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볼 일 없는 사람
나는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보통 사람도 되지 못합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 중에서도 별 볼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북미 대륙을 횡단하는 장거리 트럭 운전사로 10여 년 넘게 일하면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이 전부라 할 만큼 인생에서 내세울 만한 성과도 없습니다. 그저 아는 만큼 보았고 보는 만큼 아는 것뿐, 그마저도 운전을 그만두었으니 정말로 별 볼 일 없는 인생입니다. 어느 날,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안과 의사를 찾아가 검사한 결과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Retinitis Pigmentosa, 시야가 점점 좁아지다가 마지막엔 실명하게 되는 무서운 질환입니다. 현재 의학으로 수술도 할 수 없고 치료도 불가능한 불치병이라고 합니다. 4만 명당 한 명이 이 병에 걸린다고 하는데 이 확률로는 복권에 당첨되기도 어렵습니다. 운도 참 없죠! 저는 이렇게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초점 범위가 좁아져 자주 넘어지고 안면인식 장애가 생기고 밤 하늘에 별을 볼 수 없게 되어 진짜 별 볼 일 없는 된 사람이 된 거죠. 운전면허가 취소되고 따라서 트럭운전 직업도 잃게 되어 당장 생계유지가 힘들어지고 제 삶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좁아지는 시야에 따른 불안과 그에 따라오는 우울증과 쌓이는 분노 때문에 점점 삶의 의욕이 없어지고 인생은 좌절과 절망으로 인해 점차 폐인처럼 변했습니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1년 동안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시각장애인들의 모임에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은 점자와 흰 지팡이의 사용법 등 시각장애인들이 홀로 생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시각장애인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 친구가 벽에 부딪히자 친구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야! 보지 못하면 둔하지나 말아야지. 허구한 날 여기저기 박고 다니냐?” “그래가지고 벽이 무너지겠냐?” “제발 좀 똑바로 걸어라” 그러자 그 친구도 지지 않습니다. “누가 여기에다 벽을 세워 놓았냐? 어제까지 없었는데. ” 다른 친구가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깜깜이가 밤이라고 길도 못 찾으면 어떡하냐?” “어차피 뵈는 게 없는데 쪽팔릴 일도 없다.” “오늘만 봐준다.” “어쭈, 보지도 못하면서 뭘 봐준다는 거냐?” “내일은 늦지 마라” “너는 한 치 앞도 못 보면서 내일 일을 걱정하냐?”
장애를 비관하며 절망에 빠져있을 줄 알았던 그들의 대화는 충격이었습니다. 조금 불편하다고 우울증에 빠진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정상인처럼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복 받은 사람입니다. 모든 일은 관점에 따라 다르며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시각장애가 좋은 점도 많이 있어요. 눈에 거슬릴 일도 없죠. 눈엣가시 같은 놈, 꼴 보기 싫은 놈도 없죠. 뭘봐?하며 시비 거는 놈도 없지요. 그중 최고는 무슨 일을 할 때 불을 켤 필요가 없어요. 부부관계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제가 틈만 나면 더듬어서.... 아내가 좋아하더라고요.
