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쇼핑을 즐기고, 사랑하는 상남자 중 상남자다.
오해는 마시라.
요즘 상남자는 마초가 아니라 자신을 꾸밀 줄 아는 그루밍족을 뜻한 지 오래며,
웬만한 여자보다 더 꼼꼼하게 쇼핑한다.
하지만 여자친구만을 위한 여성용 옷, 여성용 제품만 몇 시간씩 보러 다닌다고 생각하면
자동으로 머리에서 연기가 나는 거다.
▲ 이름 그대로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올리브 영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
백화점 가고 드럭스토어 온다
쇼핑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난 서울에 있는 백화점은
눈 감고도 어디에 어떤 매장이 있는지 읊어댈 수 있고,
심지어 지도까지 척척 그려낼 자신이 있다.
더군다나 나의 밥줄이라 할 수 있는 백화점 1층, 뷰티 카운터들은 나에게 놀이터 같은 곳인데,
해마다 올리는 가격도 모자라 이제는 시즌별로 가격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백화점 쇼핑을 꺼리는 큰 이유가 되고 있다.
지난달 일본 출장 중에 들른 이세탄 맨즈 백화점은
건물 한 동 전체를 남성 전용관으로 만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고,
프랑스 프랭탕 백화점 역시 남성 전용 건물이 있는 게 부러운 건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출장 일정이 끝난 후 들른 일본의 드럭스토어에도 작지만
남성 전용 코너가 마련되어 있어 심심할 틈이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남자가 즐겁게 쇼핑할 수 있는 곳은 진정 없단 말인가.
며칠 전 명동에서 맛난 점심을 먹은 후 칼로리 소모를 위해
쇼핑을 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다니던 중 눈에 띄는 초대형 매장을 만났다.
요즘 무서운 기세로 매장 수를 늘려나가는 대표 드럭스토어
‘올리브 영 라이프스타일 익스피어런스 센터’.
근데 이 매장은 평범한 올리브 영은 분명히 아니었다.
시원스런 직원들의 환영 인사를 받으며 매장에 들어서니 층고가 높아 개방감이 뛰어나고 쾌적했다.
총 2층에 3백 평은 족히 넘어 보여 국내 최대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불러야 할 것 같았다.
매장 안에는 일본어와 중국어로 쇼핑을 하는 고객들도 많았다.
여자친구는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고 나는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았다.
명동 거리에 즐비한 뷰티 브랜드는 기본으로 입점 완료,
세계 각국의 다양한 뷰티 브랜드도 눈에 띄었다.
그중 내 눈을 사로잡은 향수 섹션!
니치 향수 본드넘버나인과 에르메스 향수를 백화점이 아닌 드럭스토어에서 테스터해볼 수 있다니!!
흥분하며 여자친구를 찾았다.
온 스타일의 <겟잇뷰티>에 나왔던 제품들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섹션에 혼이 빠진 그녀가 서 있었다.
유난히 여자들이 많이 몰려 있던 곳을 보니 네일 케어 섹션.
네일 케어 제품 일체를 Bar에서 체험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은 걸 보니
이 장소가 여자들의 발걸음을 사로잡을 공간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자친구가 네일 케어를 둘러보는 동안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공간이 있었다.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만지작거리며 즐기던 섹션은
남성 라이프스타일 채널 XTM Men’s Collection이었다.
그루밍, 패션, 헬스 등 경쟁력 있는 남성 전문 브랜드들의 제품이 총출동해 있으며,
모든 것을 체험하고 테스터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올리브 영을 찾는 남성 고객들에게도
특별한 즐거움이 될 것 같았다.
이 공간만으로도 쇼핑에 지친 남자들은 데이트가 즐거워질 것이다.
그리고 해외 출장 시 보디 제품 매장에서 제품 테스터를 위한
세면대나 욕조를 볼 수 있었는데, 올리브 영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도
보디 제품을 욕실에서처럼 편하게 테스팅을 해볼 수 있는
섹션이 준비되어 있는 걸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여자친구는 언제 올라왔는지 옆에서 보디 제품을 체험해보고 있었다.
