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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보이거나 만질 수 없다. 단지 사랑의 감정으로만 알 수 있다고 헬렌켈러는 말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봄날의 설렘 안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한다. 여행은 설렘충전소다. 여행은 사람이 만든 세상에서 벗어나 신이 만든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50주년을 기념하는 4일간의 여행은 행복 쿠폰, 4일간의 로또다. 이 쿠폰, 이 로또는 4일 내내 행복과 사랑을 무한 리필 해준다. 행복 열차에 승차한 81명의 용두열 가족에겐 누구에게나 제공된 쿠폰이며 로또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 공고해지는 용두열을 실은 행복열차는 4일, 80여 시간에 지난 50년을 가로지른다. 용두열 동창 모임에는 특별한 시계가 있다. 다름 아닌 1966년으로 돌아가는 시계!
용두열이 모이면 이 시계는 금세 50년 전으로 돌아간다. 누가 먼저랄 것도, 망설일 것도 없이 모든 용두열은 50년 전으로 변신한다. 50년의 시간, 그것은 밤하늘의 아름다운 은하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50년 전의 후암동 학창시절은 더욱 선명하고 보다 빛나는 밤하늘의 별로 다가온다.
여기 잊을 수 없는 용두열 50주년기념 드라마가 시작된다. 감독 : 박승하, 연출 : 유재성 유종현. 강기철.홍관표. 우정 출연 : 용두열 배우자. 4막으로 구성된 드라마엔 서로 다른 모양의 81개체의 용들이 등장한다. 멀리 미국과 뉴질렌드 용두열과 그 동안 보기 어려웠던 용두열이 특별 출연한다.
때는 밤낮없이 창밖으로 봄이 쏟아져 내리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4월 셋째 주 80여 시간 밤낮없이 행복 바이러스는 용두열을 휘감으며 가슴 속으로 스며든다.
비행기와 버스에서도 사랑은 뚝뚝 떨어지고, 호텔에서도 행복은 쏟아지고, 식당에서도 즐거움은 흘러넘치고 신사에 가서도 기쁨은 전염되는 용두열 가족!
마치 새하얀 눈밭위에 발자국 남기는 마음으로 증명사진 샷터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용두열의 추억은 시간과 함께 겹겹이 쌓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간다.
여기서 잠깐. 용두열의 출석체크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유 총무의 “아이 좋아라!” 가 압권이다. ‘아이 좋아라’는 어쩌면 유총무의 노래가 아니라 용두열의 마음을 대신 노래한 것이리라. 이동시마다 평소보다 주류 매출이 안 오른다고 호프와 사케를 들고 다니며 방문 판매하는 유총무의 영업 열정으로 주류 매출은 서서히 올라가지만, 동반한 배우자의 기에 눌려 주류 매출에 한계가 있다고 익살스런 제스쳐로 다시 한번 웃음은 퍼져나간다.
관광버스에 왜 가무가 없냐며 흥겨운 가무를 시도하다가 안전상 제지를 받은 배종근 동문의 장끼를 즐기지 못한 것은 흠 아닌 아쉬움이랄까? 하기야 매일같이 스텝으로 몸을 풀어야 하는데 나흘간이나 발산을 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분출하고 싶으랴.
버스 이동시 함께 해준 용두열 배우자들의 50주년 행사 참가 소감은 또 다른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세세한 소감 사례는 지면 관계상 올리지 못해 아쉽다.
먼저 제1막이다. 유총무의 어명에 따라 아침 일찍 7시에 인천국제공항 도착. 해외여행을 여러번 해 보았지만 출발 3시간 전까지 오라고 하는 것은 처음 경험한다. 그런데도 해외는 물론 전국 각지의 용두열들은 배우자님을 잘 모시고 착한 학생들처럼 어김없이 나타난다. 10시5분 비행기는 용두열 가족을 안전하게 미야자키공항에 데려다 준다. 공항에서 기다리던 버스는 스테미나를 충전해주려고 “스타미나로 고기뷔페 중식”으로 우릴 안내한다.
첫 일정으로 일본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우도신궁 관광이다. 우도 신궁은 절벽아래 해식동굴에 위치한 신사로서 동굴 속에 자리한 유일한 신사. 경내에는 기묘한 바위들이 곳곳에 있고 신궁 앞 절벽 아래에 있는 거북바위가 관광객을 기다린다. 운다마(점토로 만든 복구슬)를 던져 거북 등에 파여 있는 홈에 들어가면 소원이 성취된다니 신궁에서 운다마를 구매하여 던져본다. 미야자키 신궁은 일본의 건국신화에 첫 번째 황제로 나오는 진무천황과 그의 부모를 모신 사당이다. 진무천황은 50세에 황제에 올라 127세나 137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바다에 빨래판이 덮여있다. 그 옛날에 빨래감이 얼마나 많았으면 그렇게 큰 빨래판이 필요했을까?