망막색소변성증은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병입니다. 다른 말로 Straw View라고 합니다. 마치 빨대 구멍으로 보는 것과 같아서 그렇게 부르는데 이건 좀 웃기는 말이에요. 빨대는 콜라를 마시라고 만든 것이지 그 구멍으로 보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 콜라 마시다가 빨대 구멍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가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실수를 합니다. 빨대 구멍으로 보면 WOMEN에서 MEN 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들어갔다가 ‘서서 쏴’가 없으니 당황스럽지요. 그런데 볼 수 없어도 관음증이라고 하나요? 네 맞습니다. 피핑 탐은 원래 구멍으로 보는 걸 좋아합니다. 이 Straw View를 가진 시각장애인이 구멍으로 보는 것 말고 잘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사격과 양궁입니다. 당연하지요. 보이는 게 과녁뿐이니까, 잘할밖에.... 실력은 올림픽 금메달감인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과녁을 찾는 데 한참 걸립니다. 활을 들고 이리저리 과녁을 찾고 있으면 사람들이 기겁합니다. 어어어어어! 화살을 피하느라고. 실격! 저는 시각장애인이 된 후부터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격언 때문입니다. I don't see, I don't believe! 또 원숭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Monkey see, monkey do!’ I don't see, I don't do! 그리고 영화 아바타 AVATAR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I see you’라고 하는 대사 때문에...., 보지 못하면 사랑도 못 하나요?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시각장애인이었다면 다른 장면이 나왔겠지요. 당신을 안보니까 사랑하는거야! I love you! because I don't see you! 그래서 LOVE IS BLIND!라는 훌륭한 대사가 있는겁니다. 반면에 봉준호 감독은 역시나 훌륭한 감독입니다. 기생충 포스터에 출연진 모두를 시각장애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검은 막대로 눈가리개를 했습니다. 참, 대단한 최고의 예술작품입니다. 아카데미 각본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최고영화상을 수상했는데, 하나 더 추가해야 합니다. 시각장애인상!
여러분은 시각장애인이 전람회의 그림을 어떻게 감상하는지 아십니까? 네? 불가능하다고요? 천만에요. 시각장애인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감상합니다. 원래 피아노곡이지만 라벨의 관현악 연주가 더 좋습니다. ‘빰빰 빠바바 빰빠 밤...’ 실제로 시각장애인도 전람회에 가서 작품을 감상합니다. 직접 보지는 못해도 그 느낌만을 알 수 있답니다. 바로 다른 관람객들의 반응을 통해서 압니다. 감탄사나 작은 움직임, 숨소리로 그림 속의 의미를 느끼고 감상합니다. 감동도 전염된다는 사실. 와우! (입 벌리기) 으음~ (고개 끄덕이기) 아하~ 대단한 작품이야(마치 보이는 것처럼) 허걱! (놀람) (묘하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모나리자! (손을 턱에 괴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서서 기도한다) 밀레의 만종! 아아아악!(양손을 뺨에 대고) 뭉크의 절규? 아니 이건 “나홀로 집에‘ Home alone! 가장 느끼기 어려운 그림은 갤러리들이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바라보는 그림입니다. 이를테면 ‘침대 위에 벌거벗은 마야!’ 같은 작품입니다. 무슨 일이든 오래 하다 보면 숙달되고 한계를 초월합니다. 한석봉이 어머님과 어둠 속에서 글을 쓰고 떡을 썰었고, 베토벤은 청각을 잃고도 작곡했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습니다. 음계를 알면 실제 연주를 듣지 않아도 악보만 보고 그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못 보는 것도 오래되면 숙달되어 볼 수는 없어도 알 수는 있답니다. 캐나다는 사회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기도 하지만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국과 다릅니다.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으며 차별없이 어울립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감동을 주거나 동정받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생활의 일부입니다. 장애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불편함이 없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울프캉림
|
|
첫댓글 '별star 볼 일없는 사람' 울프에게. 그러니까 아직은 별을 볼 수 있지? 그럼 '별 볼 일없는 사람'은 아닌거네.
문제는 그렇더라구. 헬렌 켈러의 '3중고'를 아시지?
마음이 눈 멀면(blind) (멀쩡한) 눈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거지.
친구의 망망색소변성증도 자네의 특유의 '넉살'로 잘 적응하며,
극복하며, 또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캐나다연금' 받을 때가 안되었는가?
모두 성장한 두 따님이 동양 개념의 '효녀'이겠지?
자주 더듬어주어 되레 좋아한다는 형수의 배려도 극진하리라.
가장으로서, 슈퍼트러거로서 평생 애쓴 자네의 헌신을
그들이 이해해주지 않거나, 못하면 될 말인가.
자네의 건필과 건승을 간절히 바라네. 우천 절함
별것도 아닌데 쪼금 불편하다보니 나보다 더 힘든 사람 사람들을 잠시라도 생각하게 하네.
큰일도 아닌데 친구들이 걱정 해주는 것도 미안하고 부담스럽네. 그저 고맙고 힘을 얻는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