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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코란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하나님을 이야기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지,
그렇지 않고, 사람이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한 것인지로 많은 차이를 가집니다.
즉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성 삼위일체로 죄에게 구원하는지로 진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 삼위일체 중, 두 번째 위치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이 있는지에 관한 기록이 문서 전체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슬람교에서 이야기하는 코란에 관한 이슬람 사전에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코란 [Koran음성듣기 , al-qur’ān]
‘독경(讀經), 낭송’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은 무쓰하프(muṣḥaf, ‘성서’), 알 푸르칸(al-furqān, ‘진실과
거짓 사이의 구별’), 알 키탑(al-Kitāb, ‘책’), 알 디크르(al-dhikr, ‘염송’)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다른 이름들로 불리워진다. 공식적으로는 알 코란 알 카림
(al-qur’ān al-karīm, ‘고결한 코란’)이나 알 코란 알 마지드(al-qur’ān al-majīd,
‘영광의 코란’)이라고 한다.
코란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메카의 꾸라이쉬(Quraysh) 부족(상류계층)이 쓰던
세련된 어법의 아랍어로 쓰여졌지만, 다른 부족의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코란에 쓰인 언어가 그전부터 있던 아랍인들의 운문(韻文,
코이네(koine), 방언들이 한데 섞인 형태)과 관련이 있으나, 그것과 동일한
형태는 아니다. 모든 면에서 보더라도 코란은 어떠한 규칙이나, 운율, 기준에도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코란은 그 자체만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코란의
언어는 문어체와 구어체 모두에서 고전 아랍어의 기틀이 되었다. 코란의 언어가
표준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 형식만은 모방하기가 힘들다.
코란은 그 문체가 두드러지게 간결 하지만 산문이나 운문체 산문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계시된 시기가 빠른 메카 구절들을 보면 사즈(saj‘)라는 이슬람 이전
문체와 유사한 경우가 많다. 사즈란 모운(母韻, 모음은 동일음이지만 자음은
다름)과 운율 및 자주 변하기도 하는 행 길이와 격조가 있어서 운문과 산문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 다음의 예는 코란 81장(Sūrah 81)으로서 이런 문체가
의도하는 바를 일부 보여주긴 하나, 번역문이므로 할 수 없이 본래의 의도와는
다소 동떨어진 면이 있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태양이 은폐되어 그 빛이 사라지고,
별들이 빛을 잃어 떨어지고,
산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새끼를 밴지 열 달이 된 암낙타가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지며
야생동물이 떼 지어 모이고,
바다가 물이 불어 넘쳐흐르며,
영혼들이 육신과 다시 짝을 짓고,
산 채로 매장된 여아가 질문을 받으니
무슨 죄로 그녀가 살해되었느뇨.
기록부들이 펼쳐지고
하늘이 그 베일을 벗을 때,
타오르는 불지옥이 열을 세차게 발산하며,
천국이 의로운 자들에게 가까이 오고
그때 모든 영혼들은 그가 행한 것들을 알게 되니라.
실로 내가 나타나고 지는 별을 두고 맹세하며
어둠을 맞이하는 밤을 두고 맹세하며 빛을 맞이하는 아침을 두고 맹세하나니
실로 이것은 고귀한 전령자가 전한 말씀이라.
그는 하나님 권좌 앞에 줄지어 서 있는 강한 자로 순종하고 믿음직하노라.
그럼으로 너희의 동반자는 미친 자가 아니며 그는 청명한 지평선에 있는
그를 보았으되, 그가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해 지식을 인색하게 보류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것은 저주받은 사탄의 말이 아니매,
너희는 어디로 가려 하느뇨. 실로 이는 만인을 위한 메시지이며
너희 가운데 그 진리를 원하는 자 그것을 따르도록 하려 함이라. 그러나
만유의 주님이신 알라의 뜻이 없이는 너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노라.
코란의 계시는 610년 경부터 시작되었다. 신성한 라마단(Ramaḍān) 달 중에
예언자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자발 누르(Jabal Nūr)산 정상 부근의 히라 동굴
(ghār Ḥirā’) 안에서 묵상에 잠겨 있었다. 그달 말일경 어느 날 밤에(라일라트
알 까드르(Laylat al-Qadr)) 가브리엘 천사가 첫 번째 계시를 가지고 그에게
나타났다. 96장(Sūrah 96)의 첫 부분이다:
읽으라!(‘iqra, 코란(qū‘rān), 읽기에서 파생),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그분은 한 방울의 정액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노라!
