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의 열풍이 여름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7월30일 또 다른 기대작 김한민 감독의 <명량:회오리바다>가 개봉했다. 2007년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으며 2011년 <최종병기 활>로 8백만 관객을 사로잡은 김한민 감독은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영웅의 이야기에 도전했다.
최근에도 이순신과 관련된 예술작품은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문학작품으로는 1998년 김탁환의 <불멸>과 2001년 김훈의 <칼의 노래>가 발표된 바 있다. 2004년 두 소설을 바탕으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제작돼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순신과 관련된 영화는 그 명성에 비해서 많은 편이 아니다. 1962년 유현목 감독이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성웅 이순신>을 연출했고 1971년 이규웅 감독이 동명영화를 발표했다. 두 편의 이순신 영화가 모두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이순신에 대한 박정희의 각별한 애정과 관련 있다. 박정희는 군사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순신의 영웅적 이미지를 활용했다.
특히 1971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국책영화로 제작된 <성웅 이순신>은 유신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활용되었다는 오명을 남기기도 했다. <명량>은 30여 년 만에 만들어지는 이순신 영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는 없지만 박근혜 시대에 다시 이순신 영화가 등장한 것은 자못 흥미롭다.
이순신, 예수에서 햄릿으로 돌아오다
이순신은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영웅 중에 한 명이다. 이순신은 망국의 위기에서 민족을 구원한 구국의 영웅이자, 세계 해전사상 가장 탁월한 전략가로 추앙받고 있다. 이순신이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 어떤 역사적 인물보다 (비)극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무과에 합격해 말단 관직을 전전하다가 노년에 이르러 전공을 세우지만 반역죄로 체포된 후, 백의종군에 이어 장렬한 최후에 이르기까지. 이순신의 생애는 대중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웅적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순신과 같이 ‘성웅’의 반열에 오른 절대적 위인을 영화로 옮기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작업이다. 작은 실수나 사소한 왜곡에도 큰 비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6,70년대 이순신 영화들은 모두 이순신 앞에 ‘성웅’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물론 이순신에 대한 박정희의 각별한 애정이 작용한 바도 크다) 민족의 영웅을 ‘완벽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은 비난을 회피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때문에 이규항의 <성웅 이순신>은 지나친 미화로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을 '성웅'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명량>의 이순신(최민식 분)은 더 이상 무결점, 무오류의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박정희의 이순신이 예수에 가깝다면 김한빈의 이순신은 햄릿에 가깝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하면서 성웅이 아니라 고뇌하는 영웅으로 묘사한다.
<명량>에서 이순신의 적은 일본군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왕을 비롯해 패배주의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주변 인물들은 모두 이순신의 발목을 잡는다. 심지어 일부 지휘관들은 12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적선과 맞서려는 이순신의 무모한(?)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암살을 시도하고 거북선을 불태운다.
그리고 이순신 자신도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술에 취한 이순신은 죽은 부하들의 망령에 사로잡히기도 한다.(<햄릿>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명량해전 직전 꿈속에서 ‘신인’의 계시를 받았다는 <난중일기>의 기록에 기초한 듯하다) 아들 이회(권율 분)는 고문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이순신에게 “아버지 왜 싸우시는 겁니까?”라고 반문하지만 이순신은 회의에 빠진 아들에게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이순신은 겁에 질려 탈영을 시도한 병사의 목을 가차 없이 벤다. 그리고 진영에 만연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병영을 모조리 불사르기도 한다. 그리고 '필사즉생, 필생즉사'(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하면 반드시 죽는다)을 역설하지만 두려움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이러한 설정들은 자칫 원형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이순신이 직접 탈영병의 목을 베거나 병영을 불살랐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이다.(다만 명량해전 중 전투를 기피하는 지휘관의 목을 벴다는 기록은 있다) 물론 ‘성웅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려는 김한민 감독의 시도는 과거의 이순신 영화들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하지만 특별하지는 않다. 관객들은 이미 <칼의 노래>와 <불멸의 이순신>에서 인간적인 이순신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백병전인가? 포격전인가?
하지만 인간 이순신을 재조명하는 것은 김한민 감독의 궁극적인 예술적 목표가 아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명량’이다. 그는 상영시간의 절반가량인 61분을 오직 명량해전을 묘사하는데 집중시킨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을 전기영화가 아니라 해양활극으로 만들었다. 제목 그대로 진짜 주인공은 이순신이 아니라 ‘명량’이다. 김한민 감독이 주목한 것은 인간 이순신이 아니라 해전의 스펙터클이다.
