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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한 교회(행 4:23-31)
우리교회 올해 표어가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교회”입니다. 시대가 어려워질수록 깨닫는 것은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삶을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해동안 많이 강조하였지만 말씀과 기도는 바로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가 없이는 결코 우리가 거룩한 영성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영성을 회복할 때 비로소 오늘의 어둠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고 또 영적인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실상입니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것은 그로 인해 오는 영적인 어둠입니다. 영적인 불이 점점 꺼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하자고 그렇게 외쳐도 꿈쩍도 안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요즘 제가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한결같이 목이 터져라 외치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핍박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결국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저들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11: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환경에 젖어 세상을 따라 살았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세상의 포로가 되어 자기를 잃어버린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우리가 삽니다. 잠자듯 대충 종교생활에 만족하면 안됩니다. 무엇보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다가 성전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불쌍한 사람, 나면서부터 걷지못하는 장애인을 주목하여 보다가 나사렛예수의 이름으로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보고 놀란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 주목할 때 베드로가 저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내가 고친 것이 아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 그분의 이름으로 고쳤다. 그는 생명의 주요 구약에서 그렇게 예언하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기에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러자 저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산헤드린 공회에서 저들을 심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베드로는 담대하게 내가 만난 예수를 전합니다. 그리고 병나은 사람이 곁에 있었습니다. 저들을 할말을 잃고 위협하며 놓아주었습니다. 이후에 아무에게도 이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이 말합니다.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담대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풀려나자마자 예루살렘교회로 달려가서 그동안 자신들이 당했던 일들을 다 이야기하고 다같이 합심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감금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고 해서 위축되거나 두려움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기도제목으로 삼고 합심해서 기도할 때 다시한번 성령충만함을 체험하고 새힘을 얻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사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합심으로 기도한 것은 이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기도할 때 저들은 다시한번 성령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단코 그 어떤 방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다는 사명감과 열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이러한 환경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수 있었습니다.
1. 교회가 합심으로 기도였습니다(23-28절)
23-24절,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베드로와 요한이 종교권력자들에 의해 체포되어서 곤혹을 치르고 여러 차례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루 만에 풀려났습니다. 풀려난 그들은 곧바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초대 예루살렘교회입니다.
여기에 사도들과 믿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체포되서 심문을 받는다는 소식을 접하자 저들을 함께 모여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한 기도가 저들을 위협하고 협박하는 권력자들 앞에서 용기있고 담대하게 설 수 있었던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곧장 교회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염려하며 기도하는 동료들에게 가서 있었던 사정을 다 이야기하고 기도를 요청하였을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은 위협을 받은 만큼 두려워하거나 낙심한 것이 아니라 동료들의 기도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위협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바로 믿으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형제들의 기도가 절실했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동료들이 모여있는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의 공동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음의 동료들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서로가 필요해서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분 한분은 이 교회에 꼭 필요한 지체들입니다. 이 교회에 할 일이 있어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혹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지체없이 마음을 열어 놓고 내 사정을 말하고 또 내 문제처럼 여기고 기도해 줄 수 있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언제나 달려가서 내 사정을 말하고 그럴 때마다 나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는 형제자매들이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재산입니다. 특별히 교회안에서 성도간에 관계는 믿음의 관계입니다. 영적인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나 자매의 아픔이 곧 내 아픔으로 느껴져야 합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찾아가서 위로하고 격려해주고 기도해주는 진정한 공동체속에 한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입니다. 교회가 합심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의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24절에서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들은 성도들이 기도하는 모습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한 것도 중요하고 다같이 소리를 높여서 기도한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의 실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합심으로 기도를 하고 소리를 높여서 기도를 했어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고 기도했다면 그것은 무익한 기도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였습니까?