명동이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인지, 외국인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K-pop 섹션도 마련해
한류의 중심에 서 있는 아이돌의 음악과 영상을 보고 들을 수 있고
구매도 가능하다는 점도 독특했다.
올리브 영 플래그십 스토어는 남성과 여성 고객의 니즈를 모두 만족시키며
오감을 자극하고 체험할 수 있게 만든 공간들이
기존 드럭스토어들과의 차별점으로 큰 매력이었다.
그중 베스트라 할 수 있는 남성 체험 공간은 정말 훌륭하다.
MD 구성의 한계와 놀라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특별한 섹션으로
앞으로 점점 더 나은 구성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다만 거대 기업이 되어버린 CJ의 자사 브랜드가 너무 많아
집안 잔치 같은 분위기인 게 흠이라면 흠이라고 할 수 있겠다.
▲
1 남자들의 날을 세울 수 있는 독창적인 남성 전용 XTM 섹션.
2 CJ가 잘하는 문화를 알리는 한 장면, 매장 안에 K-pop 존이 있다.
3 CJ의 대표 히트 프로그램 <겟잇뷰티>의 베스트 제품을 체험할 수 있다.
4 영화 속 바버 숍을 감각 있게 재현한 헤어 케어 아이템 섹션.
▲ 본즈 No.9을 비롯한 최상급 니치 향수들을 마음껏 시향할 수 있다.
▲ 신세계 이마트의 기획력이 여기까지. 상상을 뛰어넘는 분스의 김치 섹션.
올리브 영에서 만족스러운 쇼핑을 하고 나니 다른 드럭스토어는 어떨지 매우 궁금해졌다.
아이폰으로 근처 다른 드럭스토어를 찾아보니 바로 다음 블록에
‘Boons’라는 드럭스토어가 있어 슬슬 찾아가봤다.
분스는 말 그대로 헬스&뷰티 솔루션 전문점으로 약국이 상주해 있다.
일본이나 미국 드럭스토어에는 약국이 꽤 크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분스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약사를 만나니 진짜 드럭스토어에 온 기분이 들었다.
다만 매장 입구에서 생화와 조화를 같이 팔고 있고,
매장 밖에 마트처럼 PB 상품을 가득 진열해 좀 단정하지 못한 전경을 보여주었다.
매장 안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곳은 백화점 혹은 면세점에서나 볼 수 있었던
SKⅡ, 비오템, 에스티 로더, 랑콤 등의 소위 명품 화장품 브랜드들.
이 브랜드들의 할인 폭이 백화점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높은 편이어서
관심 없이 지나가던 사람들도 한 번씩 멈춰 수군거리며 상담을 하기도 했다.
신세계 이마트에서 운영하는 Boons가 백화점 입점 수입 브랜드를 대상으로
어떻게 높은 할인율을 적용시킬 수 있었는지 의아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버선발로 달려가 구매할 만큼 매력적인 할인율임에 틀림없었다.
그 외에도 분스에는 자체 PB 브랜드 제품이 많았는데,
품목은 화장솜, 샤워 젤, 치약, 생수 등 주로 생필품들로
신세계 브랜드에 대한 가치를 안정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함이 느껴졌다.
이는 해외 드럭스토어인 ‘세포라’나 ‘부츠’에서도 진행하는 방법이다.
간간히 약국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보였고,
역시나 지역이 그래서 그런지 외국인들 내점이 꽤 있었다.
이들은 다양한 코너에서 테스터를 했는데 매장에 외국어를 하는 직원이 없어
서로가 불편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중 한 일본인 커플이 식품 코너에서 1회용으로 포장된 김치를 구입했다.
식료품 섹션에서 김치를 판매하는 곳은 분스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싶다.
▲ 정통 드럭스토어에 충실한 매장 내 약국 섹션.
▲
1 화이트와 레드의 컬러 배색이 눈에 띄는 브랜드 디자인과 생화를 파는 것이 독특하다.
