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응용공학과 201710818 임창훈
철강왕 카네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디어와 계획들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소용없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보다 우수한 사람을 통해 배우나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에게 실천은 어렵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은 괴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실천과 부족을 인정함으로서 역사적인 기업인이 된 앤드류 카네기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중요성을 깨닫기 위해 선정하게되었다.
앤드류 카네기는 1835년 11월 25일, 스코틀랜드의 던펌린에서 태어났다. 직조공이었던 그의 부친은 수동식 직조기를 이용하는 작은 가내 공장을 운영했는데, 1847년에 증기식 직조기가 도입되면서 하루아침에 생계가 어려워지고 말았다. 급격히 가세가 기울면서 앤드류는 일찌감치 세상 물정에 눈뜨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서 돈을 벌어 가난을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듬해 카네기 일가는 친척이 사는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인근에 정착했고, 당시 13살의 앤드류는 공장주의 눈에 들어 사무 보조 담당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유일한 학력인 그는 남다른 근면,성실을 통해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를 이용했다.
1856년 그는 우연한 기회에 철도 침대차 사업에 투자해 처음으로 거금을 벌어들인다. 또한, 1859년에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의 피츠버그 지부장으로 승진하게 되며, 부유층으로 행세할 수 있게 되었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카네기는 워싱턴으로 향해 자기 분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철도와 전신의 복구 업무를 담당했다. 그 이듬해에 그는 석유회사에 거금을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이는 훗날 사업을 시작하는 밑천이 되었다.
1863년에 카네기는 키스톤 교량회사를 공동 설립함으로써 철강 분야에 처음으로 뛰어든다. 또한, 1867년에는 유니온 제철소, 1870년에는 루시 용광로 회사를 연이어 설립하며 사업의 폭을 넓혔다.
그러던 중 1872년 영국의 헨리 베세머 제강소를 방문한 카네기는 그곳에서 독특한 방법으로 생산되는 강철의 놀라운 잠재력을 깨닫고, 미국에서 강철의 대량 제조 및 유통을 실현시켜 ‘철강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러나 1892년 카네기 소유의 홈스테드 제강소에서 임금 협상 문제로 노사 갈등이 일어나면서 카네기의 동업자인 헨리 클레이 프릭과의 충돌로 일명 ‘홈스테드 학살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카네기의 이미지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기존의 철강 관련 사업체를 하나로 묶어 카네기 철강회사라는 트러스트를 결성한다. 10년 뒤 카네기는 너무 비대해진 사업을 정리하며, 은퇴에 대한 열망으로 당시 2위 철강 업체의 소유주인 모건과의 ‘빅딜’을 통해 회사를 매각했고, 이후 모건은 다른 철강 회사까지 포함하여 자본금 14억 달러의 세계 최대 철강회사 유에스 스틸을 설립한다.
이후 카네기는 그전부터 계획한 연 5만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수입은 모두 자선사업에 쓰겠다는 계획을 실천하며, 여러 분야의 자선사업을 관장할 기구를 조직해서, 1902년에 카네기 협회, 1905년에는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1910년에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1911년에 카네기재단을 설립한다. 그 후 1919년 8월 11일에 매사추세츠 주 세도브룩의 자택에서 그는 사망했으며, 그의 묘비에는 생전에 그가 좋아하던 “자기 자신보다 더 우수한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았던 사람이 여기 누워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와 같이 카네기는 생전에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자신 보다 우수한 사람들을 이용함으로 써 성공한 기업가가 되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자선사업을 통해 훌륭한 기업가로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카네기의 삶은 공대생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교훈을 주는 것 같다. 오늘날의 기업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이해하며 같이 실천할 수 있으며, 부족한 점을 채워 줄 수 있는 파트너를 선정하는 것이 성공한 기업가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되며, 이것에 그치지 않고 돈 뿐만이 아닌 재능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사회적 봉사 활동은 수업시간에 들었던 공대생의 역할은 세상사람들의 삶의 질은 높여주는 것이라는 것에 부합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