읽으라! 주님은 가장 은혜로운 분으로 연필로 쓰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며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도 가르쳐 주셨노라.
계시는 산발적으로 계속되었고, 이슬람의 등장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여러
사건들을 반영하며, 예언자에게 주변 환경의 요구에 따른 행동과 대처 방안들을
지시해 주었다. 코란에는 사회 법규 및 세상의 종말에 대한 경고, 최후의
심판과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설명들이 담겨져 있다. 그리스도교의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히브리어 성서의 인물들과는 놀라울
정도의 다른 형태로 등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마치 동일한 사건들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목격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성경에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매우 추상적이어서 설명이 안 되는 구절들도 있다.
신성한 역사적 기록이라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코란의
주제는 무엇보다도 신의 본성과 구원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코란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성경 상의 사건들을 대중적이면서도 교훈적인
형태로 만들어 놓은 유대인들의 미드라쉬(midrash, 성서 주해서) 속의
이야기들과 흡사하다. 창조나 아담, 노아에 관한 설명등과 같은 이야기들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일의 자손인 아랍인이 윗대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지식이며,
모세와 솔로몬에 관한 이야기와 같은 것들은 유대인들에게서 배운 것이고,
후드(Hūd)와 쌀리흐(Ṣāliḥ)의 이야기와 같은 것들은 아랍인들 자체의 역사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랍인들의 정신적 유산을 구체화시킨 예언자는 그런
모든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고, 그의 영혼 속에는 원초적 인간의 정신이 인류
전체나, 개별적 인간 그 자체로 반영되어 있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신조에 관한 세부 내용이 비록, 코란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소재라고 해도 그 종교들 각각의 신앙을 자체적으로 이해, 해석한
것과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다소 있다. 그런 소재는 어느 특정 파당들의
역사적 신념과 일치하는 경우도 많아 그 종교들을 대표할 수는 없다. 이것에
대한 사례로, 코란에서 나타나는 삼위일체에 대한
개념이나 사탄이 아담에게 절하기를 거절했다는 이야기,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에 관련한 그리스도
가현설(假現設 :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물질적인
육체와 결합할 수 없는 존재이며, 오직 외관상 육체의 형태를 취하였을
뿐이라는 주장. 그노시스파와 카타리파가 대표적으로 주장하였다.)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의 출처는 영지주의 교파들의 교리들이지만, 이들 영지주의
교파들은 정통 그리스도교나 유대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단인 것이다.
예수에 대한 개념도 단성론자들의 교리를 분명히 반영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신념과는 동떨어진 유대교에 관한 설명들도 많다. 서양의 저자들은 실제
사실들에 관한 한 코란을 경시해 왔고, ‘무함마드의 혼란스런 역사 지식, 즉
유대교에 관한 불완전한 지식은 여차여차해서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라고까지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당치않은 이야기다.
코란은 사실상 예언자가 살던 세계와 시대에 대해 예언자가 가지고 있던
지식에서부터 출발한 것으로서, 이 지식은 조금도 ‘혼란스럽다’거나 ‘불완전’하지
않다. 왜냐하면 지식 그 자체는 즉 역사 속의 어느 특정 시대나 장소에서
나타나는 인간상의 관찰자가 이용할 수 있는 표준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와
같은 우월성과 출발점으로부터 나온 지식이다. 다시 말해 이 관찰자는 하나님의
전령자가 되기로 운명지어졌기 때문에, 완전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
사료된다. 만일 코란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사실들만을 담고 있다면, 현대의
주석자는 과연 무슨 기준으로 그 뜻을 이해를 할 수 있겠는가? 옛날의
주석자들은 또한 어떠한가? 인간일 수밖에 없는 주석자가 과연 어떻게 그 뜻을
이해하겠는가? 불완전하고, 죽을 수밖에 없으면서, 어느 경우에도 필연적으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역사 개념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관점으로만
된 코란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코란은 사실과 관련된 차원에서라면
포괄적이면서도 일관성이 있는 인간의 관점, 즉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의 체험,
언어, 장소, 시대, 세계관 등을 대표하는 원초의 인간인 예언자의 관점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코란은 해독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소재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신이 이런
식으로 인간의 경험과 지식을 다룬 설익은 소재를 하나님의 의도와 하나님의
완전한 지식을 반영하는 하나의 체계로 변형시킨 것이야말로 코란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움이자, 계시의 불가사의인 것이다.
