 적 이웃집에 살던 친구가 시인과 결혼했는데 그 시인이 이 마을을 보고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백사장 위에서 모래를 날리며 춤을 추었다며 마을 자랑을 하였다. 아마도 그 시인이 바로 조지훈인 모양인데 이야기를 하시는 그 부인이 혹시 조지훈의 미망인 인지 아니면 그의 친구 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을 한 복판에는 내일의 행사 준비를 위하여 분주하였으나 그 외에는 조용하였고 하늘이 너무 좋아 오히려 무섬마을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성천의 하늘과 외나무다리
무섬마을에도 가을은 어김 없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