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사화집 [☆사랑이여, 아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의 앞표지(위)와 뒤표지(아래)
============ ============
현대시학50주년기념지도자집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도서출판 당아실(2019.08.30) / 값 12,000원
================= =================
프롤로그
『현대시학』창간 50주년 기념 <시도자전>을 열며
격월간지『현대시학』이 2019년, 올해로 창간 50주년이 되었다. 1969년 전봉건 시인에 의해 창간된 뒤 꾸준히 월간지를 내오다가 격월간으로 바꾼 건 2017년 7,8월호부터이며 이번 9,10월호 출간으로 지령 590호가 된다. 아시다시피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50년간 590권을 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현대시학』은 원고료를 지원받는 우수1급 잡지 반열에 올라 있다. 최근『문예중앙』마저 폐간됐다는 비보를 들으면서 『현대시학』이 오늘에 이르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여러 시인들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 단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작년부터 50주년 창간 기념행사를 계획했었다. 그러나 기업의 문화예술지원인 메세나(mecenat) 단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어디에서도 개인잡지를 지원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결국 본격적인 행사를 접고, 창간 회고 및 50년간 『현대시학』을 빛낸 작가들의 시나 에세이, 논문 등을『현대시학』에 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음이 가는 곳에 뜻이 있다더니, 올 봄 전기화 발행인의 소개로 <김용문 막사발 전시회>에 갔다가 창의성과 예술적, 역사적 가치까지 높은 막사발에 시를 새겨 시도자전을 해보자는 김용문 도예가의 적극적인 제안을 받게 되었다.
김용문 도예가는 “막사발 실크로드”를 실천하기 위해 터키의 하제테페대학교에서 한국 도예를 가르치는 교수이자『나는 막사발이다』에세이집과『마음 하나 다스리기가』라는 시집을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노작 홍사용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옹기에 시를 써서 전시도 했었고, 2008년에는 신경림 시인이 고른 ‘한국 명시 100선’의 시를 도자기에 새겨 큰 호응을 받기도 했었다.
“창간 50주년이니 50분의 시를 받아 전시회를 갖자”는 계획은 그래서 급물살을 타고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시장 확보와 예산 등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때 최근 소설집『북에서 왔시다』를 달아실출판사에서 낸 소설가이며 춘천 옥산가 대표이기도 한 김현식 회장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왔다. 김 도예가의 열정과 그 순수 예술 정신, 시전문지인 『현대시학』의 역사적 가치와 그 위상을 인정한 김현식 대표께서 기꺼이 후원하겠다고 나서 준 것이다. 옥산가는 춘천에 ‘춘천 옥광산’뿐 아니라 미술관과 달아실출판사, 대형 데미안서점을 함께 운영하는 기업이다. 이에 전시장 대여는 물론, 시낭송회와 뒤풀이까지 후원하게 된 것이다.
결국 63분의 시인의 시를 받아 김용문 도예가가 직접 손가락으로 그리는 지두화 수법으로 막사발과 시도자판을 제작, 전시하게 되었다. 또한 막사발과 시도자, 시인들의 시를 묶은 시도자도록집도 함께 출간, 필진들 외에도 일반 독자들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하였다.
가을이 한창 무르익는 9월 21일 토요일, 4시부터 춘천 옥산가에서 열리는 “창간 50주년 기념 『현대시학』시도자 전시회 및 시낭송회”에 언론에서도 일찌감치 관심을 갖고 보도를 하고 있다. 많은 시인 및 독자 여러분도 관심을 갖고 동참해주기를 바란다.