주르자니(al-Jurjani, 아샤리파 신학자, 816/1413 죽음)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코란이 인간의 문헌과 차이가 나는가 하는 점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코란의
이야기들은 모방될 수 있었고, 문체 역시도 모방이 가능했다. 그는 그 차이를
결정짓는 요소가 코란 속에 있는 영적 현재(顯在)가 바로 힘이요 은총 즉
바라카(barakah)라는 결론을 내렸다. 코란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원래 내용에서 한 단계 벗어나 인간의
언어로는 쓸 수 없는 내용으로 재구성되는 변화를 겪는다. 예를 들어
두 알 까르나인(Dhū al-Qarnayn, ‘두 뿔의 소유자’: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와
동녘 땅에서 성벽을 짓는 이야기들은 아랍인들이 중국의 만리장성에 대해서
그 전부터 들어왔던 전설들이었다. 신의 계시는 이런 소재를 택해 본연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였다. 즉, 그 이야기의 근원은 부적절하더라도 하늘의 뜻을
반영하는 증거인 마살(mathal) 즉 예증으로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만리장성은 창조와 혼돈 사이에 하나님의 대리인이 세운 분리벽인데 사회의
대 격변기에 격파된다. 대대로 내려오는 민속담은 그 본질까지 파헤쳐져 순수한
상징이 돼 버린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모든 예증(amthāl)을 보이신다.
즉 하나님은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신다(24:35).’ ‘하나님은 하루살이와 닮은
모양까도 그 비유하심을 서슴지 아니 하신다.’(2:26)
코란 속의 삼위일체는 사도신경이나 니케아 신조(信條)에서
확정된 삼위일체가 아니라, 모든 형태의 해석이 배제된
삼위일체, 유일신의 명백성과 절대성에만 비유되는 삼위일체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환영(幻影)이라고 여기는 그리스도 가현설의 교리가 아랍인들
사이에도 알려져 있었다.
코란에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힘을 두고 환영으로 묘사하는 것(4:157)은
그리스도 가현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그런 의도를 담고 있지도 않다.
그 교리는 그리스도교에서 용납되지 않는 것처럼 이슬람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 대신, 이슬람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교에서 보이는 우주
만물의 일을 인간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새로이 바꾸어 놓았다.
신께서 본 계기적 사건은 샤햐다(Shahādah): 즉 라 일라하 일라 알라(lā ilāha
illa Allāh, ‘하나님을 제외하고 다른 신은 없다’)를 재천명하는 것이었다.
코란의 계시는 신의 명령, 즉 사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신성한 말씀의
형태로 예언자의 마음속에 있던 내용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일단 코란 속의 이야기들은, 재정돈 작업을 거쳐 더 이상 어느 특정 시대와
장소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이 어느 방향에서부터 다가가더라도 유일신의
모습을 반영할 수 있도록 신비롭게 고안된 과거와 미래, 현재에 대한 전형적인
상황들로 바뀌게 된다. 이 새로운 정돈 작업은 본질적으로도 창조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인 천상의 코란으로 가시화된 것이었다. 이런 일은 ‘운명 즉
권능의 밤’, 라일라트 알 까드르(Laylat al Qadr)이라는 계시의 밤에 일어났다.
예언자의 부인 중 한 명이었던 아이샤(‘Ā’ishah)의 말을 빌리면, 이 성스런 밤은
예언자의 영혼 그 자체였다고 한다.
진실로 하나님은 권능의 밤에 이 계시를 내리시니
권능의 밤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대에게 설명해 주리요.
권능의 밤은 천 개월보다 더 훌륭한 밤으로.
이 밤에 천사들과 성령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강림하여
새벽의 동틈이 올 때까지 머무르며 평안하소서 라고 인사하더라.(97장)
그 후 이 말씀은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나와서 수라(Sūrah, ‘장’)와
아야트(āyāt, ‘절’)라는 형태로 빛 보게 되었고 여러 경우에는 앞날에 일어날
사건을 당면한 상황에서 예측되었다. 계시는 이런 말씀으로 끝맺는다.