물론 전반부는 이순신의 인간적인 고뇌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을 묘사하는데 소비된다. 하지만 그것은 후반부 해전의 스펙터클을 극대화하기 위한 극적 장치일 뿐, 김한민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해전 그 자체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자신의 연출적 기량을 모두 쏟아 붇는다. 그 결과, <명량>의 전반부는 다소 맥이 빠진다. 하지만 후반부는 기대 이상으로 강력하다.
단지 해전장면만 놓고 본다면 <명량>은 바다를 무대로 한 그 어떤 영화보다도 흥미진진하다. 지금까지 <명량>처럼 해전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한국 영화는 없었다.(할리우드영화를 포함해도 손에 꼽힐 정도다) <최종병기 활>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사극과 활극을 결합시키는 김한민 감독의 기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현대 상업영화에서 매력적인 해전영화 혹은 해양활극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속도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바다 위에서 박진감 있는 활극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해양활극인 <캐리비안의 해적>시리즈도 생각보다 해상전투장면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캐리비안의 해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할리우드 해양활극영화들이 실패(전설적인 실패작 레니 할린의 <컷스트로 아일랜드>, 케빈 레이놀드의 <워터 월드>의 경우를 보라!)한 이유는 해양활극의 연출적 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한민 감독은 <명량>을 그 어떤 전쟁영화, 활극영화보다 흥미진진한 오락영화로 만들었다. 중세의 해상전투는 다소 맥이 빠질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라이언 일병구하기>의 노르망디전투만큼 실감나는 전투장면을 재연했다. 61분의 해상전투가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과 압도적인 몰입감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다소 민망한 홍보문구가 과장은 아니다.
해전의 스펙터클을 극대화하기 위해 김한민 감독이 전술적 묘책은 백병전이다. <명량>은 해전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백병전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명량>의 이순신은 마치 ‘액션히어로’처럼 긴 칼을 휘두르며 왜군과 직접 맞선다. 이순신이 적장 구루지마(류승룡 분)의 목을 베는 장면은 ‘액션히어로’ 이순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한다.(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도 이순신과 구루지마의 일대일 격투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은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순신이 직접 백병전에 뛰어들었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다. 비록 중세시대라고 할지라도 해전의 특성상 총사령관이 직접 백병전에 뛰어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그것은 육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극적 변형은 해전의 스펙터클을 극대화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지나친 역사의 변형(혹은 왜곡)이라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물론 극적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어느 정도 변형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원형의 본질을 훼손할 정도라면 심각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왜군의 수적 우세를 극복한 이순신의 기본전법은 포격전이다. 그 유명한 ‘학익진’은 포화력의 우세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순신이 창조한 진법이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일자진’을 선택한 것도 울돌목의 특별한 조류를 이용해 수적 열세를 포화력으로 극복하기 위한 전술적 비책이었다. 하지만 <명량>에서 이순신은 마치 조자룡처럼 단기필마로 대장선을 이끌고 적진에 뛰어들어 백병전을 벌인다. 이러한 설정으로 활극적 쾌감은 극대화됐지만 탁월한 전략가로써 이순신의 면모는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또한 백병전이라는 손쉬운 해결책은 명량해전의 독특한 전술적(혹은 시각적) 묘미를 반감시켰다. 물론 백병전보다는 표현이 어렵지만 포격전 중심의 전술적 독창성을 보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해전장면이 연출됐다면 <최종병기 활>과 비슷하지만(포와 활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같다) 또 다른 차원의 스펙터클을 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아쉬운 류승룡 활용법
<명량>에서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류승룡의 활용법이다. 이 점은 <군도>의 강동원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군도>에서는 강동원의 지나친 존재감이 문제였다면 <명량>의 류승룡은 지나치게 얌전했다. 김한민 감독은 류승룡, 김명곤(도도 역), 조진웅(와카자키 역) 등 비중 있는 조역들을 적군으로 배치했다. 영웅물에서 비중 있는 연기자들을 악역으로 배치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연출법이다. 강력한 적은 영웅의 위대성을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예컨대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보라!) 하지만 악역에 대한 평면적 묘사는 이러한 배역의 효과를 반감시켰다. <명량>의 구루지마를 위해 류승룡을 소비한 것은 도끼로 모기를 잡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배역이었다.
일부 아쉬운 설정과 몇 가지 영화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김한민 감독은 자칫 따분해 질 수 있는 ‘성웅’의 영화를 교훈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오락영화로 만들어냈다. 일단 대중적 측면에서 <명량>은 성공적인 작품이다. 아마도 이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군도:민란의 시대>와 함께 천만 관객을 향한 ‘쌍끌이 흥행’이 기대된다.(하지만 두 작품 모두 천만 관객을 만족시키기에는 조금 힘이 모자란 듯하다)
같은 사극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대비되는 두 작품은 스크린 밖에서도 찬반논쟁을 일으키며 여름 극장가에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영화적 재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