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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 문화유산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 등 9건 문화재 등록 |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 항일독립 문화유산 1건과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 「곡성 성륜사 안심당‧육화당」, 「원주 기독교 의료 선교 사택」, 「원주 육민관고등학교 창육관」, 「원주 제1야전군사령부 구 청사」, 「태안 동문리 근대한옥」,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제대 및 세례대」 6건, 「문경 가은양조장」, 「조선내화주식회사 구 목포공장」 근대산업유산 2건 등 총 9건을 문화재로 등록하였다.
등록문화재 제699호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은 일제에 항거하여 나라에 헌신한 공로로 머슴과 주인이 함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유일한 곳으로, 한말 호남의병의 대표적 머슴 의병장이었던 안규홍(安圭洪, 1879~1910)과 안규홍 의병부대의 군량관이었던 박제현(朴濟鉉, 1871∼1909)이 살았던 보성군 법화마을에 있는 주거지이다. 안규홍 의병장이 약 20여 년간 담살이(머슴)를 했던 사랑채와 안규홍 의병부대에 군자금과 군수품을 지원했던 박제현의 안채가 원형대로 남아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한말 의병장들의 생가나 주거지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애국선열의 독립정신을 선양할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의 가치가 높은 곳이다.
* 독립운동가 생가: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등록문화재 제276호), 예천 윤우식 생가(등록문화재 제571호), 안동 임청각(보물 제182호), 경주 최부자댁(국가민속문화재 제27호)
등록문화재 제700호 「곡성 성륜사 안심당‧육화당」은 1920년 구례 지역의 상류가옥인 국포고택을 1987년 곡성으로 옮겨 지은 건축물이다. 전통한옥 건축형식을 기본으로 근대기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근대 건축기법을 부분 적용해 한옥의 시대적 변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근대기 활동 화가이자 남종화의 거장인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 1922~2014)의 전통문화예술 교육과 창작을 위한 전승공간으로서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 국포고택: 국포(菊圃) 김택균(金澤均,1872~1945)이 1920년대 근대기에 건립한 가옥
* 아산 조방원: 남농 허건((南農 許楗 1907~1987년) 화백의 제자로서 남종화의 거장
등록문화재 제701호 「원주 기독교 의료 선교 사택」은 원주에 기독교가 전해지던 초기에 선교를 위해 1918년 세워진 주택으로 서양식 주택의 특징이 잘 나타난 건물이다. 원주 기독교 선교의 발상지이자 서구식 의료, 교육, 생활, 건축 등 근대문명의 유입 통로였던 일산동 언덕 일대의 서구식 건축물들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근대문화유산으로서, 원형도 잘 유지되어 있다. 원주 지역 개신교 선교활동의 역사를 증명해주는 유일한 현존 자료이기도 하다.
등록문화재 제702호 「원주 육민관고등학교 창육관」은 1954년 국제연합 한국재건단(UNKRA)과 제1야전군사령부의 도움으로 건축한 육민관고등학교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건축 당시의 설계도면과 내역서까지 고스란히 잘 보전되어 있어 건축사적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등록문화재 제703호 「원주 제1야전군사령부 구 청사」는 한국군의 주요조직이던 제1야전군사령부가 사용하기 위해 1954년 세운 역사적인 건물이다. 중앙부 현관(porch)을 중심으로 항공기 날개와 유사한 독특한 대칭적 외관이 특징이고, 콘크리트 가장자리 보와 흉벽 다리(파라페트, parapet)를 크게 키워 시각적으로도 권위와 위엄이 잘 드러났다는 점에서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등록문화재 제704호 「태안 동문리 근대한옥」은 충남 태안읍의 전통적 중심지이자 과거 태안읍성의 중심부에 1930년 건축된 근대한옥이다. 전통주택 양식을 기반으로 근대적 생활양식과 주거기능을 갖추었고 평면구조와 공간구조, 건축재료 등에서 근대한옥의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등록문화재 제705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제대 및 세례대」는 사적 제424호 「대항성공회 강화성당」 안에 있는 핵심적인 의례물로 1900년 건축 당시 강화도 지역의 화강암을 재료로 제작되었으며 세례대에는 ‘修己洗心去惡作善(수기세심거악작선)’, ‘重生之泉(중생지천)’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개신교의 한국 토착화 사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한국의 성공회 교단에서 최초로 제작된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내부 구조물과 조화를 이루는 단순하고 소박한 형상은 경건한 종교적 분위기를 띠고 있다. 또한, 유물의 위치와 모습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현재까지도 의례물로서 원래의 기능대로 사용되고 있다.