‘내 오늘 너희를 위해 너희의 종교를 완성하였노라, 너희를 위해 내 은혜를
충만히 하였노라, 이슬람(al-Islām)을 너희 종교로 삼았노라.’(5:3) 이는
11/632년 6월 8일 예언자의 죽음이 있기 몇 달 전인, 10/632년 3월에 있었던
고별 순례 기간 중에 군중들에게 했던 설교의 일부분이다. 아부 바크르는
이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것이 마지막 계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설교 도중 예언자가 올라타고 있던 낙타는, 무릎을 굽히고
말았는데 이 현상은 예언자에게 성령이 내려왔을 때 빈번히 일어났다. 그것은
예언자에게 엄청난 무게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코란은 계시가 내려오는 동안 일부 기록되긴 했으나, 무엇보다도 코란 구절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암기에 맡겨지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암기는
문헌 이전의 전통적 문화들의 보존 관행이었다.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무슬림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초등 교육의 첫 단계는 코란을 암송하는 것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국가들의 수많은 사람들이 코란 전체 구절을 외우고 있다.
예언자의 언행록에 따르면, 코란 어문 구절이 제각기 다름에 따라 야기되는
복잡한 일들을 피하고자 칼리프 우스만(‘Uthmān)의 통치시기에 코란을
최종적으로 교정하는 일이 이루어졌다 한다.
칼리프 아부 바크르와 우마르의 통치 기간 중에도 코란을 정리 수집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예언자의 양아들 겸 개인비서였던
자이드 이븐 사비트(Zayd ibn Thābit)를 비롯하여 압드 알라 이븐 알 주바이르
(‘Abd Allāh ibn al-Zubayr), 사이드 이븐 알 아쓰(Sa‘īd ibn al-‘Ās)와
압드 알 라흐만 이븐 알 하리스(‘Abd al-Raḥmān ibn al-Hārith)를 포함한
한 위원회가 우스만 때의 원본을 최종본으로 결정하였다. 이 코란은 ‘파피루스,
평평한 돌 표면, 야자수 잎, 짐승들의 견갑골과 늑골, 가죽, 나무판자를 비롯하여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겨져 있던 내용들을 한 데 모은 것이었다.
코란은 이슬람의 토대이며 교리의 기본 원천이다. 하디스(Ḥadīth, 전승,
예언자의 언행록)와 순나(Sunnah, 예언자의 모범적 관행)도 코란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코란을 염송하면 염송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은총이
내려지며,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 다가가는 열쇠라 하여 연구되고 있다.
이슬람 법에 따르면, 대정(大淨), 즉 구슬(ghusl)한 것과 같은 청결 상태에 있지
않는 한, 아랍어로 된 코란을 물리적으로 만지는 것이 (일상적이 아닌 공식적인
염송까지도) 금지되어 있다(lā yamassuhū illā al-muṭahharūn). 모든 무슬림들이
적어도 12행의 코란 구절을 외워야만 한다는 규정이 있다.
코란은 114장으로 나뉘어 있어, 각 장(章)을 수라(Sūrah, ‘열, 줄’
[복수] sūrāt)라고 부르며, 수라는 아야(āyah, ‘기호, 표시’ [복수] āyāt)라고
불리는 절(節)들로 이루어져 있다. 코란은 길이가 긴 장이 짧은 장보다 앞쪽에
먼저 나오고 있는데 오늘날 전체를 규칙적으로 읽기에 편하도록 30개의 비슷한
길이 아즈자(ajzā’, ‘부분’ [단수] 주즈(juz’))로 나뉘었다.
한 개의 주즈(juz’, ‘부분, 일부’)는 한 달 동안 읽어야 할 분량의 하루치이다.
주즈는 다시 두 개의 아흐잡(aḥzāb, ‘분량’ [단수] ḥizb)으로 나뉘어지는데,
그 중 하나는 사원에서 쌀라트 알 쑤브흐(ṣalāt al-ṣubḥ, ‘아침 기도’) 때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쌀라트 알 마그립(ṣalāt al-maghrib, ‘저녁 기도’) 때 읽는
것이다. 이 나누기법을 비롯하여 다른 방법들은 코란의 각 쪽에 있는 여백에
기록하는 것이 관례이다. 계시는 메카나 메디나에서 받은 것으로 이루어졌다.