미야자키를 대표하는 자연의 신비 도깨비빨래판 아오시마는 자연의 오묘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해안가 모아이상을 볼 수 있는 선멧세 니치난 관광도 색달랐다.
50주년 기념 여행 첫날밤은 ANA홀리데이인 리조트 미야자키가 반기고 있다. 아무쪼록 모든 용두열의 행복한 꿈나라를 꿈꾼다.
제2막이 오른다. 오늘은 일본 3대 명품 도자기로 손꼽히는 조선 도공 심수관 도예지를 방문하는 날이다. 심수관가와 같은 청송 심씨 후손인 용두열 심익섭 전 회장이 미리 연락하고 약속하여 이루어진 방문이란다. 그 이전에 호텔 조식 후 먼저 에도시대의 풍취를 느낄 수 있는 오비 성하 마을을 방문한다. 일본 사람들은 산보를 즐긴다고 한다. 산보,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이다. 우리는 산책이라고도 한다. 일본인들은 대부분 걷기를 좋아하는데 또 걷기를 싫어한다고 한다. 걷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어떤 일로 인해서 걷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저 즐기기 위해 걷는 것은 매우 좋아한다. 시장에 물건 사러 가는데 걷는 건 싫어해도 시장에 산보하러 걷는 건 좋아한다. 앞의 걷기는 일로 생각하고 뒤에 걷기는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보다.
드디어 조선 도공 심수관 도예지로 향한다. 그 어느 때 보다 가슴이 설렌다. 아쉽게도 제15대 심수관은 다른 지역에 출타중이어서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자필로 쓴 편지로 만날 수 있었다.v심수관 제자가 대독한 편지에서 심수관은 우리에 대한 관심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편지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진달래가 만개한 4월 심수관요 방문을 환영합니다. 심익섭 대표로부터 고교동창생 친구분들과 방문하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만 제가 오늘부터 시네마현 마쯔에시에서 개인전의 일정이 있는 관계로 아쉽지마는 여러분들께 직접 만나 뵙고 인사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중략- 일본과 한국 양국이 형제의 나라로서 양손을 잡고 미래로 나갈 수 있도록 저희들은 도자기를 열심히 만들면서 응원을 해 나아겠습니다. 오늘 방문해 주신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5대 심수관.”
현 15대 당주 심수관(62세)은 와세다대경제학부 출신으로 가업을 잇기 위하여 이태리에 유학하여 도예기술을 익히고 30대말에 당주로 임명되고 나서는 작품에 혼을 불어넣기 위하여 술과 담배도 끊고 수도자와 같은 자세로 작품에만 집중하고 있다 한다. 이는 심수관가의 초청을 받아 심씨종친회 간부 일원으로 지난 2월에 먼저 방문하여 심수관 당주로부터 회식자리에서 직접 듣고 감명을 받았다는 심익섭 동문의 전언이다. 심수관 제자의 설명과 안내 아래 도자기 작업과정을 견학하고 도자기 작품을 돌아보며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저력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15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심수관요는 420년 전 정유재란 때 사쓰마의 시마즈군에 의해 가고시마로 납치된 도예공들에 의해 시작된다. 심수관은 일본사회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제12대 심수관(1835~1906년) 이후의 역대 도예가(최고 책임자를 당주라 칭함)를 말하는데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가고시마현 히오키 시 나에시로가와에서 지금까지 “사쓰마 야키”라고 하는 자기를 만들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이 수만 명에 이르렀는데 여태껏 가문의 이름을 지키며 도자를 빚는 집안은 심수관 가마와 아리타의 이삼평 가마 딱 두 곳 뿐이란다. 이삼평 가마는 중간에 200년 가량 맥이 끊겼지만, 일본 도자시장에서 명품 백자 가마로 명성이 높은 심수관 가마는 불이 꺼진 적이 없다고 한다. 심수관 가문이 특별한 건 400 여년의 세월 동안 집안의 뿌리를 잊지 않아서이다. 초대 심수관 심당길(?∼1628)은 조선에서 그의 이름은 ‘심찬’이었다. ‘심찬’은 포로로 잡힌 신세를 한탄하며 일본에서 아명 ‘당길’만 썼다고 한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 긴 세월을 고국과 집안의 뿌리를 잊지 않고 중심을 지켜온 점에서 고국 사랑을 느낀다.
오랜 역사 속에서 애증을 함께 한 한국과 일본. 일본 천황이 말한 것처럼 일본인의 피속에는 우리 조선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문화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갈등과 분노로 서로 돌아앉은 한국과 일본. 심수관의 바램처럼 언젠가는 양국이 형제의 나라로서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는 미래지향적인 건전한 관계가 되리라 기대해본다. 어떤 이는 국가 일본과 국민 일본인은 구분해서 보는 것이 좋겠다는 말도 한다. 어떻게 보면 이웃사촌이 될 수 도 있는 일본. 이번 미야자키와 가고시마의 많은 일정 중에 조선 도공 심수관 도예지 방문에서 다가오는 느낌이 더욱 강렬한 것은 나만의 느낌인가?
