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사제 외 1편
조현숙
하늘아파트 꼭대기 층에 사는 그녀
저 아래 지상의 세계가 섬뜩하니 두려웠다
안락의자에 앉아 편안한 눈높이로
태양만을 숭배하게 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스스로 천상의 여사제가 되고서야
까마득한 허공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허구한 날 우러르는 낙으로 살았던가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과 맞닥뜨리면
어느새 턱주가리 살짝 치켜 올리고 있었다
취향은 나날이 품격을 더하여
명작이라면 기를 쓰고 인쇄 횟수까지 읽었다
명품이 아닌 것은 손도 대지 않았고
자녀들 고액과외로만 전전했다
누추한 이웃들 옷깃이라도 스쳤을세라
외출 후엔 베란다에 나가 떨어내기 급급했다
햇살을 튕기는 날갯짓은 가히 황홀했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경지까지 오르고서야
하늘과 지상의 일맥상통함을 알았을까
오늘도 난간에서 이부자리를 터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가뿐, 날아오른 것이다
과연 태양의 사제다운 화려한 최후였다
중독자
물이라고 생각했다
또는 달빛이라고도
그러나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독하디독한 술이었다
그 독주를 마시고 아이가 자라고
건장한 어른이 되기까지 했다
그것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의 일이다
어느 틈엔가 숨이 가빠지고 살이 패이고
독기에 삭아빠진 이는 틀니로 바꿔야 했다
어떻게 시작된 일인지 기억도 없이
쉴 새 없이 들이켜고
들이켤수록 끊임없이 부풀어
어떤 쇠사슬이라도 소용없는 형국이었다
악화는 악화를 낳아
이 독주를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제발! 이라 부르짖어도
별의 별짓을 다 해보아도 백약이 무효였다
두렵지 않은가?
그토록 거대하던 술 한 통을
마침내 단 한 모금까지
꼴까닥!
끊을래야 끊을 수 없던
마지막 자유, 보루까지
우리는 끝내 다 마셔버린다
─『시에』 2011년 여름호
조현숙
전북 익산 출생. 2007년 『시에』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