메카의 계시 즉 초기 계시는 더욱 시적이고 열정적인 특징이 있어, 세상의
종말에 대한 강력한 이미지들과 신의 본원적 존재성과 영원성 속으로 존재가
재흡수되는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메디나 계시는 폭풍 뒤의 고요와
같아서, 주로 법령들을 내리는 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지만 칼리프 우스만의 표준 개정판에도 메카장(章) 속에 메디나 계시의
몇 구절이 포함되어 있고, 메디나 장 속에도 메카의 계시 구절 몇 개가 섞여
있는 등, 원문 내용의 산만하고 불규칙한 특성 때문에 서양의 코란 학자들은
이 책을 좀더 분명한 차례로 재정리 해보려는 야망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이다. 코란 원문의 특성상 의미, 관점,
깊이의 갑작스런 변천이 나오기 때문이다. 코란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압축된 하늘의 뜻이다. 따라서 세상에 나와 코란이 겪은 변천 무상함,
다시 말해 처음에는 인간의 언어, 기억, 이해력, 방언(方言)에만 국한되었다가
그 후 역사적인 기록 문서로 남게 되는 것은, 인간이 정한 있는 그대로의
차례(이상의 세계 속이 아니라)와 신이 정한 차례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반영해
줄 수밖에 없다. 루미(Jalāl al-Dīn al-Rūmī)의 주장에 따르면, 겉으로 봐서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런 특징이야말로, 혼란스런 인간 영혼에 다가가 그물로
물고기를 낚는 것처럼 그 영혼을 잡아서 방황으로부터 다시 하나님께 몰입할
수 있도록 되돌리기 위한 코란의 계책이라는 것이다. 코란을 읽을 때 생기는
감명이란 것은 비밀스럽고 초월적인 중심부 속으로 갑자기 탁 펼쳐지는 미로를
지나가는 것과 같다. 코란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들은 무한한 사상과 생각들로 발전해 나아가, 변통할
것도 없이 바로 그 주제를 유일신 하나님과 결부시켜 놓는다.
코란은 신의 계시에 의한 것이며 코란을 쓴 주체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이슬람의 근본 원리이자 신자(信者)에게도 의문의 여지가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하나님이 때로는 1인칭 단수로, 때로는 복수로, 때로는 3인칭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무슬림들에게는 절대 어려울 것이 없었고, 믿음에 어떠한 장애물도 되지
못했다. 이런 인칭변화들로 인하여 우리 인간은 우리와는 다르고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의식(意識)의 세계와 대면하게 되는데, 이 의식은 인간의 논리감각이
편협하고 단편적이며 적절치가 못해 거의 엉뚱하기까지 하다는 점과 비교가
된다. 믿음이란 직접적인 체험에서 나온 신념이지, 이성(理性)의 진행 과정에
따라 생긴 결과가 아니다. 코란의 내용은 모두 아랍어로 되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코란은 ṣruti(일차 계시 또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라고 불리고
있고, 성스런 언어이자 ṣruti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언어라는 아랍어의 특성
때문에 코란의 실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하다.
반면에 신약성서는 ṣmṛti(2차 계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번역본을 종교적
의도로는 사용할 수는 없다. 코란의 비길 데 없는 소리의 울림성, 운율적인
힘으로 가득한 소리는 거룩할 뿐 아니라 신성하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 코란은 그 본질적인 면에서는 영원하고 창조되지 않았지만,
그 글자와 소리(ḥarf wa jarḥ)들은 창조되었다는 것이 이슬람에서 말하는 근본
교리이다. 창조되지 않은 코란의 교리는 그리스도교의 로고스 교리(Christian
dogma of the Logos)에 노출된 결과라고 주장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한 몸 안에 인간과 하나님의
두 가지 본성을 지닌 존재로 정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슬림들은 코란의
가르침을 책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비유하여 그 교리의 자리를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칼리프 마문(al-Ma’mūn, 218/833 죽음)은 코란이 창조된 것이라는
무타질라파의 이론을 지지했으며, 그의 총독 중 한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코란이 창조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교인들과 유사하다는 내용의 글을 써 보냈다.
