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스와 베컴이 입고 있는, 바로 저 유니폼이다! |
감독의 자질에 변명도 포함되는 것일까?
‘패장은 말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패배 뒤에 변명을 늘어놓는 건 명장이나 졸장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목표 달성에 실패하거나 경기에 패한 뒤, 대개의 감독들은 대동소이한 반응을 보이는데 그게 바로 '변명'이다. 이번에 소개할 감독들의 ‘변명 시리즈’를 보고 있자니 이쯤되면 변명이야말로 감독들의 특권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어떤 패배든 패한 이유가 없을 리 없겠지만 열심히 응원한 팬들이 듣고 싶은 건 애석하게도 변명이 아니라 각오나 양해의 말이다. 설령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패배였다고 할 지라도 겸허하고 이를 받아들이거나 나아가 상대의 성과를 인정하는 박수를 보낸다면 참으로 좋으련만 현실에서는 그야말로 꿈만 같은 일이다. 이런 장면을 보기란 요르단이 한국과 비기는 것만큼이나 힘든 것 아닐까. 그러니 너무 큰 기대는 접어두는 편이 좋을 지도 모르겠다.
감독들은 늘 똑같다. 아주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패배의 잘못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실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모든 패배가 전부 감독들의 잘못일 리 없으니 그게 뭐 문제냐고 생각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한들 자신을 믿고 따른 선수들을 탓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이유를 들어 패배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인상을 주는 것은 피해야하지 않을까.
1) 알렉스 퍼거슨 감독, “유니폼이 회색이라 졌다구!”
변명이란 명장의 조건인 것일까. ‘천하의 명장’으로 꼽히는 퍼거슨 감독. 최근에는 웬만큼 흥분하지 않고서는 말을 많이 아끼는 편이지만 환갑이 넘은 요즘에도 종종 다혈질적인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니, 젊을 때는 어땠겠는가. 패배의 아픔을 묵묵히 감내하기보다는 패배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것으로 자신을 합리화시켰던 몇몇 장면들은 지금도 일부 ‘안티’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떠돌고 있다.
아, 한 가지 먼저 밝혀둘 점은 그는 왠만해서는 패배의 원인을 선수에게 돌리는 법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건 그가 비교적 긍정적인 변명주의자(?)란 뜻이기도 하다. 여하간, 그 대신 퍼거슨 감독의 변명은 선수단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향했다. 주심을 책망한 적이 아마도 가장 많았을 것이며 부심이나 그라운드 관리인,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변명에서는 유니폼 디자이너가 거론된다.
지난 1995/96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원정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사우스햄턴에게 패하자 퍼거슨 감독은 엉뚱한 변명을 해대기 시작했다. 상대가 잘하거나 맨유가 못해서 패한 게 아니라 그 날 맨유가 입은 유니폼이 문제였다고 말한 것이다. 당시 맨유는 회색을 주로 쓴 다소 밋밋한 원정 경기 유니폼(사진 참조)을 입고 킥오프했는데 전반에만 3골을 허용하는 등 최악의 경기를 펼치자 하프타임 때 윗도리를 흰색 유니폼으로 바꿔 입고 나와 후반에 1골을 만회한 바 있다. (경기는 1-3 패배) 당시 퍼거슨 감독은 “유니폼 색깔이 저러니 우리 선수들이 동료가 어디 있는지를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겠더라”고 변명했다. 전술 부재를 감추려고 엉뚱하게 유니폼 핑계를 댄 최악의 변명이라고 꼬집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부진한 선수들을 감싸려는 감독의 배려가 보이지 않느냐며 퍼거슨 감독의 ‘고단수 심리전’이라고 평가한 견해도 있었다. 후반에 1골을 만회한 것이 그 증거라던가.
"돼지바 주심, 너 자꾸 이럴거야!?"
2) 트라파토니 감독, “심판 때문에 졌어!”
