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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 6:22~29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 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생명의 떡 6:30~40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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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무리가 바다 건너편까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자신을 찾는다며 썩을 양식이 아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떡을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께 오는 자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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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 6:22~29
바른 동기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다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 창조자로서의 정체성을 보여 주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먹고 배부른 일을 다시 경험하고자 예수님을 찾은 것뿐입니다. 그들이 바른 동기로 행동하도록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교훈하십니다(27절).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십니다(29절). 영원한 양식을 얻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먹고 배부른 일로 찾아온 무리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교훈하셨나요?
나는 어떤 동기와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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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떡 6:30~40
사람은 생명 유지를 위해 떡을 먹지만 결국 죽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늘의 떡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그 떡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33절)에서 ‘내려…주는’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현재 분사형으로 하나님이 늘 우리에게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35절). 예수님께 오는 자는 누구든지 배부르게 먹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에서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도 떡이 남았습니다(6:12).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주리지 않습니다. 그분을 믿는 자들은 영생의 복을 이미 얻었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40절).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이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원한 생명의 떡을 소망하기에 내가 내려놓을 육신의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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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유산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은 가족을 먹여 살릴 걱정을 하기 마련입니다. 주님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라고 하셨지만, 막상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부닥치면 이런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왜 주님이 육신을 위한 양식을 주시지 않느냐는 원망이 나오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는 육신의 생명뿐 아니라 영혼까지 위기에 처하게 하는 길입니다. 생명으로 가는 길은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만 신뢰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기적과 같은 변화가 가정에 일어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책임져 주신다고 하셨어. 예수님이 역사하실 거야.’라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신뢰하십시오.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 안에 거하도록 힘쓰십시오.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 되면, 어떤 일도 내 욕심이나 정욕으로 하지 않게 됩니다. 환경이 어떠하든지, 돈이 있든지 없든지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이 가족에게 최고의 선물입니다. 부모가 많은 돈을 유산으로 물려준다고 자녀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참생명을 주시고 하늘의 것으로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이 비밀을 기억하십시오.
십자가에서 살아난 가정 / 유기성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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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요한복음 6장 26~27절
예수님은 '썩을 양식'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두 가지를 대조하십니다. '썩을 양식'이란 일시적이고 현세적인 필요, 자기만족을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는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주님을 찾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자신의 유익을 추구할 따름입니다. 반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영원한 삶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써 우리를 위한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17:3).
주님의 복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분의 관심이 우리의 전인적인 행복에 있기에. - 조지프 프린스
오늘의 기도
주님, 믿음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 제 만족을 위해 주님을 찾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삶에서 돌이켜,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더 알고 온전히 믿는 일에 힘쓰게 하소서. 항상 주님 안에 거해 영원히 허기지지 않는 배부름으로 채워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 놀란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인사를 반가워하시기는커녕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
다른 표적들은 보고서도 아무 반응이 없던 그들이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 이렇게 예수님을 갑자기 랍비라 부르며 적극적으로 찾은 것은 믿어서가 아니라 떡을 먹고 놀랐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면 군량미 걱정 없는 군대를 일으킬 수 있고, 그러면 로마군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하는 양식은 먹어도 다시 배고프게 되는 썩을 양식일 뿐이었고, 그들이 희망하는 나라는 죽을 사람이 다스리는 없어질 나라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가르치신 양식은 영생의 양식이었고, 주께서 가르치신 나라는 영생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
그러자 그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요6:28)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6:29)
왜냐하면 오직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병이어 표적을 보고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당신이 모세와 같은 랍비면 만나와 같은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명백한 오병이어 표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은 것은 그들이 구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구한 것은 사람의 배고플 떡이요, 죽을 사람의 나라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영생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사람의 떡과 사람의 나라를 구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떡, 영생의 양식을 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6:32~34)
그래서 생명의 떡이신 주의 말씀을 항상 먹고, 항상 기도에 깨어 있어서,
주의 날, 그 마지막 날에 우리 아버지의 뜻대로 반드시 영생의 나라에 다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6:35~40)
