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65호 무의식의 단계에 이르도록 반복하라 (신28:1~14)
제가 예수를 믿고 의식적으로 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처음에는 남들이 다 하는 방언을 받고 싶어서 매일 의식적으로 퇴근 후 교회에 찾아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하지 않고, 즐기던 세상 것들도 뒤로 하고 의식적으로 기도에 몰두했습니다. 그런데 점차 기도를 계속하다 보니 의식하지 않아도 당연한 듯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되면 바울이 기도시간에 기도장소에 가듯 저도 무의식 속에서 교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습관을 낳았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그 기도의 능력으로 세계를 복음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찬양을 배울 때면 그것이 무의식 상태에서도 입에서 술술 나오기까지 연습합니다. 처음에야 악보를 의식하면서 부르지만, 부르고 부르면 생각하지 않아도 콧노래 부르듯 하게 됩니다. 그래야 단에서 실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 운전을 배우면 오른쪽이 액셀러레이터고, 왼쪽은 브레이크라는 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사고가 납니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큰일 나거든요. 그런데 이걸 계속 의식하면서 반복,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의식하지 않아도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가 자동 인식됩니다. 그 증거로 갑자기 다른 차가 끼어들어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아, 이쪽이 브레이크지.’ 하고 의식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추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의식적인 것이 무의식적인 것이 되기까지는 지속적인 반복이 필요합니다. ‘책을 읽어야겠다.’ 하고 매일 의식적으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무의식 속에도 책을 읽게 되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내 운명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운동해야지.’ 했으면 의식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운동해야 합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계속 꾸준히 의식적으로 운동하면, 늘 운동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그 습관이 여러분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권투선수인 타이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먹을 보고 피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주먹을 보고 의식적으로 피하지만, 연습을 계속하면 의식의 단계가 줄어들어 반사적으로 피하게 된다. 그 경지에 이르도록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의식적인 것이 무의식적으로 되기 위해서, 즉 습관이 되기까지는 반복에 반복이 필요하고, 그 반복을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지런’이 범인(凡人)을 비범인 (非凡人)으로 만드는 촉매제인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것이 무의식인 경지에 이르는 습관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 습관을 들이기까지 노력하고 노력하고, 반복하고 반복해야 했기에 그들은 부단히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부지런한 자가 잘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부지런한 사람들이 거둘 성공과 부귀에 대해 말씀하셨거든요.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12:24),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22:29)….
시편 78장에는 다윗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시78:70~72). 여기서 눈여겨볼 말씀은 ‘그 마음의 성실함과 그 손의 공교함’입니다. ‘공교(工巧)함’이란 실력의 탁월함을 말합니다. 그것은 ‘그 마음의 성실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삼상17:34~35). 다윗은 양 떼를 지키기 위해 늘 물맷돌 던지기를 의식적으로 반복했습니다.
‘오늘도 연습해야지.’ 하며 아침저녁으로, 매일 의식적으로 물맷돌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사자나 곰이 나타났을 때 무의식적으로 물맷돌을 던져 그것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 마음의 성실함, 곧 부지런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결국 ‘그 손의 공교함’이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때려잡았고, 그의 운명을 바꾸게 한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잡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 축적된 그의 손의 공교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손흥민 선수가 그냥 되었겠습니까? 그의 아버지는 손흥민이 양발을 다 사용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왼발, 오른발을 고루 연습시켰습니다. 왼발잡이가 아닌데도 왼발 연습을 계속 시킨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왼쪽으로 오는 공은 왼발로, 오른쪽으로 오는 공은 오른발로 자유자재로 차는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된 것입니다. 왼쪽으로 공이 오는데 오른발만 사용하는 선수라면 슛이 가능할까요? 이를 보건대, 무의식을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을 떨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다이어트를 해도 처음에는 ‘야식 No!’, ‘하루 만 보!’하며 의식적으로 행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무의식의 경지에 이르기 전에 해이해지고 맙니다. 이를 두고 우리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 합니다.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2시간 기도하자’, ‘매일 성경 5장씩 읽자’ 해놓고 시간이 가면 흐지부지합니다. 이유는 게으름 때문입니다. 그래서 게으른 자에게는 기대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잠언 24장에 보면 가시덤불이 나고 풀이 지면을 덮고 돌담이 무너진 포도원을 지나며 보게 됩니다. 그 주인도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풀을 뽑고, 이곳저곳을 다듬고 수리했을 겁니다. 그런데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점차 풀이 땅을 다 덮고 돌담이 무너진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잡초가 가득하고 여기저기 허물어진 것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잡초가 생기기 전에 의식적으로 잡초를 뽑아줘야 합니다. 나쁜 것들, 악한 것들,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뽑아내면 인생의 잡초는 없고, 어디가 조금 무너졌거든 게으름 피지 말고 바로 보수하면 인생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우리가 좋아하고, 희망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꾸준히 연구하여 그것이 무의식 상태에서도 행해질 때, 즉 그것들이 습관이 될 때 가능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꿈이 우리를 버렸다고. 아닙니다. 꿈은 우리를 버린 적이 없습니다. 주님도 우리를 버린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부지런하지 못해서 꿈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고, 우리가 게을러서 주님이 주신 말씀을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응답도, 복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게 ‘명성(名聲)’이라는 두 글자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고 그 복이 가만히 있는 제게 그냥 왔을까요? 아닙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저는 의식적으로 하루 4시간 이상 기도했고, 의식적으로 세계를 두드렸습니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지금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명성 있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원해도 얻지 못하고, 입술로 뿌려도 얻지 못하는 것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잠13:4). 성경에 게으름은 악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한 달란트를 그대로 묻어둔 자와 같아서 결국 어두운 데로 쫓겨나고 말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지옥이요, 세상에서는 가난의 어두운 곳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게으름을 잘라내고 부지런한 자가 되어 신명기 28장의 복을 누리며 살아봅시다. 할렐루야!
게으름은 악이요 인생을 부식시킨다
성공은 편안하기를 거부한 자의 것이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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