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일을 향해 쐈다
스포츠클라이밍의 진도에 문제가 생기면서 어쨌든 돌파구가 필요했다. 운동을 하다 한계에 부닥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바로 "내 힘이 더 세다면"이다. 실제로 주짓수나 스포츠클라이밍을 배울 때 무지막지한 완력으로 기술적 차이를 압도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었다. 그래 이 모든 것은 힘의 문제다. 순수하게 힘을 기르는 방법을 찾자! 그래서 손에 들어온 책이 맛스타드림님의 "남자는 힘이다"와 정건선생님의 "케틀벨퀵리절트"였다.
솔직히 얘기하면 남힘이 더 멋있었다. 남힘에 나오는 바벨이 일단 쬐그만 케틀벨에 비해 "힘"스러웠다. 단어도 멋졌다. 고중량 스쿼트, 슈퍼 스트렝쓰 등등. 읽기만 해도 근육이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케틀벨은 주짓수체육관에서 본 적도 있었고 몇번 위아래로 흔들어 본 적도 있었고 그래서 왠지 다 아는 것 같고, 게다가 책 뒤편에는 갑자기 요가가... 요가도 해 본 적 있으니 그거 대충 아는거. 이런 기분이었다.
일단 책의 결론 부분이 너무 달랐다. 하나는 특수부대체력을 가진 수퍼맨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그냥 건강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당시 나는 문제의 해결점을 힘이라고 봤고 "힘 = 근육량"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은 삽짐으로 기울어졌다.
문제는 사무실은 홍대에 있는데 삽짐은 건대에 있었다는 것.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선택한 것이 쏨이었다. 재밌는 것은 쏨 등록하고 두달 뒤쯤 삽짐 홍대점이 오픈했다는 것. 삽짐 홍대점이 일찍 생겼다면 내가 쏨에 오는 것은 1년 뒤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내 운동센스로 봤을 때 이 체험기에 크로스핏 실패기가 추가됐을 것이고, 부상부위가 두세군데쯤 더 늘었을 것이다.
처음 등록하고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다녔다. 스포츠클라이밍의 보조운동 정도로 생각하고 등록한거라 사실 별 생각없이 다녔다. 다만 깔끔하고 채광 좋은 실내와 선생님들의 과도한 영업미소와 서비스멘트가 없다는 점이 좋았다. 요즘은 운동하는 곳이 일종의 서비스업이라고 인식되고 있고 회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과거의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보다는 좋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는 금전을 댓가로 서비스를 공급받는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백화점식 친절보다는 서로 예의를 지키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오고가는 말의 많고 적음은 관계의 깊이와는 상관이 없다.)
생각없이 다니다 보니 그냥 관습적으로 움직였다. 요가는 주짓수에서 몸풀기 개념으로, 태극권에서 트레이닝 개념으로, 클라이밍에서 스트레칭 개념으로 했었고, 개념에 따라 가동범위를 넓힐 것인지 척추를 세운 상태에서의 유지와 호흡에 집중할 것인지 등의 차이는 있었지만, 특정한 동작을 완성해야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었다. 그래서 머리로 요가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요가를 행하는 몸은 아프고 힘들고 즐겁지 않았다. 솔직히 “요가=고통” 이었다.
쏨의 요가는 “이완”이라는데 단어는 알겠지만 몸으로 이해가 안됐다. 케틀벨 시간보다 요가 시간이 더 무서웠다. 특히 양요가 시간은 1시간동안 군대시절로 타임머신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고백하자면 양요가 있는 날은 일부러 꾸물거리다 “이런 1분쯤 늦겠는 걸” 하면서 안간 날도 꽤 있었다;; 분명히 선생님이 앞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도 귀를 닫고 내 몸의 관성 속에서 혼자 낑낑대던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케틀벨 수업을 들어갔는데 젠틀한(^^) 규태선생님 대신 안젠틀한(ㅡㅡ) 정건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이 수업시간을 계기로 두 개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태양예배자세. 그때까지 나는 우타나사나 자세를 몸을 반으로 접는 스트레칭 정도로 생각했다. 있는 힘껏 딱 접고 내려가면서 아직 유연하군하고 있는데, 세상에 머 이런 쓸모없는 물건을 봤나? 하는 표정으로 다가오시더니 “아~~~니 지금 뭐하세요?” 하신다. “그거 아닙니다. 목에 힘빼세요. 어깨 힘빼세요. 자연스럽게 떨어뜨리세요.”