요한복음6:22-40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양식을 추구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이 있은후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무리들에게 오병이어의 사건은 굉장한 사건이었음에 분명합니다
무리들이 그런 예수님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됩니다
무리들은 드디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무리들과 예수님과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26절 하반절에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하셨습니다 "
그리고 27절에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리를 보시기에 예수님을 찾지만 "썩을 양식을 찾는 것을 보셨습니다"
썩을 양식이란 육신의 양식을 말합니다 육신의 양식만을 찾는것을 보셨습니다
무리들은 또 묻기를 28절에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29절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가 자기들 앞에 있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30절과 31절 "우리가 뭘 보고 당신을 믿을수 있습니까
표적을 보여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31절에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때 만나 사건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만나와 같은 기적을 행하면 믿겠다는 말입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기적을 보여달라는 것은 그런데 진짜 기적은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무리들은 예수님을 두고서 여전히 육적인 필요에 머물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시면서 무리들의 관심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33절 이하에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시며
그분이 바로 당신들 앞에 계신 예수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35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결론적으로 무리들이 육신의 양식를 구했는데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예수님은 육신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참된 공급자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육신의 필요를 구하는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육신의 필요만 찾으면 육신의 필요가 만족이 되면 그때는 예수님을 찾지 않고
예수님을 찾지 않으면 생명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적인 양식을 구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35절을 보시면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이것 즉 생명의 떡이 예수안에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찾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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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서지만 찾는 목적이 다양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찾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
오병이어의 이적을 목격하고 왕으로 세우려고 하던 무리를 피해 예수님이 홀로 떠나가신다.
그러자 저들은 예수님의 사역의 본거지인 가버나움으로 가서 예수님을 다시 만나 언제 여기 오셨는지 묻는다.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왕으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예수님을 모르면서도 안다고, 예수님이 떠나셨는데도 함께 계신 줄 착각하고 있다.
예수님을 찾는 이유 예수님은 언제 여기 오셨느냐는 무리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들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라고 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일보다 세속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지적하신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먹을 것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고 로마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독립시킨다는 기대를 품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생하게 하는 양식 예수님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권면하시고 그 양식을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하는 일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목회자나 성도가 육체의 양식을 위해 일하면 교회를 통해 자신의 유익을 도모할 것이다.
그러나 영생의 양식인 주님을 위해 일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역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구하며 살기를 원하셨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구하고 찾고 따르는 참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떡을 바라고 가버나움까지 예수님을 찾아온 무리에게 당신이 떡이심을 밝히신다.
표적에 집착하는 사람들 가버나움까지 따라 온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표적을 요구하고 떡을 달라고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떡이나 재물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지금까지 당신이 누구인지를 계속 말씀하셨지만 관심이 없었다
예수님으로부터 얻는 것에만 집착하다 보니 정작 예수님에 대해 무지하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도 놓쳐버리고 말았다.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보다 그분이 내게 무엇을 주실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껍데기 신앙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무리는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하면서 구약의 만나를 언급한다.
예수님은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설명하시면서 당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은혜이고 예수님이 생명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은 영생을 얻는 것 무리는 생명의 떡이라는 말을 듣자 그 떡을 달라고 요청한다.
예수님은 당신이 떡이라고 밝히시면서 그 떡을 받는 방법은 예수님께 오는 것이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알려 주신다.
이 땅의 삶에 집착하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지만 추구하는 삶이 무너지면 예수님 따르기를 포기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오히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는데 제자들은 그길을 선택했다.
진정한 생명을 잡기 위해서는 가치 없는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보는 것,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 주목하면 모든 일의 근원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따라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음을 알아가길 소망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무리가 예수님께 와서 대화했던 내용입니다. 무리의 관심은 배부름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는 썩을 양식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생의 양식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무리와 예수님의 대화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와 유사합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선 물이 화두였다면 무리와의 대화에서는 떡이 화두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에 관해 이야기할 때 사마리아 여인의 반응과 같이 무리도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얻고 싶어 합니다.
무리(유대인)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과 하나님의 일을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의 논리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했기 대문에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들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이 얼마나 간단한 일입니까?
