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르셀로나(Barcelona)는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스페인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부터
프랑스 남쪽 피레네산맥 접경지역을 아우르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1992년 하계 올림픽이 이곳에서 개최 되었고 황영조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도시이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 호안 미로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남동쪽으로 바다가 보이는 완만한 사면에 자리 잡고 있고,
베소스 강과 요브레가트 강 사이에 있는 비옥한 평야지대로
산으로 둘러싸여 기후가 온화하고 쾌적하다.
인구는 200만으로국민 총생산의 20%를 차지 하고 있는 스페인 최대의 상업도시 이며,
국제적인 금융 중심지로 이곳에 있는 증권거래소에서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고 있다.
100개가 넘는 정기선이 바르셀로나와 세계의 주요항구를 연결하고 있는
해변으로 형성된 도시 이다.
바로셀로나 현지가이드 안병옥씨 말에 의하면
이곳은 스페인의 도시와 다른 분위기이며,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분리독립을 원한다고 한다.
까따란이란 카탈루냐사람을 말하며, 카탈루냐 말이 따로 있단다.
배우기가 힘 들어서..... 우리나라 유학생은 주로 마드리드로 가고 있다고 한다.
아침 산책길~
오늘은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 작품을 보러 간다.
가우디(Antoni Gaudi y Cornet 1852 - 1926)는
까딸루니야의 레우스에서 구리 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제도공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바르셀로나의 건축대학을 졸업 했다.
1878년 파리 국제박람회에 출품할 장갑의 쇼 케이스를 디자인한 것이 인연이 되어
후에, 그의 후원자가 된 에우세비오 구엘을 만났으며, 그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그의 꿈의 세계를 대도시 바르셀로나의 거리에 실현 시키므로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뚜렷한 특징을 불어 넣었다.
구엘공원 (Parque Güell 1900 - 1914)
바르셀로나 교외 언덕에 있는 구엘 공원은 전원도시를 만들 목적으로 설계된 곳이다.
가우디(Antonio Gaudi, 1852.6.25~1926.6.10)는 경제적 후원자 구엘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 도시를 모델로
이곳에 60호 이상의 전원 주택을 지어 스페인의 부유층에게 분양하려 했다.
구엘과 가우디의 계획은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지만,
공원 부지는 돌이 많은 데다 경사진 비탈이어서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도 가우디는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서 땅을 고르는 것도 반대했다고 한다.
1900년부터 1914년까지 14년에 걸쳐서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자금난까지 겹치면서
몇개의 건물과 광장, 유명한 벤치 등을 남긴 채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1922년 시의회가 구엘백작 소유의 이 땅을 사들여 이듬해 시영공원으로 만들었다.
본래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공원은 여전히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에 하나로 기억되고 있으며,
많은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 받고 있다.
소수 부유층의 전원 도시보다는, 수많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으니
그 생명력과 효용 면에서는 더 많은 것을 얻었다 해야 하겠다.
<네이버에서 >
공원 안에는 가우디가 1926년까지 살던 집이 있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인단다.
처음 분양할때 입주한 사람의 후손이 산다는데...... 변호사라 던가?
최초 계획한 60채의 주택 중 분양 및 입주한 집은
예전부터 이곳에 살던 가우디와 구엘을 제외하고는
단 한 사람 뿐이였는데, 당시에는 교통도 불편하고 수도사정도 나빠 분양 되지 않았단다.
만약 판다면, 바르셀로나시에 매수 우선권이 있단다.
도시 변두리의 싼 땅을 사서, 경사진 곳의 돌을 골라 내고,
그돌을 이용 하여 자연과 인간을 주제로 한, 기발함으로 꽉 차 있다.
공원 설계는 가우디 건축 스타일의 독특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직선이 아닌 곡선을 위주로 한 건물들,
어디서나 시선을 잡아 끄는 화려하고 독특한 모자이크 장식과 타일,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위태롭게 기울어 있는 나선형의 층계,
깨진 도기 조각으로 사치스럽게 장식해 부조화속의 묘한 조화를 느끼게 하는 난간 장식,
자연미를 살려 꾸불꾸불한 길과 인공 석굴들, 어느 것 하나 ‘가우디 답지’ 않은 것이 없다.
아름다움과 효율성을 겸비한 공원의 명물인 벤치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광장에 인체구조에 딱들어맞는 벤치가
물결치듯 연이어 있는 세라믹, 타일 조각들로 만든 의자.
공터 건너의 붉은 건물은 지금 학교로 사용 한단다.
광장이 신전 지붕 이다.
곡선의 천장과 천장의 화려한 타일 조각, 계절 마다의 해가 있다.위의 해는 겨울의 해.
도리아식 콜로네이드로 이루어진 홀은 원래 시장(市場)으로 설계한 것이며,
이 홀에는 원주가 86개가 있어 위쪽의 광장을 떠받쳐 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구엘 백작의 요청으로 지었다.
구엘공원의 남쪽 입구.
공원 입구에는 경비의 거쳐와 관리실로 쓰려고 했던 두 개의 건물이 있다.
갈색과 흰색이 어우러져서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의 집을 연상시킨다.
독특한 모양의 뾰족탑 지붕이 신비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
안에서 볼때 왼쪽 경비실
안에서 볼때 오른쪽 경비실
탑 꼭대기의 십자가는 사이프러스열매를 뜻하며,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십자가로 보인다고 한다.