‘대주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통치자’나 ‘왕’ 또는 ‘주인’을 말할 때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통치를 강조하는 ‘절대 통치자’의 의미가 강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칭호는 박해의 위기에 서 있는 교회가 첫째, 하나님을 천지를 지으시고 만유를 다스리시는 통치자로 믿는 믿음을 가졌고, 둘째, 그분의 통치 아래에 있는 교회를 세상이 해치지 못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신앙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신앙고백을 요구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매우 중요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이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마 16:17-19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그 고백이 여러분의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은 대주재요 그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창조주시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크고 위대하게 믿고 있는 저들의 기도는 저들을 핍박하고 위협하는 세상권세를 능히 이기고 남으시는 하나님 신앙을 갖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그러므로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 열납하시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 때 오늘의 역경속에서 기도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오늘 우리의 희망입니다. 하나님앞에 돌아가야 은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만 있으면 아무리 큰 문제를 만나고 곤란한 일을 만났어도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확신에 찬 기도를 드릴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어떤 문제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앞에 나아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오늘 믿음을 지키기 위해 기도했습니다(29-30절)
29절에서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들은 다른 사도들과 성도들은 관원들의 위협함을 굽어봐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굽어봐 달라는 말은 주목해달라는 말입니다. 관심을 가져달라는 기도입니다. 지금 권력자들이 아무리 핍박하고 위협한다 하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목해주신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되고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의인들은 향하시고 때가 되면 의인을 구원하시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라고 간구했습니다. 세상의 위협함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세상은 언제나 교회를 공격하고 대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교회는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둠에 속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3:19,20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3:19,20)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어둠이 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빛에 속한 자를 미워하고 대적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의 공격과 시험을 이기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와 소통합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품고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충만할 때 비로서 세상을 이길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진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올해 성경을 일독하신 분들, 그리고 여러번 읽고 직접 성경을 필사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말씀을 이처럼 가까이 할 수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처럼 예리하여서 우리의 생각과 영혼과 삶을 다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말씀을 영적으로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내생각이 되고 내 인격이 되고 내 삶이 될 때 말씀의 크기만큼 믿음이 커지면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사랑하면 내가 깨달은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세상이 싫어합니다. 대적하고 반대합니다. 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일제히 주의 종들에게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합심해서 간구했습니다. 아무리 유대의 권력자들이 위협하고 핍박한다고 하더라도 담대함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의 사람은 담대합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만히 보면 죄를 짓는 사람들이 담대합니다. 죄의 권세에 사로잡혀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담대한데 우리는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데 너무나 담대하지 못합니다. 요 16:33에서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무덤에 죽은 예수가 아닙니다. 무덤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신 예수, 세상을 이기신 승리자 예수님, 영원한 심판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당할지라도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30절에서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이 증거될 때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말씀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이성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병든자를 치료하셨던 것처럼 말씀이 전해질 때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기사와 표적이 일어난 것 때문에 믿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 많아질 수 있었습니다. 기사와 표적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과 약속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이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체험을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믿습니까?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대주재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저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가운데 역사하십니다. 믿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결교회의 사중복음가운데 세 번째 복음이 바로 신유입니다. 신유는 예수님의 3중사역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신유의 역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도 날마다 병 고침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 역사는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고 내안에 계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런 역사를 사모하고 기도할 때 일어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통하여 또 여러분들을 통하여서도 얼마든지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믿고 기도하심으로 예배시간마다 신유의 역사가 체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빌기를 다하매 성령충만하게 되었습니다(31절)
31절에서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빌기를 다하매"라는 말은 기도를 하는 둥 마는 둥 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합심하여서 뜨겁게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랬을 때 그들이 모인 곳이 진동하였고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충만한 은혜가 임했습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도한 곳에는 반드시 역사가 일어났고 응답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마가의 다락방에 그런 역사가 일어났고 행 16장에서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빌립보 감옥에서 그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 모두가 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유대교의 관원들이 위협하고 경계하고 있지만 성령 충만한 사도들과 성도들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안에 충만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하면 1)깨달아진다 2)변화시킨다. 3)능력이 임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세상이 막을 수 없습니다. 어둠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기를 잃어버리고 무질서하게 살지만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인격적이면서도 담대합니다. 확신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앞에 순복합니다.
오순절날 성령 충만함을 받고 복음을 전파하던 사도들에게 유대교의 관원들을 통하여 핍박이 가해지고 위기가 찾아왔을 때 교회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은 성령의 재충만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자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함께 계시니 담대해집니다.
(롬 8:37-39)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힘있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신앙생활의 위기가 찾아오고 고비가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두려워하고 낙심하지 말고 예루살렘교회처럼 모여서 합심하여 기도함으로서 다시 새 힘을 얻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힘차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고 두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새 힘을 얻어서 힘차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정리하면 그들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함이 없이는 거대한 종교권력 앞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킬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성령 충만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빌기를 다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합심해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처럼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면서 여러분은 왜 이런 날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지난 금요일샘가 본문에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셨습니까? 고난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크신 뜻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모여서 합심해서 기도할 때 성령충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어둠의 영을 내어 쫓아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처럼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