그런데 무리는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행위의 대가를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첫 번째로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두 번째로 믿는다는 것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리는 예수님께 믿도록 하는 표적이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모세는 만나를 자기 조상에게 표적으로 주었는데 당신(예수님)은 무엇을 표적으로 줄 수 있느냐의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만나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지적하십니다.
그런데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요? 당연히 그들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하나님을 볼 수 없으니깐 중보자인 모세가 준 것처럼 증언하는 것입니다.
무리의 관심은 오직 먹고 배부르기 위해 떡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떡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지만 그들은 배를 채우기 위한 떡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생명의 떡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들은 눈과 귀를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떡 덩어리 만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믿음에는 관심이 없고 떡을 먹는 행위에만 관심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떡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거저 받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행위를 자랑하게 되면 곡간에 쌓아 놓은 만나가 하루가 지나면 썩어 없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공로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2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우리가 자랑하는 것은 선물과 선물을 주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선물은 풀어 보아야, 그 귀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선물은 사용해 보아야 선물을 준 사람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생명의 떡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한없는 기쁨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공급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만남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놓지 않으신다는 표현을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38-39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기 위함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났던 자들을 찾으러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도 잃어 비리지 않고 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보십시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는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미를 아는 자는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부활을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부활을 소유하는 자들은 영생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을 소망하며 영생을 소유한 자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을 소유한 자들은 땅의 것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쫓는 자들이 아닙니다.
참 믿음을 소유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소유하길 원하는 자들입니다.
하늘의 것들을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세상의 원리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늘의 원리로 이 땅을 담대하게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세상의 힘을 빌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길 소원합니다.
➲ 온전한 믿음을 공급해 주십니다(22~25절).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배부르게 먹었던 무리들은 다음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에 없었던 것과 예수님이 배에 오르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배를 타고 떠난 것을 알았습니다. 무리들은 디베랴에서 온 배들(23절)을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나섰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결국 가버나움 회당까지 가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무리들이 가버나움까지 찾아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호기심 외에도 예수님께서 행하실 또 다른 기적을 바라며 다시금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는 의도 때문이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들은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25절)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것을 보고 무리들은 즉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까지 찾아갈 정도로 집요하게 그리고 열성적으로 예수님을 추종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들의 열정과 열심은 예수님에 대한 진실한 신앙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맹목적으로 추종한 이유는 그분께 대한 온전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이런 열심을 이용하여 육신적인 욕망과 세상적인 유익을 채우려는 마음이 있지 않은가를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무의미하고, 헛된 것에 나의 열정과 열심을 쏟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확실히 갖도록 하는 영적인 일과 영적인 양식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진정한 제자로 인정해 주십니다(26~29절).
예수님을 찾아 헤매던 무리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답변은 매우 냉정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것은 표적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요, 더 많은 떡을 원하기 때문(26절)이라는 것입니다.
무리들은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진정한 구원자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욕구가 만족된 것만을 기억하며 썩어질 육신의 양식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썩을 양식’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대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양식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정하신 인자가 그들에게 줄 양식(27절)입니다. 결국 오병이어 표적을 통해서 그들이 깨닫지 못한 인자이신 예수님을 다시 알리시고 계십니다.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까?’ 묻는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29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고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자신의 육을 위한 양식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썩을 양식을 위해 맹목적으로 일하지 말고, 또한 무엇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내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서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되 제대로 믿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바로 생명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하나님의 일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내 자신의 삶을 날마다 선한 길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왕권을 삶의 전 영역에서 인정할 때, 예수님은 진정한 제자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부름 받은 제자답게 영적인 양식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하셔서 원하는 항구로 인도해 가시는 주님을 위해 기쁨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순전한 믿음의 삶을 추구하는 진정한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요 6:16~29절)...
➲ 생명의 확신을 공급하여 주십니다(30~33절).
예수님을 찾아왔던 무리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또 다른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30절). 그러나 그들의 요청에는 믿음에 대한 진정성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서, 그들에게 먹게 하셨다’라고 하는 구약의 한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31절). 그들의 말의 핵심은 ‘모세가 하늘로부터 떡을 주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메시아라면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의 표적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는 마귀의 유혹의 떠오르게 하는 행동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늘에서 내린 떡을 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32절)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33절)입니다.