화려한 원추리 군락 지나서........
원추리밭을 지나 주차장으로 가, 버스로 성가족교회로 간다.
성가족 교회,Temple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 (1822~
"사그라다 파밀리아"란 요셉, 마리아, 예수로 이루어진 "성가족"을 뜻 한다.
원래 이 성당은 가난한 산 호세 종교협회의 교회로 착공되었으나
초대 건축가가 사임하면서,
31살의 약관의 나이로 가우디가 뒤를 잇게 되었다.
그는 그의 믿음에 대한 지식을 심화시켜,
자신의 독창적인 계획으로 이 성당을 그의 필생의 작업으로 삼고 그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의 계획은 탄생의 문, 수난의 문, 영광의 문 등 3개의 파사드(정면)를 가지며,
각 파사드에는 성서의 장면이 묘사된 조각을 장식하고,
세 문은 각각 4기의 탑으로 구성되어 ,12사도를 뜻하게 하는 것이다.
또 그 안쪽에는 예수, 마리아, 복음가들을 상징하는 18기의 탑을 세우도록 계획하였다.
그러나 현재 탄생과 수난의 두 문과 8기의 탑이 완성되어 있을뿐,
성당이 완성되려면 앞으로 100년이 더 걸릴지, 또는 200년이 더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이미 가우디가 죽은지 80년 이상이 지났고 건축은 계속되고 있다.
관광객의 관람료 수입이 주요 재원이며,
미로 같은 천재 예술가들도,
순간적인 감각으로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는 가우디의 재능 없이
건설을 계속한다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이 성당의 완공시기에 대하여
가우디 자신도 "그것은 신만이 알 것이다."라는 예언적인 말을 남긴바 있다.
가우디는 입고 있는 옷 그대로 공사 중인 성당 안에서 숙식했기 때문에
가끔 시내로 나갈 때는
그 차림새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줄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런 사소한 돈도 모아 기금으로 소중하게 썼다고 한다.
1926년 전철에 치어 사망한 때에는 너무나 초라한 복장으로 부랑자와 다름이 없었다.
뾰족뾰족한 교회가 보여 차에서 사진 찍다보니 Photo Point 에 내려 주는구나.
옥수수 뜯어먹고 난 속같은 네개의 탑.
새가 두마리 찍혀 있네 ~~^^ 이곳에도 새가 많았던가???
동쪽의 탄생의 문은
아침을 뜻하며 가우디의 생전에 완성한 것으로
수태고지로부터 예수의 탄생, 동방박사의 찾아옴,
해롯왕의 박해를 피하여 애급으로 피신하는 성가족 등을 묘사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뒤로 돌아가면 서쪽의 수난의문 이다.
서쪽의 탑은 저녁을 뜻하며수난과 죽음 묘사 하여 해골도 보인다.
수난의문 에는 최후의 만찬,
예수에게 입맞춤을 하여 로마 병사들에게 예수임을 알려주는 유다,
예수를 심판한 후 손을 씻는 빌라도 총독 등의 장면 등이 조각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은 가우디의 사후에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완성 되어
가우디의 곡선과의 확실한 대조가 보인다.
남쪽은 정오를 뜻하며 부활의문, 하지만 한참 공사중 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한참 공사중 이지만, 가우디가 만든 설계도나 모형 등을 볼 수 있다.
철구조물을 만들어, 내부공사가 한창이다.
모든 건축물은 석고나 나무로 모형을 철저히 준비 하여 만들어, 절약을 하였단다.(작업실)
이것도 모형이다.
가우디의 장례식 장면
가우디는 굉장한 멋장이 였으나,
성당을 지으면서 일에 빠져서 초라한 복장으로 부랑자의 모습으로 다녔다.
전철에 치여 죽었으나, 3일 후에야 가우디인줄 알았단다.
성격도 괴팍 했다고 하며,
애딸린 과부에게 청혼했으나 대답도 못들었단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을 수 밖에.
성당의 완성도
탑의 최고 높이가170m, 인간의 작업물이 신의작품을 능가 해서는 안된다는 가우디의 뜻에 따라,
바로셀로나의 몬주익 산보다 약간 낮게 설계 했다고 한다.
밖으로 나와, 다시한번 돌아 보다.
숫자판은,세로 대각선 어느쪽으로 더하여도 33이 된다.
예수님의 나이 였나? 모르겠다
다.
기념품 가게에 들렸다 바닷가로 점심 먹으러 간다.
첫댓글 바르셀로나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형의 설명대로 1992년 하계올림픽 때 우리나라의 황영조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도시 그다음은 축구...
화가 파블로 피카소, 호안미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곳이라는것
이것은 처음 아는...
구엘공원...
이 공원이 가우디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의 하나라구요... 사진으로 보아도 정말로 대단합니다
성가족 교회...
이 건물은 너무나 유명하지요
T,V 에서도 여러번 나왔으니까요 미완성 건물이며, 완성하려면 앞으로 몇년이 걸릴지 모른다구요
참으로 신기한 건물이어요 .도대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는 어듸까지 인지 ?
오늘도 관광 잘 했습니다.
나도 여기 가기전에는 구엘이란 사람은 몰랐었지요.
방직업인가로 돈을 벌어 가우디를 후원하여 오늘날의 작품을 남겼으니 우리가 가 보게되지요.
돈을 벌어 제뱃속만 채울게 아니라 이렇듯 이웃과 후손을 위하여 써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