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
이희형
방 하나가 겨우 차 있고 방 속에 작은 창이 겨우 차 있고 작은 창을 비집고 햇빛이 겨우 내려앉는 이곳에 내가 겨우 들어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사는 곳을 원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방 하나라는 뜻도 되고 방 하나에 사람 하나라는 뜻도 되었습니다 이곳엔 방 하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좁은 방엔 채울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집을 비워 두고 살았습니다 모두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모두가 금방 떠날 것 같은 기분으로 방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비워진 방은 넓었습니다 넓은 곳에 내가 놓여 있어서 나는 무서워집니다 불 꺼진 방 안에 누워 있으면 나는 떠오릅니다 누군가 나를 작은 배에 넣고 바다에 버려두고 간 것 같습니다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흘러가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 끝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빛이 근근이 보이지만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밝게 빛나는 건 있어서 이불을 머리 위까지 올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바다에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감상평 >
화자는 원룸에 삽니다. 원룸의 작은 방, 이곳에 내가 겨우 차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가난하여 이곳엔 채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비워진 방은 넓습니다. 블꺼진 방안에 누워 있으면 나는 떠오릅니다. 누군가 나를 배에 넣고 바다에 버려두고 간 것 같습니다 바다에 물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이와 같습니다 .
화자는 원룸이라는 방 안에 있습니다. 원룸은 존재자가 있는 곳입니다. 원룸이라는 방이 물 위에 떠 있는 배라는 상상은 은유가 됩니다. 존재자는 왜 원룸에 있습니까?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그런데 시 제목은 원룸이 아니고 스물네 살입니다 존재자인 스물네 살 화자는 바다에 떠 있습니다.
이 시는 자본 주의 사회에서, 존재의 발견, 존재에 대한 의식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시를 리얼리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리얼에서 시작했지만 자신이 처한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 의식과 상상을 수반한 이 시는 존재에 관한 시이기도 합니다 이 시의 가치는 원룸이라는 리얼을 너머서 자본주의에 대한 사유, 존재가 처한 상황에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이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