과거에 하늘에서 내린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육신의 양식은 되었지만, 구원의 양식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주시는 양식은 참 떡으로서 생명과 구원의 양식이 됩니다.
그러므로 더 많은 표적이나 더 큰 기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참되고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겸손히 하나님께 간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요나의 표적은 십자가의 표적입니다. 십자가의 표적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히 11:1).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마 4:4)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여 주십니다(34~36절).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 사마리아 여인은 매일 물을 길으러 우물에 오는 수고를 면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무리들은 매일 양식을 위해 일해야 하는 수고를 면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영적 무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다...’ 말씀하십니다. 과거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만나와는 구별되는 분으로 나를 믿으면 결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35절)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36절).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분명하고 확신 있는 믿음이 없으면 지금 당장 시급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세상적인 떡을 붙잡고, 권력과 물질을 떡에 집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리고 목마름(35절)은 이 땅에 속한 세상적인 욕망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들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그렇게 목마른 자들과 주린 영혼들을 만족시켜 주시기 위해 하늘로부터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욕심을 따라 생존에 집착하거나 염려하지 않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 안에서 내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고, 영적인 배부름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 부활의 소망을 누리도록 하십니다(37~40절).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요, 그런 사람은 내가 결코 내쫓지 않을 것(37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신다(38절)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것이고, 또한 아들 즉 예수님 당신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도록 하여 마지막 날에 그들을 살리는 것(39~40절)이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적 뜻에 순종하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그분께 나아온 자들은 절대 내쫓지 않으시고,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주님을 믿는 자들을 반드시 다시 살리셔서 영원한 부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에 대한 분명하고, 확신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기에 내 자신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 안에서 영생의 삶을 누려야 하며, 천국에서도 누리게 될 영원한 삶에 대해 소망하며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주위에 갈 길을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영원한 삶의 길을 찾아 헤매이는 영혼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누릴 수 있도록 부지런히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절망과 낙심이 아닌 부활의 소망을 누리도록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오늘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려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영적인 굶주림과 목마름을 만족시켜 주시고, 영원한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요 6:30~40절)...
요한복음에 나타난 7가지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
1.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2.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3. 나는 문이다.(10:7,9)
4. 나는 선한 목자라.(10:11)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7.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5)
요한복음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7가지 표적
1. 갈릴리 가나의 혼례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 (2:1~11)
2. 갈릴리 가나에서 가버나움에 있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심 (4:46~54)
3. 예루살렘에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심 (5:1~9)
4.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심 (6:1~13)
5. 바다 위를 걸어 오심(물 위를 걸으심) (6:16~21)
6.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심 (소경을 치유하심) (9:1~41)
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11:1~4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 16:4)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욥 23:11~12)
그러나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사람이 힘센 자의 떡을 먹었으며 그가 음식을 그들에게 충족히 주셨도다.(시 78:23~25)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전 12:11~12)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 4:1-1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마 16:1~4)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2~25)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요한복음 17:3
주님의 낮아지심과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되시기 위해
그 몸과 살을 내어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인생이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선한 도구가 되게 하시고,
우리가 구하는 것이 오직 주님을 따르고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는
하늘로부터의 능력이 되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때론 눈앞에 보이는 것들로 마음과 생각이 흐려지게 하는
악한 세력의 공격이 있을지라도, 말씀과 기도로 깨어 주님으로부터
오는 도우심을 받는 믿음의 족속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열방 곳곳마다 주님의 선하신 뜻을 이뤄가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 위에,
그 아름다운 발걸음 위에 기름 부어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우시고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고통과 질병, 전쟁과 핍박 가운데 신음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여호와의 긍휼과 사랑으로 위로와 회복을 경험케 하여 주시옵소서.
분열과 아픔, 미움과 분노로 가득한 이 나라와 백성에게
하늘로부터의 위로와 빛을 허락하셔서 어둠을 몰아내고
맡겨주신 거룩한 제사장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모든 영광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생명의 양식되시는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