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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 토사구팽 고사(古事)는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군사인 범려(范蠡)의 말에서 유래했다. 당시 오(吳)를 멸망시킨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고생할 때는 함께 고락을 나누지만 자신이 부귀해질 때면 교만해져 모든 것을 자신의 공(功)으로 돌리는 성격이다. 상(相)을 보건데 장경오훼(長頸烏喙)인지라 구천이 자신을 포함한 공신들을 죽일 것’이라 미리 예측한 범려가 문종(文種)에게 관직에서 물러나자고 권한데서 나온 말이다. 그로부터 300년 후, 한신(韓信)의 일화는 더욱 비정하다.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은 천하통일한 뒤 창업공신인 한신(韓信)을 초(楚)나라 왕으로 삼았지만 끝내는 유방으로부터 의심을 사더니 여후(呂后)에게 살해당했다. 전형적인 팽(烹)이다. 한신은 말하였다.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도 잡혀 삶아지며, 적국이 타파되면 모신도 망한다.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나도 마땅히 팽(烹) 당함이로다’ 우리 역사에서는 공신들을 척살하여 무자비한 권력의 속성을 보여줬던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이 대표적이다. 왕권 강화를 통한 정국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처갓집인 여흥 민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측근들을 견제하니 많은 공신들이 제거되었다. 3공화국 시절 유정회 출신의 정치가 金在淳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3당 합당을 통해 여당으로 들어온 金泳三을 지원하여 대통령으로 세우는데 크게 공헌했다. 하지만, 金泳三이 자신을 비롯한 구 민정계를 숙청하자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기고 정계를 은퇴했다. 30년 우정도 권력 앞에서는 일개 범부(凡夫)보다 못했으니 또한, 팽(烹)이다. 공(功)을 많이 세우고 몸을 낮춰 처신했다 한들 토사구팽을 피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겸손하게 행동하면 그건 그거대로 의심을 받아 함정의 덫에서 벋어 나기가 힘든다. 절대 leade들이 2인자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공(功)을 세운 세력들이 자신을 위협한다고 믿는데 있다. ‘뒷간에 갈 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는 여측이심(如厠二心)이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다’는 감탄고토(甘呑苦吐) 같은 성어(成語)도 필요할 땐 찾아 쓰고 쓸모없어지면 매정하게 내버리는 세상의 이치를 빗 댄 비유다. 이러한 교훈을 살펴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있을 때만 일신(一身)이 위태롭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을 잘못 만나면 천리마도 밭을 간다고 했다. 야비한 인물들의 속성을 한탄하기 전에 물러나고 들 때를 잘 분별해야 한다. 천명을 아는 자 하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아는 자 남을 탓하지 않는다 했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 하리오. 하여, 추선(秋扇)의 신세는 되지 말아야 한다. HTTP://WWW.KOREACOLOR.COM 멋진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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