『현대시학』창간 50주년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옥고를 내주신 김남조, 신경림, 정현종 등등 원로 선생님들과 『현대시학』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 강렬한 예술혼이 담긴 막사발과 지두화로 시를 쓰고 그려내며 적극적으로 이 행사를 밀어준 김용문 도예가에게, 그리고 연락을 도맡아 해온 제자 박장호 작가와 편집 및 출판까지 도맡은 달아실출판사 박제영 편집장께도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2019.9
『현대시학』시학회 회장 김금용
석류
김남조
진홍장미
일만 송이의 즙이
석류 살비듬에 고여
진홍의 단맛으로 영글었다
나는 붉은 사랑이야
붉은 유혹이야
붉은 가책이야
나는 붉은 노을이야
붉은 불면이야
나는 붉디붉은 사랑이야
심장이야
늙은꽃
문정희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문효치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허공에 태어나
수많은 촉수를 뻗어 휘젓는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될
온몸을 태워서
찬란한 한 점의 섬광이 될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빛깔이 없어 보이지 않고
모형이 없어 만져지지 않아
서럽게 떠도는 사랑이여
무엇으로든 태어나기 위하여
선명한 모형을 빚어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되어라
갈대
신경림
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그릇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아흐 동동디리
유안진
먹구름 저녁에도 달맞이 꽃피어
먹구름 너머에서 달 뜨는 줄 안다하네
비구름 아침에도 해바라기 꽃피어
비구름 너머에서 해 뜨는 줄 믿는다는
아흐 동동다리
목마른 물새
이건청
목마른 물새처럼
벼랑으로 나르리라
벼랑에 붙어 선
푸른 나뭇가지에
깃을 드리고 앉아
저무는 지평선을 바라보리라
스러지는 황혼을
바라보리라
목마른 물새가
목마른 물새를 바라보듯이
소금쟁이 설법
최동호
아무리 휘갈겨 쓰고 다녀도
흔적 하나 없다
흰 구름 낙서마저 지우고 가는
소금쟁이
무제無題
허영자
돌틈에서 솟아나는
싸늘한 샘물처럼
눈밭에 고개 드는
새파란 핏종처럼
그렇게
맑게
또한 그렇게
매웁게
항아리
구재기
한때 채우려 했음을
부끄러워라
독송을 끝으로 예불을 마쳤다
붉은 비렁길
김금용
나는 지나가는 바람이었고
머문 적 없는 비였고
잠든 적 없는 별이었으므로
바닷내 푸른 미역널방에서 미끄러지고
붉은 동백숲에서 길 잃는구나
앞서 떠난 파도가
되돌아오며 발목 잡는
숨찬 비렁길에 들어서면
*비렁길-벼랑길의 여수 사투리
등
김지헌
속수무책이다
등 뒤에서 벌어지는 일엔
늘 왕따의 처지다
앞과 뒤가 완전 딴 세상이다
손이 닿지 않는 가장 먼 외곽이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다
그러므로 뒤쪽은 늘 불안하다
비 오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얼마든지 젖어도 좋은
때론 누군가 가만히 허그를 해줬으면 싶은
간절한 마음 한 번도 전하지 못했는데
앞만 보고 가도 좋다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한 발짝 나아가면 한 발짝 따라오는
멀고도 가까운 내 편
평생 만날 수 없어 그리운
함부로 등에 칼을 꽂지 마라
달팽이의 말씀
김추인
그의 문체는 반짝인다
은빛이다
또 한 계절 생을 건너가며
발바닥으로 쓴
단 한 줄의 선연한 문장
‘나 여기 가고 있다’
이 가을에
나태주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
달
이경림
아, 어떤 웃기는 사랑 하나가
밤마다 중천에 떠올라
저리 훤히 밤을 새우나
홀로 떠가는 달
이영춘
빈 항아리 하나 떠간다
자취할 때 먹던 붉은 고추장 항아리
어머니 깨진 가슴 한 조각 둥둥 떠간다
“계집애 공부는 시켜 뭣 하냐?”며 던져버렸다는 그 항아리
고추장보다 더 붉은 어머니 가슴 한 덩어리
오늘밤 그 恨 풀어내려는 듯 둥둥 떠
