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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맛집] 제대로 찾은 맛집 '설가대구요리'
일산 라페스타 근처에 새롭게 등장한 식당들이 꽤 된다. 젊은 층들이 즐겨 가는 라페스타 內에도 먹거리가 많은데 어정쩡하게 나이 든 나로서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아무튼 그네들이 즐겨 가는 곳은 주로 3천원 내외 많아 봤자 5천원정도 하는 밥집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로 학생들을 끌어당기는 퓨전식당들이 주를 이룬다. 라페스타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한가로이 쇼핑하는 것과 옮겨 다니며 구경하는 재미에 있다. 이 집은 라페스타와 약간 거리를 두고 있는 하나로 신축사옥 바로 뒤 건물 2층에 위치한 대구요리 전문점이다. 실내 인테리어 창 쪽에는 물고기 형상을 그대로 매달아 놨다. 진열장 안에 장식해 놨더라면 수족관의 익숙한 모습에 좀 더 편안하지 않았을까? 내부 장식은 요즘 추세 대로 아늑하고 절제된 모습니다. 그리 치장한 흔적도 없고 요란 떠는, 일련의 식당들처럼 부산스럽지 않고 차분하다. 옆 사람 얘기도 못 알들을 정도로 시끄러운 요즘의 식당들을 보면 조용한 곳에서 밥 먹는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집은 내가 좋아하는 조용한 스탈 이다. ^^
양념 왕 창에 사이드 재료만 잔뜩 올려놓은 시중의 아구 찜집의 얄팍함과는 차원이 다르게 느껴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대구라는 넘이 원래 고급생선 아니던가. 그런데다가 대구 머리는 온갖 맛이 모두 다 함축되어 있는 그야말로 맛의 보고인데 그 머리를 먹고 있으니 어찌 맛이 없을 수 있겠나. 대구 볼 떼기에서 떼어 낸 살도 먹고, 아가미에 붙은 살도 먹고, 턱에서 발라낸 살도 먹고 하여간 대구 머리 하나면 먹는 재미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갑자기 대구님이 무척 고마워진다. 쿄쿄쿄~~
첨에는 속으로 ‘흥~! 낙지 한 마리 다 넣고 만든 수제비도 있는데 뭘!’ 했다가 이거 먹고 꽈당~ 기절했다. 어찌나 국물이 개운하고 수제비가 쫄깃~ 탄력이 있던지. 금방 대구 찜 먹고 난 뱃속 맛아? ^^;; 게다가 국물이 장난 아니다. 일반적으로 맛내기 위해 알게 모르게 조미료를 사용하는데 그런 조미료 맛은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그보다 오히려 국물에서 오는 깔끔함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도대체 이건 어떻게 만들었을까. 정갈한 맛. 슬슬 이 집의 색깔이 보이기 시작한다.
공기압축 스텐 그릇에 정갈한 대구 살과 잘 익은 무, 질 좋은 미나리, 칼칼한 국물. 비록 해장할 일은 없었지만 이 정도면 해장으로도 아주 훌륭할 것 같다. 흔히 알고 있던 대구탕보다는 매운맛이 약했지만 내 맘 같아선 아예 지리로 끓였으면 더 나을 듯도 싶다.
왠 대구 찜 집에 계란말이가 다 있을까. 요즘 만만한 게 계란 말인가 해서 물어봤더니 주인장 보인 스타일대로 만드니 함 드셔 보라는 거다. 그랬더니 일케 나온다. 가스오부 시 올린 계란 말이. 전체적인 맛의 분위기가 왠지 일본스럽단 생각을 했더니만 역시나 쥔 여사장님 일본서 8년간 사시다 오셨다네. 음식이 무진장 깔끔하고 정성이 가득 들어 보인다. 호기심이 발동해 몇 가지 더 여쭤 봤더니 쥔 내외 고향이 진해란다. 진해는 대구의 고장이다. 진해에서 유명한 대구요리 할머니한테 전수 받은 솜씨라는데 그 할머니는 이 집 주인에게 전수해주시고서는 노령으로 돌아 가셨다 한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 할머니가 해 주시던 대구 요리 맛에 길들여진 주인장이 그 솜씨를 이어받아 다른 이에게도 같은 맛을 보여 주려 하다니 눈물겨운 히스토리다.
흔히 파전이 나오면 제일 먼저 나는 게 기름 탄내라던가 기름 절은 낸데 이 파전은 그런 잡스런 냄새가 일체 없다. 오징어 향조차 기가 막히다. 정말 깨끗한, 깔끔한 맛. 아무리 내가 녹두전을 좋아하고 감자전을 좋아한다 해도 그리고 온갖 종류의 부침개란 부침개는 다 좋아한다 해도 이 집의 파전은 차원이 다르다. 음식에다 이런 거 갖다 부치는 건 비싼 호텔에서 폼 잡고 칼질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인데 이 파전의 느낌은 귀족스럽다? 귀품 있어 보인다? 어찌됐든 굳이 그렇게라도 갖다 붙이고 싶다. 내가 미친 듯이 흥분하며, 감탄하며 먹어대니 주인장이 기분이 좋으셨는지 차 대접을 다 해 주신다. 단골에게나 이렇게 준다는데, 또 어떨 땐 음식값보다 손님이 깨뜨린 그릇 값이 더 비싸게 칠 때도 있다는데 주인장 스스로가 워낙 조용조용 음식 먹고 차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터라 가끔 단골에게 귀한 차를 대접한다고 한다. 이 날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배도 든든하고 생전보도 듣도 못한 차를 내 오신다.
중국에서 가져오신 거라는데 여덟 가지의 과일이 들어간다나? 아래 왼쪽에 보이는 게 말린 리치다. 다른 건 뭔 과일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무지 맛있다. 두 번째 우려낸 맛에서는 첫 번째 보다 단 맛이 훨씬 강한데 참 요상한 일이다. 팔과차에 한참 맛이 갔는데 ^^ 이번엔 또 다른 일행 마시라고 손수 담근 차를 내 오신다. 색깔이 어찌나 예쁘던지. 각종 허브와 열매라는데 시큼달콤한 것이 여간 맛있는 게 아니다. 저 찾잔 좀 바 세상에 하나밖에 제작 안 하는 건데. ㅋㅋㅋ 저거 깨면 어쩌나.
저게 식혜 잔이다. 크기는 한 손아귀에 쏙 들어 올 정도 위스키를 저기다 따라 마셔도 맛나겠다. ㅋㅋㅋ 식혜 맛은 직접 담갔으니 두말하면 잔소리.. 일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호수공원 꽃 박람회, 국제전시장, 종합운동장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 일산이다. 그에 따라 먹을 거리도 무진장 많이 늘었다. 과거 초창기 일산의 먹거리가 칼국수나 백숙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강남이나 서울의 어느 동네 못지 않게 다양하다. 그런 일산을 더욱 빛내줄 식당 하나를 찾았다는데 맘이 든든하다. 이윤만 따지고 돈벌이에만 급급한 식당들의 문을 나서면 조미료로 뒷골이 땡 기는 것보다 더 찝찝한 불쾌감이 남는데 이렇게 정성과 음식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집에서는 나오는 발길조차 가볍고 마음이 훈훈해 진다. 문의 031)924-5805 위치 일산 장항동 하나로 통신 건물 뒤편 노블리제 2층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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