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건설 장소가 제주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로 결정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이유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대양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동시에 유사시 한반도 주변해역의 해양 주권을 지키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 남방 해역은 한국의 수출입 물동량의 99%가 통과하는 핵심 무역 통로이고, 여기를 통해 매일 40만 톤의 석유가 공급되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대한민국 경제에 제주 남방 항로의 안전은 생명줄과도 같다.
제주 해군기지는 1993년 국방부가 신규 소요를 제기한 이후 2002년 제주 지역주민의 반대로 해수부 항만기본계획 반영이 유보되었다가, 2005년에 이르러서야 국회 예결위에서 관련 예산안이 통과됨으로써 본격적인 논의가 재개되었다. 그 후 최근까지 근 2년에 걸쳐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둘러싸고 팽팽한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정부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왜 제주 해군기지가 필요한지 확고한 인식을 갖고 기지건설과 주민 설득을 병행해야 한다.
해군기지 반대 논리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해군기지는 ‘평화의 섬’ 제주의 이미지에 맞지 않고 제주도가 진정 평화의 섬이 되기 위해서는 제주도를 비무장지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괌이나 하와이에 미군기지가 있다고 해서 관광객이 줄지 않는 것을 보면 전혀 근거가 없다.
둘째,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동아시아 지역에서 MD 활동 등 미국이 해양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에 활용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제주 해군기지와 MD는 무관하며, 미 MD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는 것은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더구나 제주 해군기지는 우리의 안보를 위한 것이지 미국의 편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설령 미국 군함이 기항한다 하더라도 제주기지는 우리가 관할하고 주권을 행사하는 우리의 군사시설이다.
셋째,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주변 환경이 파괴되고 범죄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전국에 민항과 군항이 같이 있는 항구의 경우 예외 없이 군항이 깨끗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이는 해군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환경오염방지 예방활동을 실시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작년 통계에서는 전국 범죄 발생률이 가장 낮은 도시로 3군 본부가 위치하고 있어 군인과 그 가족들이 밀집 거주하고 있는 계룡시가 1위에 올랐다. 즉 군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 범죄 발생률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낮다는 것이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이러한 찬반 논란을 떠나 제주 해군기지가 필요한 핵심적인 이유는 동북아의 안보상황 때문이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군사력 증강과 현대화는 어지러울 정도다. 북한 핵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이 지역이 세계 군사비 지출 총액의 65% 정도를 점하면서 군사비 증가율에 있어서도 평균 3~4%인 다른 지역에 비해 8% 이상에 달한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중국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군 현대화와 일본이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보통국가화, 동북아 지역에서 특정 국가의 패권 추구를 억제한다는 미국의 안보전략 기조 등 3개의 역학 요인이 각각 현실적으로 역내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17%씩 국방비를 늘린 나라로서 조만간 항공모함을 보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아시아 유일의 전략무기(핵, 대륙간 탄도미사일, 잠사핵탄도 등) 보유국이고 세계 제일의 병력(250만명) 보유국이다. 일본 또한 보통국가화를 향한 물리적 뒷받침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값비싸고 최첨단 무기를 들여와 중국을 견제한다는 목표 하에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한층 강화하고 경제력을 앞세워 1기당 2500억 원이나 하는 F-22 전투기를 100대 구입할 계획이다. 특히 일본은 바다의 전자군단인 이지스함을 현재 5척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8척으로 늘릴 예정이다. 이에 비해 한국 해군은 2012년에 가야 3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할 예정이다.
중국과 일본의 첨단 군사력 증강에 대한 경쟁은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한국 안보에 대한 위협을 증대시키고 역내 분쟁 가능성을 높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입장에서도 주변국들의 군사력 강화에 대해 최소한의 방어적 충분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 해역의 불안한 균형을 고려할 때 제주 해군기지의 전략적 가치는 명백하다. 이어도의 예를 들어보면, 제주 남단 마라도에서 149km, 일본 도리시마(鳥島)에서는 276km, 중국 퉁다오(童島)에서는 247km 거리에 있다. 유사시 한국 해군이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국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효과를 줄 것이다.
한국 해군력의 현주소는 이웃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비참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해군은 열악한 환경에서나마 조금씩 해군력 증강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5월 25일 한국 최초의 이지스구축함(KDX-Ⅲ)인 ‘세종대왕함’이 진수되었고, 다음 달 초에는 대양해군의 핵심전력인 214급(1천800톤급) 잠수함 2번 함인 ‘정지(鄭地)’함이 진수될 예정이다. 이러한 최신예 함정들이 한국 해군의 기동전단을 구성할 것이고, 제주 기지가 적기에 완성되지 않는다면 해군 기동전단은 정박할 모항도 없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제주 해군기지를 국가안보라는 절박한 측면에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번 해군기지 후보지 결정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여론조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최근 상황의 불가피성도 있겠지만 국가안보의 중요 문제를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답답한 일이다. 정부가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주민 설득에 나서지 못하면 제주 해군기지 문제도 부안 방폐장 사태나 오산․평택 기지이전 문제처럼 불필요한 마찰로 소중한 국력을 허비할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제는 정부와 제주도민, 시민단체들이 모두 극단적 투쟁보다는 솔직한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는데 노력해야 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기지건설이 평화의 섬 제주의 이미지를 해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은 평화와 안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안보가 보장되지 않은 평화는 허구이고,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안보는 낭비다.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남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제주만 평화롭다고 해서 한국의 안보가 지켜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konas)
이상현(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shlee@sej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