* 修己洗心去惡作善(수기세심거악작선): 자기를 수양하고 마음을 닦고 악을 멀리하며 선을 행하라
* 重生之泉(중생지천): 거듭나는 샘물
등록문화재 제706호 「문경 가은양조장」은 1938년 건립된 양조장으로 생산을 위한 공간과 2층의 사무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독특한 평면 구성을 보이며 건축형태와 구조 등이 전반적으로 원형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천장 상부에는 별도의 왕겨 층을 설치하여 양조과정에 필요한 온도, 습도 등을 조절하고 있는 등 근대기 양조장으로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적인 측면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등록문화재 제707호 「조선내화주식회사 구 목포공장」은 1938년에 최초로 건립되었으며 1947년 지금의 조선내화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이후 건물 규모가 커졌다. 1997년 공장이 가동 중지되며 폐쇄가 될 때까지 철제생산에 필요한 내화벽돌 등 다양한 내화물을 생산하던 산업시설이다. 한국의 산업발전사에서 철강 산업의 발전 속도가 급격하게 진전되던 시기에 꼭 필요하였던 내화재의 생산시설로서 현재 드물게 남아 있는 유산이며 특히, 원료의 반입에서부터 분쇄, 혼합, 성형, 건조, 소성(燒成) 등 생산과정의 전 공정과 현대화 이전의 생산체계를 이해할 수 있어 근대기 산업사적인 면에서 가치가 높다.
* 내화(耐火): 고온에서 물리적, 화학적 영향에 견디는 건축자재로 돌, 콘크리트가 대표적임
* 소성(燒成): 광물을 고온 처리하는 방식 중 하나로 열을 가해 구움
이번에 등록된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 등 9건의 등록문화재는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협력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활용해 나갈 계획이다.
문화재 등록 개요 |
1. (등록)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
□ 문화재명: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
□ 종 별: 등록문화재 제699호
□ 소 재 지: 전남 보성군 문덕면 법화길 113-1(동산리 648-1, 648-2)
□ 조성연대: 1872년 신축 추정, 1933년 중수(안채 상량문)
□ 수 량: 대지면적 1,484㎡, 주요건물 2동 안채(박제현 생가) 79㎡, 사랑채(안규홍 거주) 30㎡
□ 소 유 자: 조ㅇㅇ
□ 등록 사유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은 한말 일제에 항거하여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안규홍(安圭洪) 의병장의 머슴살이를 했던 사랑채’와 ‘안규홍 의병부대에 군자금 및 군수품을 지원했던 박제현(朴濟鉉)의 안채’ 등 주거지가 있는 역사적 장소로서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 계승과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는 기념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ㅇ 안규홍(安圭洪, 1879. 4. 10.~1910. 6. 22.)
한말 대표적인 평민 의병장 안규홍은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며, 가세가 빈한하여 보성 법화마을의 먼 친척인 박제현의 집에서 담살이(머슴) 생활을 하며 모친을 극진히 봉양하였다 . 1907년 일제의 강제 군대 해산을 계기로 구국을 위해 은밀히 담살이 동지들 수십 명을 규합하여 일심계(一心契)를 조직하였으며, 1908년 4월 전남 보성군 동소산에서 의병조직을 확대(지리에 밝고 지역은 보성출신의 머슴과 소작농의 토착농민과 전투경험이 풍부한 관동 의병, 전략 전술을 갖춘 해산군인 등으로 구성)하여 의병부대의 기치를 들어 일제와 친일세력, 탐관오리 제거를 위한 활동을 하였다. 의병을 일으킨 후 1909년 10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일본군 헌병대‧수비대‧토벌대와 수십 차례의 항일투쟁을 전개하여 파청대첩(巴靑大捷)과 진산대첩(眞山大捷) 등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1909년 전남지역의 의병에 대한 대대적인 ‘남한대토벌작전’이 거세지자 후일의 거사를 기약하면서 의병을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보성 법화촌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광주감옥에 갇혔고 대구감옥으로 옮겨져 1911년 6월 22일 교수형으로 순국하신 한말 대표적인 담살이 평민 의병장이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ㅇ 박제현(朴濟鉉, 1871. 7. 25.~1934. 7. 15.)
