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종료 후 서로를 위로하며 포옹하는 박상혁과 이승우. 패배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어린 소년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출처:KFA홈페이지)
FIFA 17세 이하(U-17)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벨기에에게 2:0으로 패배하면서 대회를 마무리했다. 브라질과의 예선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조별 예선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고 토너먼트에 진출했기에 더욱 아쉬웠다. 이번 U-17대표팀은 특급 유망주 이승우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큰 응원과 동시에 기대를 받기도 했다. 애초에 세웠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대회에서의 탈락을 실패라고 평가하기 보단 앞으로 어린 선수들이 나아갈 방향을 잘 설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거 대한민국 유소년 축구는 학교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학원 축구의 모든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의 특성상 몇몇 안 좋은 점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성적 지상주의'이다. 우승이라는 성적이 있어야 상급 학교 진학이 수월해지는 구조에서 선수들은 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플레이가 아니라,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기계적으로 따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선수들은 성실하지만 번뜩임은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도자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입받은 '정석'적인 움직임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움직임이 중요하다. 무엇이 좋은 플레이인지 스스로 느끼고 움직일 수 있어야 다양한 상황에서 창의적인 움직임이 가능하다.
게다가 청소년 시기는 신체적으로도 성장이 완료되지 않은데다가 성장의 속도가 달라, 신체적 발달이 빠른 선수들이 신체적 우위를 앞세워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성인 무대의 경우 그러한 신체적 우위를 앞세운 플레이엔 한계가 있다. 청소년 대표 시절 빛나던 선수들이 신체적 성장이 끝나고 성인 무대에 진출하면 예전과 같이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성인 무대에서는 경험이 많고 노련한 30대 선수들까지 상대해야 한다. '생각하는 축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승우가 뛰어난 기량으로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선수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FC바르셀로나의 유스 시스템도 팬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았다. 최근엔 K리그 역시 유스팀을 잘 정비하면서 좋은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다. 이번 U-17 대표팀에도 역시 매탄고(수원), 대건고(인천), 현대고(울산) 등 K리그의 유스팀 소속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K리그 유스팀이 잘 정비되면서 우승 자체보다도 좋은 선수 육성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당장의 '성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 미래를 위해 더 중요한 것들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구단의 입장에서도 유스팀 리그에서의 우승보다는 선수들이 실력을 갈고 닦아 성인 팀에서 뛸 기량을 갖추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
지금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탈락한 우리 대표팀을 두고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까. 성적에 집착해서 '실패'로 몰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번 대회를 경험 삼아 더 좋은 선수들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울 것인가.
고작 17세 선수들에게 지금 당장의 결과를 요구할 순 없다. 발전이 없다느니, 보여주는 게 없다느니 그런 말로 어린 선수들의 싹을 밟진 말아야 한다. 박지성은 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허정무 감독을 통해 발굴되었다. 어려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그는 아시아의 축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지금의 결과를 두고 어린 선수들의 성장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미래가 창창한 한 청소년에게 일종의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어린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이유로, 그들이 기울인 노력과 관계 없이 결과 때문에 비난 받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실력을 쌓는 FC바르셀로나의 유스 시스템을 부럽다고 하기 전에, 지켜보는 우리 팬들부터 어린 선수들에게 '성적'을 강요하고 있진 않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성인 무대의 월드컵은 4년의 결과를 내야하는 시험의 장이라고 할 수 있지만, 17세 이하의 선수들에게 이번 대회는 성장을 위해 거쳐가는 지점일 뿐이다. 어린 선수들은 오늘의 패배에서도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다. 결과만 강조하다보면 작은 성공 그리고 실패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놓치기 마련이다. 패배의 책임 소재를 찾기보다 부족한 점을 깨닫고 잘한 점은 더욱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2: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던 우리의 어린 선수들을 보니 그들이 어린 소년들이란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세계의 주목을 받는 유망주이지만, 끝내 페널티킥의 부담을 이기지 못한 이승우도 아직은 어린 소년이란 것이 새삼 느껴졌다. 어린 선수들이기에 여러 경험을 통해 부쩍부쩍 클 수 있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 U-17 대표팀 선수들이 얻은 점들을 말로 다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축구 내적 측면에서도, 정신력의 측면에서도, 팀으로서도 그리고 축구 실력을 제외한다면 평범한 한 청소년으로서도, 이루 말하지 못할만큼 많은 것들을 느낀 대회였을 것이다. 대회에서 떨어진 것은 누구보다 선수들 스스로가 아쉽고 슬프겠지만, 겨우 이번 대회가 끝이 아님을, 이 대회가 미래를 위한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멋지게 도전하고 승리하고 또 패배한 우리의 어린 선수들에게 고생했다는, 그리고 정말 멋있었다는 의미의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http://blog.naver.com/hyon_tai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