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킷은 자신을 지키는 힘이 약해지고 존재감이 사라진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처음에는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되고 점점 희미해져 가다 마침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게 비스킷이라는 게 있는 줄 심지어 비스킷 자신들도 잘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청각과민증과 소리공포증 때문에 작은 소리에도 예민했던 제성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비스킷들을 소리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부터 제성이는 비스킷들을 구해주고 있다.
존재감이 하도 없으면 '너 여깄었어?' 이런 말을 한다. 신경을 안쓰니까 그 자리에서 존재하는 중이었다는 것도 모르곤 하는 상황을 '존재감이 사라지면 그 사람의 형상 자체가 사라진다'로 극대화시켜서 판타지로 만든 책의 설정이 재밌었다.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설정 때문에 오는 유치함도 있었다. 그래도 판타지 소설이니까 그냥 감안하고 봤다.
책에서는 비스킷을 그냥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아무도 내 존재에 관심을 주지 않고 없는 사람이나 다름없어도 내가 내 존재를 온전하게 인정하면 내 존재가 약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한명이라도 그 사람의 존재를 인지하고 인정하면 존재할 수 있다. 그게 남이어도 좋고 나 자신이어도 좋다. 이런 부분에서 설정의 의미 자체도 되게 좋은 것 같았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도 동일하게 존재감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일에 집중하면 말 걸어도 말 건줄도 모르고 tv 보고 있으면 옆에서 청소를 해도 누가 들락거려도 안 보이는 것처럼 시야 안에 들어와 있어도 내가 인식하는 것은 한정적이고 로봇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센서에 찍힌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만큼 내가 보려 하는 만큼 보인다. 유치원에서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항상 존재감 없는 사람은 있다. 모든 곳에 그렇듯 사회에도 비스킷이 있다.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은 사람들의 주관심사가 아니고 시선 밖으로, 시야 밖으로, 관심 밖으로 쫓겨난다.
모두가 보고자 했던 것에서 그 이상을 보고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을 보는, 존재가 온전히 존재하도록 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누구나 비스킷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비스킷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