박제현(朴濟鉉)은 안규홍 의병장이 구국을 도모하고자 의병을 일으켰을 때 군량과 자금 등 군사물자를 지원하였으며, 1908년 2월 보성군(寶城郡) 동소산(桐巢山)을 근거지로 안규홍(安圭洪) 의병진의 군수장(軍需將)이 되어 소속대원 20여명과 함께 파청(巴靑)·진산(眞山)·원봉(圓峯) 등 전투에 참여하였던 그는 1909년 7월 일제의 소위 남한대토벌작전을 위해 부석대위(富石大尉)가 이끄는 병력을 증원하여 포진함을 알고 전세가 불리하자 의병들을 해산시키고 은신하였다. 그 후 전남 순천(順天) 병산사의 양가쟁이 고개에서 적과 교전 끝에 일본기병에게 붙잡혔다. 이때 손발을 절단당하여 불구의 몸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 (등록) 곡성 성륜사 안심당‧육화당
□ 문화재명: 곡성 성륜사 안심당‧육화당
□ 종 별: 등록문화재 제700호
□ 소 재 지: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미술관로 287
□ 건립연대: 1920년 신축, 1987년 이축
□ 수 량: 건축물 2동(안심당 111.66㎡, 육화당 116.33㎡/ 지상 1층)
□ 소 유 자: 재단법인 성륜불교문화재단
□ 등록 사유
ㅇ 1920년 구례 지역의 상류가옥인 국포고택을 1987년 이축한 건축물로서 전통한옥 건축형식을 기본으로 근대기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근대적 건축기법을 부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한옥의 시대적 변용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근대기 활동한 남종화의 거장인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 1922~2014) 화백의 전통문화예술 교육과 창작을 위한 전승공간으로서도 가치가 있다.
3. (등록) 원주 기독교 의료 선교 사택
□ 문화재명: 원주 기독교 의료 선교 사택
□ 종 별: 등록문화재 제701호
□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 97-3
□ 건립연대: 1918년
□ 수 량: 건물 1동(건축면적 86.47m, 연면적 169.19㎡)
* 지하1층, 지상2층
□ 소 유 자: 학교법인연세대학교
□ 등록 사유
ㅇ 원주 기독교 전래 초기 선교를 위해 1918년 건축된 주택으로 원주 지역의 개신교 선교활동의 역사를 증명해주는 유일한 현존 자료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원주 기독교 선교의 발상지이자 서구식 의료, 교육, 생활, 건축 등 근대문명의 유입 통로였던 일산동 언덕 일대에 세워졌던 많은 서구식 건축물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근대문화유산으로서 원형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적벽돌 외벽에서 반육각형 평면 형태로 돌출된 거실 및 응접실 외벽, 매우 장식적 쌓기에 의해 단형으로 돌출된 층간 코니스, 주출입구 측벽의 원형창을 위한 원형 쌓기, 창호 상부의 평아치 쌓기 등의 건축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4. (등록) 원주 육민관고등학교 창육관
□ 문화재명: 원주 육민관고등학교 창육관
□ 종 별: 등록문화재 제702호
□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734번지
□ 제작연대: 1954년
□ 수 량: 건물 1동(지상1층(6.68m) / 연면적 893.37㎡
□ 소 유 자: 학교법인 육민관
□ 등록 사유
ㅇ 1946년 강원지역 최초의 사학으로 설립된 이후 1954년 현재의 위치에 육민관고등학교를 개교하면서 국제연합 한국재건단(UNKRA)의 원조와 제1야전군사령부의 도움을 받아 건축한 건물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으며, 건축 당시의 설계도면과 내역서가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어 그 가치가 있다.