저 깊고 깊은 은하를 건너간다
손톱
이채민
한 뼘 우주 속의 작은 섬
초대 받지 않았지만 나는 이곳에 있다
내 자리가 없으므로
시간을 긁적거리거나 떠돌아야 했다
꿈이 하나여서 무겁지는 않지만
속이 훤히 보여서
비밀을 넣어두면 뜨끔거렸다
간직해야 하는 비밀이 두꺼워질수록
아픔은 무뎌지고 파도는 순해졌지만
섬은 선홍의 피로 물이 들었다
가끔 바다의 호명을 받으면
가난한 꿈은 하나뿐인 불구의 날개로
파도의 현을 타고 날아다녔다
짓무른 기다림이 별이 되는 섬
어느 태양계의 혈통인지
나는 내가 궁금하다
백화등
정재분
연둣빛 귀를 틔웠다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
창 너머
산성 돌담 모퉁이 그 너머
봄의 씨앗이 태동하는 소리를 들었음인가
호된 겨울
설 지난 닷새는 우수
이제나저제나 26도로 맞춰진 실내 온도에
계절의 촉수가 마비됐을 법한데
뼛속이 보이는 빙어 같은
새순이 나고
하얀 등불 단 봉오리 두어 개
빛을 그러모아 향을 품은
오, 몸의 궤도여
파도의 뼈
조창환
파도의 뼈도 한 만 년쯤 삭아 녹으면
저런 투명함으로 제 몸 터트리는 것일까
속절없이 눈부셔 환하고 환한 봄 바다
눈시울 붉어져 목이 잠긴다
길 위의 낙서
최도선
몸으로 글을 쓰는 서정 시인이 있다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마른 땅을 밟아 보겠다고
비 그치자 땅 위에 몸을 드러낸 지렁이
폭염에 질식하며 마지막 시를 쓰고 간다
낯설지만 저승길은 환했노라고
숭늉
허림
적설의 무게가 고요하고 희고 부시고 환한 것을
눈도 크게 뜨지 못하고 옆착에 손을 넣고 가래알을 주물럭거리며 돌처럼 딱딱한 황율 우물거리며 괜한 우체부 기다리는 것인데
까마득한 한 소식도 올 것만 같다
잘 듣지 못하는 어머이는 또 딴소리 하고 나는 물에 밥을 말아 들기름에 깨보생이에 짭짤하게 볶은 무장아찌를 얹어 한 끼 때운다
이 한 끼 속에는 여인의 희고 보드라운 살 냄새가 난다
에필로그
처음 『현대시학』50주년행사 일환으로 시도자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에 우선 내 가슴은 뛰었습니다.
춘천 옥산가에 방문하였을 때 저의 평생 공부이기도 하였던, 이제는 모두 사라져가는 옹기들이 이곳 달아실 옹기박물관에 웅장하게 소장되어 있음에 놀라웠고, 옥산가 김현식 회장님의 소개로 달아실미술관과 뒷산을 돌아보며 푸르게 우거진 나무들을 보며 상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조국은 갈 곳 없는 예술가에게 영원한 그리움이요 어쩌면 전부 저의 집 같은 매순간의 소중함이 살아 있는 그런 곳입니다. 저는 이 소중한 그리움, 조국의 따듯한 부름에 감사했습니다. 『현대시학』의 기념비적 시도자 작품을 만드는 부름도 감사하였지만 이와 함께 달아실출판사에서 주옥같은 예순세 분의 시를 형상화한 작품을 책으로 엮는다는 놀라운 인연에도 깊이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시작을 조국과 아주 멀리 떨어진 터키에서 준비하고 시작함에 저의 감사함은 더 애틋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준비한 시도자 작품을 8,000㎞ 떨어진 터키 앙카라의 저의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한국과 다른 도자 재료로 한국인 시를 표현하는 것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애초 『현대시학』측과 달아실출판사에서 막사발로만 작품 제작을 원했지만, 저에게는 마음의 비석처럼 단단한 도판이 추가되어 퍽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작 초부터 시인의 마음을 담은 시도자를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며칠 밤 고민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작업이 시작되면서 많은 시인들의 시적 상상력이 저의 손길을 움직이며 저의 입가에 탄성이 흘러 나왔습니다. 여기 모시는 위대한 시인들, 사람 마음을 뒤엎는 시인 한 분 한 분의 감수성에 우선 놀라웠고 시가 주는 위대한 감격이 쓸쓸한 나의 가슴을 매순간 때려, 이 감격이 흙과 불을 만남에 놀라웠습니다.
