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러시아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면서 서둘러 이스라엘로 떠났던 러시아 유명인사들이 이스라엘 전쟁으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빠진 모양새다. 개전 한달만에 대통령 특별대표(우리 식으로는 특별 보좌관)직을 박차고 간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 루스나노 회장(CEO)과 다른 올리가르히(신흥 재벌)들과는 달리, 전쟁의 부작용을 반공개적으로 거론한 미하일 프리드먼 등이 대표적이다.
팔레스타인 하마스 무장조직의 이스라엘 공격 직후, 현지 언론과 인터넷의 관심을 모은 셀럽(유명 인사)은 역시 추바이스 전 회장. 옐친 전 대통령 시절 '민영화의 황제'로 불리며 시장경제 체제로의 개편을 주도했고, 푸틴 대통령 시절에도 중용된 거물급 인사다.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20년까지 러시아 첨단기술센터인 '나노기술공사'(이후 루스나노)를 이끈 뒤, 2020년 12월 대(對)국제기구 러시아 대통령 특별대표직을 맡아왔다.
추바이스 전 루스나노 회장/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러나 그는 특수 군사작전 개시 한달 쯤 뒤(지난해 3월 23일) 대통령 특별대표직을 내던지고 도망가듯(?) 러시아를 떠났다. 임명권자(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한(?) 그의 사표는 이틀 뒤 푸틴 대통령에 의해 '해임'으로 정리됐다. .
그의 존재가 다시 부각된 것은 지난 9월이다. 푸틴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추바이스(전 회장)가 왜 도망쳤는지 모르겠다"며 당혹함'을 표시한 것. 그러면서 그를 향해 사실상 배신자 좌표를 찍었다.
추바이스 전 회장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텔아비브 공항에 줄을 서 있는 모습/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콤스몰스카야 프라우다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추바이스 전 회장은 9일 출국 인파로 북적이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서 아내와 함께 포착됐다. 온라인에 올라온 사진으로 미뤄 이스라엘을 급히 떠나려는 것으로 추정됐는데, 러시아로의 귀국은 아닌 것으로 점쳐졌다. 아니, 돌아올 수가 없다(고 하는 게 맞을 지 모른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전쟁을 피해 제 3국(터키)를 거쳐 키프로스 등으로 피신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 말에도 아내와 함께 텔아비브 공항에서 키프로스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의 안전과 평안을 보장해줄 안식처는 어디일까?
푸틴 대통령은 동방경제포럼에서 "추바이스 전 회장이 '루스나노'를 그만둔 뒤, '루스나노'에 '재정적 구멍'(자금 횡령 의혹/편집자)이 확인됐고, 형사 문제를 우려해 전임 이사회 의장에게 같이 출국하자고 권했다"고 주장했다. '루스나노'는 현재 파산 위기에 몰려 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인터넷에서 '아나톨리 보리소비치 추바이스'(Анатолий Борисович Чубайс)가 아니라, '마샤 이즈라일로비치'(Маша Израилевич)라는 이름으로 된 사진들을 보았다"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러시아 최대 상업은행인 '알파 금융' 그룹 공동 창립자인 올리가르히 프리드먼은 서방과 러시아 양쪽에서 몰리는 처지다. 그는 1주일 전 영국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했는데, 공교롭게도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급히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그는 "모스크바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리가르히 중에서 반전 성향을 드러낸 인사로 지목됐지만, 정작 체류하던 영국에서 평탄하게 지내지 못했다. 지난해 3월부터 유럽연합(EU)의 제재 명단에 올라 '가택연금'과 같은 생활을 해왔다는 게 그의 토로. 또 자금 세탁 혐의로 영국 범죄수사국(NCA)의 조사를 받아왔으며 지난 달에야 그 족쇄에서 풀려났다. 이후 이스라엘로 도피했는데, 전쟁이 터졌으니, 운도 없는 편이다.
프리드먼/사진출처:yaplakal.com
그는 미 블룸버그 통신에 "일주일 전에 나는 이스라엘로 이주했으나, 현지 상황(전쟁) 때문에 모스크바로 왔다"며 "모든 상황이 진정되면 이스라엘로 돌아가 영구적으로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EU의 제재 때문에 영국에 사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러시아와 이스라엘 이중 국적자다.
프리드먼은 그간의 영국 생활에 대해 "카드 사용이 차단됐고, 청소비와 같은 작은 돈도 인출할 수 없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또 “푸틴 대통령과 다른 누군가와 (나와의) 사이는 지구와 우주 처럼 멀다"고 크렘린 '이너서클'(핵심 그룹) 설을 부인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특수 군사작전이 시작된 지난해 2월 24일 푸틴 대통령이 초대한 크렘린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EU 측은 러시아 올리가르히 대다수를 '푸틴과의 회의에 참석했다'는 이유 등으로 일찌감치 제재 명단에 올렸다. 대러 제재에 앞장서는 미국이 그를 제재한 것은 지난 8월이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또 네덜란드 법인 'VEON Ltd'를 통해 관리하는 우크라이나의 통신회사 '키예프스타'(Киевстар, Kyivstar)의 주식을 모두 압류당했다. 우크라이나 안보보안국(SBU)는 프리드먼이 러시아 특수 군사작전에 자금을 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 방공호서 생활하는 여가수 글류코자. 소브차크가 SNS에 올린 사진이다.
러시아 여가수 글류코자(Глюкоза)는 미국의 팝스타 '브루노 마스'의 공연을 보러 이스라엘로 갔다가 발이 묶인 경우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이틀간 이스라엘의 방공호에서 보냈고, 그 사진을 또다른 셀럽인 여성 언론인 소브차크에게 보냈다. 그녀의 가족은 조만간 러시아로 귀국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국민가수 격인 '이미자'씨와 비교되는 러시아의 알라 푸가초바와 그의 남편이자 엔터테이너 '막심 갈킨'(Максим Галкин)은 글류코자와 다른 셀렙. 특히 갈킨은 특수 군사작전에 대해 대놓고 반대 목소리를 냈다. 갈킨은 8일 "애국심이 강요되지 않는 이스라엘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전쟁을 피해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언젠가 러시아인인 게 자랑스러운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