칼리프 마문 시대에 무타질라파가 잠시 세력을 떨쳤을 당시, 코란이 창조되지
않았다는 믿음은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키며 다소 주춤거리게 되었다. 코란은
창조된 것이라고 선포되었고, 이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흐나(miḥnah,
고난, 고통)라는 신앙심 조사 즉 종교재판에서 당시 종교 당국의 박해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법률학자나 법관들은 코란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교리를
강력하게 지지하며 필요할 경우에 은밀하게 그런 사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븐 한발(Ibn Ḥanbal)은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코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코란의 문자와 소리까지도 창조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이 말 속에서 단성론자들을 모방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믿음 때문에 채찍질을 당했다. 미흐나가 끝이 나자, 코란의
창조되지 않았다는 교리가 다시 등장하게 되어, 그 때 이후로
순니 이슬람권에서는 이 교리에 대한 다른 도전 세력은 없었다. 이 점에 대해
하와리즈파는 순니파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 하와리즈파 교리에서 코란은
완전히 창조된 물건이며, 이런 입장은 역시 열두 이맘파와 자이드(Zaydī)파 등
시아파들도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들 두 파의 신학 논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무타질라파 신학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코란 [Koran, al-qur’ān] (이슬람사전, 2002. 11. 15., 김정위)
이같이 유사한 것 같지만, 완전히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언약한 일과 관련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에
믿음으로 낳은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에서 비롯하고 있습니다.
즉 아브람과 사래가 나이 많이 먹어 아브람의 나이 팔십오 세이었고, 사래의 나이
칠십오 세이었을 때, 사래의 생리현상이 그쳤을 때, 아브람에게 자신의 몸종, 하갈
사이에서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본처 사래로 자녀를 낳게 하겠다.
하셨기에 아브람의 나이 구십구 세가 되고, 이스마엘의 나이 십삼 세가 되었을 때,
다시 나타나서, 믿음을 인본주의가 아닌 신본주의에 믿음으로 살게 하려고,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며, 개명과 함께 일 년 후에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게 될 일을
말씀하실 때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려고 세상에 오셨을 때입니다.
1 아브람의 나이 아흔아홉이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에게 순종하며, 흠 없이 살아라.
2 나와 너 사이에 내가 몸소 언약을 세워서,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4 "나는 너와 언약을 세우고 약속한다. 너는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5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이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다.
6 내가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너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오고, 너에게서 왕들도 나올 것이다.
7 내가 너와 세우는 언약은, 나와 너 사이에 맺는 것일 뿐 아니라, 너의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도 대대로 세우는 영원한 언약이다. 이 언약을 따라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될 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너의 자손의 하나님도 될 것이다.
8 네가 지금 나그네로 사는 이 가나안 땅을, 너와 네 뒤에 오는 자손에게
영원한 소유로 모두 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와 세운 언약을 잘 지켜야
하고, 네 뒤에 오는 너의 자손도 대대로 이 언약을 잘 지켜야 한다.
10 너희 가운데서,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너와 네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 세우는 나의 언약, 곧 너희가 모두 지켜야 할 언약이다.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서, 할례를 받게 하여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우는 언약의 표이다.
12 대대로 너희 가운데서, 남자는 모두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
너희의 집에서 태어난 종들과 너희가 외국인에게 돈을 주고서 사온 종도,
비록 너희의 자손은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
13 집에서 태어난 종과 외국인에게 돈을 주고서 사온 종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나의 언약이 너희
몸에 영원한 언약으로 새겨질 것이다.
이해 : 이 말씀은 율법 위에 사랑의 법으로 이어져, 예수 그리스도에 초림의
삶으로 죄의 값을 치러 주고, 죄의 종살이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믿음의
성도가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할례를 말씀하십니다.
14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 곧 포피를 베지 않은 남자는 나의 언약을 깨뜨린
자이니, 그는 나의 백성에게서 끊어진다."
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아내 사래를 이제 사래라고 하지 말고, 사라라고 하여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겠다.
내가 너의 아내에게 복을 주어서,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들이 그에게서 나오게 하겠다."
17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혼잣말을 하였다.
"나이 백 살 된 남자가 아들을 낳는다고?
또 아흔 살이나 되는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18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19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여라.
내가 그와 언약을 세울 것이니, 그 언약은, 그의 뒤에 오는
자손에게도,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20 내가 너의 말을 들었으니, 내가 반드시 이스마엘에게 복을 주어서,
그가 자식을 많이 낳게 하고, 그 자손이 크게 불어나게 할 것이다. 그에게서
열두 명의 영도자가 나오게 하고, 그가 큰 나라를 이루게 하겠다.