5. (등록) 원주 제1야전군사령부 구 청사
□ 문화재명: 원주 제1야전군사령부 구 청사
□ 종 별: 등록문화재 제703호
□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가현동 제1야전군사령부 내
□ 제작연대: 1954년(1959년 8월 증축)
□ 수 량: 건물 1동(연면적 1,065.07㎡), 지상 1층
□ 소 유 자: 제1야전군사령부(국방부)
□ 등록 사유
ㅇ 한국군의 주요조직이었던 1954년 완공된 제1야전군사령부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의미와 가치를 지닌 건물로 중앙부 현관(porch)을 중심으로 마치 항공기 날개와 유사한 독특한 대칭적 외관을 구성하였고 콘크리트 테두리 보와 파라페트(parapet)를 과대화시켜 시각적으로 권위와 위엄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6. (등록) 태안 동문리 근대한옥
□ 문화재명: 태안 동문리 근대한옥
□ 종 별: 등록문화재 제704호
□ 소 재 지: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경이정 5길 51(동문리 592외 4필지)
□ 제작연대: 1930년
□ 수 량: 건물 4동(사랑채, 안채, 대문간채, 창고 겸 화장실/ 1층)
ㅇ 연면적 258.51㎡
- 안채 93.17㎡, 사랑채 97.84㎡, 대문간채 55㎡, 창고 겸 화장실 12.5㎡
ㅇ 대지면적 1,763㎡
□ 소 유 자: 김ㅇㅇ
□ 등록 사유
ㅇ 태안읍의 전통적 중심지이자 과거 태안읍성의 중심부에 1930년 건축된 근대한옥으로 전통주택 양식을 기반으로 근대적 생활양식과 주거 기능의 수용에 따라 평면구조와 공간구조, 건축재료 등에서 근대 한옥의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7. (등록)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제대 및 세례대
□ 문화재명: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제대 및 세례대
□ 종 별: 등록문화재 제705호
□ 소 재 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27번길 10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 제작연대: 1900년
□ 수 량: 2점
ㅇ (제대) 높이126×너비290×깊이200cm(기단부 포함)
ㅇ (세례대) 높이100×너비80×깊이79cm
□ 소 유 자: (재)대한성공회유지재단
□ 등록 사유
ㅇ 사적 제424호 「대항성공회 강화성당」 안에 위치한 핵심적인 의례물로 1900년 건축 당시 강화도 지역의 화강암을 재료로 제작되었으며 세례대에는 ‘修己洗心去惡作善 重生之泉(수기세심거악작선 중생지천)’이 음각되어 있어 개신교의 한국 토착화 사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한국의 성공회 교단에서 최초로 제작된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단순하고 소박한 형상은 내부 구조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경건한 종교적 분위기를 띠고 있다. 또한, 유물의 위치와 모습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현재까지도 의례물로서 원래의 기능대로 사용되고 있다.
8. (등록) 문경 가은양조장
□ 문화재명: 문경 가은양조장
□ 종 별: 등록문화재 제706호
□ 소 재 지: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양산개3길 13
□ 건립연대: 1938년
□ 수 량: 건물 1동(면적 241.3㎡/2층)
□ 소 유 자: 문경시장
□ 등록 사유
ㅇ 과거 탄광산업으로 번성하였던 문경시 가은읍의 대표적인 근대 유산으로, 사무실 건물이 독특하게 2층으로 구성되고 양조장 부분이 근대양조장의 생산과정과 기능을 건축적으로 잘 반영하고 있다.
9. (등록) 조선내화주식회사 구 목포공장
□ 문화재명: 조선내화주식회사 구 목포공장
□ 종 별: 등록문화재 제707호
□ 소 재 지: 전라남도 목포시 온금동 122-6번지 외
□ 건립연대: 1938년 신축(공장 A동)
□ 수 량: 건물 5동(A동, B동, C동, 사무실, 주택동), 굴뚝 3개, 산업설비물 5기
□ 소 유 자: 조선내화(주)
□ 등록 사유
ㅇ 한국의 산업발전사에서 철강 산업의 발전 속도가 급격하게 진전되던 시기에 꼭 필요하였던 내화재의 생산시설로서 현재 드물게 남아 있는 유산이며, 1938년에 시작하여 1950년∼1970년대의 기계설비와 부대시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한 자리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산업유산이다.
<글. 사진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