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새벽 왜 복조리를 걸까?
조리는 가늘게 질긴 대나무로 만든 것으로 쌀에 들어있던 돌을 거르기 위해 쌀을 이는데 쓰는 기구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새해 첫날에는 조리 앞에 "복"자가 붙으면서 복조리라고 불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조상들의 어떤 뜻이 숨겨져 있을까요?
조상들은 새해 첫 새벽 대들보나 부엌문 앞에 복조리를 거는 풍속은 쌀을 일 듯 복을 인다는 상징성과, 조리의 무수한 눈이 나쁜기운을 감시한다는 벽사(癖似), 돌을 골라내 오복(五福)의 하나인 치아를 보호한다는 실용적 의미 등이 녹아 있다고 한답니다.
그래서 복조리는 값도 안 깎았고, 아무 집 마당에나 던져두고 나중에 조리값을 받으러 가도 싫은 소리를 듣는 예가 드물었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쌀이 천대받으면서, 또 쌀 속에서 돌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자, 복조리의 사용이 사라지게 되고 이에 따라 복조리 풍속도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는 추세랍니다.
그러나 옛날 조상들은 복조리를 사서 방이나 대청 한켠 벽에 걸어 놓고 하나씩 계속 사용하면 한해 동안 내내 복이 들어오게 된다는 민간신앙이 싹을 티운답니다.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의 산촌이나 농촌에서는 설날에 복조리와 더불어 갈퀴를 사놓는 풍습이 있었는데.. 쌀을 이는 조리와 어떤 물건들을 긁어 모으는 갈퀴가 다같이 생활에 필요한 기구이면서, 서로 한해 동안의 복을 일거나 긁어 들여 취하는 일을 담당한다는 민간신앙으로 정착되게 된것이었습니다.
복조리의 원산지는 강원도의 원주, 충북의 보은, 충남의 서산, 전남의 담양 등지이나 그밖의 다른 곳들에서도 만들어 졌는데, 이곳 사람들은 겨우내 부업으로 만든 복조리를 온 식구가
등에 걸머지고 전국 각지로 흩어져 돌아다니면서 팔았답니다.
이 밖에도 설날에 복을 비는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세시풍속들이 많았는데.....
갑옷을 입은 장군이나 역귀와 마귀를 쫓는 신의 형상, 삼재를 세마리의 매를 그림으로 그려 붙이기도 했답니다.
이것들은 재액을 물리쳐 한해를 복되게 살려는 인간의 간절한 기복행위의 한 행태였던 것이죠.
이러한 설날의 전통적 기복 세시풍속이 자취를 감춘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그 기복행위들 가운데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 온 것은 복조리였답니다.
몇십년전만 하더라도 음력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 설날이 시작되면 어둠속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복조리를 파는 장수들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때 각 가정에서는 자다 말고 일어나서 1년동안에 소요되는 수량의 복조리를 사서 그 속에 엿이나 성냥, 돈 등을 담아 방 한쪽 구석에 두기도 했으며 미쳐 복조리를 사지 못한 사람들은 이른 새벽에 복조리를 사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복조리를 일찍 살수록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어서 남보다 먼저 사려는게 관습이 되어 왔답니다.
최근에는 추운 겨울 술집 등을 돌아다니며, 복조리를 파는 아르바이트 학생이 급증하면서, 이로 인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등록금을 비롯한 목돈을 단기간에 마련할 수 있다는 복조리 판매관련 구인정보는 상활정보지를 비롯한 취업사이트에 넘쳐나고 있다고 하는데, 넘쳐나는 구인정보와 달리 복조리 아르바이트를 해 본 학생들의 경험담은 대부분 부정적이랍니다.
시급이 아닌 복조리 판매를 기준으로 하는 100% 영업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혹, 주변에서 복조리 파는 아르바이트 학생들 보시면 조상들의 깊은 복조리 의미를 생각하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하나 사주심이 어떨까요?
첫댓글 복되게 살고 싶었던 선조들의 마음이 복조리에 드러나네요
복조리에 대해 자세히 알았음
나는 복족리 한번도 걸어 본적이 없는데...~.~
복조리는 시골가면 많이 걸던데.. 거는 이유가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