21 그러나 나는 내년 이맘때에, 사라가 너에게 낳아 줄 아들
이삭과 언약을 세우겠다."
2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다 하시고, 그를 떠나서 올라가셨다.
23 바로 그 날에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종과,
돈을 주고 사온 모든 종 곧 자기 집안의 모든 남자와 함께,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포피를 베어서 할례를 받았다.
24 아브라함이 포피를 베어서 할례를 받은 것은,
그의 나이 아흔아홉 살 때이고,
25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포피를 베어서 할례를 받은 것은,
이스마엘의 나이 열세 살 때이다.
26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은 같은 날에 할례를 받았다.
27 집에서 태어난 종과, 외국인에게서 돈을 주고 사온 종과, 아브라함 집안의
모든 남자가 아브라함과 함께 할례를 받았다.
창세기 17 : 1 ~ 27절 - 새번역성경
1 주님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한창 더운 대낮에, 아브라함은 자기의 장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2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보니, 웬 사람 셋이 자기의 맞은쪽에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장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서, 그들을 맞이하며,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하였다.
3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손님들께서 저를 좋게 보시면,
이 종의 곁을 그냥 지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4 물을 좀 가져오라고 하셔서,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시기 바랍니다.
5 손님들께서 잡수실 것을, 제가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에게로 오셨으니, 좀 잡수시고, 기분이 상쾌해진 다음에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정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이해 :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던 일은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할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아브라함 앞에 자주
그 모습을 드러내셔서, 느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장소가 바로
아브람으로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 있을 때,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을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며,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제사를 드린 곳입니다.
상수리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며,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경 말씀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상수리나무와
관련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6 아브라함이 장막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지고 와서, 반죽을 하여 빵을 좀 구우시오."
7 아브라함이 집짐승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서, 기름진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니, 하인이 재빨리 그것을 잡아서 요리하였다.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만든 송아지 요리를 나그네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나무 아래에서 먹는 동안에, 아브라함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댁의 부인 사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장막 안에 있습니다."
10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음 해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찾아오겠다.
그 때에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이 등지고 서 있는 장막 어귀에서 이 말을 들었다.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고, 사라는
월경마저 그쳐서,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난 사람이다.
12 그러므로 사라는 "나는 기력이 다 쇠진하였고, 나의 남편도 늙었는데, 어찌
나에게 그런 즐거운 일이 있으랴!" 하고, 속으로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13 그 때에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면서
'이 늙은 나이에 내가 어찌 아들을 낳으랴?' 하느냐?
14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 다음 해 이맘때에, 내가
다시 너를 찾아오겠다. 그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15 사라는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였다.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
16 그 사람들이 떠나려고 일어서서,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데로 갔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바래다주려고, 함께 얼마쯤 걸었다.
17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18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 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9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20 주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 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
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이 정말 나에게까지
들려 온 울부짖음과 같은 것인지를 알아보겠다."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떠나서 소돔으로 갔으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해 : 여기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아브라함에 죄의 값을 아브라함이 삶을
사는 동안에 동행하시며, 치르는 일을 말씀한다는 사실을 창세기 14장에
말씀 중, 하늘나라 대제사장이신 멜기세덱으로부터 빵과 포도주로 축복을
받은 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다윗도 시편 110편에 기록을
통하여 고백하였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초림하여 말씀한 누가복음 20장
41장 이하에 기록하여 확인하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며,
사람으로 창세 이후로 모든 영혼에 죄의 값을 치러 주셨고, 이를 믿을
때부터 성령께서 동행하셔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같이 성 삼위일체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은혜를 뜻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유의지로
믿고, 성령의 열매 맺는 삶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23 아브라함이 주님께 가까이 가서 아뢰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24 그 성 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에서 내가 의인 쉰 명만을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그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티끌이나 재밖에 안 되는 주제에,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의인이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섯이 모자란다고, 성 전체를 다 멸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거기에서 마흔다섯 명만 찾아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29 아브라함이 다시 한 번 주님께 아뢰었다.
"거기에서 마흔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30 아브라함이 또 아뢰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서른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거기에서 서른 명만 찾아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31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감히 주님께 아룁니다.