여행의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먹거리다. 산보로 덴몬칸 거리를 둘러본 후 흑돼지 샤브샤브와 사케로 만찬을 만끽하고 가고시마 썬로얄호텔로 향한다.
벌써 3막이다. 치란으로 이동하여 에도시대의 옛 마을 무사가옥마을 관광 후 이부스키로 이동하여 가고시마 최대 소주공장 메이지구라를 견학한다. 용두열 건아들은 소주공장 견학보다는 시음시간에 더 열심이다. 세 가지 소주를 시음하다 보니 시음이 아니고 본론으로 들어간 듯 기분은 어느새 업(Up)되고 있다. 점심에는 돌아가는 삼각지가 아니고 돌아가는 소면, 나가시소면이 우릴 반기고 있다. 그냥 국수집이 아니고 움직이는 소면, 돌아가는 소면이 계곡의 작은 폭포와 어울리는 운치로 인해 그 맛을 더하고 있다.
괴물 뱀장어가 살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한 이케다 호수 앞에서 용두열은 다시 한번 사진으로 출석체크를 한다. 모두 출석이다. 일본 1위 타마테바코라는 검은모래찜질욕은 그간의 피로와 쌓인 알콜이 스르르 날아가는 느낌이며, 어떤 용산여고생은 모래찜질욕 체험시 두 남자가 양쪽에서 모래로 자신을 묻는 순간에 죽음이라는 게 이런거구나 하며 엉뚱하게 죽음을 새롭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고도 한다.
드디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연회가 열리는 날이다. 연회는 카이세키와 주류무제한이라고 하니 기대와 걱정이 함께 다가온다. 박승하회장의 인사로 시작된 연회는 어느새 무릉도원으로 변하여 열정 용두열은 테이블과 테이블을 순회하는가 하면 다양한 명주로 연회장은 알콜 향기가 넘쳐난다. 끝이 없던 연회는 가까스로 브레이크를 밟아 장내를 정리하고 용두열의 우렁찬 교가로 연회장 천장을 두드리며 마지막 날은 깊어간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렇게 밋밋하게 마친다고? 아쉬움이 가득한 용두열은 몇 명씩 그룹을 지어 시내 선술집으로 go go! 그 후 실황은 본 작가가 역량이 부족하여 동행취재를 하지 못하고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벌써 드라마의 마지막인 4막이다. 용두열의 지난밤의 사건을 모두 알 수 있을까? 절대 알 수 없고, 혹시 알아도 아는 척 하지 말자. 어제 일은 어제에게 맡기고 오늘을 오늘만 생각하자. 마지막 날 드라마를 위해 용두열들은 8시 반에 짐을 싸서 체크아웃한다.
카훼리편으로 아직도 활화산인 사꾸라지마 섬으로 이동하여 장수마을로 유명한 가고시마 후쿠야마을을 방문한다. 가고시마 장수 명물 흑식초 양조장을 견학하고 시음 체험 후 사쿠라지마 분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아리무라 용암전망대에 오른다. 아리무라 용암전망대에서 다시 한번 사진으로 전체 출석체크가 있다. 이번에는 배우자는 잠시 쉬게 하고 용두열 출첵을 한단다. 멋진 추억을 남기기 위해 바위에 올라 포즈도 취해보고 한다. 아쉽게도 이 과정에서 한 마리 용이 약간 생채기를 입는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라 한시름 놓는다.
활화산 사꾸라지마를 배경으로 배우자들도 마지막 출석 체크 모델이 되기에 바빠진다.
이동하면서 사이고다카모리 자살동굴을 차창으로 바라본다. 전성기를 지나 쇠락의 길을 걸은 장군의 발자취를 보며 역사의 준엄함을 되새긴다.
이번 해외 드라마의 공식 일정은 거의 다 소화하고 다시 일상으로 향하며 가족과 지인들을 위한 쇼핑센터 활동을 마지막으로 버스는 가고시마국제공항으로 향한다. 이렇게 용두열 50주년 기념 4일간 80여 시간의 드라마는 커튼 드리울 시간이 가까워 온다. 용두열과 함께한 용산여고생들이 한결같이 남편을 잘 만나 추억에 남을 멋진 여행을 했다며 자랑스런 후평을 들으니 더욱 뿌듯함을 느낀다. 다만 이 지점에 이르러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 드라마에 동참 못한 용두열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끝으로 이번 50주년 기념, 행복한 해외 드라마 준비를 위하여 밤낮으로 애쓴 박승하 회장단의 노고에 모든 용두열의 성의를 담아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대들은 용두열의 빛나는 큰 별이어라.
이제 용두열 60주년을 기대하며 펜을 놓는다. 용두열 입학60주년, 졸업60주년을 위하여!
- 작가 : 20회 이용섭 (기자, 시인, 서강대학교평생교육원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