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남자
펠리스 누스바움 " 유태인 증명서를 들고 있는 자화상'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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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x Nussbaum, Selbstbidnis Judenpass
한 남자 밤거리에 서 있다
경찰이 불러세우자 멈춰서서 돌아본 순간일까.
외투 가슴에는 노란 '다윗의 별'이 꿰매져 있다.
왼손에는 신분증명서를 들고 있다.
벨기에 왕국의 외국인 등록증이다.
붉은색으로 찍혀 있는 'JUIF _ JOOD'라는 글자는 '유대인'이라는 뜻이다.
국적란에 원래 적혀 있던 '독일'이라는 글자는,나찌의 법령에 따라
유대계 시민의 국적이 박탈 되었기 때문에 하얀 물감으로 지워져 있다.
그림에는 그려져 있지 않지만, 실제 증명서에는 '어떤 형태로든 고용노동에 종사한 경우는 즉각 추방된다" 는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하늘에는 어두운 구름이 낮게 깔려 있고, 불길한 새들이 날고 있다
남자는 몸을 숨길 곳을 찿아 이국의 거리를 헤매고 있었늕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담장으로 둘러싸인 구석에서 막다를 궁지에 몰린 것이다.
이제 탈출구는 없다.
남자으 충혈된 눈은 이미 무참한 파국을 예견하고 있는 듯하다.
궁지에 몰린 이 남자는 펠릭스 누스바움이라는 화가이다.
그는 1904년 독일 북부의 오스나브뤼크에서 유복한 철물상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필리프는 독일에 동화된 애국적인 유대인으로,
기병대에 입대하여 독일을 위해 싸운 경럭을 가지고 있다.
성격이 내성적이였던 펠렉스는 시내의 유대인 초등하교에 다녔다
그 무렵 오스나브뤼크의 반유대주의 분위기는 다른 지방만큼 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기독교도 아이들이 펠릭스를 보면 '열명의 깜둥이'라는 동요를
'유대인 놈이 강가로 내려왔네, 돼지를 목욕시키러'라는 가사로 바꿔 부르는 일은 있었지만,
펠렉스는 신경쓰지 않은 체하거나 때로는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웃기도 했다.
핮만 일상에서 되풀이되는 이런 사건이 유대인으로서 그의 자의식을 키웠을 것이다.
소년시절부터 그는 가난한 동유럽 유대인의 생홀을 작품 주제로 삼았다.
펠렉스는 함부르크와 베를린에서 공부했고,
1942 년에 폴란드 추신 화가인 펠카 플라테크 (Felka Platek )를 만났다.
1932년에 호마의 독일 아카데미에 초청 학생으로 들어갔지만, 그 이듬해에 나찌가 정권을
탈취했기 때문에 독일에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1935년, 펠릭스와 펠카는 빠리를 거쳐 여행 비자로 벨기에에 입국했다.
외국인 등록수속을 밟고, 반년마다 체제허가를 연장하는 불안한 망명생활이 시작 되었다.
1940년 5월 독일군이 벨기에를 침공하자, 독일 국적이었던 펠릭스는
벨기에 당궁에 '볼모 외국인'으로 구속되어 남프랑스의 쌩씨 프리앙 (SSaint - Cyprien ) 수용소에 억류 되었다.
하지만 그는 친구와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같은 해 말에 펠카가 있는 독일군 치하의 브뤼셀로 돌아왔다.
나찌의 반유대 법령은 벨기에 까지 미쳐서, 벨기에에 사는 유대인 들은 모든 생계수단을 빼았겼다.
1942년 8월부터 벨기에에도 유대인 사냥의 거센 파도가 밀려왔다
위조서류를 손에 넣으면 출국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누스바움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벨기에인 친구의 도움으로 브뤼셀에 남는 길을 택했다.
나찌의 추적을 피해 몸을 숨긴 채, 발표할 전망도 없이 자신과 동포에게 닥친 부조리한 운명을 화폭에 담았다.
작품을 아는 치과의사가 감추어 주었는데,그때 '내가 죽더라도 내 그림은 죽게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1941년 7월20일.펠릭스 누스바움과 아내 펠카는 은신처인 다락방에서 독일 친위대에 체포되었다.
연합군이 브뤼셀을 해방하기 한 달 전이었다.
7월 말에 두사람은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살해당했다.
다시 그림으로 눈을 돌려보자.
궁지에 몰린 남자는 그림을 보고있는 우리에게'유대인 증명서'를 내보이고 있다.
그림으로써 그는 그림을 보고 있는 삶을 '밀고자'의 위치에 놓는다.
궁지에 몰려 있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시선에 꿰뚫린 우리 쪽이다.
벨기에 치과의사에게 맡겨진 작품들이 1970년에야 재발견 되어,거의 무명이었던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의 평판이 급속히 높아지게 되었다.
그후 시카고, 예루살렘,브뤼셀, 베를린 등 세계 각지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 되었다.
오늘날에는 일띡이 그들 가족을 쫓아낸 고향 오스나브뤼크의 미술관에 그 작품의 대부분이 소장되어 있다.
나는 1995년 여름에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 모스끄바' 전에서
'수의를 입은 자화상' (1942)을 보고 이 화가의 이름을 알았다
1997년 봄에는 빠리의 뽕삐두 센터에서 열린 'Face a I'Historire' 전에서
'수용소의 씨나고그'유대교 교회' (1941) 를 볼 수 있었다.
누스바움의 작품은 전쟁이 끝난 뒤 과거를 돌아보며 그려진 것이 아니다.
그에게 ' 전후 (戰後 )' 는 없었다.
그것은 실시간에 그려진 우리 시대의 냉혹한 범죄의 다큐멘터리다.
1997년 여름, 나는 '유대인 증명서를 들고 있는 자화상'을 내 눈으로 보기위해 오스나브뤼크 까지 갔지만,
불행히도 미술관은 장기 휴관중이었다.
누스바움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신관을 짓기 때문이다
(1998년 신관이 완공되어 '펠릭스 누스바움 전시관'으로 명명 되었다 )
* Felix Nussbaum Museum
( '청춘의 사신' , 창작과 비평사,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 2002 )
.............. 이책은 20 세게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강들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1992년 출간된 이래 많은 독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아온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저자 서경식의 새로운 미술 에쎄이집.
케테 콜비츠, 에곤 실레, 오토 딕스 등 20세기 전반에
치열한 예술혼으로 창조적 욕망을 불태운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다.
예술가의 삶과 작품에 관한 풍부한 교양, 평이하면서도 유려한 문체,
강렬하고 이색적인 그림 50여컷이 어우러져 책의 품격을 한층 높이고 있다. ( 창작과 비평사 )
.이책..'청춘의사신'..작년부터 하나둘.서경식 님의책을 읽다가..
그분이 지으신 미술책을 접하면서....세상의정의를 위해 맞서 싸운..화가들..
소리없이의 부르짖음이 보입니다...
서경식 님은 한겨례 신문에도 2주에 한번 주말판에 글을 올리십니다
..깨어 있는 글을 전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분의 자라온 성장 이야기인..소년의눈물..책을 한번 권하고 싶습니다
..읽으 시느라고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