트랍 감독에게 미안하다. 굳이 그가 아니어도 될만큼 이 변명은 전형적이기 때문이다.거의 모든 감독들이 한 두 번 정도는 써먹었을 법한 수법 아닌가! 그럼에도 그를 모셔온 것은 독자들이 쉽게 기억하실만한 사례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때는 2002년 6월, 상대는 대한민국.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그는 16강에서 한국을 상대로 역전패하자 분기탱천했다. 벤치에서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 TV 화면을 통해 여러 번 방영됐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그는 “심판이 편파 판정을 내렸다”며 심판 탓을 했다. 토티의 퇴장을 비롯해 결정적인 상황에서 심판이 상대팀을 도왔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당시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심판을 탓하는 여론이 우세해 별 무리 없이 넘어갔고 트라파토니는 이탈리아를 16강 밖에 이끌지 못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유로2004까지 감독직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유로2004 당시 덴마크 전이 끝난 뒤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졸전을 인정했고 결국 8강에도 오르지 못한 채 변명 없이 감독직을 내놨다.
쓸 만한 선수가 없다니까! |
3) 앨런 커비쉬리 감독, “선수가 없잖아, 선수가!”
커비쉬리 감독에게도 많이 미안하다. 이것 역시 대부분의 감독들이 즐겨 사용하는 변명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선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지난 1958년 뮌헨 참사로 주전 여럿을 잃었던 맨유가 직후에 열린 리그 경기에서 2군 위주로 멤버를 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1군에서 뛸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 비행기 사고도 없이 버젓이 벤치에 앉아 있는데도 선수가 없다고 투덜댄다면 그 변명을 고개 끄덕이며 받아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07/08 시즌의 커비쉬리 감독이 그랬다. 찰튼 애슬레틱에서 10여 년간 감독 생활을 하며 명성을 쌓은 그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를 리그 중위권에 안착시켰지만 시즌 말미에 홈 팬들의 야유 속에 경기를 치러야 했다. 팬들은 중위권에 만족하는 그의 안전제일주의가 못마땅하기도 했지만 더 큰 불만은 선수 기용 방식이었다. 커비쉬리는 다른 팀에서라면 주전으로 뛸 만한 선수를 잘 기용하지 않아 팬들의 불평을 샀다. 게다가 이미 팀에서 마음이 떠난 선수를 조커로 투입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팀을 운용했다. 그런데 커비쉬리는 “선수 명단을 보라. 대체 출전시킬 선수가 없지 않은가”라고 하소연했다가 팬들로부터 더 큰 비난을 받았다.
원하는 선수 11명으로만 팀을 구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아쉬움들이 쌓여 있다가 패배와 함께 터져나오는 게 아닐까. 맘에 드는 선수가 없다고, 지금 명단에 있는 선수들로는 나의 축구를 구현할 수가 없다고 말이다.
요르단 전 직후 인터뷰 중인 허정무 감독 ⓒ스포탈코리아 |
최근 요르단과의 무승부 직후 허정무 감독이 이운재 골키퍼의 조기 사면을 언급한 게 화제가 됐었다. 감독들은 그렇다. 실패의 이유는 늘 저 너머에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은, 그들은 분명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췄는데도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결국 바깥에서 이유를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들 자신이 실패의 근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입증하고 싶어한다. 물론, 그게 옳은 행동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단지, 그게 어쩌면 감독들의 본능이요 자질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지울 수는 없다. 또,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감독님들에게 변명의 자유마저 반납하라고 말한다면 너무 잔인하다. 그러니 그저 변명도 요령껏 하시라고, 변명이 패배의 충격을 배가시키는 일 만큼은 피해달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을 뿐이다. 원정 길에 오를 축구 대표팀의 선전도 함께 기원하면서.
※ 사진 제공 : 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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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퍼거슨 변명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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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허정무 변명은 좀 아 ㅡ,.ㅡ 감독 정말 맘에 안듬..
영감님 ㅋ 유니폼색깔은 너무했다 ㅋㅋㅋ
허정무 아나ㅠㅠ 진짜 한국축협엔 어떤놈들이 잇길래 리그10위한 감독을 국가대표로 ㅡㅡ;;
솔직히, 골키퍼 바꾸자고한건 너무했다.... 진짜... 자기 선수들 배려도 못하고, ;;
그래 이런 글 자주 써 달라구 !!
서형욱님의 글은 언제나 맛있다는...ㅋ 퍼기경의 유니폼 사건은 애교로 넣은 것 같네,..ㅎ
퍼거슨의 변명은 은근히 사실인거 같기도.....ㅋㅋ
허정무는 좀 너무했어.
목적은 허정무까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