한 편의 시를 접하며 날로 변환되는 팍팍한 우리의 삶이 SNS 시대에 어떤 형상, 어떤 시와 예술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의문입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어린 나의 손끝이 감히 시인의 감성을 어떻게 두드릴 수 있을까 실로 걱정되었습니다.
고백컨대, 혹여 제 막사발과 도판에 시각적 표현이 아둔하다면 따끔한 질책을 해주십시오. 저는 달게 받겠습니다. 아울러 시를 선정해주신 김금용 현대시학 회장님, 현대시학 전기화 발행인님, 시도자 작품 제작을 후원해주신 옥산가 김현실 회장님과 전규식 전무님, 책 편집에 애쓰신 달아실 박제영 편집장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끝으로 모든 인연을 맺어준 박장호 씨에게도 감사드립니다.
2019년 8월
터키 앙카라에서 김용문 드림 .♣.
=============== == = == ===============
▶참여 시인∥
【김용문 연보】
•약력: 1955. 경기 오산출생. 홍익미대 공예관 및 동 대학원 졸업. 중국 산동성 산동이공대, 산동경공업대학교 객좌교수 역임, 중국 치루대학교 ,치박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현재 세계막사발 창작가마축제 조직위원장 및 터키 국립 하제테페 미술대학 초빙교수. 국내외에서 국제 도자전 - “세계막사발 창작가마축제”를 22년 동안 40회 개최
•주요 저서: 막사발 실크로드 –도자기 다큐멘터리 시리즈 출간. /제1권 나는 막사발이다(2010)/ 제2권 막사발, 히티아트를 만나다(2011)/ 제3권 막사발 실크로드(2012)/ 제4권 세계막사발 미술관 가는 길(2013)/ 제5권 석연년 스님의작품 세계(2015)/ 제6권 이 시대의 세계 막사발(2015)/ 제7권 막사발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2016)/ 제8권 아트 포 피스(2018)/ 시집『마음 하나 다스리기』출간
•주요 작품 심사: <아르헨티나 타일비엔날래> 심사위원/ 터키SERES <2009 도자공모전> 심사위원/ 터키 아나돌루 대학교 주최 <‘부아메르 타차크‘ 공모전>심사위원./ <루마니아 도자공모전> 심사위원/ 터키 하제테페 –터키 한국문화인주최 <2018 세계막사발공모전> 심사위원장
•개인전: 제1회 토우전(土偶展. 82 뉴코아 미술관)외 지금가지 제45회 나무걀러리 초대 김용문 나무에 단상전(2018. 관훈동)을 개최함
•단체전: 한국 도상전/ 겨울 대성리전/ 도해내기전/ 도조6인전/ 삶의 미술전/시대정신전/ 젊은 의식전/ ’80년대 미학의 진로전/ ’86행위와 설치미술제/ 무리전/ ’86 여기는 한국전/ 한국도예 유럽순회전/ 고개티전/ 남한강 24시전/ 롯데월드 민속미술관 초대 전통생활옹기 특별전/ 열린미술천안전/ 강용대-김용문 2인전/ 5일 초대전/ ‘’97 인사동 대보름전/ 역사와 환경전/ 분청사기의 오늘전/ 환태평양전(벤쿠버)/ 세계 막사발 창작가마 페스티벌(1998~2018)/ 윤진섭. 김용문 2인전(리서울 갤러리)/ 김용문과 메스크 우먼 2인전(통인화랑)
.♣.
================♥♥♥♥♥================
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바이올린 소나타 제21번 마단조 K 304
Violin Sonata No21 E minor K.304 [Allegro]
*출처: 관악산의 추억(http://cafe.daum.net/e8853/MUEz/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