거기에서 스무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스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32 아브라함이 또 아뢰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게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열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33 주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신 뒤에 곧 가시고, 아브라함도 자기가
사는 곳으로 돌아갔다.
창세기 18 : 1 ~ 33절 - 새번역성경
하나님은 성 삼위일체가 되어서 구원에 은혜를 이루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에도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 자신의 옛사람
곧 썩어짐의 종살이로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삶에서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삶으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놀라운 구원에
은혜를 사람의 생각, 즉 인본주의로 해석하든지, 잘못 깨닫는 사람들을 향하여 한,
말씀은 아브람이 인본주의로 낳은 이스마엘의 자손에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를 넘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죽이는 사람마다, 자기네가 하는 그러한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올 것이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므로, 그런 일들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하여 두는 것은, 그들이 그러한 일들을 행하는 때가
올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너희에게 말한 사실을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다. 또 내가 이 말을 처음에 하지 않은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서 아무도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고,
6 도리어 내가 한 말 때문에 너희 마음에는 슬픔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8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다.
9 죄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10 의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너희가 나를 더 이상 못 볼 것이기 때문이요,
11 심판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12 아직도,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지금은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또 그는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신 것은 다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령이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16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17 그의 제자 가운데서 몇몇이 서로 말하였다. "그가 우리에게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게 되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하신 말씀이나,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
18 그들은 말하기를 "도대체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 우리는,
그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 하였다.
19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에게 물어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한 말을 가지고 서로 논의하고 있느냐?
20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근심에 싸여도, 그 근심이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21 여자가 해산할 때에는 근심에 잠긴다. 진통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22 이와 같이, 지금 너희가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다."
25 "지금까지는 이런 것들을 내가 너희에게 비유로 말하였으나, 다시는 내가
비유로 말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에 대하여 분명히 말해 줄 때가 올 것이다.
26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아버지께서는 친히 너희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세상에 왔다.
나는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간다."
29 그의 제자들이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제 밝히어 말씀하여 주시고,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시니,
30 이제야 우리는, 선생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것과, 누가 선생님께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환히 알려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을 믿습니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아라,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 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갈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벌써 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3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복음 16 : 1 ~ 33절 - 새번역성경
하나님 말씀은 장과 절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에 삶으로 레위기 12장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에 몸을 정결한 제물의 조건이 충족하였을 때, 가장 극악무도한
죄인이 달리는 나무 십자가상에서 하늘나라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하늘나라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단번에 죄의 값을 치르셨기에, 예수님 초림의 삶과
맞추어 기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는 숫자는 삼과 칠이며, 오십은 희년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따라서 복 주신 자리로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로 예수님 초림에 사역부터 사탄을 심판하고 계시며, 불순종하는
존재를 심판하는 기간을 아브람과 아브라함에 삶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계보를
말씀하여, 예수님께서 재림하여 신본주의적인 순종을 가르치고,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복종할 때, 세상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 드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초림으로부터 재림까지 이천삼십 년이 흐르고, 재림하여
천 년에 통치로 심판과 순종을 가르치신 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백 보좌에 앉아
최종적으로 뜻하신 일을, 계획을 따라서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평범한
인생으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삼십 년에 십일조 공생애 삶 삼 년이 결합하여
삼천삼십 년에 걸쳐서 아브람에 인본주의가 사람이 웃을 정도로 믿기지 않는 일로
사탄에게 마흔두 달 동안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어, 악을 완전하게 드러내게
하여 불로 심판하며, 더러워진 세상을 깨끗하게 태우신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생명수 샘물을 내어 주시며, 생명이 소성케 되게 하시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만왕의 왕이 되어, 창세 이후로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시기 전에 세례 요한에게서 요단강에서 물세례를 받으신
일은 이사야 11장 말씀에 성취이며, 하나님으로서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될 때
이루실 일을 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이스라엘의 역사로 증명한 성경 말씀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유의지와 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조심스럽게 살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살아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지 않거나, 서게
되더라도 불로 심판하는 불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심판 할
때, 모두 두 차례에 걸쳐서 있게 될 것이라, 요한게시록 20장에서 분명하게 경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생명을 창조하는 참 부모가
되시기에 자녀를 살리기 위하여 사랑하여 하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인간의 짧은 지식만을 믿고 의지한다면 멸망 당하고, 이후
영원히 죄를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