목과 어깨가 아래로 툭 떨어지는 순간 첫 번째 방아쇠가 당겨졌다. “이완”이 단어가 아니라 느낌으로 의미를 갖게 되었다. 3년간 이해도 못한 채 동작흉내내기로 반복했던 요가라는 행위가 “이완”이라는 방아쇠를 통해서 의미있는 시간으로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이날 이후로 요가수업은 즐거움의 나날이었다. 여전히 요가는 내 뻣뻣한 몸에 불편함과 통증을 느끼게 했지만 그것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불편함과 통증은 순간 긴장을 가져오고 긴장의 등장은 내게 이완해야 한다는 신호와 같았다. 나의 미숙함은 끊임없이 긴장을 불러온다. 하지만 괜찮다. 다시 이완. 긴장하고 긴장하고 이완하고 이완하고. 이 반복의 시간이 지극히 즐거웠다.
두 번째 방아쇠. 몇가지 모빌리티 드릴. 앞에서 나왔던 세상에 머 이런 쓸모없는 물건을 봤나? + 이 불쌍한 중생을 어찌한단 말인가? 라는 이단콤보가 표정에 작렬하신다. “흉추모빌리티가 그~~게 뭡니까?” “물론 이 상태로도 클린도 하고 스내치도 하면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클린이나 스내치를 하는 게 목표는 아니잖아요?"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 그냥 이 종목을 열심히 하라고, 혹은 문제가 보이지만 해결할 뚜렸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주짓수가 안되는 건 근력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태극권을 통해 근력이 아닌 몸힘이 부족하다는 걸 배웠다. 몸힘을 내기위한 기본자세를 배우다 내 목과 어깨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교정할 방법이 없었다. 클라이밍 같은 전신운동을 하면 몸힘과 교정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한번 구부러진 몸이 막연하게 운동한다고 펴지지 않는다는 것과 그 상태로 힘든 운동을 해봐야 결국 약간의 완력향상과 어딘가의 부상으로 끝난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흉추모빌리티의 문제”라는 두 번째 방아쇠. 태극권의 기본자세를 설명하는 정두헌, 함흉발배, 미려중정 등등의 막연했던 말들이 내 몸의 경우에는 “흉추모빌리티의 문제”라는 한단어로 설명이 되었다. 나는 흉추모빌리티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것을 알게 되자 더 이상의 막연함이 사라졌다. 막연함이 사라지자 케틀벨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해주시는 말과 보여주는 자세가 비로서 적극적 의미를 갖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추가) "남자는 힘이다"는 좋은 책입니다. 이 글에 있는 묘사는 당시 저의 수준에서 이해한 것입니다. 폄하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
첫댓글 젠틀한 규태쌤...그렇구나...음...
아침형인간이신가봐요! 우와아아앙 재밌닼ㅋㅋㅋㅋ
계속 계속 기다려지는 글이네요~^-^
어서 다음 편을!!!
저도 다음 편 열렬히 기다리고 있습니다!ㅋㅋㅋ
아아아... 갑자기 부끄럽네요. 나는 잘 가르치고 있는가 하고요.
그니까요.... 아...더 잘할 걸... 하면서 계속 불안불안 ㅋㅋㅋ 글 참 솔직담백 문체에 생각과 경험을 정리 잘 하십니다. 제 생각으로는 요새 유행하는 (남성형/여성형)파워블로거(지향)체와는 거리가 멀게 글에서 개성이 훌륭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파워블로거문체는 몰개성이예요. 낚시터 물고기 신세의 글들. 애초에 목적이 그거니까요. 불쌍한 활자들. 쾌감이 없어요.;;;
너무 재미있습니다~~!!ㅋㅋ
흥미진진하군요ㅋㅋ그럴일없겠지만 일년쯤 뒤에 이글 뒤쯤에 '결국 또 운동센스가 문제였다'가 붙어 다른곳이 추가되지않길 빕니다ㅋ
너무 멋지십니다.
읽을수록 반성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젠틀함을 반성? 캐릭터를 유지하셔요.... 굿캅 배드캅 역할이 나뉘어야 학생들이 숨을 쉬죠 ㅎㅎ
굿캅 배드캅 ㅋㅋ
담배 형사 주먹 형사인가요?
같은 흉추모빌리티 꽝의 인간으로서 추천!하고 갑니다 ㅋㅋ;;;
(--) 안 젠틀한! 딱 와닿네요. 이모티콘도요.
이 무슨 운명의 장난 인가요...? 쏨 등록하고 두달만에 홍대 삽짐이 생기다니...ㅋㅋ 시시한 드라마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요.
다음 편을 기대합니다^^
참 재밌습니다. 남 일 같이 않아서 더더욱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