2 백화점에 당당히 도전장을 던진, 백화점 수입 화장품들을 만날 수 있다.
분스를 둘러보며 아쉬웠던 점은 테스터 상품이 거의 다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
매장에 관심이 없는 걸까? 손님들이 한꺼번에 왔다 간 걸까?
매장의 규모에 비해 상주 직원이 많아 제품을 체험할 때 눈치를 보게 되고,
도움을 준다는 직원들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물론 신세계 이마트 특유의 기간별 기획 상품이나 적립카드 프로모션 등은
분스를 찾는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켜 앞으로 새로운 뷰티 장소로 인기가 높아질 것 같지만,
인테리어는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듯했다.
얼핏 보면 이마트를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니 말이다.
분스는 신세계 그룹에서 운영하는 만큼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MD와 함께
고객 서비스를 위한 마인드를 재정립하면
드럭스토어 1인자 자리에 오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듯했다.
최근 드럭스토어가 유통 분야의 새로운 형태로 각광받고 있다.
접근성이 높은 지역에 대형 매장을 오픈해 국내외 제품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게 하여 여성들은 물론 남성들에게도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미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는 지역사회 기반의 마켓 형태로 자리 잡았으며,
일본에서는 가장 흔한 일상의 스토어가 되었을 정도다.
건강, 헤어, 메이크업, 식료품, 카페까지 원스톱으로 각종 상품 및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는 곳.
드럭스토어는 생필품과 약을 함께 판매하는 소매점이지만,
최근에는 약 대신 식음료와 생필품 판매의 비중을 늘리면서
동네 슈퍼의 상권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다.
드럭스토어 대표 주자인 CJ 올리브 영과 GS 왓슨스, 신세계 분스는
해마다 매장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만큼 매출 규모도 크게 늘고 있다.
급성장하고 있는 대기업 계열 드럭스토어 확대는
소상공인과 골목 상권에 피해를 입힌다는 측면에서
SSM(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규제가 필요하기도 하다.
앞으로 더 다양한 드럭스토어가 오픈하겠지만 현재의 드럭스토어들도
점점 다양한 MD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는 더 편한 체험을 즐기며,
기업들은 적당한 자체의 규제에서 고품질의 새로운 드럭스토어를 보여준다면
한국의 드럭스토어는 케이 팝처럼 수출 상품으로도 훌륭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주에는 여자친구 대신 군대 동기와 함께 들러 씻고, 뿌리고, 발라보면서
신나게 드럭스토어를 온몸으로 체험해봐야겠다.
날로 흥하는 드럭스토어 현주소
Drug Store : 건강과 미용 관련 카테고리 킬러로 급부상 중.
1999년 국내에 첫 선을 보인 뒤 최근 5년 새 매장 수가 무려 4.8배나 급증했다.
CJ 올리브 영 대한민국 드럭스토어 1호, 현재 드럭스토어 1위.
지난해까지 매장 수 2백70개를 확보했다.
2013년엔 더욱 공격적인 확장이 예상되며, 하루 평균 6만여 명의 구매 고객 입점.
신세계 Boons 지난해 6월 강남역에 첫 선을 보이면서
업계 2위 자리를 거머쥔 신세계 이마트의 야심작. 약국을 포함한
헬스, 헤어, 메이크업, 식료품, 카페 등으로 구성되며,
명품부터 입소문 난 해외 브랜드까지 1만여 개에 이르는 제품과 국내 최대 브랜드 보유.
GS 왓슨스 홍콩의 AS 홧슨과 GS 리테일이 합작해서 2005년에 선보임.
직영점만 운영하며, 2011년 영업 흑자 진입.
카페베네 디셈버 24 2012년 7월 론칭한 드럭스토어의 막내.
프렌차이즈의 성공 신화라고 할 수 있는 카페베네의 영업력을 바탕으로 틈새시장 공략 중.
코오롱 W 스토어 코오롱 웰케어에서 운영하며 화장품과 건강보조식품 위주로
매장을 구성하는 일본형 드럭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