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를 위한 기나긴 싸움 (신현준)
나처럼 ‘인기 없는’ 일개 평론가이자 학자가 '들국화'에 대해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건 괜한 자조나 자책이 아니다. 경외의 대상이었던 사람들에 대해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 분들이 이런 어려운 일을 내게 맡겼을까? 혹시 이런 추천사를 나 같은 사람에게 맡긴 것 자체가 ‘들국화다운’ 것이 아닐까. ‘들국화다운’ 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걸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는 자들의 홀로서기를 위한 기나긴 싸움’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홀로서기로 버틸 수 있을까. 사회라는 것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므로 완전히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 보통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여기저기 기대고 의존하고 산다. 별로 기대고 싶지 않은 존재들인 권력이나 자본에 대해서도 그렇다. 음악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무리 위대해 보이는 음악 아티스트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돈깨나 있고 힘깨나 쓰는 사람들에 기대어 스타가 되고, 스타가 된 다음에도 그런 조건이 쉬 바뀌지는 않는다.
한국의 대중음악 역사에서 이렇게 돈과 힘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경우들이 없지는 않다. 그 이름 중에서도 '들국화'라는 이름은 특별하다. 1985년 젊음의 끝자락에 서 있던 네댓 명의 남자들이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났다. 그들은 그 당시 ‘가수’의 관습적 이미지와는 달리 화려하지도 않았고 제멋대로였다. 한마디로 ‘우리는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다’는 도도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점에서 어떻게 들으면 촌스러울 수 있는 '들국화'라는 이름은 퍽이나 어울렸다. ‘위대하게 탄생할’ 일도 없고, ‘새가 되어 날아갈’ 일도 없고 ‘마음에 주단을 깔’ 일도 없다. 스타가 하늘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 같은 존재라면, 들국화는 들판 위에서 수수하게 피어 있는 존재다. 그렇지만 그 향기는 진득하고도 강렬하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숨은 역사를 들추어 보면, 그들은 언제나 들판 어디엔가 있었고 그들이 남긴 작품들이 존재한다. 단지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후각이 예민했던 사람이라면 이태원 뮤직 라보, 종로의 SM, 신촌의 뮤직 스페이스, 서초동 환타지아에서 이들의 향기를 미리 맛보았을지 모른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들국화'의 전성기에 그들과 함께 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국화'의 활동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어떤 정서를 가지고 살아갔을 것이다. 조금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전인권이, 최성원이, 주찬권이 무언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음악을 직접 연주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무언가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꽃에 비유하자면, 씨가 뿌려지고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들국화'의 형태는 늘 불완전했다. 이번 공연의 포스터처럼 '들국화'의 앨범에는 ‘네 명’의 사진이 나오지만 자세히 따져 보면 이건 ’4인조 밴드’와 거리가 있다. 따지고 들면 리드 기타와 드럼이 없고, 이는 음악 깨나 들었다는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미 오래 전에 주찬권이 정식 멤버가 되어 드럼 스틱을 쥐고 있지만, 지금도 들국화의 정식 멤버는 3명뿐이다. 그렇지만 음악의 기본이란 형태의 완결성과 큰 상관은 없는 모양이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의 삶이 그렇지 않을까. 모든 걸 다 잘 갖추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많은 경우 조건은 미비하고 환경은 여의치 않다. 이렇게 불비(不備)한 상황이 정상이고 일상이다. '들국화'의 음악이 특별하면서도 친숙하다면, 그들이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조건들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한데 모여 있는 것 같다가도 금세 뿔뿔이 흩어진다. '들국화'가 '들국화'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기간보다는 쉬었던 기간이 더 길다. 팬으로서는 불만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시간은 자꾸자꾸 흘러서 이제 '들국화'는 전설로만 남을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 분들은 역시 보통 사람들의 예상을 깨는 데 타고 난 소질이 있는 모양이다. 먼 곳에서 요양을 하고 있다던 전인권이 맑은 정신으로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소리가 들리고, 외딴 섬으로 가서 유유자적한다던 최성원이 서울을 찾는 행보가 잦아지고, 꾸준히 솔로 활동을 하던 주찬권이 새 앨범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세 사람이 드디어 다시 뭉쳤다고 한다. 4반세기 동안 한국을 떠나 있다가 몇 년 전 귀국해서 솔로 앨범을 발표한 조덕환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합류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세 명이 한 데 모이는 일도 큰 일이다. 곧 다시 헤어질 것이라고 미리 냉소할 필요는 없다. 앞에서 한 말을 달리 표현하면 하나의 고정된 음악적 밴드라기보다는 가변적이고 문화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 사건에 참여해서 느끼고 즐기면 된다. 그 기회를 놓친다면, 놓친 사람만 손해다.
혹시 이 분들 맨날 티격태격하고 가끔은 대판 싸워서 의가 상하는 사람들일까. 그럴 것 같다. 그런데 전인권이 최근 해 준 말이 있다. “우리들은 음악적으로는 절대로 싸우지 않아! 사소한 걸로 싸워!” 언제가 최성원한테 “인권이 형 혼자 들국화 3집을 낸 거 서운하지 않았어요?”라고 물었을 때 “야! 들국화는 필요한 사람이 쓰는 거야!”라고 답했다. 한번은 주찬권에게 “형은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는데 들국화에서 드럼만 치는 거 심심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으니 “야, 들국화에서 노래는 인권이가 불러야지.”라고 당연한 듯이 말한다. 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들국화는 여럿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여럿이다.
재결성을 하고 공연을 앞둔 들국화는 방송에 나오지 않겠다고 한다. 그게 ‘들국화다운’ 것이라고 몇 차례 강조하고 있는 걸 보니 허튼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방송국에서 통사정을 한다면 나갈 수 있겠지만, 비굴하게 빌빌거리면서 먼저 부탁하는 일은 하지 않을 모양이다. 이게 내가 이들의 삶을 ‘홀로서기를 위한 싸움’이라고 묘사한 또 하나의 이유다. 당장은 몰라도 길게 보면 그게 이기는 거다. 당장 잘 되려고 조급하게 안달해 봐야 결국은 거기서 거기다. 물론 이 분들이 누군가를 밟고 이겨서 정상에 오르려고 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들을 볼 수 있는 곳은 공연장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그 공연의 시간이 찬란하고 윤택한 순간들로 가득찰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들국화의 음악은 삶의 빛나는 순간들뿐만 아니라 비참한 순간도 동시에 들려주는 음악이었다. 그게 당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공감하고 향유하라.
첫댓글 깊드리님의 깊은 음악적 이해 잘 보고갑니다. 차한 잔 대접하지요. 이야기와 함께 말입니다.
강원도에서 한걸음에 차타고려와 보아도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죠
저도 지산밸리 평일이라면 또 가보고 싶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