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Lamentation) - 조토
[월간 꿈 CUM] 그리다 꿈CUM _ 미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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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 애도(Lamentation), 프레스코화, 200X185cm, 1305~1306년경, 이탈리아 파도바 아레나 성당
‘탄!’(嘆, 한숨 쉬다) 입(口)과 진흙(菫)이 합쳐진 글자다. 진흙을 먹어야 할 정도로 굶주리는 애통한 상황에서 내쉬는 깊은 한숨을 뜻한다.
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조토(Giotto di Bondone, 1267~1337)의 이 그림에서 우리는 ‘탄’을 읽을 수 있다. 제목도 ‘애도’(lamentation, 비탄, 한탄, 탄식)다. 조토는 이 그림을 통해 우리를 ‘탄’의 정중앙으로 초대하고 있다. 인간과 우주가 함께 눈물 흘리고 있다. 예수의 성해를 중심으로 지상에서는 인간들이, 하늘에선 천사들이 애통해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가 아들과 얼굴을 맞대고 오열하고 있고, 성 요한은 두 팔을 좌우로 벌린 채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그 뒤에는 예수의 성해를 수습한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니코데모가 충격 속에 서 있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눈물로 발을 씻으며 향유를 부은 사건(요한 12,1-8 참조)을 상기시키고 있다. 등 돌린 여인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 슬픔의 깊이가 전해진다. 아마도 눈물 펑펑 쏟고 있으리라.
하늘에서도 운다. 천사들은 극한의 비극을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가리고, 통곡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어 귀를 막고 있다. 지금까지 붓과 물감으로 슬픔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한 사람은 없었다. 조토는 사람들이 그림을 보며 눈물 흘릴 수 있게 한 회화의 천재였다.
조토 이전까지 비잔틴 회화는 한 화면 안에 등장인물들을 구겨서라도 모두 집어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완전히 다르다. 새롭다. 등 돌린 사람, 심지어 머리 윗부분만 보이는 인물도 있다. 또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배경이다. 조토는 회화 역사상 처음으로 배경에 풍경과 건물들을 그려 넣었다. 또 투시법과 명암 등을 이용해 입체감을 표현했다. 조토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새로움을 창조했다.
이 천재가 산등성이 위에 한 그루의 외로운 나무를 그려 넣었다. 슬프다. 혼자여서 외롭다. 그런데 나무의 슬픔은 인물 및 천사들의 슬픔과는 동떨어져 있다. 거리를 두고 있다. 슬픔을 관조하는 슬픔이다. 탄(嘆)은 ‘후시지탄’(後時之嘆)이나 ‘만시지탄’(晩時之歎)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애도와 한탄은 기회를 놓친 후의 단순한 슬픔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예수 바로 옆 나무에 매달렸던 죄수가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에 나무에 매달린 외로운 예수가 말한다. 언덕 위 외로운 나무가 말한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글 _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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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29